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자호 태상 대선사님과 태을선도 연혁
1953년(계사년)ㅡ5월 30일(음력 4월 18일) 춘말하초(지기금지 사월래)에 경남 해금강과 계룡산이 있는 거제도에서 활만비의(活萬非衣)에 해당하는 흥해 배(裵)씨로 개국공신 집안에서 태어나시고 존함은 배승환(裵承煥) 이심
1955년(을미년)ㅡ서울 성북구로 이사가게 되심
1957년(정유년)ㅡ5세때 부모님 고향이 이북이시기 때문에 제사 때만 되면 우시니깐 그 모습이 가슴 아파 남북통일의 큰 뜻을 품으심
1960년(경자년)ㅡ8~13세 초등학교때 남북통일을 이루기 위해 깡패 두목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심
1966년(병오년)ㅡ14~16세 중학교때 남북통일을 이루기 위해 장군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심
1969년(기유년)ㅡ17~19세 고등학교때 남북통일을 이루기 위해 판검사가 되어 정치인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심
1972년(임자년)ㅡ20세때 천하유력을 하시며 전국 명산들을 찾아가 남북통일을 이루기위한 사색을 하심
1972년(임자년)ㅡ공군본부 하사관으로 입대하셨으나 병장들의 하극상이 심하여 내가 있을 곳이 못된다 판단하시고 미친척을 하여 의병 재대를 하심
1974년(갑인년)ㅡ22세때 계룡산 먹뱅이 바위굴에서 수도하시다가 기천문 대양진인을 만나 최상근기로 내가신장 30분을 버티심
1974년(갑인년)ㅡ최상근기로서 내가신장 자세 30분을 버티시고 기천문 문도생이 되어 단전호흡과 육체수련 자세를 배우심
1976년(병진년)ㅡ24세때 계룡산 맥뱅이 바위굴에서 화두(이뭐꼬) 수도 중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무릉도원에 와있는 체험과 육체는 없고 오로지 정신만 존재하는 무아지경의 경지를 보심
1978년(무오년)ㅡ26세때 건국대학교 원예과에 입학하시고 운동권 서클도 들어가서 살펴보시면서 수도에 정진하심
1978년(무오년)ㅡ남북통일을 이루기 위해 민족문화 공부로 서점에서 동학문명과 증산교의 진리책을 읽으시고 증산사상을 처음 접하게 되심
1978년(무오년)ㅡ대전 모교단을 찾아가 입도하시고 주문수행을 배우시고 서울 도장 개창 활동에 이바지 하심
1978년(무오년)ㅡ겨울방학때 지리산 영신대에서 수도하시다 축지, 등천, 풍운조화, 사람 쳐다만 봐도 낫고, 말하는 대로 되는 상등도통능력과 같은 신통을 이루심
1978년(무오년)ㅡ이에 전국 명스님(성철, 구산, 송담, 경봉)들을 찾아다니시며 문답하니 하나같이 그 능력을 다 버리라 하니 그 능력을 버리시는데 3년이 걸리심
1980년(경신년)ㅡ28세때 대전 모교단 안씨 종정의 처세에 불만이 많고 개벽놀음에 회의감이 들어 뜻있는 도생들과 함께 안씨 종도사에게 탄원서 제출하심
1980년(경신년)ㅡ안씨 종도사가 탄원서 제출 맴버중 당시 나이가 제일 많은 배승환 선생님을 정식집에 초청하여 아들 안씨를 어찌할 수 없다 함
1980년(경신년)ㅡ대전 모교단을 탈퇴하시고 포교의 원년인 경신년에 서울에서 태을선도회(太乙仙道會) 수련단체를 창립하심으로 2030년까지의 치천하 50년 공부가 시작됨
1980년(경신년)ㅡ전북 김제 용화동 일대의 증산법종교를 시작으로 주문파, 법문파 30여개의 모든 증산교단들을 찾아 다니셨는데 증산교단마다 읽는 주문과 신앙의 대상이 다 다른 것을 아시고 신앙의 대상을 통일해야 겠다고 생각하심
1980년(경신년)ㅡ불교의 육도윤회가 현실속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것을 깨달으심
1983년(계해년)ㅡ31세때 일곱살 차이 나시는 24세 김씨 사모님과 결혼하시고 그 해에 고급무당을 통해 영가천도식을 올리심
1983년(계해년)ㅡ계해년 계해월 계해일(12월 1일)에 순천도 현무경파 모임에 태을선도회 수도인들과 함께 참석하시어 법문(현무경) 공부 중 비몽사몽간에 하늘에서 선관 선녀들이 함을 가지고 내려오는 영적 체험을 하심
1984년(갑자년)ㅡ32세때 겨울에 국선도 책을 구입하시고 국선도 도인술과 단전호흡법을 공부하심
1986년(병인년)ㅡ34세때 소백산 원통암에서 100일 공부 중 불교 해탈문과 인연이 되시어 능엄경, 유가수련증험설, 선불가진수어록을 공부하심
1988년(무진년)ㅡ36세때 스스로 도호를 일우(一友)라 칭하시고 수도하시던 중 영생, 불사의 원리를 깨달으시고 정립하심으로써 법륜 수부님(고수부님)께서 무진년에 잠자는 개를 깨우신 숙구지공사 도수 기운을 받으심
1990년(경오년)ㅡ38세때 비로소 해탈 도리의 원리도 깨우치시고 정립하심
1994년(갑술년)ㅡ42세때 [수도에서 득도까지]라는 책을 집필하시어 출판, 태을선도회 수도인들에게 선술, 선악, 선학을 가르치심
1995년(을해년)ㅡ43세때 [선약 상, 하]권의 책을 집필하시어 질병완치의 원리를 정립하심
1996년(병자년)ㅡ44세때 선천 수련법으로 30대의 여제자를 양신출태(초통, 득도, 견성) 시켰으나 마음을 항복시키시지 못하여 양신출태 다음 단계 공부법을 가르치시지 않으심
1998년(무인년)ㅡ46세때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신앙(섬김)대상 정립과 종교통일 원리를 정립하심
1999년(기묘년)ㅡ47세때 6월 3일 날 기묘한 교통사고로 병원에 8개월간 입원하게 되심으로 척신과 묵은하늘의 개입을 깨우치심
1999년(기묘년)ㅡ동지때 오성산 성덕리 교단에 동지치성을 참석하시어 29세 3대 대리두목 암행어사 선법제자를 처음 만나 기묘한 만남이 일어나 증산 상제님께서 보신 첫 번째 배말뚝 도수가 응험됨
2000년(경진년)ㅡ48세때 2월 4일 입춘절날 오성산 성덕리 교단에 참석하시어 30세 암행어사 선법제자를 통해 일전 선운(一田 仙雲)이라는 도호를 선관에게 받으심
2000년(경진년)ㅡ3~4월(음력 2월)에 1999년부터 2000년에 걸쳐 내려온 천강서(천도선법)인 태을비결(太乙秘訣)과 도학(道學)을 암행어사 선법제자로부터 전해 받게 되심
2000년(경진년)ㅡ천상 선관들이 일전 선운(一田 仙雲)이라 부르다 도광 용운(道光 龍雲)이라 부르며 암행어사 선법제자와 함께 천지신행을 보심
2000년(경진년)ㅡ5월달(음력 4월)에 천강으로 단서용법천부경에 해당하는 예장(禮章)이 내려와 암행어사 선법제자가 신필로 받아내려 전달해줌
2001년(신사년)ㅡ49세때 6월 3일 교통사고 당한지 정확히 2년 뒤가 되는 날에 31세 암행어사 선법제자와 함께 일월산상에 해당하는 경기도 광명시 서독산에서 태을선도회(태을신선도) 유리법당을 개창하심
2001년(신사년)ㅡ법당 개창치성때 천지부모님을 비롯한 천상 고급선관들이 모두 참관한 가운데 증산 상제님의 성령으로부터 친히 일도 자호(一道 慈護)라는 도호를 받으시고 증산 상제님의 셋째 아들인 칠성여래 거문성군이라고 수기를 받으시고 성사사명의 대임을 맡게 되심
2001년(신사년)ㅡ3년간 선법제자와 함께 천지신행을 보면서 용천검(성신검), 담뱃대, 부채, 손님수건, 일월목걸이, 의통인패 등의 성스러운 물건들과 망량주와 조화주와 용적으로 바뀐 칠성경과 곤적으로 바뀐 개벽주 등 여러가지 주문들을 전달 받으심
2002년(임오년)ㅡ50세때 32세 선법제자와 인연을 끊고 홀로 전북 군산 삼불산으로 내려오셔서 12월 30일날 삼불산 자락 수라마을로 태을선도회 법당을 옮기심으로 증산 상제님께서 보신 두 번째 배말뚝 도수가 응험됨
2002년(임오년)ㅡ[도통]책과 [신명(성령)역사와 주문수련]책을 집필하여 출판하심
2003년(계미년)ㅡ51세때 음력 4월에 예장공부를 통해 하루만에 하단전 포태(도태)가 이루어지는 체험을 하시어 첫 번째 사오미개명을 성사시키심
2003년(계미년)ㅡ여름에 국내 사대문(고부 남 두승산, 계화도 서 황산, 익산 북 미륵산, 진안 동 뱃재) 공부를 시작하심
2003년(계미년)ㅡ[종교통일원리와 종교혁명의 당위성], [예장]책 집필하시고 출판하심
2004년(갑신년)ㅡ52세때 하지에 전북 군산 삼불산에서 갑을로 기두하여 작지부지성의웅약의 새정신의 새종교인 태을선도(太乙仙道)를 정식 출범하시고 대선사, 1대 대표(4대 대리두목, 암행어사)가 되심
2004년(갑신년)ㅡ여름에 신천지 건설의 사회대혁명 원리를 정립하시고 도통판(백운산, 지리산, 팔공산, 운장산, 무등산, 한라산, 금강산) 공부를 하심
2004년(갑신년)ㅡ대전 모교단 출신 현무 남자 도생과 함께 <신선도 예장도통(개명장)>카페를 개설하심
2005년(을유년)ㅡ53세때 5월 30일에 백두산 공부를 마치시고 6월에 차가버섯의 선약과 인연이 되심. 그 해에 [도술 상]책을 집필하여 출판하심
2006년(병술년)ㅡ54세때 태을차가버섯 선약사업을 시작하시고 <암을 이기는 의통수련방> 카페를 개설하심
2006년(병술년)ㅡ동지부터 외국 사대문(북 러시아, 동 일본, 남 중국, 서 미국) 공부를 시작하심
2007년(정해년)ㅡ55세때 4월에 사대문 공부 중 동 일본 공부를 마치신 후 천지사업종합계획을 수립하심
2008년(무자년)ㅡ56세때 3월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질병의 완치>를 목표로 의통수련방을 개설하심
2008년(무자년)ㅡ2004년 갑인년에 일도자호 태상 대선사님께서 지리산 공부 중 예언하신 2008년 무자년 경제 불황 예언이 그대로 적중됨
2009년(기축년)ㅡ57세때 3월에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태을선도 선요가라는 단체명으로 수련도장을 여심. 그 해 [도술 중], [의통 상, 하]책을 출판하심
2009년(기축년)ㅡ3월에 현무 도생과의 마찰로 <태을 선도> 다음 공식 카페를 새로 개설하심
2011년(신묘년)ㅡ59세때 예장공부를 다시 시작하심. 그 해에 [도술 하]책을 집필하시고 출판하심
2012년(임진년)ㅡ60세때 제자들에게 처음 예장공부를 전수해주심
2013년(계사년)ㅡ61세때 이윤도수를 일부 받은 50대 증산참신앙 노씨 남자 도생이 탕왕 도수를 받으신 일도자호 태상 대선사님 댁으로 찾아와 만나게 되심
2014년(갑오년)ㅡ62세때 7월 말일에 모악산 도통사 빈절에서 공부 중 대전 모교단의 헛됨을 깨달아 탈퇴한 27세 일무(一戊) 임성진(任成辰) 남자 도생과 개신교 출신 안씨 남자 도생이 함께 찾아와 원평장터에서 처음 만나게 되시고 한달간 진법수도를 전수하심
2014년(갑오년)ㅡ입도한지 열흘째 되는 8월 8일에 안씨 도생은 육체수련이 너무 고통스러워 버티지 못하여 자기 생일에 하산하여 떠나버리고 일무 도생에게는 예장공부를 전수 해주게 되어 일무 도생을 예장공부 3일만에 포태를 이루게 하심
2014년(갑오년)ㅡ8월 27일에 한달간 진법수도 전수가 끝나고 일무 도생과 함께 충남 아산에 있는 댁으로 올라가게 되어 일무 도생을 수양아들(수제자)로 삼고 개벽시간표 증보판과 신명(성령)역사와 주문수련 증보판, 진법수도와 성숙한 사회 소책자 증보판 교정작업을 일무 수제자와 함께 보시게 되심
2014년(갑오년)ㅡ11월 말일 법륜 수부님 화천절날 오성산 성덕리 교단에서 남씨 여자 무당 도생을 만나신 후 일무 수제자와 남씨 무당 도생과 함께 일무 수제자의 본관인 전남 장흥 천관산에 오르시어 남조선배에 시동을 걸고 불 켜는 공사를 보심
2014년(갑오년)ㅡ일무 수제자가 포덕한 박씨 남자 도생의 성금으로 양력 12월 26일 증산 상제님 재생신절에 개벽시간표 증보판, 신명(성령)역사와 주문수련 증보판, 진법수도와 성숙한 사회 소책자 증보판 책을 출판하시어 두 번째 사오미개명을 성사시키심
2015년(을미년)ㅡ63세때 백운동 안내성 후손 집 공부터에서 공부 중 28세 일무 수제자의 인도로 일의(一意) 남자 도생이 찾아와 만나게 되심
2015년(을미년)ㅡ서울 모교단 측으로부터 명예훼손과 저작권 침해로 소송을 당하게 되심
2015년(을미년)ㅡ소만망종두미에 메르스가 퍼지자 일무 수제자와 함께 서울에서 모임을 여시고 10년 후의 일을 10년 전에 미리 수놓아보는 수꾸지 도수가 실현됐다고 선포하심
2015년(을미년)ㅡ일음이 시생하는 하지에 일의 도생의 도움으로 제비창골 용화사 아래 바위굴에서 작지부지성의웅약하여 공부하시면서 구릿골 김씨 자손들과 인연을 맺게 되심
2015년(을미년)ㅡ9월에 구릿골 김씨의 도움으로 동곡 마을 약방 근처로 일무 수제자와 함께 거처를 옮기시고 일의 도생과 일무 수제자의 도움으로 10월에 태을선도 천막법당을 세우시고 남조선배 짐 실는 공사를 보심
2015년(을미년)ㅡ동곡마을입구 슈퍼에서 서울 모교단 선감의 남동생인 만 49세 구씨와 처음 인연이 되시면서 가구 9끗을 잡게 되시어 남의 돈은 따보지도 못하고 제 돈만 잃게 되심
2016년(병신년)ㅡ64세때 8월 25일에 29세 일무 수제자의 연결로 문공신 교단의 물형부서와 주문집을 문하생이었던 이씨 남자 도생을 통해 받게 되심
2016년(병신년)ㅡ9월 23일 추분 하루 다음 날에 마을 사람들과 일무 수제자를 비롯한 여러 도생들의 도움으로 구릿골 동곡 마을 태을선도 천막법당을 허물고 비닐하우스 태을법당으로 재건하심으로 격암유록의 십승변이 불구자년적후가 실현됨
2016년(병신년)ㅡ11월 16일 일무 수제자와 함께 <도통판(양신출태)> 다음 카페 개설하심
2016년(병신년)ㅡ11월 20일 소설을 이틀 앞두고 일무 수제자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태을선도 태을법당 준공식을 하여 남조선배 태을선을 출항시켜 무이구곡의 9년 항해가 시작됨
2017년(정유년)ㅡ65세때 2월 4일 입춘에 동지때부터 들었던 30세 일무 수제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붉은장닭 판밖소식 진법강의 1강 총론을 시작으로 일무 수제자의 촬영과 편집으로 페이스북과 유튜브, 도통판 카페에 개시됨으로써 증산 상제님께서 "붉은장닭 소리치고 판밖소식 들어와야 도통판을 알게 되고 도통판이 들어와야 나의 일이 될 것이다."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응험됨
2017년(정유년)ㅡ3월 26일 일무 수제자를 통해 대구의 천명자 노선생님과 인연이 됨
2017년(정유년)ㅡ4월 9일 일무 수제자와 함께 천명자 노선생님이 있는 대구로 만나러 가서 천지대사를 함께 논의하심
2017년(정유년)ㅡ4월 15일 대구의 천명자 노선생님과 일행들이 전북 김제 일도자호 태상 대선사님댁으로 와서 일무 수제자를 비롯한 태을선도 일행들과 함께 이틀간 000공사를 보시고 도담을 나누심
2017년(정유년)ㅡ5월 19일 조명이라는 분이 1959년에 내려받은 천서를 일무 수제자가 발견하여 전달 받아 읽어 보심
2017년(정유년)ㅡ5월 27일 지리산 어느 숯굽는 노인이 가지고 있던 비서 개천록을 일무 수제자가 발견하여 전달 받아 읽어보심
2017년(정유년)ㅡ5월 31일 일무 수제자가 영감(알음귀)을 받아 현무경을 예장배치와 같이 조립 병합하여 예장의통장, 직업의통장, 성사의통장을 만든 것을 전달 받아 살펴보심
2017년(정유년)ㅡ8월 7일 입추에 일무 수제자가 난법을 행한다고 오해하고 잘못 판단하여 태을선도에서 퇴출시킴
2017년(정유년)ㅡ11월 14일 백의종군 일무 수양아들과 함께 태을법당(비닐하우스) 바닥 철거 작업을 하심
2017년(정유년)ㅡ11월 30일 백의종군 일무 수양아들과 함께 제비산에 올라 소소하게 산제를 지내고 태을선도 용화성전 건축 모금 공고문을 낭독케 하심으로 증산 상제님께서 제비산에 배(배씨)가 올라와야 일이 된다는 도수가 응험됨
2018년(무술년)ㅡ11월 15일 음력 10월 8일 김후비님 탄강절에 31세 백의종군 일무 수양아들과 함께 동곡서원 청운도장에서 열린 김후비님 진영 봉안식에 참관하셨는데 이전까지 법륜 수부님(고수부님)을 빼고 모셨던 동곡서원이 이 날부터 증산 상제님과 법륜 수부님과 묘향 후비님(김후비님) 세 분을 금산사 삼존불과 동일하게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기로 결정남으로써 백의종군 일무 수양아들이 2017년 11월 동곡서원에서 봤었던 공사가 1년 뒤에 그대로 이루어짐
2018년(무술년)ㅡ11월 25일 백의종군 일무 수양아들과 전씨 남자 도생과 함께 용안대에 올라 텐트를 세울 수 있게 바닥 평탄화 작업을 함. 백의종군 일무 수양아들과 함께 식혜를 만들어 다음 날 홀로 용안대에 올리심
2018년(무술년)ㅡ12월 26일 백의종군 일무 수양아들의 권유로 재생신하신 증산 상제님의 강탄절을 최초로 봉행하게 됨
2019년(기해년)ㅡ67세때 1월 1일 신정에 32세 백의종군 일무 수양아들과 함께 아침에 산책하면서 2017년 당시 오해 한 것을 모두 푸시고 금평저수지에서 해돋이를 보시고 증산법종교에 가셔서 신정 맞이 영대와 삼청전을 알현하시고 방명록을 작성하시고 떡국을 대접받으셨고, 점심에는 용화동 대법사 증산교 건곤사당에 천지부모님을 알현하시고 탈북자 김씨 여자 도생(태을선도 출신)이 만든 북한식 떡국을 대접 받으신 후 증산교 종령과 도생들과 도담을 나누심
2019년(기해년)ㅡ3월 26일에 백의종군 일무 수양아들을 불러 비법을 전수해주심으로 후계사를 맡기시고 다음 날 27일에 함께 서울로 올라가 구로구 남부효요양병원에 구씨의 지속적인 사기 때문에 끝내 뇌경색과 급성위암말기로 입원하시게 되어 후계자 일무 수양아들이 열흘동안 정성스레 비법을 쓰면서 병간호를 하여 통증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남
2019년(기해년)ㅡ4월 4일 서울 보라매병원으로 수혈을 받으시기 위해 구급차에 실려 큰 따님과 후계자 일무 수양아들과 함께 응급실로 가시게 됨. 이 날에 전라도를 제외한 모든 도에서 산불이 일어남
2019년(기해년)ㅡ4월 28일에 하늘에서 부르시므로 가족들을 불러모아 하느님께서 부르시니 가야겠다고 하시며 화장 후 부모님께서 안치되어 계신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매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기시고 심장충격기를 비롯한 일체 의료행위를 거부하심
2019년(기해년)ㅡ이틀 뒤 4월 30일 음력 3월 26일 자시 법륜 수부님 탄강절에 맞춰서 선화하심으로 가고 옴(생사)을 자유자재(임의용지)로 하시는 해탈을 이루시고 격암유록의 이릉비의(異陵非依)와 비의원공배태묘(非衣元功配太廟)가 실현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