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함으로 피어난 갈꽃
바람, 돌, 여자로 지칭되었던 제주, 그 척박함으로 인해 모진 땅이라 칭하던 곳, 그곳의 풍광을 담아낸 갈색의 절박함이여!
듬성듬성 이은 이엉들을 촘촘히 묶은 지붕아래 돌로 쌓은 담벼락으로 이루어진 초가는 전형적인 제주의 집이다. 마구간과 주거공간이 함께하는 초가집에서 노화가는 그림을 그린다. 말은 모델을 서는 듯 고개를 숙이고 화가 앞에 순응의 자세를 하고 있다. 그림을 음미하는 것인가. 지붕너머 여전히 갈색 빛 수평선은 담 아래까지 너울거린다. 오늘은 바람이 자고 작은 배가 유유히 떠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로움으로 붓을 잡은 노화가는 무념의 경지로 그림을 그린다. 주인 옆에서 사나운 자연을 꿋꿋이 견디는 조랑말의 거친 갈기와 튼튼한 다리는 그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다.
변시지(邊時志 1926~)의 <더불어>라는 작품은 그의 고향 제주도생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다른 그림에 비해 바람이 잦아들고 유난히 한가롭고 평온한 화면이지만 거친 갈필의 특성은 그대로 드러낸다. 젖은 황토빛깔은 감물이 배여 나온 듯 옛 제주민의 갈옷을 닮았다. 어쩌면 모진 환경에도 어부는 바다로 나가고 해녀들은 물속으로 들어가 고된 일을 하는 동안, 화가는 그일 못지않은 인고의 예술세계와 대면하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삶이 직면한 화면. 그래서 온통 갈 빛 제주 언덕의 그 집에서 예술의 향이 솔솔 피어난다. 2012.4.이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