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지명과 전설, 전해오는 이야기를 알려주신 이왕휴 족조부님과 관심을 갖고 도움 주신 종친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비석거리 등 일부 지명은 현재 상황에 맞추어 새로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허씨, 양씨, 김씨가 살던 시대의 지명은 구전기록에 의해서 추가했습니다.
죽청리(竹靑里)의 지명
● 대포리(竹靑里)
대포리는 처음 광산이씨 자작일촌으로 한 마을이었으나 규모가 커지면서 위쪽을 웃대포리, 아랫쪽을 아랫대포리로 나누었다. 그러나 같은 일가였으므로 통상 대포리라 불렀다. 1789년 호구 총수에는 죽청리(竹靑里)로 기록이 되어 있다. 이는 죽청마을 주위에 시누대가 많이 자라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대포리는 큰 포구였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코부데기와 그 주변 바위에서 물고기를 낚았다고 전하며 우물에서 짠맛이 나 식수로 사용하지 못해 흐르는 물을 이용한 역사가 있다. 또한 화순군청 향토 사료 ‘마을의 형성’에서 상고시대 화순지역이 바다였을 증거로 바다와 관련된 마을과 지명들이 많음을 들고 있어 고증이 필요한 이름이다.
●아랫대포리(下竹靑)의 지명 *( )의 지명은 표준어 또는 지도상 기록임
⊙비봉포란형터 : 북쪽 아릿산 뫼봉재로 흘러내린 산새가 봉황이 알을 품고 나는 듯한 형국이라는 뜻
⊙화다산 : 봄이면 산과 주변에 진달래와 철쭉, 복숭아꽃이 피는 모습이 아름다워 부른 이름으로 마을에서는 진등이라고 불렀다.
⊙아홉 바위(고인돌) : 작은 뒤까끔(뒷동산)에서 서편 고샅 이경휴 가옥에 이르는 아홉 개의 바위를 봉의 알이라 부른다. 언젠가는 이곳에서 고위 관료 9명이 나올 것이라 하여 1955년에는 마을에 분교장을 세우는 등 주민들의 교육열이 대단히 높았다.
⊙잠두봉 : 안산(내산)의 봉우리가 동내에서 볼 때 누에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용봉 : 안산(내산)의 봉우리가 만수리 수동에서 볼 때 용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잿등 : 만괴정 정각이 있던 작은 동산의 꼭대기로 큰대밭에서 코부댁에에 이르는 능선을 말하며 서편 고샅 웃터에서 둔전들과 새들로 넘어가는 지름길이었다.
⊙두레등 : 코부데기와 큰뒤까끔(뒷동산)에서 두레박 줄을 잡고 물을 퍼서 화닥실로 넘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한다.
⊙건장굴(등) : 화다산 서쪽 저수지 아래로 이어지는 양씨 문중 산자락을 말한다.
⊙코부데기 : 거르목(거리목)에서 서편 고샅 가기 전 만괴정 정각으로 이어지는 골목 정상의 코처럼 나와 있는 바위를 이르며 옛날 낚시를 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화다실 : 진등(화다산) 동서쪽 골짜기를 이르는 말로 꽃이 만발한 산골짜기라는 뜻으로 지금은 화닥실이라고 부르는데 화다실에서 변형된 이름으로 추정한다.
⊙고라실(고래실) : 웃대포리에서 아랫대포리로 내려오는 골짜기 논에 항상 물이 고여 있어 붙여진 이름
⊙절골 : 아랫대포리 화닥실 저수지 위쪽 골짜기로 절이 있었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큰 뒤까끔 : 안 고샅 북쪽 끝 박씨 문중 벌이 있는 뒷동산
⊙작은 뒤까끔 : 서편 고샅 북쪽 끝으로 양씨제각(북애정) 위쪽 고인돌이 있는 작은 뒷동산
⊙거르목(거리목) : 마을 앞 삼거리로 인근 마을 사람들이 지나는 길목을 말함
⊙동편 고샅 : 고라실로 이어지는 골목길로 중간에 큰 뒤까금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안 고샅 : 세 고샅 중 가운데 골목으로 중간에서 큰 뒤까끔과 작은 뒤까끔으로 갈라진다. ⊙서편 고샅 : 서쪽 골목으로 중간에서 웃태(웃터)와 만괴정 정각길로 갈라진다.
⊙물방거리 : 현 죽청 표지석 근처 새들 농수로 건널목 위쪽에 물레방앗간이 있었던 삼거리
⊙비석거리 : 안산 잠두봉 아래 산자락을 돌아들어 오는 어귀의 비석 앞에서 1, 2구로 갈리는 삼거리
⊙종터 : 안산 중턱에 청순한 청상과수 어르신이 살던 오두막 옆에 종을 달았던 터를 말하는데 지금은 죽청광림교회가 세워져 종소리 대신 십자가가 불을 밝히고 있다.
⊙바위꿈터 : 승환 종친의 조부님 꿈에 아홉 바위를 잘 보존해야 아홉 고관이 나온다는 꿈을 꾸었다는 집터
⊙자산들 : 만수리 수동에서 잣들 다리로 이어지는 농로 남쪽에 위치한 들로 자산이라는 일본인에 의해 개간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잣들이라고 부른다.
⊙둔전들 : 이전에 군사들이 주둔하면서 경작하던 들이라는 이름으로 아랫대포리에서 건넌들로 나가는 도로 우측 들판을 이른다.
⊙새들 : 지석천 변을 개간하여 새로 만든 들이라는 뜻으로 모래땅이었으며 둔전들 남쪽 수로 양쪽 들판을 말하며 약 1m 정도 낮았으나 경지정리로 같은 평지가 되었다.
⊙거넌들(건넌들) : 지석천 건너에 있는 들로 죽청대교가 없던 옛날에는 매년 외나무다리를 만들어서 건넜다.
⊙둔전보 : 둔전들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보로 화순천 새보 위 수개재 밑에 있으며 바윗돌로 막았다.
⊙자산보 : 잣들(자산들)의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보로 둔전보와 새보 중간에 있다.
⊙새보 : 새들의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화순천 맨 아래에 만들었으며 시멘트로 만들었다.
⊙양림보 : 건넌들의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지석천에 만들었는데 수로 중간 소금쟁이(남정리 2구)에 설치한 정미소에서 물레방아를 돌렸으며 현재는 죽청대교 밑에 보를 막았던 돌이 남아있다.
⊙말 무덤 : 경지정리가 되지 않았던 80년대까지만 해도 둔전들 중간에 말 무덤이라 불렀던 길이와 높이가 약 5m, 2m 정도의 길쭉한 동산 2기가 있었는데 뾰족한 큰 바위가 하나씩 올려있는 모양이 멀리서 보면 말귀를 닮았다.
⊙주내 툼벙 : 현재 하수종말처리장 앞으로 삼각지 지점에 생긴 물웅덩이를 말하며 능주에서 흐르는 냇물(주내)이 고인 웅덩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거르묵시암(거리목샘) : 거리목 앞 회관 동편에 있는 우물로 동편 고샅 중 고라실을 제외한 주민의 유일한 공동 우물로 간이상수원으로 사용하다 현재는 터만 남음
⊙서당시암(샘) : 화닥실 골짜기 위쪽 샘으로 서편 고샅 웃태(윗터)에 살던 사람들의 식수원이었는데 양씨 제각에서 서당을 열었기 때문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한다.
⊙도내기시암(샘) : 지석천 준설과 제방 축조 전 하천부지 사이를 흐르는 작은 개울 중간 여울에서 온수가 솟아났는데 현재 건넌들 방향 죽청대교 밑 하천 약 10m 정도로 추정한다.
⊙여시뱀이 : 둔전들 서쪽 건장굴 산마루에 있는 논으로 여우가 넘나드는 길목의 논이라는 뜻
⊙복새뱀이 : 새들을 개간하기 전 둔전 언덕 아래 새들 위쪽에 있는 사이의 논
⊙황새뱀이 : 잣들(자산들)에 농지정리가 되기 전 논 모양이 황새 꼬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큰대밭 : 서편 고샅 웃태(웃터) 뒤까금에서 정각까지 이어지는 대나무 숲
⊙가장사리(가장자리) : 큰대밭 너머 화닥실 골짜기로 이어지는 동네 뒤의 가장자리 산자락이라는 뜻이다.
●웃대포리(上竹靑)의 지명 *( )의 지명은 표준어 또는 지도상 기록임
⊙아릿산 : 마을 북쪽에 있는 문중산으로 산줄기가 주봉에서 마을을 좌우로 감싸고 뻗어 내렸다.
⊙내산 : 안산이라 부르며 마을 동쪽에 있는 산으로 주봉에서 남쪽 들판을 향해 아랫대포리 물방거리에 이르고 있다.
⊙공동산 : 고려시대 양씨가 일가를 이루고 살았던 곳으로 현재 죽청저수지 서쪽 공동묘지가 있는 산
⊙사모자리 : 공동산과 동쪽으로 연결된 산으로 양 부자의 참모정이 있던 곳을 말한다.
⊙뒷산 : 웃대포리 뒤에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불렀다.
⊙종괘산 : 마을 북서쪽 원화리 뒤에 있는 산으로 우리 마을을 감싼 듯하고 '종괘산에서 뻗어 내린 박넝쿨이 마을을 덮었는데 열다섯 덩이의 탐스러운 박이 열려 있어서 고관이 나올 것이라는 종친의 예지몽에 나오는 산
⊙진등 : 장발재에서 죽청저수지로 내려온 산줄기로 낮고 긴 능선을 이루고 있다.
⊙큰품 : 죽청저수지 위쪽 진등 서편 산마루로 입도조를 비롯하여 윗대의 묘지를 품고 있는 문중산을 이름
⊙외등(외와등) : 뫼봉재 아래 죽청저수지 동편 산등으로 수개제 맞은편까지의 문중산을 말한다.
⊙뫼봉재 : 아릿산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주봉 다음으로 높은 능선 봉우리로 그 줄기가 서남쪽으로 마을을 감싸고 뻗어 내려 아랫대포리 잿등까지 이르고 있다.
⊙장발재 : 죽청저수지(죽청제)에서 주도리로 넘어가는 재로 누에의 발 모습을 닮아서 잠발재라는 설이 있으나 지도상 지명으로 볼 때 긴 능선으로 이루어진 재라는 뜻으로 추정한다.
⊙음장발재 : 장발재에서 주도리로 넘어가다가 서쪽으로 뻗은 응달진 능선을 말한다.
⊙송골재 : 장발재와 음장발재가 만나는 능선을 말한다.
⊙다래골재 : 송골재에서 신덕리로 넘어가는 높은 능선으로 아랫대포리 뒤까끔에서부터 이어지는 길과 만난다.
⊙잠발골(장발골) : 고려시대 김씨가 일가를 이루고 살았던 죽청저수지 위 장발재로 넘어가는 골짜기를 말한다.
⊙성적골 : 죽청 저수지 우측 골짜기에서 장발재로 가는 중간에 있는 마지막 골짜기를 말한다.
⊙웃굴(윗골) : 아랫대포리 윗샘에서 죽청저수지 아래까지의 골짜기를 말한다.
⊙도래솔밭 : 죽청저수지 위 왼쪽에 있는 네모진 밭 한가운데 묘지 둘레에 심어진 벌송이 있는 밭으로 지금은 묘지만 남아있다.
⊙바람불이 : 수게재를 내려가는 중간에서 둔전보로 가는 지름길을 말하며 화순천과 들판에서 몰아치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설정들 : 설정이라는 일본인에 의해 개간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둔전보 위쪽 들을 말한다.
⊙설정보 : 설정들의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보로 웃대포리에서 수게재를 넘어 서태리 앞 화순천에 바윗돌로 막았다.
⊙웃시암(샘), 아랫시암(샘) : 웃대포리에 2개의 샘이 있었는데 여름에는 주전자에 이슬이 맺힐 정도로 시원했으며 넘치는 물로 옷을 빠는 빨래터로도 이용하였다.
⊙허장자샘 : 고려시대 현 죽청저수지 위에 허씨가 일가를 이루고 살았는데 저수지 안에 허장자라고 하는 부자의 샘이 있었다고 전한다.
⊙참모정터 : 고려시대에 공동산에 양씨가 일가를 이루고 살았는데 바로 옆 사모자리에 정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박꿈터 : 서촌 고샅 병희 종친 증조부께서 고관이 나올 박넝쿨 꿈을 꾸었다는 집터
⊙거리목 : 현재 마을 회관 앞 삼거리를 말하며 다른 골목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뜻
⊙웃고샅 : 윗샘 옆으로 북쪽으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뒷산까지 연결된다.
⊙안고샅 : 회관 앞에서 북서쪽으로 갈라지는 길로 안 깊숙한 골목이라는 뜻
⊙서촌 고샅 : 거리목에서 논두렁을 타고 서쪽으로 이어지는 길로 아랫대포리와 경계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