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4월 10일 전국승려대회를 통한 종단개혁.... 종단은 언급조차 없는 가운데 개인 몇분의 페북을 통한 소회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박재현 : 신대승네트워크 협업미래센터 소장>
오늘은 1994년 조계종 종단개혁 28주년 되는 날이다.
종교개혁이 어려운 것은 아래로부터의 자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94년 종단개혁은 사부대중이 함께 손잡고 아래로부터 만들어낸 것이다. 불교를 넘어 종교사에 기록될만 한 자랑스런 사건이다.
그런 역사가 잊혀지고 있다. 아니, 지어지고 있다. 종단은 언제 부터인가 이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다. 종단은 조계종 헌법인 종헌 전문에 기록되어 있는 자랑스런 역사를 기념하지 않은 지 오래다.
종단개혁으로 탄샘한 현재의 종단체제가 종단개혁의 지향과 정신을 계승하고 있지 않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94년 종단개혁을 넘어 새로운 시대 가치와 방향이 필요하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수용과 계승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기록하고 기억함을 통해 한걸음 나갈 수 있다.
<김성동 : 전 총무원 총무팀장, 도서출판 어의운하 대표>
1994년 4월 10일. 올해가 조계 종단개혁 28주년이다. 종단사에 1994년 4월 10일은 매우 중요한 날짜다. 종헌 전문에 개혁회의 의미가 중요하게 새겨질 정도다. 국가로 말하면 헌법 전문에 새긴 3.1운동 4.19와 같다. 아니 전문의 비율로 보면 그 이상이다. 그만큼 종단의 지향을 이념적으로 새긴 이정표인 것이다. 94년 개혁에 생채기를 내려는 세력과 학자들도 있지만, 이는 당시 종단 개혁에 대한 국민과 불자의 열망을 부정하며 개인의 이익 카르텔에 얽힌 이들의 장난일 뿐이다.
종단은 몇 년 전부터 종단 개혁의 기념일을 잊고 지낸다. 종단 실무자는 물론이고 당시 개혁에 참여했던 주요 스님들도 그러하다. 모두 자승 전 원장의 숨소리, 기침소리를 들여다보는 게 유일한 목표가 된 셈이다. 개혁 종단의 가장 큰 의미는 사부대중의 참여다. 의사 결정 체계의 큰 변화가 된 것이다. 당시 서의현으로 상징된 권력의 집중과 부패의 카르텔을 사부대중의 참여로 깨뜨린 것이다. 그것, 일찍이 교단사에는 없었던 일대 사건이었다. 이후 수많은 시스템이 바뀌었고 이를 계기로 교단은 내적으로 승재가 교육 체계가 시작되었고 다양한 제도적 실험이 진행되었다. 지금 교단이 이만큼 우리 사회에서 자주적으로 존립할 기반을 갖춘 게 불과 94년 이후이다.
이젠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된 듯하다. 누구는 종단 권력의 실세가 되었고 누구는 권력 쟁탈에 밀려났고 누구는 이를 한탄하며 산으로 들어갔다. 누구는 94년 개혁의 의미를 붙잡고 있지만 세력이 없고, 누구는 그 의미를 이어가고 있고, 누구는 그놈이 그놈이다며 94년 개혁을 조롱한다. 상대의 작은 흠은 과장되게 덧칠하고, 나의 비리는 감춘다. 오십보 백보를 보편화해 종단을 기득권의 줄서기로 서열화한다.
종단 권력이 독재 체제에서 다양한 의사 결정이 가능하게 교체된 만큼 이를 다루는 도구도 많이 변했다. 눈짓으로 턱짓으로 패거리로 진행했던 수많은 교단의 의사결정은 많은 토론과 대중의 수렴을 거쳤다. 그 과정이 세속의 그것과 닮아가며 이질적 습속이 교단에 들어왔지만, 그건 그것대로 교단 내의 질서 속에서 교정되기도 했다. 그만큼의 변화와 진보였다.
시간이 더 흘렀다. 교단 내외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환경 변화는 종단의 의사 결정 체계를 한 번 더 변화시킬 것을 요구한다. 특히 더욱 정교화된 sns 시스템은 사부대중의 의사 결정을 교단이 더욱 수평적이며 복합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요구받는다. 이건 아직 교단 주요 구성원이 교단의 체계 속에서 경험하지 못한 사건이다. 교단의 기득권자가 알았던 정보와 권력의 카르텔은 더 노출되고 그들의 욕망은 감추기 어려워졌다.
94년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종단 내 기득권자들이 사부대중의 의사 결정을 다루는 시스템이 그렇다. 눈짓과 턱짓과 패거리가 그렇다. 더 좋지 않은 것은 토론과 비판 문화가 거의 사라진 것이다. 시스템이 부패의 카르텔로 오염되었기에, 오염된 공간 속의 토론은 늘 겉돌고, 에너지가 없었다. 썩어 가는 강에서 그물을 아무리 던져도 고기가 나오지 않는 것과 같다.
긴 호흡으로 보면, 붓다의 가르침은 다양한 변주로 더 확장할 것이다. 무아를 기반으로 한 상호 의존성, 관계성의 세계관이 그렇다. 그 확장이 종단 제도 안으로 어느 정도 수렴할까? 아마도 제한적인 것이다. 적당한 파이 조각을 적당한 이들이 나누어 먹는 정도. 딱 그정도다. 대신 깨어나는 개인들이 서로를 연결하며, 각자의 상황에서 연기 무아의 실험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종단 개혁 28주년을 기념하며, 제도를 넘어, 어떤 것을 발견할까, 하는 두서 없는 잡념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