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수그레한 이발사 / 최종호
내가 자주 가는 이발소는 걸어서 10분쯤 걸리는 곳에 있다. 작은 평의 서민 아파트 단지 상가 1층이다. 이곳을 찾은 지 꽤 오래되었다. 들어서면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다소 역겹다. 나이 70은 족히 넘었을 것 같은 늙수그레한 이발사 할아버지가 “어디 가실라우?”라고 투박하게 인사하는 것이 전부다. 이발하러 온 손님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분들이다. 젊은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도 늘 찾는 이유는 주변에 갈만한 이발소가 없다. 가격도 저렴해서 부담도 없다. 굳이 차를 타고 다른 동네까지 가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잘 깎아준다는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수년 전에 가까운 곳에 이발소가 생겨서 반가운 마음에 갔다가 엄청 후회한 적이 있다. 꼭 단발머리 모양으로 해 놓아 우스꽝스러웠다. 화가 많이 났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은 문을 닫았다. 그 후로는 다른 곳에 가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젊어서는 머리카락을 자르면 당연히 얼굴 면도까지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지 하지 않는다. 수염을 자르기 위해 뜨거운 물수건으로 턱을 감싸는 것도 싫지만, 피부가 약해서인지 하고 나면 그 자리가 많이 아파서다. 그래서 집에서도 거품을 바르고 쓱쓱 긁는 손 면도는 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 이발사도 “면도 안 하죠?”라고 한다. 머리 감겨주는 일은 주로 할머니 담당이다. 가끔 할아버지가 해 줄 때는 힘주어 감아 주기에 시원하기는 한데 투박하다. 이에 반해 할머니는 손길이 가볍고 부드러워서 좋다.
예전에는 “귀밑머리를 짧게 잘라 주세요.”라고 했는데 요즈음은 “윗머리는 성그니 쪼끔만 자르고 다른 곳은 적당히 잘라 주세요.”라고 한다. 주문대로 잘 해 주지 않아서다. 그래도 내 뒤에 손님이 없으면 단골이라 그런지 제법 공력을 들인다. 한마디로 좌우 균형을 맞추려고 가위질이 잦다. 하지만 달갑지만은 않다. 이쪽저쪽 자르면 머리카락이 자꾸 짧아지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렇게 신경을 써서 완성했더라도 늘 뭔가 조금 부족하다. 그래서 아쉬운 부분은 집에 와서 거울을 보며 다듬는다.
예전에는 머리숱이 많았다. 지금은 한 올 한 올을 소중히 여긴다. 반 곱슬머리라서 시기를 넘기면 앞머리가 물결처럼 구부러지기 시작한다. 단정하게 보이려면 그 전에 잘라야 한다.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생이었을 때는 단발머리에 가까울 만큼 길었던 적도 있다. 그 시절은 버스를 타고 가면 군데군데 경찰이 검문하고 수상하게 보이는 사람은 검문소로 데리고 갔다. 이제는 무용담처럼 옛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장발일 때는 나도 내리라고 해서 조사받은 경험이 두어 번 있다.
지금은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답답하다. 귀를 덮으면 때가 되었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주로 공휴일을 이용하는데 되도록 아침 일찍 서두른다. 그런데 한두 명은 꼭 먼저 와 있다. 그럴 때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하다. 오래된 텔레비전은 늘 켜져 있어도 원하지 않는 프로그램이라서 불편하다. 신문도 며칠이 지난 것이라서 보고 싶지 않다. 그곳을 찾는 고객이 고령인 데다 주인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두어 달 전에는 감염병이 우려되어 사람을 피하려고 마음먹고 일찍 갔다.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며 맞은편 아파트 앞에서 이발소를 주시하며 걸었다. 몇 바퀴를 도는 동안 보이지 않았는데 순간 이발소에 불이 켜져 있었다. 서둘러 들어갔더니 벌써 이발하려고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뒷모습을 보아하니 나이가 꽤 들어 보였다. 머리도 짧아 보였다. ‘영감탱이, 아직 이발할 때도 안 됐구만. 대게 할 일도 없나 보네!’ 내가 먼저 왔다고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순서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가끔 아파트 미용실을 이용해 보라고 권유하지만 내키지 않는다. 예전에 미용실에 간 적이 있는데, 머리카락을 단발머리 자르듯이 싹둑싹둑 자르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고 나서도 어색했다. 그 뒤로는 가지 않는다. 앉아 있으니 머리 감겨주는 기구를 가져와 고개를 젖히고 편안하게 감겨준 것은 좋았다. 분위기와 서비스가 이발소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미장원을 찾을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도 머리카락을 자를 때가 되면 한 번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두 아들은 머리를 자르려면 예약하고 미장원에 간다. 그곳에는 젊은 남자 미용사가 있단다. 젊은이들이 미장원을 찾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환경도 깨끗하고 친절하며 신세대 감각에 맞게 잘라 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분야든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소비자의 요구에 맞게 변화를 모색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하기야 젊은이들이 이런 직업을 선호하지 않으니 나이 든 이발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지. 갈만한 이발소도 찾기 어렵지만 점점 적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첫댓글 저는 어릴 때 아버지 따라 이발소(상춘이발소)에 다녔어요. 이발소 이름이랑 면도칼 가는 장면이 기억에 또렷합니다. 뒷목을 면도할 때 혹시 칼에 베일까 무서웠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지금은 남자도 다 미장원을 찾게되니 이발소는 추억의 장소가 돼 버렸어요.
나이 든 이발사님 가시고 나면 더 이상 이발관은 한국에서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미용실은 기업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영감탱이라뇨?
그런 말씀 쓰시는 거 되게 신선(?)하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단발머리 교장 선생님은 상상이 안 됩니다. 하하
미용실 이용해 보세요. 자주 가다 보면 익숙해지거든요.
누구나 같은 생각인가 봅니다. 저도 장흥에서 6년 동안 한 곳에만 갔습니다.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