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작동(鵲洞)?중리
0 조선 숙종 때인 1711년 이전부터 언양현 남면 작동리로 변함없이 계속되어 오는데, 당시에는 둔기, 상?하작, 중리, 산티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이었는데, 1914년 4월 1일에 둔기리를 설치하면서 중리, 산티, 채안골, 음달 등 4개 자연마을로 줄어들었으며, 1982년에 중리와 산현 두 행정리로 분리되었다.
0 작동이란 이름은 ‘까치가 날아왔다’, 또는 ‘까치가 우물에서 나왔다’하여 그렇게 부른다고도 하나, 유달리 까치가 많이 서식하고 있어 부른 이름인 것은 확실한 듯하다. 0 그리고, 중리는 작동리 중앙에 있어 붙은 이름으로서, 작동천을 중심으로 길게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 2km지점의 채안골은 산나물이 많이 난다고 붙은 이름(采安谷)이라데, 산이 마을을 차일처럼 둘러싸여 차양(遮陽)골이라 한다고도 한다.
0 채안골 남쪽으로 산골짜기에 점곡(粘谷)이 있는데, 조선말 철을 녹였던 유적으로 직경 2m가량의 야로(冶爐)가 있으며, 1970년 경 훈장인 노병찬이 서당을 건립하여 무료로 운영한 점이나 광복 후 마을 청년들이 신중환을 중심으로 야학을 차려 글을 가르쳤던 것은 다른 마을의 모범이 되는 전통이다. 조용한 산촌 마을로 살기가 어려워 많은 주민들이 도시로 떠났으나 최근 살기 좋은 마을로 알려져 이주해오는 사람이 늘어나고, 전통 찻짐 등이 생겨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고 있다.
0 1920년 초에 서당이 파옥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역사를 하여 동사를 지어 여기서 신중환 등이 밤마다 마을 사람들에게 한학, 한글, 산수 등 상당한 수준의 글공부를 가르쳐 마을 사람중에는 문맹자가 없었다고 한다. 신중환은 삼동초등학교 재직 시 교가를 작사하였고, 향산초등학교 교장을 거쳐 반천초등학교 교장 재임 시 순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