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에서 안내 방송을 들어본 기억을 되살려 보자.
“열차가 들어오고 있으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내용의 안내 방송인 것으로 기억된다. 최근에는 이 방송 중 일부를 고쳐서 방송하고 있다. 어느 부분이 잘못된 안내인지 얼른 떠오르는 구절이 있는가?
우리가 전자제품을 새로 구입하여 그 사용 설명서를 보고 그대로 따라 해서 그 기구를 훌륭히 작동 시켜본 기억이 있는가 ? 필자의 경우는 인내심이 부족한지 대부분의 경우 사용 설명서 읽기를 포기?하고 일단 스윗치를 올리고--전원을 연결하고-- 이것저것 작동 버턴을 눌러 봄으로써 그 작동 방법을 익히곤 했다.. 여러분은 그런 기억이 없는지....
자동차를 운전하여 길을 찾아가는데 초행길이라 옆에 길 안내자를 태우고 길 안내를 받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때 길 안내를 맡은 사람이 열심히 길 안내를 하는데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으니 어떤 경우일까? 나는 운전을 하느라고 열심히 앞을 보고 있는데 길안내 하는 사람은 “이리로” 혹은 “저리로” 등으로 안내를 했을 시 그 방향을 알 수 있을까 ?
우리가 기차표나 비행기 표를 “사러“ 역이나 터미널에 갔는데 표 ”사는“ 곳은 없고 표 ”“파는” 곳만 있는데도 우리는 아무런 주저 없이 표 ”파는” 곳에 가서 표를 “사서” 여행하곤 한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는가 ??
최근에 필자는 어학 공부용 휴대용 카셋트를 구입한 적이 있다. 그 간편함과 성능의 향상은 약 10여년 전에 구입 해 보았던 같은 용도의 카셋트와 비교했을 때 솔직히 감탄 할 정도로 성능이 훌륭했다. 기쁜 마음으로 구입하여 사용 설명서를 꺼내어 읽어 가는 순간 그 기쁜 마음은 간데 없어지고 점점 열을 받기 시작하고 종래는 그 사용 설명서를 집어 던지고 종래의 하던 대로 작동시키고 말았다. 기능과 품질은 월등히 향상되었으나 매뉴얼 작성 수준은 옛날과 같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났다.
우리 국산 컴퓨터가 그 가격에 비해서 성능이 우수하여 미국 시장을 석권하고 있을 때 그 가격이 국내 시판가와 비교 할 때 월등히 저렴하였다. 국내 소비자 단체에서 이러한 가격 차이에 대하여 항의하고 국내 시판 값을 내려 줄 것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가격을 내렸을까? 공급자는 그 가격을 내리지 못했고 그 이유에 대하여 설명을 했다.. 무슨 이유일까 ??
미국에서 병원 치료를 받고 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 들의 완벽에 가까운 의료 수준에 놀라고 탄복한다고 한다.. 어느 부분의 완벽함에 탄복하는 것일까 ? 그들의 의사 교육과정이나 우리의 것이 별 다르지 않을 것이고 의사 개개인의 실력이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며,, 최신 장비 ? 이는 더더구나 우리의 것이 이들에 못지 않을 것으로 예상 할 수 있는데--실로 우리의 의료 장비 기술이나 인력 수준은 결코 미국에 못지 않다. 무엇이 우리와 다른 것이 있는 것일까??.
상기한 모든 문제의 출발점으로 필자는 우리의 잘 못된 매뉴얼 문화?에 그 원인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런 잘못된 매뉴얼 문화 때문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며 선진국 진입에 한 장애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즉 우리는 너무나 “공급자 위주”의 그리고 서비스 “제공자” 위주의 매뉴얼 작성에 물들어 있다보니 부지 불식간에 그 피해에 대하여 무관심 해 진 것은 아닐까 ?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 손실에 대하여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지하철 안내 방송으로 돌아가 보자. 전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승객들이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야 안전 지대로 가는 방향이지만 --그래서 안전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서라고 방송을 하는 것이지만 -- 듣는 승객의 위치에서 보면 그 방향은 -- 안전선 밖은 -- 철로로 뛰어 들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런 안내 방송을 들으면서도 현명하게? 뒤로 물러서곤 한 것이다.
역에 가서 표를 살 때도 “사는 곳”이 아니고 서비스 제공자가 “파는 곳”으로 가서 표를 사는 것이다.. 이 안내문을 바꾸는데 --표 “파는 곳”에서 표 “사는 곳”으로--50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 만큼 우리는 공급자 위주의 매뉴얼 문화에 알게 모르게 익숙해 진 것으로 보지만 이것의 피해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온 것으로 본다.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길 안내를 할 때 운전자의 입장--즉 운전자는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앞만 주시하고 운전하지 조수석에 앉은 사람의 시선을 볼 수 없다--에서 길 안내를 해야 한다. 즉 직진 혹은 좌, 우 방향 등으로 말이다. 주로 운전 경험이 없는 사람의 길 안내를 받을 때 “이라로” 혹은 “저쪽으로“ 라는 안내를 받곤 황당할 때가 있다. 이것이 비단 길 안내에 국한 된 것일까?? 이러한 종류의 안내가 다른 부분에서도 이루어 질 때 혼란으로 야기된 불필요한 비용은 소비자 공급자 할 것 없이 모두가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되는 것이다.
미국에 수출하는 컴퓨터의 가격과 국내 시판 가격은 당연히 국내 시판 값이 월등히 저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미국 시판 가격이 오히려 더 저렴한 사실은 잘 못된 매뉴얼 문화 때문에 우리가 사회적 비용을 더 물어야 하는 좋은 예가 되는 것이니 ....
미국의 경우 컴퓨터를 소비자에게 인도해 주는 것으로 판매가 완료되지만--그 들의 매뉴얼 문화에 의해 작성된 사용 설명서를 보고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작동시키는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소비자에게 컴퓨터를 인도해 주는 것으로 판매 행위가 끝나지 않고 설치하여 작동까지 일일이 공급자가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하고---사용 설명서만으로는 도저히 작동 할 수 없으므로-- 일정 기간 사용 미숙에 따른 A/S 도 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며 따라서 미국 수출가격 보다 비싸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이러한 잘못된 매뉴얼 문화를 어디서부터 고쳐 나가야 할까?
해답은 간단한 곳에 있다. 한창 유행했던 노래 가사 중에 “입장 바꿔 생각해 봐“라는 구절을 알고 계시는가? 아마도 김건모라는 가수가 부른 ”핑계”라는 곡의 가사로 기억한다. 이 입장을 바꾸는 것 즉 공급자 위주에서 소비자 위주로, 서비스 제공자 입장이 아니고 서비스를 받는자 입장에서 모든 사고의 출발이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급자는 해당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는 자들이 대부분인데 그 들의 입장에서 사용 설명서를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지 못한 소비자가 그 내용을 잘 알아 들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조수석에 앉아 자기가 보이는 데로 길 안내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인 즉 운전자--소비자-가 그들이 가리키는 길을 찾아 갈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여기서 오는 혼란의 비용을 우리 사회 전체가 부담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그 비용이 얼마나 되리라 생각하는 가.
자.....이제 선진국에서--그렇다고 우리가 후진국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하드웨어에 관한한 우리는 분명히 선진국이다.-- 매뉴얼을 만드는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보자..
그들은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서 시판에 앞서 사용 설명서를 만드는 것은 우리와 같다. 하지만 거기에서 주인공은 항상 소비자가 주인공이다. 즉 그 제품에 대하여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고 문자 해독력도 평균에서 약간 모자라는 사람을 기준으로 작성되어 진다는 것이다.
매뉴얼 작성 과정에는 필히 언어학자, 심리학자의 자문 내지는 참여를 시키고 필요시 인류학자까지 참여한다. 그 제품에 대한 전문가는 필요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족하고 --절대 그 전문가가 주인공이 아니다. 이점이 우리와 다른 점이다--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평범한 일반 소비자이고 이 주인공이 쉽게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매뉴얼을 몇번이고 재 작성한다.
매뉴얼은 가능한 일반 소비자가 접근하기 쉽도록 평이한 문체--소설이나 수필의 문체--를 사용하고--여기에 언어학자의 적절한 참여가 있다. 실지로 전철 안내 방송에 처음 문제를 제기한 것도 국내 언어학자--국어 학자였다.--, 심리적인 전이와 동화의 과정을 거쳐--이 과정에 심리학자가 참여하며, 필요시 인류학자의 도움도 받는다-- 충분히 심리적으로 준비된 상태에서 정보 전달--사용 설명,-이 과정에서야 그 제품에 대한 전문가가 참여한다-- 이 이루어진다.
상기 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간 신문의 4단짜리 만화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4단 만화의 표현 과정을 보면 4단계 즉 기,승,전,결의 과정을 거쳐 만화작가의 뜻을 독자에게 충분히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의 매뉴얼 문화는 이 4단계 중에 앞의 2단계를 생략한 체 바로 3단계부터 작성되는 경우가 그 대부분인 바 그 의사 전달이 충분히 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를 알게 모르게 우리가 고스란히 물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결코 후진국이 아니며 또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사람은 우리 국내만이 아니고 세계인을 다 상대 해야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최근에야 자연 과학관련 기초 학문에 대하여 투자를 하고 이를 중요시하였지만 상대적으로 인문, 사회계통의 기초 학문은 등한시 한 결과가 바로 이러한 매뉴얼 문화의 낙후로 귀결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대학 인문 계통의 학과가 아직도 인기가 없다. 왜냐하면 졸업후 취직할 곳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것도 아직 우리의 매뉴얼 문화 수준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는 자연 과학의 낙후로 인한 것에 못지 않을 것이며 그 범위도 광범위 할 것으로 본다.
앞서 말한 미국의 의료 수준이 그 하드웨어 적인 면은 우리 것과 별로 차이가 없는데 소프트웨어 적인 면--증세별 처치 방법 내지 대응 치료 방법 등 환자와 환자 가족을 위한 일종의 매뉴얼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수준으로 잘 되어 있다고 한다. 환자나 그 가족은 그 매뉴얼에 따라 하라는 대로만 하면 완벽한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본다고 한다.
이러한 것에 미국 의료기술의 선진성이 돋보인다고 하며 의사나 간호사는 그 남는 시간에 더 한층 높은 질의 의료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와 미국의 의료 수준 차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저차원의 의료 서비스에 할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료 장비나 전문인력 수준은 하등 못할 것이 없는데 단순히 매뉴얼의 낙후성 때문에 말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예의를 잘 지키는 민족으로 알려져 왔다. 예의란 것이 남을 편하게 하고 나보다 남을 우선 시하는 전통 하에서 발전 할 수 있는 것인데 우리의 이러한 좋은 전통이 일제 36년과 그 이후의 개발 년대의 공급위주의 사고방식 때문에 많이 후퇴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도 이러한 공급자 위주의 문화에서 소비자 위주의 문화로 변화 되어야만 한다고 인지하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상기한 “표사는곳”으로 표기를 바꾸고 지하철 안내 방송도 달라진 것이 그 한 예일 것이나 아직도 곳곳에는 그렇지 못한 부분이 더 많다.
우선 우리 가까이 있는 매뉴얼--그 것의 이름이 무엇이던 간에--업무 안내서일 경우도 있고, 사용 설명서, 길 안내, 관광 놀이 안내 등 무수히 많다--에 대하여 다시 한번 뜯어보고 살펴보자. 진정 그 것이 사용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알 수 있게끔 작성되어 진 것일까 하고 말이다.
우리의 모든 매뉴얼이 사용자의 입장에서 완벽하게 작성되어지고 또 그것을 충분히 각 분야에서 이용되어 질 때, 우리 사회의 전체 사회적 비용은 크게 절감 될 것이며 이를 통하여 우리 사회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