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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는 언어를 안받침해주는 도구이다. 또한 언어는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의사전달 매개체이다.
우리가 우리의 문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하냐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는 크게 뒤바뀔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문자를 떠난 언어란 상상할수가 없고 문자에 실린 언어라야 효력과 작용이 충분할수가 있으며 더 나아가 언어의 발전에 문자의 역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회의 모든것이 문자와 언어로부터 출발하고 사회생활모든것이 문자와 언어로 대를 잇는만큼 문자와 언어는 한 사회존재의 ‘DNA’인것이다. 문자가 점점 언어의 기초로 변하고 있는만큼 문자가 사회의 ‘DNA’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의 것을 지킬려면 우선먼저 자기의 것을 소중하게 다루고 아낄줄 알아야 하지 않을가!!!!!!
소중하게 다루지 않고 아끼지 않으면서 독점하려고만 한다면 대외에 그 명분이 설수가 있을가??????
문화재는 태여나서부터 문화재인것은 아니다. 태여난후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중대한 사건들로 인하여 그 흔적들이 남아 가치가 생기면서 문화재로 인정받게 되는것이다.
문화재를 죽은것으로 보지 말자. 문화재도 계속 진화할수밖에 없다!!!
전문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사회를 위하여 사용자의 입장에 서서 이러저러한 문제들의 해법을 찾아냄으로써 일반백성들로하여금 될수록 쉽게 문제를 해결하고 그 결과를 누릴수 있게끔 도와주는것이다
진리는 복잡함에 있지 않다. 단순하고 간단한데 있다.
정리정돈은 단순한데로 응용은 복잡한데로 흐르는것이 인지상정
문자의 기능은 뜻을 전달하는것이고 그 글자자체가 아닌것만큼
무릇 무슨 실체를 만듦에 있어서 우선 고려대상은 실체에 실어서 표달할 내용이고 그다음에야 예술성이 아닌가.
국민의 의지가 력사를 만들어 나아가니깐
서예가들의 본분은 국민들이 바라는바를 더 친화적으로 향수적으로 꾸미는것이 아닌가???... 이 본분을 떠난다면 예술가는 그 의의를 상실하는것으로 된다!
우수성은 평가대상자체의 역할과 능력에 의하여 결정되여야 한다.
훈민정음의 본질은 음성합성원리이며 글자형태등은 부가적인 요소일뿐으로 그 자체가 훈민정음이 아니다.
기억하시라. 한글의 우수성의 실질은 음성조합리론이다.
문자의 궁극적인 목적이 군체의 교제인것만큼 문자는 그 문자를 창제한 집단의 언어를 표기하는데 적응되게끔 만들어지는것이 기본이며
력사유물은 세상에서 유일한것이며 대체물이 존재하지 않고 복원후의 력사유물도 세상에서 유일한것이며 대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자를 많이 알면 좋겠지만 대가가 결과에 비해 너무 크고 효과는 상대적으로 너무 작다. 우리가 한자를 멀리 해야 할 필요도 이 때문이다.
영어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사회발전의 수단일뿐 그 목적이 될수가 없다.
이동하는 수단에는 바퀴뿐아니라 날개도 있고 물 등도 있다. 또한 이동수단만으로는 의미가 없으며 반드시 이동수단을 연결하고 제어하는 각부분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남을 이기려면 남보다 뛰어난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한자를 종용하는 사람들이 한자를 미신하고 있듯이 미국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미신하고 있는듯싶은 느낌이다.
세상은 영원불변이란것이 없다. 어제의 제국이 오늘은 몰락할수 있고 오늘의 제국 또한 미래의 어느 순간 몰락하게 된다.
인류사회를 살펴보면 발전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 옛날엔 천년제국이 가능하였지만 이제는 그러한 현실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세종대왕님의 정신은 바로 이와 같은 세상을 하나로 하나를 다시 만물로 이끔으로써 보통평민들도 쉽게 응용하고 인재화될수 있게끔 하는데 있다.
우리민족의 가장 큰 손실은 반도의 분단에서 온다. 직접적인 엄청난대결비용말고도 사회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인적자원의 혼란과 랑비가 극심하다.
혹 통일이 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러한 이질화가 급속히 진행이 되면 100년후 우리들사이가 우리와 일본과 같은 사이가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수가 있겠는가?!...
분단이 고착화되면 도약의 기회는 소실되고 말것이며 이는 우리민족이 가장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것과 다를바없는것이다.
총명의 기준은
주위사물에 대한 이해력이 깊고 빠르냐 또 이런한것을 바탕으로 주위사물을 적절히, 그러나 충분하고 빨리 이용할줄아느냐이다.
남의 뒤꽁무니만 쫓는것밖에 몰라도 우리민족이 총명하다고 할수가 있을가?… 남의 뒤꽁무니를 쫓는 일은 누구나 할수가 있다. 잉글랜드의 력사를 잘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우리글은 우리민족이 총명해진 강력한 밑바탕이였으며 훌륭한 촉매였던것이다.
영어화가 이제 막 시작이지만 그 이전에 한국의 실정은 이미 따라잡는 한계에 거의 도달해 있다. 이제는 새로운것을 창조하여 세계를 리드할 준비를 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가?!... 아직도 남의 꽁무니를 따라 다니는 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세계의 톱으로 올라 설수가 있으랴!...
워낙 가능성이 높은 조선족학교에서 쉽게 진학하다보니 소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데 돌연 그 우세의 원인을 제거하니 결과가 뻔하지 않습니까?
인류사회발전은 점점 빨라지고 있고 이러한 변화는 또 문자의 산생 및 그 변화과정과 보조를 같이하고 있음을 발견할수가 있다.
난세의 영웅들과 대단한 제국들, 그리고 거룩한 천재들이 인류역사발전의 전환점들을 만들어 온것은 분명하지만
영웅들과 제국들, 그리고 천재들은 문명의 출현과 더불어 나타나기 시작했고 또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많아지고 있는것이다. 기실 문명의 발달은 사회의 변혁을 요구하게 되며 사회의 이러한 요구가 이런저런 영웅들과 제국들, 그리고 천재들을 만들어내고 있는것이다. 문명은 또한 문자발전의 토대위에 추진되며 나아가 문자의 발달에 의하여 시대가 결정이 되고 있는것이다.
결론적으로 인류사회문명의 기준은 문자이며 인류사회발전의 근거 또한 문자에 있다.
강국어나 강국문자에 눈을 멀구면서 목을 매지 말고 우리들의 글과 말을 갈고 닦는데 힘을 들이라, 이것이 우리들을 세계의 정상에 올려 세우는 유일한 지름길이고 또한 그 강력한 보장인것이다!
남의 뒤꽁무니밖에 보지 못하면서 자기보다 엄청 크고 강력한 대국들을 앞찌르겠다는 어리석은 발상들은 이제는 거두어 들일때이다!
진실을 깨우치고 현실을 정시하라, 우리의 길은 따로 있다!
자기의 권리, 자기의 가능성, 자기의 책임을 알지 못하는 민족은 그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것
생명의 력사를 살펴보면 역동적이지 못한것은 발전을 기약할수가 없을뿐만 아니라 자칫 쇠퇴,나아가서는 멸먕에 이르게 된다.
역동적인것은 무엇으로부터 나오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경쟁에서 나온다.
우리는 자기의 특점에 맞는 방법과 수단을 연구하고 고안하여 세상을 개척하여야 우리의 능력을 극대화할수 있는것이다. 또한 이러한 행동들이야말로 인류력사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 되였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되다.
자기와 인류사회에 책임지는 옳바른 태도는 상대방이 자기보다 우수하다 하여 자포자기하고 상대방에게 자기의 일체를 맏기는것이 아닌 상대방의 웃점으로 부터 자신의 부족점을 찾아 해결하여 자신의 우세를 확립하고 또 극대화하여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기여하는것이다.
내가 나보다 힘이 센 상대를 경쟁하여 이기려면 상대가 알지 못하거나 장악하지 못한 비결(기교)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상대방과 같은 방법을 쓰다나면 패할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우리가 미영의 영어가 세계를 휩쓴다하여 영어에로 언어를 전환 하고 나면 우리의 우세는 금새 안개처럼 사라지고 우리는 영원히 인구가 우리보다 많은 영어권나라들에 비해 열세에 처하게 되며 그들의 뒤꽁무니를 따라 다니게 될것이다. 동일선상에서는 인구, 자원이 많은것이 우세가 되겠으니...
우리민족 전체 성원이 인재가 되여도 쉽지가 않을 판국에 문맹률증가는 절대 용인될수가 없다.
새로운 사물이 이미 습관이 되여버린 낡은 사물을 대체하려면 낡은 사물보다 월등한 우세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말과 글의 잠재력의 발굴여하에 따라 우리언어체계의 앞날이 갈리고 우리 민족의 앞날도 갈릴것
금덩이를 동물에게 뿌려주면 동물은 그냥 스쳐지나는 돌덩이쯤으로 여길것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가져다주면 사람은 그것을 다듬고 가꾸어서 귀중하게 쓸것이다. 여기에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위대함이 있는것이다.
도구의 우월성을 계속 유지하려면 끊임없는 혁신과 발전이 이루어져야
간편한 규칙과 풍부한 표달에 초점이 맞춰진 체계의 생명력은 이렇듯 강력하고 끈질기며 그러한 체계가 받쳐주는 사회 또한 강력하고 활력이 넘쳤음은
사회라는것은 모종의 합의와 범주에 따라 움직이게 되여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혼란이 발생할것이고 나아가서는 사회를 훼손 내지는 붕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수가 있다.
모든 존재는 모두 그 발생원인과 근거를 가지고 있다. 더욱히 자생적으로 큰 세력을 형성할수 있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사람들의 기본본능중 하나는 간편함을 추구하는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는만큼 사물의 단점은 제거하고 장점은 추출하여 흡수하는것도 하나의 지혜와 능력이 아닌가
경쟁은 인류사회는 물론 자연계의 발전법칙이다.
세상엔 100퍼센트 완미란 없다. 그러한 완미를 향해 가고 있을뿐... 누가 부지런히 움직여 그 완미와 더 가까이 간다면 그가 곧 력사의 주인이 될것이고 그 시대를 주도하게 될것이다.
사실들을 자세히 관찰하여 보면 인류사회발전은 점점 빨라지고 있고 이러한 변화는 또 문자의 산생 및 그 변화과정과 보조를 같이하고 있음
영웅들과 제국들, 그리고 천재들은 문명의 출현과 더불어 나타나기 시작했고 또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많아지고 있는것이다. 기실 문명의 발달은 사회의 변혁을 요구하게 되며 사회의 이러한 요구가 이런저런 영웅들과 제국들, 그리고 천재들을 만들어내고 있는것이다. 문명은 또한 문자발전의 토대위에 추진되며 나아가 문자의 발달에 의하여 시대가 결정이 되고 있는것이다.
결론적으로 인류사회문명의 기준은 문자이며 인류사회발전의 근거 또한 문자에 있다.
한 군체가 다른 군체의 영역으로 가서 일할때 같은 능력의 상대군체의 사람보다 차별을 받는것은 어찌보면 천리입니다. 다만 언제나 내리 차별을 받는것은 아니고 때로는 능력이상의 대우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대군체의 필요에 따라서요... 그런것을 리용하는것도 지혜겠지요...
하지만 조선족과 한국인은 공동의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은 공동의 전통과 언어, 문자들을 공유하고 이들을 공동히 발전시켜 나가야할 윤리적,도덕적인 초국가적인 의무가 존재합니다.
지혜로움은 복잡한데 있는것이 아니라 간단하면서도 모든것을 포용할수 있는데 있습니다.
사회간 사람간에만 모순이 있는건 아니고 사람자체에도 모순투성입니다. 자기를 정확히 아는 사람도 이 세상에는 없구요, 자기자신을 마냥 정확하게 이끌고 나갈수 있는 사람도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 누구도 실수와 실패의 반복속에서 자기와 인생, 사회를 알아 나아가는겁니다.
인생은 자기가 승인하던 안하던 자신을 중심으로 가꾸어지는 인생이며 달리 말하면 자아완성의 귀중함을 깨우치지 못하는 삶은 생의 본질을 망각한 실패한 인생일수밖에 없습니다.
토론에 있어서 중요한것은 사실과 합리성을 추구하는것입니다.
조선족과 조선민족(또는 한민족)은 범주의 개념
토론에 감성을 넣으면 왜곡과 억지가 난무하게 되여 토론의 원래의 의미를 퇘색시키게 됩니다
부정적인 몇사람이 전체를 대표할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나쁜면만 부각시키고 좋은면은 외면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를 부정하고 인생을 산다는것은 참으로 찌들어진 인생이라 해야할것이다. 자기자신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늘 부정하며 사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 나아가 사회를 위하여 옳바르게 살수가 있겠는가.
당신이 문자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라면 문자에 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참작하여 발언하는것이 명지할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무지함을 드러내거나 혹은 당신이 깨끗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만다.
어떠한 민족이나 자기의 독특한 우세가 없다면 멸망되게 되여 있다.
민족에 관심을 갖고 영원히 나아가기를 희망한다면 우리민족의 우세를 발굴하고 끊임없이 변화,발전시켜 흡인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우세가 없는데 민족을 발전시키려고 한다면 무조건 만들어내야 한다. 무거운것은 내려가게 되여 있고 가벼운것은 올라가게 되여 있는것은 우주의 법칙이다. 우세가 있으면 잡아끌지 않아도 따라오게 되여 있다.
민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매 성원들의 불가분의 이익적, 정서적 공생관계가 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의무에 관한 평등은 외면한채 혜택에 관한 평등만 주장하다나면 마찰이 커질수밖에 없습니다.
독재는 극도의 사욕에 의존합니다. 이러한 사욕은 집단의 리익을 우선시하는것이 아니라 자기리익을 우선시하게 함으로써 사회의 통합에 강력한 장애요소로 될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통일에 외부요소의 작용을 절대화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인류사회의 력사는 의지와 지혜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변화시킨 력사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하겠습니다.
선입견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일제가 조선을 말살하려 했다고해서 그당시의 사실들을 무작정 부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조건 100%부정해야 애국, 애족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비뚤어진 애국, 애족이고 지혜롭지 못한 처사가 됩니다.
실패가 무서운것이 아니라 실패에서 확실한 교훈을 얻지 못하는것이 더 무서운것입니다.
무릇 상품이나 도구는 쓰기 편리하면서도 충분한 기능을 해야 인간에게 유용하게 보급될수 있음은 세상의 리치이거늘 복잡한 한자를 힘들게 배워야 한다고 하는 주장들은 참으로 가소롭기 짝이 없다. 그런 주장을 할 정력이 있으면 우리글 우리말에 한자의 장점들을 접목시키는 노력을 경주하는것이 더 나을것이다
길게 보면 당연히 2중언어가 성공할수가 없다
왜냐하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의 본성은 언제나 될수록 쉽게 자기의 소원을 이루려 하기 때문이다.
털끝만큼 아는걸로 한개 집단 전체를 평가하고 조롱하는것은 큰 실수를 저지르는것입니다.
지나치게 남의 움직임에만 신경쓰다나면 자기의 길(행동)이 흐트러질수가 있습니다. 중요한것은 자기가 발전해야 하고 강해져야 한다는것입니다. 그런다음에야 효과적인 얘기들이 나올수가 있는것입니다. 그전의 모든 얘기는 넋두리에 머물고 말것입니다.
중국이나 일본등에 대한 연구도 한국, 한반도 나아가 우리 민족을 발전시키는것에 역점을 두고 진행되여야지 중국이나 일본이 잘 못되는것을 목적으로 하면 우리들의 발전은 허공에 뜬 환각으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인생은 개개인의 인생이겠지만 인생을 사는것은 더불어 사는과정이라
민족의 정체성은 한반도와 같고 국가의 정체성은 중국에 있습니다. 즉 2중성을 갖고 있습니다.
저의 생각이라면 단기적으로 국제음성기호화도 할수가 있지만 더욱 중요한것은 장기적으로 우리의 어학체계를 탈바꿈시킴으로써 그 자체를 세계화할수 있다는 점입니다.
당신의 자식이 한어만 장악하면 장차는 13억중국인과 경쟁해야겠지만 조선어도 장악하면 13억중의 극소부분인 200만조선족과 경쟁하면 됩니다. 기회가 그만큼 많아 진다는얘기입니다.
굳이 멋있는 성구를 많이 써야 유식하고 뭐나 잘된다는 사고는 어리석어 보입니다.
막연한 허물찾기와 허망한 비하하기는 정력손실일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어학체계(한글과 한국어를 포함)를 하나의 종합학문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우리민족만의 소유물이 아닌...
수학 물리등과 같이 인류의 공유지식체계로 구축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군체란 어떤 공동한 특성을 지닌 집합체를 사람들의 인식의 편리를 위하여 특정지어 이름하는것입니다. 그것은 실재하는 존재이고 의식에 의존하지 않는 실체로서 보는 각도에 따라 범위거나 모양새가 틀려질수는 있고 시간에 따라 변동이 생길수는 있으나 허무한것이거나 근거없는것은 아닙니다.
가족이 그러하고 민족이 그러하고 국가 또한 그러합니다.
다른 각도로 얘기하면 가족이나 민족이나 국가는 개개인의 외연으로서 개개인은 가족이나 민족이나 국가의 현실과 미래를 통하여 자아를 형성하고 인생을 완성하는것입니다.
순서도 나 - 가족 - 민족 - 국가로 돼야 정상적이겠지요.
박정희가 과실이 있었다고 그의 공적도 모두 말살하는것은 문명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이 취할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님들은 언제나 조선족이 민족을 지키는것과 중국의 국가리익을 대립시키고 있는데 님들의 생각 이상합니다. 왜서 꼭 대립돼야 되는가요. 중국정부의 소수민족정책이 그런것이였던가요...
사람은 자기의 특장을 개발하여 사회에 공헌해야 그 의미가 살아나지 남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면 영원히 그림자로 밖엔 될수가 없습니다.
민족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족의 장점이 곧 나의 장점으로 되고 민족의 힘이 나에게 큰 도움을 주게 됩니다.
<모이자>가 민족의 사이트이면 민족의 얼을 지키고 국가와 민족을 조화시키면서 발전해나가는것을 중요한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민족의 약화, 나아가서는 민족의 소실로 이끈다면 이것이야말로 관리자님들이 크나큰 과오가 아닐가 생각합니다.
한가지 여쭈기싶은것은 민족이란 결과적으론 문화공동체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것이 언어입니다. 언어를 잃고 나면 민족이란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조선족 또한 민족어를 잃으면 또는 한족에 동화가 되면 그때에 가서도 조선족의 발전을 운운하는것은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조선족의 실체가 사라지게 되는데 그런데도 조선족의 발전을 말할수가 있을가요??? 그것은 어불성설이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실제적이고 강력한 조선족들이 뒤받침돼야 흥성하는 모이자가 존재할수가 있는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조선족들의 혼란과 실망을 부르는 장으로 되여간다면 돌덩이가 굴러와서 자기의 발을 까는것을 외면하는 꼴이 되고 마는것입니다.
생명의 존재리유는 삶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노력이 아닐가 생각합니다.
한글로 하냐 한자로 하냐는 론쟁본신은 정치적인것이 아닙니다. 서울과 력사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야 하겠는가하는 력사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력사유물을 어떻게 대하겠느냐 하는 문제이기도 하구요.
박정희전대통령이 한국의 근대화와 한글전용을 이끈 점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 옛날 일본군장교를 하였다는 과거로 이러한 공적도 무시하면서 친일파로 몰아부치는 일부의 주장들이 문제가 많은듯 보입니다.
평화는 그것을 지켜낼 수 있을만큼 힘을 가지고 있을 때만 지킬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 반대한다고 하여 일부 사람들처럼 포탄세례 받으면서까지 평화를 운운하고 싶은 마음 꼬물만큼도 없군요.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비겁함이고 굴종이라고 합니다.
kv300님의 윗 두마디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100%추천합니다.
벗은 될수록 많이 만들고 적은 될수록 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사용법이 중요하지 그 원리가 중요하것이 아닙니다. 현대의 모든 업종의 전업화도 이때문입니다.
문자라면 제일 중요한것은 말과의 결합으로서 여기에는 음과 뜻 두부분이 내포되여 있으며 그다음에 글자형태가 됩니다. 단순한 형태만 있을때에는 문자라고 할수가 없습니다.
무릇 세상의 넓음을 인정하고 품을줄 아는것도 품위가 아닌가 싶습니다.
만족은 이제 영영 옛 영광을 찾을길 없습니다. 자기의 문화를 잃어버렸으니...
소수의 인마로 그 옛날 중국대륙을 호령할수 있었던것도 그들만의 독특했었던 문화의 덕분이였습니다.
한자나 한글은 단지 뜻전달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너무 신성시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오히려 신성시한 결과는 발전을 가로막는것밖에 안됩니다. 이후 우리 민족이 더 좋은 문자계통을 개발한다면 한글도 력사속에 버릴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발전할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를 부정하고 인생을 산다는것은 참으로 찌들어진 인생이라 해야할것이다. 자기자신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늘 부정하며 사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 나아가 사회를 위하여 옳바르게 살수가 있겠는가.
당신이 문자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라면 문자에 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참작하여 발언하는것이 명지할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무지함을 드러내거나 혹은 당신이 깨끗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만다.
자기생애에 이루지 못하더라도 후세에게 깨우침을 줄수만 있어도 성공인것입니다.
세종대왕의 공적도 소국이란 그림자 약한 민족이란 그림자에 가리워 제대로 보이지 않을뿐입니다.
주관을 앞세운 평가는 공정할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친일한다는 박정희가 한글전용을 강력 추진했고 광화문현판을 한글로 달았습니다. 헌데 반일한다는 당신은 일본처럼 한자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문자의 기능은 어떤 내용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것
조선이 한자만 쓰다 앞뒤에서 터지게 맞고 한국이 한글전용을 하면서 국운이 융성한것은 왜 보이지 않는지요?
인생이란 그렇지 않을가요, 뭔가를 목적을 만들고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그런 가운데서 충실감을 느끼는...
저의 생각은 그런 기회가 있으면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대학의 정취를 느껴보는것만으로도 많은 배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인생의 목적이 크고 작아서 인생의 가치가 다르거나 지식수준이 높고 낮아서 인생의 질이 다를수는 없겠지요. 인생의 의미는 실제로 사회를 위하여 어떤 기여를 할수 있는가와 자기자신이 거기에 만족하냐에 달렸다고 생각됩니다..
사회란 결국은 사람사이의 관계입니다.
사람의 하나의 기본속성이 사회화입니다. 사회를 떨어져서는 살수가 없죠.
영어자체가 모든 인생이 될수가 없고 영어가 사회의 목적이 될수가 없습니다.
언어나 글은 사회교제도구입니다.
가치가 저혼자만의 세계에서 생길수가 있는 것인지요?...
가치란 사회비교의 산물입니다.
사람의 만족도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회와의 어울림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언어는 사람들의 생활원칙을 제시해주는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세상의 모든 지식의 밑바탕이 되는것입니다.
동물과 인간의 가장 큰 차별이 언어에서 옵니다. 인간은 복잡한 언어를 소유한다음에야 모든 지식을 쌓을수가 있었습니다.
님의 주장을 보면 마치 자연이 중요하지만 인간이 더 중요하다고 우기는것 같습니다. 당연히 인간이 더 중요하지요. 모든 론의나 가치가 인간이 있음으로 발생하는것이니깐요. 하지만 인간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성립될수가 없으며 주위의 자연과의 관련이 발생하면서 의의를 지니는것입니다.
중요도라고 할때는 외부의 사물이 우리의 생활에 끼치는 영향으로 결정이 되는것입니다. 두뇌는 중요도를 평가하는 주체가 된다는 말입니다.
사회가 님을 만들어 내고 님 또한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내가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변화시키겠는가를 고민하면서 살다나면 목표와 희망이 생겨날것입니다.
사회란 둘간에도 사회이고 셋이 모여도 사회입니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해결책을 찾고 실천해 나가십시요. 그리고 이 과정차체를 사랑하십시요...
가치나 의의는 모두 사회에 공헌하여 인정을 받는 정도에 의하여 결정이 됩니다. 사회를 배제하면 자기혼자의 세계에서 가치란 존재할수가 없습니다. 또한 님이 무엇을 이루었다는것은 결국 사회에 영향을 끼쳤다는것이 되며 이것은 또한 자기의 가치를 실현한것이 됩니다.
사회에 대하여 애정을 갖고 관찰하고 사회와 나와의 관계를 끊임없이 터특하고 수정하면서 나아 가다보면 길이 보이고 목표가 보이고 하는것입니다.
이 세상 누구나 모두 누군가의 영향하에 살아가게 되지만 언제나 자신을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 사실에 의존하는 경망스럽지 않은 주연으로 생각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님과 사회는 불가분의 통일체입니다. 님은 사회의 한 구성원이고 사회 또한 님과 같은 '나'들로 구성이 됩니다. 님은 사회로 하여 삶의 의미를 찾을것이고 사회 또한 님과 같은 사람들로 인하여 발전하는것입니다. 님이 사회에 일조하는 기여를 하면 사회는 님에게 상응한 혜택을 주고 님이 사회에 거스르면 반대되는 효과가 있겠지요, 금전적 혜택만 혜택이라는 생각 고치십시요.
그리고 금전적 혜택을 받을지 다른 혜택을 받을지는 님이 결정하고 노력하기에 달리지 않을가요?
주위의 사회로부터 님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그것으로 의의가 잊지 않을가요?
저의 문장에서 문자가 사회발전의 유일한 근거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자가 사회발전의 필수불가결의 존재인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사적은 탄생된뒤 여러 환경과 사건의 영향을 받으며 그러한 영향의 흔적들도 사적의 력사적, 학술적가치의 한개의 구성부분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한자나 한글은 단지 뜻전달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너무 신성시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오히려 신성시한 결과는 발전을 가로막는것밖에 안됩니다.
무릇 무슨 실체를 만듦에 있어서 우선 고려대상은 실체에 실어서 표달할 내용이고 그다음에야 예술성이 아닌가.
서예가들의 본분은 국민들이 바라는바를 더 친화적으로 향수적으로 꾸미는것이 아닌가???... 이 본분을 떠난다면 예술가는 그 의의를 상실하는것으로 된다!
력사유물은 세상에서 유일한것이며 대체물이 존재하지 않고 복원후의 력사유물도 세상에서 유일한것이며 대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어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사회발전의 수단일뿐 그 목적이 될수가 없다.
영웅들과 제국들, 그리고 천재들은 문명의 출현과 더불어 나타나기 시작했고 또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많아지고 있는것이다. 기실 문명의 발달은 사회의 변혁을 요구하게 되며 사회의 이러한 요구가 이런저런 영웅들과 제국들, 그리고 천재들을 만들어내고 있는것이다. 문명은 또한 문자발전의 토대위에 추진되며 나아가 문자의 발달에 의하여 시대가 결정이 되고 있는것이다.
결론적으로 인류사회문명의 기준은 문자이며 인류사회발전의 근거 또한 문자에 있다.
남의 뒤꽁무니밖에 보지 못하면서 자기보다 엄청 크고 강력한 대국들을 앞찌르겠다는 어리석은 발상들은 이제는 거두어 들일때이다!
한글이나 한자는 언어를 의식밖에 담아놓는 그릇일뿐으로 그 자체가 언어에 점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나 그것에 담기는 언어자체를 결정할수는 없다!...
님이 열거하신 사회발전의 요소들과 제가 제시한 요소간에 모순은 없습니다. 서로 보는시각이 다르거나 보는 차원이 다르거나 분석하는 방식이 다른것뿐입니다.
또한 저의 문장에서 문자가 사회발전의 유일한 근거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자가 사회발전의 필수불가결의 존재인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언어란 소통의 수단이고 문자란 그 소통수단을 담는 그릇입니다. 언어와 문자를 쓰는 목적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것이지 자기를 과시하기 위한것이 아닙니다.
(민족이란것은 피줄 뿌리 조상 DNA 와 상관없는 사회적 문화적 주관적 정서적인 개념입니다.)민족정의가 대체로 맞지만 혈연적인 요소도 강하게 존재합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민족을 결정하는것은 개개인의 마음에 있다고 보아집니다.
포괄적으로 얘기하면 다름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됩니다.
제가 말하는 다름에는 속성의 다름도 포함되지만 기대와 현실의 다름과 같은 내용도 포함되는등 광의적인 개념입니다. 이러한 다름으로 모든것이 존재할수 있는것이고 또 이들로 하여 세상은 모순으로 충만되여 있는것입니다. 문제란것도 결국은 일종의 모순의 부각형태가 아닐가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왕왕 좌절을 당한후에야 깨우치는것같습니다.
민족주의의 핵심이 자기문화의 보호와 발전입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것은 극단적 민족주의이지 정상적인 민족주의가 아닙니다.
서울의 정체성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의 일부요 또한 가장 중요한 일부입니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정체성 또한 한민족정체성의 일부이면서 그중 가장 중요한 한 부분으로 되여 있는것뿐입니다. 대한민국이던 조선이던 또는 다른 어떤 나라이던 우리민족의 정체성과 리익을 훼손한다면 우리민족의 미래를 위하여서는 바꿔야 할 대상으로 됩니다.
8천만겨레가 반도의 통일을 갈망하는 하나의 원인도 바로 반도가 민족의 리익을 위해 더 효과적으로 작동할수 있고 나아가서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더 잘 수호할수 있는 버팀목이 되여 줄것을 바라고 있기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통일후의 반도가 할수가 없고 오히려 역으로 작용한다면 반도의 통일을 바랄 명분은 없어지고 마는것입니다.
대한민국도 우리겨레의 발전을 위해 복무해야 우리 해외동포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수가 있으며 반대로 우리겨레의 발전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면 동포들에게는 그 역으로 될수밖에 없습니다.
민족은 결국은 문화공약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