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길 위에서 넘어지다.
1-1 SKY나 아이비리그 정도 다녀야...
우리 가족이 여행을 마치고 미국에서 몇 달간 지낼 때의 일이었다. 아이들은 그동안 여행을 통해 동기가 부여되어서인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영어공부에 매달렸다. 그때 아이들 교육 문제로 미국에 와 있던 한국 엄마들이 우리 아이들을 보더니 말했다.
“전 세계를 보고 와서 그런지 아이들이 한국의 10대들과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남다른 칭찬에 감사의 뜻을 전하자, “아이들 대학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라며 한 엄마가 의미심장한 어투로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엄마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세계여행도 하고 했으니...... 적어도 미국의 아이비리그를 가던지, 한국의 SKY 대학 정도는 들어가야, 한국에서 자녀교육에 성공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미국의 아이비리그나 SKY 대학을 보내야 자식교육에 성공했다고 하는 것은 자식교육을 성적이라는 잣대에 맞추어 무한경쟁 하도록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차라리 교육이라는 말 대신에 좋은 성적, 명문 대학, 번듯한 직장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직하지 싶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필요 없거나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미국에서 만난 교민 중에는 교육 문제로 아이와 엄마만 와 있는 가정도 많았다. 이런 현상은 영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아프리카의 남아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이나 남아공에서 만난 엄마들은 한국의 교육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서 기러기 아빠로 남아 있는 남편에 대해 마음아파 했다. 때로는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와 한국의 아빠가 관계가 깨어져서 영영 헤어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무엇이 멀쩡한 가정을 이렇게 흩어지게 만들었단 말인가? 너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는 일들이라 그냥 무덤덤하게 여겨도 되는 걸까?
오래 전 미국으로 이민 온 한 분의 얘기는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한국에서는 아이들에게 무엇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건가요?”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우리에게 자초지종을 말해 주었다.
“어떻게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러 온 여자아이가 자기 속옷도 스스로 세탁 할 줄을 모른단 말인지? 제 조카인데도 이해가 안 됩니다.”
한국에 사는 오빠의 딸은 오빠 네의 자랑거리라고 했다. 그 조카가 한국에서 명문대학을 나오고 이곳 미국으로 석사과정을 공부하러 왔는데, 공부 외에는 손도 까닥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조카에게 속옷만이라도 스스로 씻으라고 했더니, 조카가 바로 한국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단다. 그와 동시에 서울의 올케한테서 서운함을 담은 항의전화를 받았단다.
“고모! 우리 애는 한국에서 공부밖에 안했어요. 그런 애한테 속옷을 씻으라고 하다니요?”
그런 사소한 문제를 한국의 엄마에게 전화를 한 조카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자신에게 섭섭함을 나타내는 올케언니는 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명밖에 없는 조카에게 그 정도도 못해 주느냐는 듯이 말하는 올케언니의 태도를 자식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씁쓸해 했었다.
또 이민 2세인 25살 아가씨의 말도 생각난다.
“한국에서 유학 온 오빠들은 정말 돈을 잘 써요. 저희들은 아르바이트 해서 저희 용돈을 버는데 한국 오빠들은 하루저녁에 우리가 사용하는 한 달 용돈만큼을 다 쓰는 경우도 있어요. 한국 부모님들은 20대 후반인 자식에게도 조건 없이 돈을 주다니 참 신기해요.”
똑같은 한국의 후손인데 미국서 태어난 이민 2세는 자식사랑에 끔찍한 한국부모가 이해되지 않는다하고, 한국서 태어 난 아들은 부모가 보내주는 돈으로 미국에서 펑펑 인심을 베풀고 있으니......
이 역시 유학생들의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한 푼이라도 아껴가며 시간을 쪼개어 공부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땀을 흘리는 이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허다했으니, 부모랑 생이별하고, 돈 들이고, 시간 투자해 자식을 망치는 경우라 할 것이다. 한국의 부모들이 최고의 자식사랑으로 미국까지 보내며 힘들게 뒷바라지 할 때, 유학 온 아들, 딸은 의문의 대상이 되어 버린 현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어쩌면 스스로 정한 자신의 꿈이 아니었기에 의지가 없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비행기 타고 미국까지 가지 않더라도 한국 안에서는 어떠한가? 한국으로 돌아 와 우리는 <가정과 교육 세움터>라는 상담센터를 설립했다. 아파하는 한국의 가정과 교육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작은 소망 때문이다.
한 도서관이 주관하는 특강에서 우리 부부가 강의를 마치고 인사를 나누는데, 머리가 허연 60후반의 할머니께서 눈물을 글썽거리시며 다가 오셨다.
“두 분 말씀을 들으니 자식을 최고로 교육 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는데, 난 그걸 몰랐다가 지금은 너무 외롭답니다.”
사연인 즉은, 두 딸을 훌륭한 예술인으로 키우기 위해 할머니는 두 딸이 어릴 적부터 모든 스케줄을 철저하게 관리하며 최선을 다해 키우셨단다. 아이들은 불평 하지 않고 따라 주었고, 두 딸은 할머니의 바람대로 남들이 알아주는 예술인이 되었고, 훌륭하게 결혼까지 시켰다. 그런데 결혼 후 1년이 지난 어느 날, 두 딸이 약속이나 한 듯이 돌아가며 할머니에게 폭탄선언을 했단다.
“엄마, 이제 더 이상 엄마를 찾아오지 않을 거예요. 엄마는 나를 위해 그렇게 하셨는지 몰라도 정말 힘들었어요, 단 한 번도 난 행복하지 않았어요. 엄마 밑에서 자랄 때만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서 이젠 더 이상 그런 괴로움에 젖기 싫어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할머니 앞에 딸은 다시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단다.
“엄마, 내가 결혼한 이유도 하루빨리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예요. 이젠 나도 내 행복을 찾고 싶어요.”
이런 사연을 내어놓으며 눈물을 흘리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할머니에게 딸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부모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번도 딸들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 백발의 노모는 자신의 사랑 때문에 힘들어 했던 딸들의 모습에 통곡해야 할까?
얼마 전 상담을 왔던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의 경우도 사랑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가정의 모습이었다. 엄마가 상담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던 아들이 말했다.
“제발 연극 좀 하지 마세요. 언제 엄마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신 적이 있어요?”
아들의 경멸에 찬 눈빛을 눈물을 글썽이며 바라보던 엄마가 혼자 소리처럼 말했다.
“정말 어릴 적에는 나무 랄 데 없이 착하고 잘했는데...... 왜 이렇게 갑자기 돌변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엄마의 푸념이 짜증난다는 듯, 아들이 쏘아 붙였다.
“엄마에게 아들은 적어도 서울대쯤은 들어 가 줘야 하고, 남자니까 공부만큼 운동도 잘 해줘야 하고, 성격도 좋아야 하고...... 그런 아들을 원했으면 엄마가 조립해서 만들어요. 왜 쓸데없이 나를 낳아 가지고 난리야?”
자신의 사랑을 몰라주는 아들을 향해 눈물짓는 엄마. 엄마의 사랑이 고통이었노라고 탄식하는 아들의 모습. 우리네 한국만의 아픔 같아 짓누르는 아픔이 느껴졌다.
“미국의 명문대학이나 서울대학을 들어가게 해 주는 대신에 당신과 아이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당신 아이가 대기업에 입사하는 조건으로 그 아이는 영원히 행복하다는 마음은 잃게 됩니다.”
누군가 이런 조건을 내세우며 택하라고 해도 우리는 명문대학과 번듯한 직장만을 고집하는 부모가 되려고 할까? 부모라면 내 자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부모가 정한 기준을 내려놓지 못하고 또 이렇게 말하며 위안을 할지도 모른다.
“엄마 말 들어, 다 너를 위한 것이야! 넌 다 잘할 수 있어. 나중 되면 분명히 나한테 고마워 할 거야.”
과연 그럴까?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지만, 할머니의 눈물의 고백을 통해 조금은 더 솔직해야 함을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