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요한복은 17장 17절
오늘 저녁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한 가지 일을 더 보려고 하는데, 보기에 앞서 먼저 이미 본 것들을 복습하도록 하자 우리는 우리의 체험이 계속 실패하는 것임을 보았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위해 정하신 생명이 우리의 체험을 훨씬 초월한 것임을 보았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기는 생명이 그리스도임을 보았고, 억누르고 발버둥치고 기도하는 것과 같은 사람의 방법은 쓸데없다는 것을 보았다. 넷째로 우리를 이기는 생명의 성질에 다섯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중에서 이 생명의 성질은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바꾼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보았다. 다섯째로 우리는 어떻게 이 생명에 들어가는지를 보았다.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조건은 (1) 항복, 곧 손을 놓는 것이요, (2) 믿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혜가 우리에게 족하다고 말씀하셨으면 족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으면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인 것이요 그리스도가 우리의 거룩함이라고 말씀하셨으면 그리스도가 우리의 거룩함인 것이다.
여섯째로 우리는 손을 놓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았다. 일곱 번째로 우리는 믿음이란 다만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것을 실체화하는 것임을 보았다. 여덟 번째로 우리가 믿었지만 이 믿음이 또한 시험을 거쳐야 함을 보았다. 오늘 저녁에는 이어서 이기는 생명과 관련된 또 다른 문제, 곧 어떻게 해야 자랄 수 있는가에 관하여 다룰 것이다. 앞의 요점들을 들은 후 여러분은 틀림없이 "이기는 생명을 체험한 후 지금, 우리의 생명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는데 여기서 더 전진할 필요는 없습니까?" 라고 물을 것이다. 오늘 여기서 내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 이기는 생명을 체험한 후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기는 생명을 체험한 후 매일 마땅히 해야 할 일들
1. 얽매는 죄들을 이김
많은 그리스도인은 이기는 생명을 체험했고 진정으로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승리가 되셨다. 그러나 어떻게 매일의 생활을 유지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금방 넘어진다. 첫째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긴 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유일한 죄에서 구원해주시기를 바라고, 기대하며 소망한다. 유일한 죄는 계속 그를 괴롭히고 방해하던 죄이다. 이기는 생명을 체험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여전히 자신의 유일한 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주님은 이미 당신을 구원하셨고 이미 당신의 이기는 생명이 되셨다. 당신은 주님께 "주님, 그리스도의 승리가 나의 승리임을 인해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주님, 그리스도의 거룩함이 나의 거룩함을 인해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대신하여 당신 안에 살아 계신다. 전에는 성질을 잘 내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성질이 사라졌다. 혹 의심이 많던 사람이어서 의심 때문에 자주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혹 말이 많은 사람이어서 말 많은 것 때문에 자주 어려웠을 것이다. 혹 어떤 사람은 앞에서 말한 여덟 가지 죄 중에 한 가지 때문에 계속 괴로움을 당했을 것이다. 이제 당신은 하나님께서 이런 죄들을 쫓아내 주시기를 기대할 수 있다. 당신은 이김을 체험한 후에는 응당 하나님께 "주님, 주님께서 이러한 죄들을 내 뒤로 던져버리게 해 주시기를 앙망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 외에 많은 죄들을 처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 당신이 누구에게 죄를 범했거나 형제에게 죄를 범했다면 당신은 그에게 잘못을 시인해야 한다. 과거에는 잘못을 시인할 힘이 없었지만 지금은 자백할 힘이 있을 것이다. 또한 과거에 해방 받지 못한 죄가 있다 하자. 지금 그리스도가 당신 안에 살아 계심으로 당신은 해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형제자매들은 이기는 생명을 얻은 후에 유일한 죄 곧 늘 반복되며 당신을 얽매이게 하는 그 죄를 제해 주시도록 주님을 앙망해야 한다. 만일 유일한 죄를 계속 당신 몸에 머물도록 한다면 형제자매들은 당신이 이미 승리했음을 믿지 못할 뿐 아니라 당신도 자신의 승리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이기는 생명을 얻기 전 당신이 싸울 힘이 없었다. 지금 이기는 생명이 있으므로 당신은 싸울 힘이 있다. 지금 당신에게 믿음과 힘이 있기 때문에 당신은 가서 싸울 수 있다.
어느 날 연대에 있는 몇몇 외국인 자매들이 내게 와서 이긴 후에도 여전히 싸워야 하는가에 대해 물었다. 나는 자매들에게, "당신은 싸워서 이깁니까? 아니면 이겼으므로 가서 싸웁니까?" 하고 물었다. 싸워서 이기려 한다면 영원히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이겼기 때문에 싸우는 것은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싸움으로서 승리에 이르는 것인가, 아니면 이긴 후에 나가서 싸우는 것인가에 있다. 많은 사람은 이기려고 발버둥치며 힘을 쓰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그 이유는 승리란 당신이 힘을 써서 얻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얻는 것이요 완전히 하나님게서 당신께 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주님이 우리의 거룩함, 완전함, 승리이신 것을 믿었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것들은 다 사라져야 한다.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것은 다 뽑힐 것이다.
내가 어떤 형제에게 이런 비유를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이 어떤 땅을 샀는데 땅을 판 사람이 당신에게 땅의 길이와 넓이가 쓰여진 꼐약서를 주었다 합시다. 당신이 그 땅을 인수하려 할 때 그 땅에 오두막을 짓고 그 안에 살겠다는 몇 깡패를 만났다면 어떻게 하겟습니까? 당신은 계약서에 따라 그 깡패를 쫓아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죄와 싸우는 것도 이와 동일하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위를 의지한다. 성경에서 우리의 씨름을 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으로 싸워야 함을 말했다. 성경은 우리가 원수를 이겨야 한다고 말했지만 믿음으로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성경이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의 방패로 마귀를 대적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에게 묻겠다. 당신이 특이한 의심이나 말 많음이나 얽매는 특별한 죄가 그리스도의 생명에서 나온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런 것들은 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당신은 이사 가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먼저 대적하고 후에 승리하려 한다면 분명히 실패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자아의 힘으로 싸워서 이기려고 한다면 분명히 실패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승리한 후에 대적하러 가고 승리한 후에 싸우러 간다면 당신은 계속 승리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문제는 당신이 싸워서 이기려 하는가 아니면 승리 안에서 싸우는가에 있다. 승리 안에서 싸운다는 것은, "주님, 당신께서 이미 승리하셨음을 인해 당신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에 나는 내 몸에 있는 모든 죄들을 쫓아낼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긴 후에 이렇게 말해야 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생명이시므로 이러한 죄들은 더 이상 내 안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다 사라져야 합니다." 어떠한 얽매는 죄라 할지라도 즉시 제거될 수 있다. 이것이 곧 싸우는 것이다. 당신을 계속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죄는 당신이 믿을 때 단번에 나가게 된다. 이것이 승리이다.
2. 자신의 할 수 없음을 시인하고 그리스도를 모든 것으로 취함
둘째로, 당신의 매일의 생활은 마땅히 이김을 통과한 첫날과 같아야 한다. 매일 아침 일찍 당신은 하나님께 "하나님 당신 앞에서 나는 여전히 할 수 없고 약합니다. 여전히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주여, 당신이 오늘도 나의 생명이요 나의 거룩함이요 나의 승리이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 당신이 나를 통해 당신의 생명을 살아 나타내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모든 것이 다 당신의 은혜요 모든 것을 당신의 아들이 성취하셨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동시에 여러분이 주의해야 할 몇 가지 일이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어떤 형제들은 이 말이 이기는 체험을 한 후에는 우리가 다시 죄를 짓지 않는다는 의미냐고 물었다. 나의 대답은 이렇다.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그러한 체험을 갖는 단계에 이르겠지만 그 동안에 여전히 우리는 범죄할 가능성이 있다.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준 생활은 어떠한 생활인가?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믿음의 생활임을 보여 준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고 살리라."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는 것은 초기의 체험이다. 의인은 또한 믿음으로 말마암아 사는데 이것은 전진된 체험이다.
우리 앞에는 두 세계가 있는데 물질적인 세계요 또 하나는 영적인 세게이다. 우리가 오관을 사용할 때 우리는 물질적인 세계안에 살고 있다. 그러나 믿음을 사용할 때 우리는 영적인 세계 안에 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 당신은 여전히 죄인이요 여전히 더럽고 교만하며 보통 세상 사람보다 나은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믿음을 사용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당신 자신을 바라볼 때 당신의 성질과 강팍함이 모두 사라진 것을 발견할 것이다. 오늘날 문제는 이 두 세계가 있으므로 당신이 매일 선택해야 하는 데 있다. 우리 사람은 다 이성과 감정과 의지가 있다. 만일 당신이 오관을 의지해 물질적인 세계 안에 살고 있다면 물질적인 세게를 실체화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세계 안에 살고 있다면 영적인 세계를 실체화할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당신의 느낌을 사용할 때 당신은 즉시 아담 안에 살게 되고, 당신의 믿음을 사용할 때 당신은 즉시 그리스도 안에 살게 된다. 당신은 이 둘 사이에 있다. 당신이 느낌을 의지하면 아담안에 살게 되고, 믿음을 의지하면 그리스도 안에 살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살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당신의 체험이 된다.
성경에서는 죄가 근절될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믿는 이가 이기는 생활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의 역사와 공급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그리스도를 나타낼 수 있으며 매일 넉넉히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느낌 안에 살거나 느낌에 의해 살 때 우리는 즉시 실패한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는 매일 매일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럴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실체화할 수 있다.
실패한 후 즉시 피를 의지해 회복함
불행히도 실패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은 즉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주님의 보혈 아래 당신의 죄를 두어야 한다. 그런 다음 당신은 즉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당신의 아들이 여전히 나의 생명이요 나의 거룩이심을 당신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당신의 아들이 내 안에서 이기는 생명을 살아 나타낼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오 분이나 한 시간을 기다릴 필요 없이 몇 초만에도 회복될 수 있다.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깨끗케 하셨지만 우리는 좀더 괴로워하고 형벌을 받아야 죄가 더 깨끗이 씻어진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 사서 고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여전히 느낌을 의지하여 사는 것이요 아담 안에서 몇 시간 더 사는 것에 불괴하다.
혹 어떤 사람은 이긴 후에도 실패를 면할 수 없고 여전히 보혈의 씻음이 필요하다면 이것은 이기지 않을 때와 똑같지 않느냐고 물을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이 두 가지는 크게 다르다. 이기기 전의 당신의 생활은 다 실패한 생활이다. 당신은 우연히 승리할 뿐 계속 실패하고 실패한다. 그러나 승리한 후의 당신의 생활은 다 승리한 생활이다. 당신은 우연히 실패하며 승리하고 계속 승리한다. 오, 엄청난 차이이다! 과거에 당신은 실패가 많고 승리가 적었지만 지금은 실패가 적고 승리가 많다. 과거 당신의 실패는 일률적이다. 당신의 화내는 것도 여전하고 생각이 더러운 것도 여전하며 강팍하고 속이 좁은 것도 여전하고 당신의 질투도 여전하다. 매번 당신의 실패가 똑같고 승리는 많지 않다. 당신은 당신의 성질에 계속 묶이고 당신의 교만에 묶인다. 또 당신의 질투에 묶이고 당신의 거짓에 묶인다. 당신이 승리를 체험한 후에도 어쩌다 실패할 수가 있지만, 그런 죄를 계속하여 반복하지는 않는다. 죄를 범할지라도 이전과는 다른 것이다.
이기기 전에 당신은 실패할 때 속수무책이고 어떻게 회복할 줄을 모르며 하나님의 교통안에 돌아올 줄도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의 빛 비춤을 얻는지도 모른다. 마치 천 개의 계단을 내려온 다음에 어떻게 다시 올라가야 할지를 모르는 것 같이 된다. 당신이 승리를 체험한 후에 어쩌다 실패한다면 몇 초 후 즉시 회복될 수 있다. 당신이 즉시 당신의 죄를 자백하면 즉시 씻음을 얻게 된다. 또한 당신은 즉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승리를 다시 살아 나타내실 것이다. 이것이 이긴 사람과 이기지 않은 사람의 큰 차이점이다.
매일 그리스도와 정상적인 관계를 가져야 함
나는 형제자매들이 요한1서 5장 12절을 주의하기 바란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여러분은 이것을 보았는가? 이기는 생명은 어떻게 주어졌는가?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졌다. 아들 없이는 이기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은 단지 처방전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의사까지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지 생명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아들 안에서 생명을 주신 것이다. 우리가 이기는 생명을 얻으려 한다면 생명을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해야 한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을 때 우리에게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실하심과 약속들에 대해 의심할 때 즉시 문제가 생긴다. 하나님은 다만 인내와 온유와 겸손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 안에서 인내와 온유와 겸손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그의 아들과 문제가 있을 때 즉시 승리를 잃게 되므로 우리는 매일 그리스도와 정상적인 관계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매일 주님께 "주여, 당신은 여전히 나의 머리시요 나는 여전히 당신의 지체입니다. 주여, 당신은 여전히 나의 생명과 거룩함이십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당신의 눈이 당신 자신을 볼 때 이것들은 다 사라진다. 만일 당신의 눈으로 그리스도를 본다면 이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 된다. 믿음은 바로 이러하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떠나서 거룩함과 이김과 인내와 겸손을 붙잡을 수 없다. 당신에게 그리스도가 있을 때 거룩함과 이김과 인내와 겸손이 있게 된다. 중국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청산(靑山)을 남겨 두면 땔나무 걱정은 없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땔감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산을 주신다. 산이 있을 때 나무는 자연히 있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내 안에 살아 계심을 믿어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실패하는 원인은 느낌을 좇아 살고 믿음을 좇아 살지 않는 데 있다.
우리가 실패하는 이유는 과거의 체험이 헛되고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승리를 체험한 후에 실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승리를 체험하기 전에는 마땅히 실패해야 했다.심지어 비참하게 실패해야 했다. 그러나 이긴 후에 실패는 불필요한 것이다. 실패한다 하더라도 어쩌다 일어난 일이다. 아담 안에서 당신은 자신이 차갑고 강팍하고 더럽다고 느끼는데 사실이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자신에게 거룩함과 승리가 있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가 말한 것을 우리는 갖게 된다.
진리를 보고 은혜를 받음으로 성장함
마지막으로 참된 성장이 무엇인지를 보기로 한다. 우리가 이긴 후에는 마땅히 성장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교만하여져서 자신이 이기고 거룩하여졌으므로 모든 것이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이기고 거룩하여진 것은 사실이지만 당신이 관문을 통과한 것은 단지 하나의 문을 통과한 것뿐임을 알아야 한다. 입문(入門)하지 않고는 길을 갈 수 없다. 이긴 후에야 진보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사람에게 자유 의지와 이성과 느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죄들만을 이길 수 있을 뿐 우리가 알지 못한 죄들은 이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장은 필수적인 것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죄에서, 예를 들어 성질이 아주 급한 죄가 있다 하자. 당신이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길 때 당신의 인내는 더 이상 진보할 것이 없고 당신의 인내는 극점에 이른 것이다. 왜 그런가? 이는 그 인내가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인내는 삼십삼 년 반 동안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의 그분의 인내와 똑같은 것이다. 당신의 인내가 거짓이라면 문제는 다르겠지만 만일 당신의 인내가 그리스도의 인내라면 이 인내는 더 이상 진보할 필요가 없는 인내이다. 왜냐하면 그 인내가 바로 그리스도의 인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죄들만을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모르는 죄들이 있고 이러한 죄들에 대해서는 승리해 본적이 없다. 이때문에 요한복음 17장 17절의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는 말씀이 필요하다.
한 면에서 고린도전서 1장 30절에서는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 곧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원문 참조)라고 말하고, 또 한 면에서 요한복음 17장 17절에서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말한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요 우리의 거룩함의 분량을 증가시키는 것은 진리이다. 성경 전체를 아는 형제가 있는가? 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다 점진적으로 성경을 깨닫는다. 진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지적한다. 예를 들어, 이 년 전에는 어떤 일들이 죄인줄 몰랐으나 지금은 죄로 여긴다. 과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여겼던 것을 지금은 죄로 볼 것이다.
무슨 이유로 과거와 현재가 이렇게 달라졌는가? 진리를 많이 알수록 죄를 더 많이 알게 되고 죄를 많이 알게 될수록 그리스도를 더욱더 생명으로 취하게 된다. 분량이 클수록 그리스도가 더욱 필요하다. 하루하루가 거듭될수록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말씀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무엇이 죄인가를 알게 된다. 우리가 죄를 많이 알게 될수록 하나님께 "하나님, 나로 이 일에서 그리스도가 나의 승리요 나의 공급임을 보게 하소서."라고 말하게 된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이여, 우리가 진보하기 위해서는 진리의 빛 비춤이 부족해서는 안 된다. 진리의 빛 비춤은 당신이 잘못한 것이 얼마인가를 드러낼 것이고 당신이 얼마나 약한가를 드러낼 것이다. 당신의 상태를 드러낼 때 당신의 분량은 점점 커진다. 당신의 분량이 커질수록 당신은 더 많이 소화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베드로후서 3장 18절의 말씀을 매우 좋아한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이 구절은 성경에서 자람에 관하여 언급한 몇 구절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은혜 안에서 자라간다. 은혜 안에서 자라간다는것은 무엇인가? 은혜 안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안에서 자라는 것이다.
은혜란 무엇인가? 은혜는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일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은혜 안에서 자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거듭 더 많은 역사를 하신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벌서 다섯 가지 일을 하셨다고 하자. 하지만 아직 세 가지를 더 하셔야 한다고 하자. 나의 필요가 더 많아졌으므로 더욱 하나님께서 날 대신하여 하실 필요가 있다. 은혜와 진리의 관계는 이러하다. 진리는 우리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은혜는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이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진리가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은혜가 있다. 구약시대에 사람이 계속 실패한 원인은 그들에게 진리만 있고 은혜가 없는 데 있다. 그들에게 율법이 있지만 그들은 율법을 지킬 능력이 없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임"(요 1:17)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한다! 우리에게 진리를 보여 주시고 은혜를 공급하시는 주님이 계심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자! 할렐루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 나는 영원히 구걸하는 자요 동냥하는 자로서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당신께 나아갈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내가 매일 그분께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월요일에도 그분께 나아가고 내일 화요일에도 그분께 나아갈 수 있다. 당신이 이렇게 하나님을 귀찮게 하고 하나님께 간구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은혜 안에서 자랐다고 말할 것이다. 거듭 당신이 당신의 실패를 보면 볼수록 당신은 하나님께 더욱더 요구할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것이 더욱더 필요로 하며, "주여, 나는 여전히 방법이 없습니다. 나는 여전히 당신의 책임지심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당신이 자신의 잘못을 발견했을 때 제일 먼저 이렇게 말해야 한다."하나님, 나의 죄를 시인해야 합니다. (이때 당신은 죄를 정확히 명명하며 죄를 죄로 정해야 한다) 하나님, 나는 더 이상 자신을 개선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또 하나의 공과를 배우게 됐고 나는 영원히 개선될 수 없으므로 고치려고 하지도 않겠습니다. 하나님, 나의 약함을 한번 더 자랑하게 하심을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당신의 능하심을 인하여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당신이 내 대신 나의 약함을 제하실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의 약함을 자랑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당신을 덮게 된다. 당신이 할 수 없다고 말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신다. 이렇게 할 때 당신은 계속 진보할 수 있다.
오늘 저녁 나는 몇 가지 예를 들어 성장이 무엇인가를 보고자 한다. 우리가 죄인지 모르는 많은 죄들이 있다. 우리가 죄인 줄 알 때 하나님께 "하나님, 내게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 그리스도가 내 대신 그분의 생활을 살아 나타내게 하소서! 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이런 일을 간증할 수있는데, 어떤 사람이 나를 부당하게 대했기 때문에 몇 마디 거친 말을 했다. 나는거친 말을 하는 것이 합당치 않은 것임을 알았지만, 그가 많은 과실을 범하고도 내게 잘못을 빌지 않았는데 조금밖에 범하지 않은 내가 그에게 잘못을 빌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하나님은 나더러 그렇게 할 것을 요구했다. 그 사람이 내게 죄를 범한 것에 대하여 그를 미워하지 않고 더욱 그를 용서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도리어 죄를 자백해야 했다. 나는 내 자신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마태복음 5장에서 말한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참으로 이룰 수 없었다.
나는 만일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개나 고양이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거칠게 말했던 것을 인정하는 편지를 썼지만, 그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편지를 보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될 때 다시 쓰기로 했다.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았고 또 용서했지만 그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 오직 하나님만 그를 사랑하실 수 있고 나는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것이 진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당신이 사랑할 수 없는 것은 죄이다. 나는 승리하고자 했고 또 믿음으로 싸우기 원했다. 나는 하나님께, "당신이 나로 그를 사랑하게 하실 수 없다면 나는 그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내가 참으로 나는 할 수 없고 하나님게서 하실 수 있다고 진심으로 말했을 때
나는 그를 사랑할 수 있었다. 한 면으로 진리는 당신이 마땅히 사랑해야 함을 말하고, 또 한 면으로 은혜는 당신이 사랑할 수 있도록 은혜를 공급해 준다. 이러한 다루심을 체험하는 데에는 때로는 몇 초면 되지만 때로는 며칠이 필요하다.
바로란 자매에게는 그녀를 항상 어렵게 만드는 한 동역자가 있었는데, 그 동역자는 항상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면서 그녀에게 고통을 주었다. 바 자매가 어떤 일이 있다고 할 때 그녀는 없다고 말하고 바 자매가 어떤 일이 없다고 할 대 그녀는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언제나 사람 들에게 바 자매를 솔직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게 하려고 했다. 바 자매는 그녀에 대해 참았고 그녀를 다룰 방법이 없었다. 바 자매는 그녀와 만날 때마다 항상 친근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녀의 어깨를 치거나 손을 잡았다. 겉으로는 아무 일이 없는 것같이 말하지만 속으로는 항상 문제가 있다. 어느 날 바 자매는 베드로 1장 22절에서 "거짓이 없이....마음으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는 말씀을 읽고서 "나더러 그녀를 사랑하라고? 그럴 수 없다." 고 생각했다. 그녀는 하나님께 "나는 이 일에 있어서 이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이 일이 죄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뜨겁게 형제를 사랑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죄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이런 죄를 제하여 주시도록 구했다. 바 자매가 그녀를 미워하지 않는 것도 힘을 들여야 하는데 더욱 그녀를 사랑해야 한다니. 그녀를 사랑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바 자매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최선을 다해 그녀를 사랑하려고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웠다. 어느 날 문을 잠그고 하나님께, "하나님, 내가 그녀를 사랑해야 하나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나로 그녀를 사랑하게 만드시기 전에는 나가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바 자매는 세 시간 가량 기도했다. 결국에는 주님의 사랑이 그녀에게 충만하여 그녀는 자기 동역자를 위하여 죽을 수도 있게 되었다. 바 자매는 사랑할 뿐 아니라 뜨겁게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를 사랑하므로 바 자매는 그녀를 위하여 밤을 세워가며 중보 기도를 했다. 이튿날 일과를 마치고 또 그녀를 위하여 기도했다. 결국 바 자매는 승리의 체험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능력의 체험도 갖게 되었다. 이것이 곧 진리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요 은혜 안에서 자라는 것이다. 진리는 당신에게 죄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은혜는 당신으로 이 죄를 이길 수 있도록 능력을 공급한다. 당신이 죄가 무엇인지를 찾아낸 후에 그냥 지나가지 않고 이긴다면 당신은 매일 매일 은혜 안에서 자라게 된다.
영국에서 온 세 자매가 있었는데 남을 두 자매는 독신주의자들이었다. 그 세 사람이 중국 내지(內地)에서 주님의 일을 했다. 그런데 약혼자가 종종 편지로 그녀를 안위했다. 그러나 얼마가 지나면 또 괴로워했다. 어느 날 그녀는 방안에서 외롭다고 느끼면 또 울어 버렸다. 다른 두 자매는 그녀에게 "왜 외롭다고 느끼니? 외롭다고 느껴야 할 사람은 우리 둘이야."라고 말했다. 이 말을 마친 후 그 두 자매도 역시 외롭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 자매들은 내지에서 사역하면서 좋은 것을 먹을 수도 없고 좋은 것을 입을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오, 죄는 참으로 전염성이 있다. 그들이 이렇게 괴로워할 때 주님께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마28:20)고 하신 말씀과 시편 16편 11절의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그들은 "주여,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죄입니다. 당신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외롭다고 말하는 것은 죄입니다. 당신은 당신 앞에 기쁨이 충만하고 당신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외롭다고 말하는 것은 죄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주여, 우리가 외롭다고 말하는 것은 죄입니다."라고 기도했다. 그들이 이렇게 처리할 때 외로움이 다시는 그들을 찾아오지 않았다. 할렐루야, 외로움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는 매일 새로운 죄와 실패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매일 새로운 은혜의 공급이 있다. "우리가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 1:16) 우리가 한 번 은혜를 얻을 뿐 아니라 더욱 얻어야 한다.
인도에서 사역하는 한 자매가 있었다. 그녀는 염려가 많았는데 어느 날 4장 6절의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는 말씀을 읽고서 염려하는 것, 감사하지 않는 것이 다 죄인 것을 보았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가 무엇이 죄인가를 볼 때 우리는 응당 하나님 앞에서, 한 면으로 이 죄를 자백하면서 또 한 면으로 주님이 당신 안에 살아 계심을 시인해야 한다. 이것이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체험하는 승리는 그 본질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이다. 즉 본질은 더 이상 진보할 수 없는 절정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김의 범위는 계속 확장한다. 각 사람이 얻은 바 빛 비춤은 각각 다르다. 빛 비춤을 얻은 사람은 많이 진보하고 빛 비춤을 적게 얻은 사람은 적게 진보한다. 어떤 것이 죄인가를 많이 알수록 사람은 하나님의 공급을 더욱 많이 받게 된다. 어떤 것이 죄인가를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공급도 적게 받는다. 형제자매들은 진리가 당신과 어떤 관계가 있고 은혜가 당신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여러분이 매일 하나님 앞에서, "주여,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주여, 하려고 하지도 앟습니다. 주여, 내가 할 수 없는 것으로 인해 당신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여러분은 매일 하나님께서 빛비춤과 은혜를 주시도록 구해야 한다. 어쩌다 실패한다면 당신은 일 분이나 일 초 사이에 즉시 회복될 수 있다. 우리가 매일 이렇게 행한다면 누구도 자기가 어느 단계에까지 진보하게 될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행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할렐루야, 이것은 완전한 구원이다! 할렐루야, 그분은 앞으로 진보하도록 계속 우리를 인도하신다. 할렐루야, 사탄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할렐루야, 그리스도는 이미 승리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