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움막촌사람들
나무 한 그루 없이 벌거숭이가 된 그 산도 부스럼이 번지고 있는 머리통처럼 보기 흉했
다. 서울 변두리의 야산들이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꼼짝없이 몸을 파먹히듯 옥수동의
그 산도 이미 목 부분까지 먹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야산은 유난히 너저분하고 구질구
질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산을 뒤덮다시피 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판잣집이 아니
라 움막집들이었다.
땅을 석 자 정도 깊이로 파내고 그 위에 지붕을 덮은 움막집들은 누추할 수밖에 없었다.
지붕이라고 덮은 것은 가마니때기거나 헌 문짝이 아니면 천막쪼가리 같은 것들이었다. 그 산
동네에도 판잣집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산 아래 짬으로 판잣집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모두가 무허가이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판잣집들은 움막집들에 비하면 대궐인 셈이었다.
산자락에서부터 먼저 움막을 쳤던 사람들이 어렵사리 돈을 모아 판잣집을 얽어짠 것임을 알
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와따메, 사람 얼어죽겄다 와. 음력설이 지낸 지가 은젠디 날이 워째 요렇크름 사람을 잡
을라고 염병이까. 닌장맞을 서울은 쓸 만헌 것이 하나또 웂당께로. 인심만 고약헌 것이 아니
라 날할라 요 모냥이니 말이여. 워메 추운 거."
잠에서 깬 천두만은 잔뜩 웅크린 몸을 헌 담요로 감싸며 아침마다 투덜거리는 소리를 또
되씹었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몸뚱이처럼 그의 목소리도 얼어 있었다.
"하이고, 따땃헌 아랫목서 노골노골허니 풀린 붕알 훔쳐올리고 마누라 큰 궁뎅이 더듬어감
서 잠 깨든 것이 꿈만 같으시. 저놈으 연탄난로가 그래도 저승길 면허게는 혔는 게비여."
천두만은 굼뜨게 일어나 앉으며 거적문 쪽에 있는 난로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불기 없는 그 난로는 고물로도 팔아먹을 수 없을 정도로 온몸에서 붉은 녹을 흘리고 있었
다. 고물상에서 헐값으로 살 때부터 난로는 녹을 머금고 있었다. 그런데 불기를 끊게 되자
고물상에서 칠해 둔 기름기가 바래면서 붉은 녹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음력설을 넘기고 나서부터 난로에 연탄을 피우지 않았다. 겨울철 지게 품팔이로 세 끼 죽
도 끓이기 어려운 판에 연탄을 더 땔 수가 없었고 음력설이 지나면 추위라고 해보았자 쫓겨
가는 건성 추위라 땅이 풀리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건 남쪽인 고향의 절기였다. 서울 추위
는 밤마다 잠이 오지 않도록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렇다고 다시 연탄을 피워 난로를 끌어
안을 수는 없었다. 연탄 한 장에 55환인데 하루 벌이가 50환이 안 될 때가 많았다. 연탄을
피우면 하루 세 끼를 완전히 굶고도 생돈까지 깨지는 판이었다. 어차피 연탄을 피운다고 해
도 구들장을 놓지 않았으니 등 뜨시게 잘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얼어죽을 추위 지났으니 어
쨌거나 견디어내는 도리밖에 없었다.
"아이고메, 말 듣든 것허고는 영 달븐디, 나가 서울 잘못 온 모냥 아니여? 나 한나 목구
녕 풀칠허기도 시낭고낭헌디 어느 세월에 돈 모타 갖고 처자석덜얼 불러올리게 될끄나, 빌어
묵을."
천두만은 또 뭉텅이진 한숨을 토해내며 길거리에서 주워모은 꽁초를 신문지 위에 까기 시
작했다. 그건 담배를 피우려고 하는 짓만이 아니었다. 한푼이라도 돈벌이를 하려는 거였다.
지게 품팔이를 시작해서 동대문시장으로 중부시장으로 오가다 보니 담배꽁초를 일삼아 줍
고 다니는 노인네들이 있었다. 그런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꽁초를 찍어 올리는 긴 막대기
였다. 그들은 꽁초를 일일이 허리 굽혀 줍는 수고를 덜려고 긴 막대기로 콕 찍어서는 옆구리
에 차고 있는 깡통에 넣고는 했다. 꽁초를 콕콕 잘도 찍어 올리는 그 막대기 끝에 달린 것
이 뭘까 궁금해 눈여겨 보았다. 못을 송곳 끝처럼 갈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그건 뜻밖에도
학생들이 글씨를 쓰는 펜촉이었다. 그리고 더 알고 보니 그 노인네들은 골초가 아니었다. 단
속을 피해가며 시장 뒷골목에서 팔고 있는 '야미 담배'의 원료를 바로 그 노인네들이 대고
있었다. 그 가짜 담배는 단속반들이 양담배와 똑같이 눈에 불을 켜고 다니며 단속했다. 그러
나 담배 파는 여자들은 없어지지 않았다. 잽싸게 보자기를 걷어 자취를 감추었다가 다시 나
타나 좌판을 벌였고, 잡혀갔다가 며칠 구류를 살고 나와 또 가짜 담배 팔기에 바빴다. 그 가
짜 담배는 이름 찍힌 담뱃갑만 없을 뿐이지 담배의 길이와 굵기는 진짜 담배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똑같았다. 그런데 값은 필터가 안 달린 진짜 담배의 반의 반밖에 안 되게 쌌다.
그리고 맛도 양담배로부터 시작해서 온갖 고급 담배들이 섞여 있어서 하급 담배는 족보도
못 내민다고 소문나 있었다. 그 여자들은 담배장사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꽁초를 까가지고
온 실담배를 사들였다.
그 꿍꿍이속을 알게 된 천두만은 지게품을 파는 한편으로 눈에 띄는 꽁초는 놓치지 않고
주워 모았다. 그는 한푼이라도 돈벌이가 되는 것이면 무슨 짓이라도 할 작심이 되어 있었
다. 지게꾼들의 대목인 김장철이 지나버리고, 수박 같은 무거운 과일이 나오는 여름도 아니
라서 겨울에는 원래 지게꾼들이 세 끼 찾아 먹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잡히지 않는다면
도둑질이라도 할 판에 앉아서 당할 수는 없었다. 자신은 굶더라도 고향에 두고 온 새끼들 입
에 죽이라도 떠넣게 해야 하는 것이 당장 급했다. 논은 그만두고 밭뙈기도 없는 형편에 아내
가 아무리 몸 부서지게 품팔이를 해보았자 새끼들은 굶을 수밖에 없었다.
"참말로, 더 나이 들기 전에 무신 기술이고 기술을 배와야 숼케 돈을 벌게 될 것인디 말이
여. 염병헐, 돈이 있어야 기술을 배우든지 말든지 허제. 이 시상에 밑천 안드는 장사가 웂
는 법인디, 쌩붕알만 딸랑 차고 있시니, 참말로 이놈으 신세 각다분혀서......."
천두만은 신문지쪽에 만 담배에 불을 붙여 한숨이 뒤섞인 연기를 토해냈다. 그렇게 혼자말
을 자꾸 하는 건 서울 온 다음에 생긴 버릇이었다.
그는 배우고 싶은 기술도 많고, 행상이나마 해보고 싶은 장사도 많았지만 모두가 목마른
헛꿈이었다. 쌀 두 말 값을 빛내 가지고 온 돈은 차비 제한 다음 이 움막을 치고, 지게를 짜
맞추고 나니 몇 푼 남지 않았다. 움막도 판자 대서 지붕을 하지 못하고 가마니때기만 겹으
로 덮었고, 방구들은 놓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고물상에서 헌 문짝을 하나 사다가 깔고 그
위에 가마니때기며 찢어진 종이상자 같은 것들을 주워다가 덧깐 것이 잠자리였다. 그러니 아
무리 음력설이 지났다 해도 불기 없는 움막 안은 한뎃잠을 자는 것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었
다.
"좌우간에 요놈으 시상은 좆겉은 놈으 시상이여. 여그나 저그나 있는 놈덜만 배 터지게 생
겨묵은 개좆겉은 시상이라고. 근디 나라 다시린다는 놈덜언 왜 자꼬 외곡(外穀) 딜여와 가난
헌 농새꾼덜 다 쪽박 차게 맹그냐 그것이여. 즈그놈덜이 입도선매허는 농새꾼덜 가심이 을매
나 찢어지고 아픈지 알기나 혀?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웬수여 웬수."
천두만은 냉기 서려 뻑적지근하고 찌프드드한 등을 주먹으로 쿵쿵 치며 또 분이 솟고 있었
다.
될뚱말뚱 말썽 많던 농지개혁이 마침내 실시되자 새 세상을 만난 기분이었다. 어머니는 소
작인 신세 면하고 허리 펴고 살게 되었다고 동네사람들과 어울려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
때 스물여섯이었던 자신은 만약 농지개혁이 되지 않으면 공산당을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경찰의 눈을 피해 그쪽 사람들이 끈질기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공산당 세상이 되면 재깍 토
지개혁을 해서 누구나 공평하게 사는 세상을 만든다고.
그런데 동네사람들의 춤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작지가 그냥 자기들 것이 되는 줄 알았는
데 유상몰수 유상분배로 돈을 내고 사게 되어 있었다. 그것도 헛김 빠지는 일인데 더 기막
힌 일이 또 있었다. 논 열 마지기를 소작하던 사람을 예로 놓고 보면 그 사람 앞으로 돌아
온 것은 서너 마지기뿐이었다. 나머지는 농지개혁을 하네 마네 하며 질질 끌어오는 몇 년 동
안 지주들이 소작인들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팔아넘겨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실망한 소작
인들이 더 놀란 것은 그 다음이었다. 딴 사람들에게 팔아넘긴 줄 알았던 그 논의 태반이 지
주들과 짜고 명의만 살짝 바꾸어놓은 것이었다. 그건 결국 농지개혁을 하나마나였지만 법에
걸리지 않으니 소작인들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바로 전쟁이 터지자 그 뒤를 대느라고 세금벼락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분배받은 농지에서 곡식을 거둬들여 배불리 먹는 즐거움에 취해보지도 못하고 세
금지옥에 시달려야 했다. 전쟁이 끝나면 좀 나아지려나 했지만 사정은 오히려 더 험해졌다.
세금에다 분배받은 농지의 상환액까지 겹쳐져 농민들은 허덕이다 못해 논을 잡히고 빚을 낼
수밖에 없었다. 대개 지난날의 지주들에게 돈을 빌렸고, 그건 1년이 지나면 곱으로 불어나
는 장리빚이었다. 그러나 세금과 상환액은 1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몇 년 동안 장리
빚이 늘다 보니 논들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열 집에 서너 집이 다시 소작인 신세가 되는 일
이 벌어졌다.
배탈 나 똥 싸는 놈 주저앉히더라고 나라에서는 또 해괴한 일을 벌였다. 외곡을 들여와 마
구 풀어댔다. 그것은 곧바로 농산물을 똥값으로 만들어버렸다. 딴 물가는 오르는데 농산물값
만 곤두박질을 치니 가난한 농민들은 죽을 길을 앞에 둔 셈이었다. 자식들을 가르쳐야 하
고, 집안에 변고가 생기고......, 돈은 급한데 추수 때까지 기다릴 수 없으니 입도선매에 나
설 수밖에 없었다. 읍내의 부자나 큰 쌀장수를 찾아가 입도선매를 해달라고 사정을 하는 것
이다. 목마른 놈이 샘 파고, 돈 쥔 놈이 흥정 끝내더라고 입도선매에 붙여진 나락값은 잘 받
아야 추수기의 절반 정도였다. 한번 입도선매에 말리게 되면 추수 때 빈손 털고 장리빚을 내
야 하고, 다음해에는 더 빨리 입도선매에 나서야 하고, 또 장리빚은 늘어나고...... 그렇게
3~4년 하다 보면 논까지 빚쟁이에게 다 뺏기고 빈털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지긋지긋한 소작질을 하면서 평생 종 노릇을 하느니 서울로 가자. 서울서는 거렁뱅이
도 쌀밥을 먹는다고 하더라. 말새끼는 낳아서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새끼는 낳아서 서울로 보
내라고 하지 않더냐. 서울서 고생하면 자식새끼들이나마 똑똑하게 가르칠 수 있다.
맨주먹이 된 농민들이 고향을 등지며 하는 생각이었다. 천두만도 그런 생각으로 서울행 기
차를 탔던 것이다.
"니기럴, 요놈으 시상이 워찌 이러냐. 우리 아부지도 나도 죄진 것이 아무것도 웂는
디....... 또 하로가 샛응께 나가는 봐야제."
천두만은 불 꺼진 꽁초를 물고 커다란 바위를 밀어올리듯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밤새도
록 추위에 시달린 몸은 아침마다 그렇게 무겁고 뻑뻑했다.
움막을 벗어난 천두만은 눈을 비비며 새끼줄부터 살폈다. 움막보다 다섯 배쯤의 넓이로 둘
러쳐진 새끼줄은 누가 손댄 흔적 없이 팽팽했다.
"요 땅을 목심 걸고 잘 지켜야 써. 돈 벌어 여그다 판잣집 세와야 헐 것잉께. 어리빙허다
가 요 땅 뺏게부는 날에는 참말로 알거지 되는 판잉께. 안직 초장이라 이만헌 땅이라도 차지
허는 것이제 2~3년, 아니시, 1년만 지내면 저 꼭대기꺼정 한 치 땅도 안 남을 것이여. 항,
나가 여그 오기 2년 전만 혀도 200호 남짓이었는디 그간에 500호가 넘었단 마시. 무신 말인
지 알아묵겄제?"
움막을 치던 날 나삼득이 힘 꽁꽁 쓰며 한 말이었다.
그날 이후로 천두만은 아침저녁으로 거르지 않고 새끼줄을 살폈다. 나삼득의 말은 틀리지
않아 두어 달 사이에 벌써 자신의 움막 위로 스무 개가 넘는 움막들이 생겨나 있었다. 그런
데 새끼줄도 제 욕심껏 넓게 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산동네 초입에서 구멍가게에다 연탄
장사까지 하고 있는 최 씨가 금을 그어주었다. 산동네에서 제일 부자라는 그는 통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새끼줄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가끔 이동을 해 쌈박질이 벌어
지고는 했다. 더러 욕심 많은 사람들이 부실하게 박혀 있는 각구목이나 막대기를 밤새 살짝
옮겨 박고는 했던 것이다.
천두만은 새끼줄을 따라 걸으며 기지개를 켰다. 안개가 끼어 한강은 흐미하게 보일 듯 말
듯했다. 이 산동네에 사는 유일한 맛이 있다면 아침마다 한강을 한눈에 바라보는 거였다. 그
는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기차로 처음 한강을 건널 때의 마음을 새롭게 다지고
는 했다.
그려, 기연시 성공얼 혀야제. 당당허니 고향에 내래가게 돈 많이 벌어야제.
그는 또다시 다짐을 하며 마음을 공그렸다. 그때 기차에서 마주앉았던 사람들의 얼굴이 어
김없이 떠올랐다. 자신하고 똑같은 신세로 고향을 떠나온 충청도 남자도 어디서 고생을 하
고 있는지 궁금했고, 서울로 유학을 오던 두 형제의 소식도 궁금했다. 그들의 이름을 알았었
는데 이제는 유 씨라는 성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서울서 공부를 한 그들이 10년 후에는 얼마
나 잘되어 있을 것인가....... 천두만은 자신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
었다.
아침이 일러 인기척이 별로 없었다. 천두만은 거적으로 엉성하게 둘러진 공동변소에서 소
변을 보고 나삼득의 움막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아침저녁을 붙여먹고 있는 처지에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다.
"야 이 썩을 놈아, 싸게 안 일어나, 싸게! 해가 궁뎅이꺼정 떠올르겄다. 니 그리 염병허다
가 강냉이 가리 못 타오면 내리 사흘 밥 굶을지 알어."
움막 안에서 터져나오는 나삼득의 아내 목소리였다.
천두만은 움막으로 들어가기를 주춤하며 잡동사니 더미로 눈길을 돌렸다. 그건 처음 볼 때
보다 조금씩 커져 이제 움막 크기만해져 있었다. 고무풀로 땜질한 미군 우장으로 덮어 질긴
삼줄로 묶은 그 더미는 나삼득이 애지중지하는 재산이었다. 우장 속에는 길고 짧은 각구목이
며 판자에서부터 크고 작은 문짝이며 문틀까지, 나무로 된 온갖 것들이 채곡채곡 쌓여 있었
다. 판잣집을 지으려고 나삼득 내외가 모아들이고 있는 물건들이었다.
"성님은 참 용허요 이. 이 많은 것을 워디서 다 줏었다요? 나 눈에는 잘 뵈덜 않튼디."
천두만은 그 잡동사니들을 구경하며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 뚱하니 물었다.
"글씨....., 서울물 묵다 보먼 차차 알게 되겄제. 자네, 눈이 보배고 손이 충신이라는 말
알어? 요 인심 징헌 서울서는 넘덜보담 먼첨 보고 먼첨 묵는 것이 임자시. 경찰들이 시내버
스만 뜯어묵는 것이 아니라 그 불쌍헌 창녀들도 뜯어묵고 사는 것이 서울잉께. 무신 소린지
알아묵겄는가?"
나삼득이 묘하게 웃으며 나직하게 한 말이었다.
"아그새끼덜 많이 끼대와 꼬랑댕이에 스먼 도로아미타불잉께 걷지 말고 핑허니 뛰어가. 강
냉이 가리 타갖고는 엎어지지 않케끄름 조심조심 걸어오고."
움막 밖으로 나온 나삼득의 아내는 아이에게 큰 냄비를 들려주며 일렀다. 아이는 한 손으
로 눈을 비비며 마지못한 듯 다른 손으로 냄비를 받아들었다.
"아 문딩아, 멀 허고 자빠졌어. 싸게 달음박질쳐야제."
나삼득의 아내는 빠락 소리치며 어린것의 등을 철퍽 때렸다. 그 서슬에 아이는 비탈길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이의 때 끼고 바싹 마른 얼굴과 여기저기 기운 누더기와 찌그러
지고 그을음때 낀 냄비와......, 아이는 갈 데 없이 동냥을 나선 거지꼴이었다.
천두만은 나삼득의 아내와 맞대하는 것을 잠시나마 피하려고 잡동사니 더미 뒤로 몸을 숨
겼다.
그 아이는 공짜로 주는 옥수수 가루를 타러 가는 참이었다 가톨릭 구제원에서는 보름마다
한 차례씩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옥수수 가루를 배급한다고 했다. 그 궂은일은 셋째 아이가
맡아야하는 몫이었다. 둘째 아이는 딸인데다가 열세 살을 먹어 배급 타기에 너무 많은 나이
였다. 열 살짜리 아들은 형이 군대에 가고 없는 집안에서 벌써부터 장남 노릇을 나서고 있었
다.
천두만은 신문지쪽에 담배를 말며 긴 한숨을 쉬었다. 찌그러진 냄비를 들고 뛰는 아이의
모습에 자신의 애들 모습이 겹쳐지고 있었다. 자신의 애들이라고 지금 더 나을 게 없을 것
이 뻔했다.
서울이니까 그나마 옥수수 가루라도 주지....... 천두만은 담배연기를 깊이 들어마셨다.
나삼득의 아내 갈포댁도 볼수록 딴사람이었다. 가난이 사람을 그리도 억척스럽고 드세게 만
드는 모양이었다.
고향에서 위아랫동네에 살 때만 해도 갈포댁은 잘 웃고 순한 사람이었다.
내 마누라도 서울서 부대끼면 저리 변해질랑가 몰라......? 삼득이 성님은 그 마누라 덕
을 솔찬이 보고 있는 심인디.......
천두만은 반쯤 탄 담배를 솜씨 좋게 꺼서 귀에 꽂고 일어났다. 빈속에 두 대째 담배라 속
이 메슥거렸다.
"형수님, 어지께 왔든 각설이 또 왔구만이라. 일어나셨는게라?"
천두만은 움막 앞에서 넉살좋은 척 이렇게 목청을 돋우었다. 고마움과 미안함을 어떻게 말
로 할 수 없어 이런 식으로 때워넘기고 있었다.
"잉, 어여 들오씨요. 시방 밥 앉치는 참잉께."
갈포댁이 거적을 들치고 얼굴을 내밀었다. 그 목소리는 아까하고 다르게 여자다웠다.
"성님은 또 늦잠 지무신당게라? 똑 밤손님질 허는 것맹키로."
천두만은 움막 안으로 들어서며 나삼득을 깨울 겸해서 목청 쿠렁하게 농담을 던졌다.
"어허, 저 사람 또 깨소금잠 깨우고 난리시. 나가 늦잠 자는 것이 아니라 자네가 너무 일
찍 일어나는 것이여. 전생에 중이 환생헌 것도 아니고 워찌 그리 새북잠이 웂댜."
나삼득이 잠에 취한 소리를 하며 꿈지럭꿈지럭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천두만은 움막 안에 찬 온기를 느끼며 어깨를 푸들 떨었다. 이 움막은 자신의 움막하고는
전혀 달랐다. 바닥, 벽, 천장이 어엿한 방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방바닥에는 구들이 놓여
있었고, 벽에는 시멘트를 발라 포대종이로 도배를 했고, 판자를 올린 천장도 신문지로 도배
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자신의 방보다는 외풍이 훨씬 덜한데다 방바닥에는 연탄불이 들고
있으니 편한 잠을 느긋하게 잘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은 추워서 잠을 더 잘 수가 없
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저 구석에서 깨어 일어난 계집애가 눈을 비비며 천두만에게 고개를 꾸벅했다.
"이, 윤자 일어났냐. 워째, 자봉틀 기술 배울 만허냐?"
천두만은 아침마다 하는 인사를 변함없이 했다. 열세 살로 봉제공장에 '시다'로 취직한 윤
자가 재봉틀을 만지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힘을 북돋워주려고 하는 말이었다.
"열시 살이먼 지 밥벌이 지가 혀야제. 글 안 허면 서울서 못 살아진께."
나삼득이 매정하다 싶게 한 말이었다.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어디든 기술을 가르쳐준
다는 명목으로 월급이 박하다고 했다. 윤자는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고 한 달에 3
천 환을 받는다고 했다. 일하는 것에 비해 너무 적은 돈이었지만, 쌀 한 가마에 1만 3천 환
이니 궁한 살림에 제 밥벌이는 하는 셈이었다.
"오늘 말이시, 중부시장서 조기 엮는 일이 생겼네. 한 도라꾸(트럭) 일감잉께 벌이가 톡톡
헐 챔인디, 자네 짚 엮는 솜씨 괜찮허제?"
나삼득이 말이담배에 불을 붙이며 옆눈길로 천두만을 쳐다보았다.
"짚 갖고 허는 일이사 성님이나 나나 선수 아닙디여? 멍석 짜고 짚신 삼든 솜씨로 조기 엮
어내는 것이야 하품 나는 일이제라. 근디, 조기가 한 도라꾸면 엄칭이 많은 일감인디, 고것
을 성님허고 나허고만 허능게라?"
천두만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글먼 목돈 잡고 좋겄는디, 염병허고 이틀 만에 그 많은 일을 다 해내라는 것이시. 긍께
아까와도 벨수 있능가. 솜씨 존 놈들로 골라 둘은 더 붙여야겄제."
"성님, 밤 꼴딱 샘서 둘이서만 허먼 안 될께라?"
천두만은 침을 꿀떡 삼키며 나삼득 쪽으로 다가앉았다.
"그리 욕심낼지 알었제. 우리 둘이 밤새운다고 계산허고도 둘은 더 있어야 혀. 어차피 갈
라묵어야 헐 밥잉께 일손이나 넘보담 재게 놀릴 작정혀. 한 두름 엮는디 20환씩 묵는 것잉
께."
"20환! 알겄소, 요 손꾸락이 다 까져 피가 난다고 고런 일 마다겄소."
천두만은 두 손바닥에 침을 튀겨 맞비볐다. 등짐 일이 줄어 단돈 50환 짜리 꿀꿀이죽도
못 먹고 점심을 굶는 판에 그 일거리는 그야말로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 입장료 5백 환인
영화 구경은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았고, 3백 환 하는 자장면을 두고도 감히 군침 흘려본 적
이 없었다. 그저 꿀꿀이죽으로라도 점심을 때울 수 있으면 그날은 재수 좋은 날이었다. 주
로 미군부대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 찌꺼기를 뒤섞어 끓이는 꿀꿀이죽은 그 이름 그대로 돼지
먹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다 운이 좋으면 절반쯤 뜯다 만 닭다리나 송편 크기의 고깃덩어리
가 걸려들기도 했지만, 담배꽁초나 성냥개비가 섞여 있는 게 예사였다. 그러나 꿀꿀이죽을
파는 시장통에는 끼니 때마다 눈이 희멀건하게 들뜨고 몰골 꾀죄죄한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얼렁 한술 뜨고 나갔씨요. 조기 엮어 목돈 챙게 오면 맛난 괴기반찬 착 올릴 것잉께."
갈포댁이 밥상을 놓으며 생기 도는 소리로 말했다.
"실답잖은 소리 허덜 말어. 무신 놈으 예팬네가 돈 생기기 전에 쓸 생각보톰 먼첨 혀."
나삼득이 거세게 혀를 차며 숟가락을 들었다.
"아이고메 무셔라. 누가 꼭 괴기반찬 묵을라고 근다요? 말이라도 푸지게 허고 살라는 것인
디 워째 말도 못 허게 잡지고 그요. 남정네 시집살이가 사람 잡는당께로."
갈포댁이 눈을 째지게 흘기며 토라져 돌아갔다.
천두만은 마음이 옹색해져 막 밥을 뜨려던 손목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밥을 붙여먹고
있는 처지에 이런 말을 들으면 꼭 자신한테 하는 말인 것만 같아 여간 마음이 쓰이는 게 아
니었다. 이번에 목돈이 생기면 눈 딱 감고 돼지고기 서너 근 사다가 체면을 팍 세워, 어
쩌......? 그는 보리밥을 숟가락 넘치게 떠서 입에 몰아넣었다.
그들의 밥그릇에 담긴 것은 깡보리밥에 고구마쪽들이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된장국에는
콩나물이 몇 가닥씩 떠 있었고, 반찬은 철 지난 김치 한 가지뿐이었다. 그 김치도 김장철에
뜯어 내버린 겉잎들을 주워다가 양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담근 것이라 김치 시늉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나마 밥상을 받는 것은 이 동네서 잘사는 축에 들었다. 나삼득이 조기 엮는
일거리를 맡을 정도로 시장통에서 자리잡혀 있는데다, 아내가 광주리 행상을 나서고, 딸도
취직을 해 있기 때문이었다. 천두만은 거기에 얹혀 실비만 내고 아침과 저녁을 해결하는 덕
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덕은 나삼득의 날개 아래서 일을 하게 된 거였다. 지
게질이라고 제 마음대로 시장을 휘젓고 다니며 남 먼저 일거리를 낚는 것이 아니었다. 넝마
주이나 구두닦이가 제 구역을 가지고 있듯이 그 일도 몇 사람씩 패를 짜서 자기 구역을 가지
고는 딴 지게꾼들은 얼씬도 못하게 했다. 그렇게 해서 상점들을 단골로 잡지 않고는 죽이나
마 세 끼를 먹을 도리가 없었다. 그런 패에 끼지 못한 뜨네기 지게꾼들은 일거리가 확 줄어
드는 겨울철에는 한 덩어리에 10환하는 비지나 겨우 먹어야 했다. 나삼득을 형님으로 깎듯
이 받들어 모시지 않으면 자신도 비지나 술찌기로 빈속을 채우며 근근이 겨울을 나야 한다
는 것을 천두만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려, 눈 딱 감고 돼지고기 서 근을 사다가 지글지글 꿔서 모다 목에 때 빼게 맹글어, 잡
것! 은혜도 갚고 싸나이 체면도 세우고.
천두만은 이렇게 마음을 정하자 숟가락을 든 손목에 힘이 실렸다. 그는 우악스럽게 밥을
먹어댔다.
그들이 밥을 거의 다 먹어갈 즈음에 갈포댁이 헐레벌떡 뛰어들었다.
"예 말이오. 사람이 죽었소, 사람이!"
"사람? 워떤 사람이?"
나삼득이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고, 천두만은 밥을 입에 가득 담은 채 눈만 크게 떴다.
"쩌 우게(위에) 한 씨라고 안 있습디여. 히놀놀 혀갖고 기운 잘 못 쓰든 남정네 말이오."
"그 인사성도 웂이 뚱허든 충청도 남자 말이여?"
나삼득이 끄윽 트림을 하며 물었다. 천두만은 자기의 움막 서너 개 건너에 혼자 살았던 지
게꾼 한 씨를 떠올렸다.
"야아. 그 남정네가 금메 복어알을 낄에 묵고 죽어부렀당마요."
"닌장맞을, 죽을라고 환장을 혔었구마. 복어알 낄에 묵으면 직방으로 죽는 것 몰라서 복어
알을 낄에 묵어."
나삼득은 더 관심 없다는 기색을 드러내며 신문지쪽에 담배를 말기 시작했다.
비지도 세 끼 묵기 에롭다등마 복어알이 명태알로 뵈었등갑소.
이 말을 하려다가 천두만은 나삼득의 눈치를 보며 그냥 삼키고 말았다.
"워디 몰라서 그랬겄소. 하도 배고프다 봉께 나야 괜찮허겄제 허고 손이 가는 것이제라.
그라고 그 복어알이란 것이 명태알보담 더 노리족족헌 것이 얼매나 회를 동허게 허는디라."
갈포댁이 안됐어 하며 연달아 혀를 찼다.
"다 시끄럽네. 인명재천이고, 갈 사람 가고 살 사람 사는 것잉께."
나삼득은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나설 채비를 했다.
"성님, 저것이 워찌 될께라? 식구도 아무도 웂이 혼자 가부렀시니."
움막을 나선 천두만은 저 위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씨의 움막 가에는 열댓 사람이 웅성
거리고 있었다.
"자네야 걱정 말소. 저리 죽는 사람이 한둘이 아닝께. 통장이 다 알아서 허게 되야 있네."
나삼득은 그쪽으로 가볼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은 채 대꾸했다.
"통장이 알아서 혀라?"
"통장이 나서서 경찰에 알리고, 경찰에서는 주소 찾아내 가족헌테 알리고, 다 착착 허게
되야 있어."
"주소가 없기도 헐 것인디. 그런 사람은......."
"이 사람, 복어알 묵고 죽는 사람 첨 보등마 걱정도 팔자시. 복어알 묵고 죽고, 연탄까스
마시고 죽는 사람은 요 서울 하늘 아래 천지백가링께 자네나 그 꼴 안 당허게 허고 딴 걱정
은 말어. 주소 웂는 시체야 대학병원으로 실고 가서 갈갈이 찢어본 담에 화장터에서 꼬실려
불면 깨끔허제 어째."
"야아? 고것이 무신 소리다요?"
천두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따 그 사람 알고 잡은 것도 많으시. 서울물 더 묵어감서 차차로 다 알게 될 것잉께 싸
게 가드라고. 우리 일이 태산인디."
나삼득이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천두만도 다급하게 그 뒤를 따랐다.
카페 게시글
조정래님의 한강
한 강 = 제1부 격랑시대 (1권)ㅡㅡㅡ 3. 움막촌 사람들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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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1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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