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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란 쿠르디였다. 그 세 살배기의 천진난만한 주검이 담긴 조선일보의 대문짝만한 사진 한 장은 정말 충격이었다. 난민 문제를 취재하던 터키의 닐류페르 데미르라는 여기자의 카메라에 우연히 담겨진 아이의 사진은 여러 신문에 실렸는데, 어느 뉴스 영상과 인터넷보다도 그 지면의 한 컷이 심금을 울렸다. ‘이대로는 아니다’라는 아이의 주검은 말없이 항변하고 있었다. 시리아의 내전으로 탈출한 부모 손에 이끌려 다섯 살 형과 함께 아이는 긴 여행에 나섰다.
삶의 의미가 뭔지도 모를 세 살 아이는 난민을 잔뜩 실은 배에 아빠 엄마와 형과 함께 올라탔고, 곧 배는 가라앉고 말았다. 해변 백사장에 얼굴을 묻은 채 처량히 파도를 맞고 있는 세 살배기 아이의 시신이라니. ‘꼭 육지를 밟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듯 파도에 신발조차 벗겨지지 않은 채였다. 다섯 살 형 갈립의 시신도 근처에서 발견됐다. 혼자 남은 아빠의 하늘 무너지는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아일란의 사진 한 장은 유럽의 지도자들을 각성시키는 힘을 발휘했고, 유럽의 각 나라 국민들도 자책하는 마음을 갖는 힘을 발휘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은 힘닿는데 까지 난민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천명했고, 영국의 캐머런 총리도 난민 수용 의사를 밝혔다. 현재 난민의 숫자는 약 20만 명을 헤아린다고 하는데, 난민 지위는 누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민자로서의 신분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불법체류자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화물열차나 다름없는 객차에 콩나물시루처럼 빽빽이 타고, 바다 위의 보트피플이 되고, 육로에는 장벽이나 철책에 가로 막혀 무국적자처럼 떠돌아다녔던 것이다. 그나마 이번 일을 계기로 선한 사마리아를 자처하는 나라나 국민들이 많아졌다는 것이 이 청명한 가을의 위로가 된다. 오바마 미 대통령도 최소 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내년에 수용할 것이라고 10일 발표했다.
사울이라는 유대교의 열혈청년이 있었다. 그는 나사렛 예수의 이단 추종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는 대제사장의 공문을 들고 다마스커스를 향하고 있었다. 그 길을 가는 도중에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을 체험하게 됐다. 꿈에도 예상 못한 현실을 맞닥뜨린 사울은 태양보다 밝은 빛 앞에 순식간에 눈이 멀어버렸다. 그는 질문했다. “주여, 뉘시오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니라”
사울의 기존 철학, 신념, 가치관은 한 순간에 사라졌다. 부활은 거짓이라고 믿었고, 예수를 추종하는 자들도 정신분열증에 사로잡힌 현실도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추호의 의심 없던 그에게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 후 사울은 헬라식의 이름 바울(Paul)로 더 유명해졌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났고, 사람들의 회심이 잇따랐고, 교회가 세워졌다.
그가 물질적으로 부유한 항구도시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수많은 개종자들이 생기고 고린도교회가 설립됐다. 부유한 고린도교회의 신자들은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했지만 자만과 신앙적 갈등이 내재했다. 성적방종도 극심했다. 심지어 아들이 아버지의 아내까지 겁탈할 정도였다.(상처하고 후처를 들인 것으로 보임)
순회전도자였던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오래 머물지 못해 두 차례 서신을 보냈다. 그 첫 편지인 고린도전서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믿음, 소망, 사랑은 영원하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다” 이것은 험한 세상살이, 바울의 사랑의 처방전이다.
교회를 위해서, 또 구세주의 사랑 앞에 그의 사랑을 증명하듯 마침내 그는 순교했다.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폴 뉴먼, 영국의 세계적 팝그룹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로 유명한 폴 사이먼 등 유럽이나 미국의 대부분 사람들은 그의 이름(Paul)을 따르며 그를 추앙하고 있다.
뉴스룸에서 박정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