마음밖에 불성이 따로없다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마음을 가지고, 마음에 전하고, 문자(文字)를 세우지 않는다.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찾으면 부처를 알지 못한다
만약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본성을 보아야 하니, 본성이 곧 부처이다.
만약 자기의 마음은 알지 못하면서 쓸데없는 글들만 외운다면,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만약 본성을 본다면 곧 부처이고, 본성을 보지 못하면 곧 중생이다
본성을 제외하고는 얻을 부처가 없고, 부처를 제외하고는 얻을 본성이 없다.
“얻을 수 있는 조그마한 법이라도 있다면, 이것은 유위법(有爲法)이고, 인과법(因果法)으로서,
과보(果報)를 받는 것이니, 곧 윤회(輪廻)하는 법이다. 성불이란 모름지기 본성을 보는 것이다.
부처란 스스로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인데, 어떻게 이 마음을 떠나 따로 부처를 찾을 것인가?
스스로의 마음이 바로 깨달음이며, 스스로의 마음이 바로 열반이니, 마음 밖에서 부처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부처와 깨달음이 모두 어디에 있는가? 허공은 다만 이름일 뿐이고, 모양은 없어서,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허공을 붙잡을 수 없는 것처럼, 이 마음을 없애고 밖에서 부처를 찾을 수는 결코 없다.
부처란 스스로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인데, 어떻게 이 마음을 떠나 따로 부처를 찾을 것인가?
마음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마음이다. 마음 밖에 부처 없고, 부처 밖에 마음 없다.
만약 본성을 보지 않으면, 인과(因果) 등의 말들은 외도(外道)의 법이다.
마음의 본성은 본래 공(空)이니, 역시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모든 법은 닦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고,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다.
만약 만드는 일이 없는 법을 닦으려 한다면, 먼저 반드시 자기성품을 본 연후에야
반연하는 생각이 쉬어지는 것이다. 자성을 보지 못하고도 도(道)를 이룰 수 있는 경우는 절대 없다.
이 몸이 그대의 본래 법신(法身)이고, 이 법신이 그대의 본래 마음이다.
생기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고,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옳고 그름도 없고, 남녀의 모습도 없고,
승속(僧俗)과 노소(老少)도 없고, 성인(聖人)도 없고, 범부도 없고,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고,
닦아서 깨달음도 없고, 원인도 결과도 없고, 근력(筋力)도 없고, 용모(容貌)도 없다.
법신(法身)은 본래 감각을 받아들임이 없어서, 배고픔도 없고, 목마름도 없고, 추움도 없고, 더움도 없고, 병도 없고, 사랑도 없고, 딸린 권속도 없고, 고통과 즐거움도 없고, 좋아함과 싫어함도 없고, 장점과 단점도 없고, 강함과 약함도 없다. 본래 얻을 수 있는 한 물건도 없다. 이 까닭에 종일 왔다갔다 하지만 한 번도 왔다갔다 한적이 없으며, 종일 보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며, 종일 웃지만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으며, 종일 듣지만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으며, 종일 알지만 한 번도 안 적이 없으며, 종일 기뻐하지만 한 번도 기뻤던 적이 없으며, 종일 다니지만 한 번도 다닌 적이 없으며, 종일 머물지만 한 번도 머문 적이 없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본래 두루 고요하다 마치 허공과 같아서,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산이나 강이나 석벽
(石壁)이 가로 막을 수도 없다. 이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약 지혜가 이 마음을 밝게 깨달으면, 바야흐로 법성(法性)이라 이름하고, 또 해탈이라 이름 하니,
생사에 구속받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의 크기는 광대하고, 원대하여 작용함은 끝이 없다
언제나 말길이 끊어지기만 하면, 곧 자기 마음이다. 마음은 모습이 없고, 지혜 역시 다함이 없다.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이니 부처를 가지고 부처를 찾지말라 모든 모습을 떠난 것을 모든 부처라고 일컫는다.’
본성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도(道)이고, 도가 곧 선(禪)이다. “본성을 보는 것이 선(禪)이다.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면, 선이 아니다. 설사 천 권의 경전과 만 권의 논서를 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다만 범부일 뿐, 불법(佛法)은 아니다.
지극한 도는 그윽하고 깊어서 말로써는 알아차릴 수가 없으니, 경전의 가르침이 어떻게 미치겠는가?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염불(念佛)하고 경을 외우고, 재(齋)를 지내고, 계(戒)를 지킨다고 하여도 이익될 것이 없다.
만약 자기의 마음은 알지 못하면서 쓸데없는 글들만 외운다면,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단지 본성을 보기만 하면, 한 글자도 몰라도 된다. 자기 본성을 보는 것이 바로 부처이다.
성스런 본바탕은 본래 청정하여 잡스런 때가 없다. 자기의 마음이 본래 텅 비고 고요한 줄 알지 못하고,
망령되이 모습을 붙잡고, 일체법을 붙잡으면, 바로 외도(外道)에 떨어진다. 만약 본성을 본다면, 12부 경전은
모두 부질없는 문자이다. 마음이 잠깐이라도 일어나면, 곧 마구니에게 사로잡힌다.
가난과 고생이 모두 망상으로 말미암아 생기니, 만약 이 마음을 깨닫는다면, 서로서로 권고하여
다만 행함 없이 행한다면, 곧 여래의 지견으로 들어간다.사대색신(四大色身)이 곧 번뇌이니, 색신에는 생멸(生滅)이 있기 때문이다. 본성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본성이다. 바로 이것이 모든 부처의 마음과 같다.
나의 마음은 텅 비고 고요하니, 본래 그런 모습은 없다. 만약 모습을 취한다면 곧 마구니에게 포섭되니, 모두 사도(邪道)에 떨어진다.
頌曰 (게송)
心心心難可尋,寬時遍法界,窄也不容針。
심심심난가심,관시편법계,착야불용침。
마음 마음 하지만 마음은 찾기가 어려우니,
넓을 때에는 법계(法界)에 두루하고,
좁을 때에는 바늘도 들어갈 틈이 없다.
我本求心不求佛,了知三界空無物。
아본구심불구불,료지삼계공무물。
나는 본래 마음을 찾고 부처를 찾지 않으니,
삼계(三界)가 비어서 물건이 없음을 밝게 안다.
若欲求佛但求心,只這心這心是佛。
약욕구불단구심,지저심저심시불。
만약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다만 마음을 찾을지니,
단지 이 마음, 마음 하는 마음이, 곧 부처이다.
我本求心心自持,求心不得待心知。
아본구심심자지,구심불득대심지。
나는 본래 마음을 찾았으나,마음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이라
마음을 찾아도 마음을 기다릴 수는 없음을 안다.
佛性不從心外得,心生便是罪生時。
불성불종심외득,심생편시죄생시。
불성은 마음 밖에서 얻을 수 없으니,
마음이 생기면 곧 죄가 생기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