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9월17일 주일오전설교
성경합독: 이사야16장, 디모데후서4장
성경낭독: 요엘2:28-32절
설교본문: 사도행전1:4-6절
설교제목: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예배찬송: 찬송280잘(시104), 찬송4장(시3), 찬송1장(시1), 찬송357장(시134)
욜2장 28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행1장 4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사도행전이 전하는 복음은 데오빌로에게만 향하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승천하신 것처럼 다시 오실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육체로 본 것처럼 우리는 그 날에 다시 오시는 주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의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영원토록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개선시킨다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복음은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든다는 개혁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복음은 모든 죄가 소멸되며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완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훌륭한 정치 지도자가 나오면 좀 더 나은 정책으로 나라가 변화되고 좀 더 개선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부유하게 되고 돈이 많아지면, 삶에 큰 안락함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인도, 사회적 구조도, 돈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어떤 것이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있습니까? 누가 우리에게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도록 새롭게 하십니까? 무엇으로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유일한 복음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무엇을 친히 가르치셨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살아계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행하시며 가르치고 계십니다.
1.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하신 첫 번째 명령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사도들은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었고 자의적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뜻을 전달할 수 있는 자격이 있지 않았습니다. 메신저의 가장 중요한 일은 보고 들은 대로 증거 하는 일입니다. 주인의 뜻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명령을 받은 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주님은 승천하심으로 지상 사역을 마무리하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역을 끝내신 것이 아니라 유일한 중보자로 보좌우편에서 일하십니다. 세상의 여느 종교들은 창시자가 이 땅에서 자신의 사역을 완성하는 것으로 간주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 땅에서의 사역을 성취하신 것이 끝이 아니라 본격적인 천상사역의 시작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주님께서 오래전부터 약속하셨던 대속사역을 이 땅에서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나 끝이 아닙니다. 이제 주님은 사도들을 파송하시고 교회를 세우셔서 하나님나라의 통치를 이어가십니다. 이것이 다른 여느 종교들과의 결정적인 차이이기도 합니다.
사도들과 교회의 사역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있습니다. 누구도 임의로 자신의 사역과 일을 전개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불법이며, 주님을 대적하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땅에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도 주님의 주권이셨고, 파송하시는 이도 주님이시며 승천하신 뒤에도 교회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은 기다리는 일이었습니다. 자의적이고 임의적 순종은 나쁜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일은 사람이 열심을 가지고 수고함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식탁교제를 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가 약속하신 것”이 오기를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미 사도들에게 자신이 떠나면 또 다른 보혜사가 오실 것을 반복해서 알리셨습니다. 성령의 오심에 대해서 두드러질 정도로 강조하신 일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시게 되면, 하나님나라와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착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성령으로 권능을 입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명령대로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사도들은 무엇보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은 생명의 복음일 뿐 아니라 동시에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어주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구원받은 모든 주님의 자녀들은 동시에 주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하며, 주님의 말씀과 통치에 순종하는 멍에를 매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깃발아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을 모으는 일에 헌신하기 전에 그들이 먼저 주님의 멍에를 매야 했습니다. 사령관이 되시는 주님의 명령과 신호가 있기 전에는 출전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명령을 주시기 않는 한 임의대로 싸움에 뛰어 들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의 은사들에 참여하는 것이며, 복되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며, 몸 된 교회를 견고하게 세워가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이지만 또한 우리는 소망의 성격에 대해 반드시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소망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 내거나 제작해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름이 없는데 자의적으로 자신을 세워 돌진해서도 안 되며, 명령의 신호 없이 자기열심에 광분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일을 해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판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는 오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거룩한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이름으로도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모욕을 받으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사도들이 그들의 마음에 일어나는 대로 기대를 품는 것을 주님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품고 있었던 소망이 얼마나 왜곡되어있는지를 주님은 아셨기에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강림과 성령세례가 필요했습니다. 지옥의 세력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고,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4:16절 이하에서 말씀하셨습니다.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25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우리가 사탄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고 진리의 복음을 견고하게 지킬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복음의 진상과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지 않고 반듯하게 받들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가르침과 일깨우심이 요구됩니다. 이미 베드로는 자기 열심히 얼마나 무력한 것이고 주님의 뜻과 반대될 수 있는 것인지 뼈저리게 경험했었습니다. 십자가로 나아가시는 것을 막아서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오해했습니다. 칼을 뽑아 들어 주님을 보호하는 일이 주님을 위하는 길이라고 여겼습니다.
베드로는 틀렸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도 없었습니다. 주님을 배반했으며 도망까지 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다시 찾아 불러 세우시기 전까지는 좌절 속에서 헤어 나올 수조차 없었습니다. 부르심의 주권이 주님께 있는 것처럼 세우심과 뜻을 성취하는 일에 있어서의 주권도 오직 주님께 있습니다. 사도들에게 사명을 수행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일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2. 성령 세례
왜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다리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있어서의 중요한 분기점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이전세계와 다음 세계를 나누는 기준이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종말론적이고 예비적인 씻음이었습니다. 요한의 세례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이 오시는 것에 준비가 된 것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선물은 메시야가 이미 왔고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에 대한 표징이었습니다. 5절을 봅시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미 세례요한의 자신의 때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을 메시야라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눅3:16)고 말하였습니다. 엣 시대에서 새 시대로 넘어가는 다리는 바로 주님께서 보내실 보혜사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입니다. 성령의 강림은 세례요한 이전, 구약의 예언이기도 했습니다. 요엘2:28-32절을 봅시다.
28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성령하나님의 강림은 구약에서 내내 반복해서 예언되었던 것이며(사32:15, 겔36:27) 세례요한 때에 다시금 확인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대속의 사역을 성취하신 뒤에 다시 반복해서 성령의 강림하심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합당한 능력을 얻기 위한 기다림이며, 이는 특별한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만민, 곧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오셔서 내주하시게 될 약속된 새 시대의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남종과 여종은 물론이고 젊은이들과 늙은이를 포함하여 주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할 은혜의 시대가 도래 할 것을 알리셨습니다.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머물며 기다린 성령께서 오시면 그들의 심령을 씻어 정하게 하실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피로 깨끗함을 입은 이들이 세례요한이 가리킨 실체, 곧 성령으로 참된 믿음과 회개, 새롭게 됨으로 입게 되고 성령의 권능을 힘입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내주’입니다. 성령께서 오신다는 것은 새로운 것으로 이전에는 누릴 수 없었던 것으로 이전시대가 마무리 되고 새로운 시대로의 도래에 대한 징조를 의미했습니다.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왕국의 회복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의 연대기에 따르면 사도들이 기다린 시간은 약 10일입니다. 오순절이 유월절에서 50일 후였고,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40일 동안 나타나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승천 하신 이후로 따지면 약 10일 지나서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새 시대를 위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의 권능의 부여 없이는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믿음과 사명의 근원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뿌리를 내립니다.
주님은 다락방에서 이미 사도들에게 진리의 영이 그가 그들에게 가르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며, 심지어 성령은 주님께서 세세하게 다 가르치실 수 없었던 것조차도 넉넉하게 보충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3. 나라의 회복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보이시면서 부활의 확실한 증거로 드러내셨습니다. 더불어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3절). 하나님나라는 주님의 공생애 사역기간에 전하신 메시지의 핵심이었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뒤에도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강조하신 복음의 요지였습니다. 하나님나라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오실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은 자연스럽게 하나님나라와 성령을 연관시키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질 때 하나님의 영이 부어질 것이라면, 이제 이스라엘의 나라가 회복될 것인데, 그 때가 언제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제자들이 모였을 때에 주님께 물었습니다. 6절입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제자들의 추론은 불합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께서 이제 오실 것이라면 하나님나라도 도래할 것이라고 넉넉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제자들이 하나님나라의 본질과 그의 나라와 성령과의 관계를 모두 오해했다는데 있습니다. 제자들의 질문은 주님을 낙담시켰을 것이고 동시에 성령의 강림의 필요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제자들의 질문은 단어 하나하나 모두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하나님나라도, 회복에 대한 단어 역시 정치적이고 영토를 지닌 나라를 기대하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명사는 그들이 속한 민족적 나라, 이스라엘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었고, ‘이 때’라는 부사 역시 이스라엘의 회복이 즉각적으로 세워지고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될 것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꿈꾼 나라는 재물과 산해진미와 외적평화를 비롯해서 그 밖의 모든 좋은 것들이 차고 넘치는 땅의 나라였습니다. 제자들은 나라가 회복됨이 바로 이 때냐고 물음으로써 싸움도 시작하기 전에 품삯부터 챙기려는 속내를 드러내었습니다. 땅 끝까지 확장되어야 할 그리스도의 나라를 육신적 이스라엘에 한정시킴으로 커다란 오해 속에 빠져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실, 비참한 포로 상태 속에 놓인 사람들은 신음가운데서 장차 도래할 정치적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위로와 힘을 얻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도들 또한 메시야가 오시면 그러한 나라가 회복 될 것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주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보고 하나님나라에 대한 말씀과 성령하나님의 오심을 말씀하시자 그들의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나라는 고작 이스라엘에 속한 나라의 정치적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허약함과 비루한 시선과 이해를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나라의 본질과 범위, 도래에 대한 제자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아주셔야 했습니다. 이후의 사도행전의 기술들은 사실, 이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누가를 통해 기술된 답변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주님의 나라, 하나님나라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시고, 어떻게 성취되고 확장되어 가는지를 차례로 알려주십니다.
누가복음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지상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천상사역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주님의 통치는 교회를 통해서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여전히 사도들과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의 사역을 담고 있으며, 크게 세 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1-12장까지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예루살렘의 큰 박해 이후로는 13-20장까지 안디옥이 중심이 됩니다. 안디옥교회에서 파송된 사도바울의 세 차례의 선교여행을 담고 있으며, 21-28장 마지막까지는 로마를 향한 걸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정치화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복음에는 분명 정치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고, 어찌 보면 가장 전복적인 삶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땅에 속한 문제는 하나의 지엽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복음은 총체적이며 땅 끝을 향해 있습니다. 우주적이며 보편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나라의 복음에 대한 사명을 연약하고 부족한 교회에 주셨고, 교회의 연약함을 통해 주님의 주권과 강하심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주님의 통치는 지금도 몸 된 교회를 통해 약진중입니다. 아멘.
▣ 함께 나누기
1. 세상의 여느 종교들과 기독교의 본질적 차이에 대해 말해봅시다.
2. 주님은 왜 제자들에게 성령강림을 기다리라고 하셨나요?
3. 구속역사에 있어 오순절의 성령강림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는 무엇인가요?
4. 하나님나라의 통치는 어떤 기관을 통해서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