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안에 담는 십자가
김종국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 토아올람 전담사제, 토마스의 집 원장
여러분 가정에 자비의 주님 축복을 청하며 인사드립니다. 본당에서 사목할 때 일입니다. 저는 신자들과 함께 가정 방문을 하면 강복을 드리며 “이 집에 주님의 평화”라고 하면서 주님이 하시라는 대로 기도를 합니다. 어느 날 가정 방문을 하는데 구역반장님이 나보다 앞서서 신자 집에 가더니 나처럼 강복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반장님께 마음 상하지 않게 “반장님 언제 성품성사를 받으셨나요?” 하고 물으니 반장님이 깜짝 놀라며 “신부님 무슨 말씀이세요?” 반문을 합니다. “저보다 먼저 강복을 주시니 말입니다.” 하니 신부님이 하셔서 그렇게 해 왔다며 겸연쩍어 합니다. 잘 설명을 드리고 기쁨의 웃음과 주님의 평화를 드리는 방문을 했습니다.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잘하면 행복이고 축복입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우리들에게 주님의 복음 선포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주님을 향한 신뢰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돈주머니나 여행 보따리나 신발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그 무엇인가를 상징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복음 선포를 위해 가장 필수적인 것은 우리 자신을 내려놓고 함께하시는 주님에 대해 완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복음 선포자의 기쁜 소식은 우리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당연히 주님에게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만약 믿음으로 드리는 신뢰를 잃어버리면 주님 뜻이 더는 펼쳐질 수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믿지 못할 때, 내 마음에 주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과 헛된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회심하고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위로와 평화를 주시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 덕분이 아니라 당신의 무상으로 베풀어주시는 은총 덕분입니다.
성령의 특별한 은총은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새롭게 하고, 마귀의 유혹, 곧 죽음 앞에서 번뇌와 좌절에 빠지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해 주시는 성령의 선물입니다(히브 2,15 참조). 성령의 힘을 통해 주시는 주님의 이러한 도움은 병자들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육체도 치유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가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야고 5,15)
평화가 없으면 우리는 각각 자기 집에 있으면서도 마치 내 집의 삶이 아닌 나그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살게 됩니다. 그러기에 집에서 나갈 때 주님을 모시고 오늘을 함께하는 기도와 주님의 신앙인으로 살아야 하며, 또 만나는 사람에게 해야 할 일을 미리 기도하는 신앙인이 될 때 주님의 자비를 입을 것입니다. 가족의 행복이 있는 집에 들어올 때에도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내 집에 주님의 평화’ 하며 기도의 인사를 드리고 주님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에 들어오면 은총의 복을 받고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이것은 믿음의 힘이 그렇게 만듭니다. 복음의 말씀은 우리 믿는 이들의 이정표로 어렵고 힘들더라도 흔들림 없이 가야 할 길이 은총의 길이요, 평화가 심어 준 향기 가득한 축복의 나날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요즘은 집안까지 수돗물이 들어와 편히 먹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여인들이 물을 길어 와야 했습니다. 물을 길어 올 때 물통에 바가지를 넣고 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물만 담으면 출렁대어 물이 다 쏟아지고 흘러넘칩니다. 그래서 바가지를 넣으면 균형이 잡혀 물이 넘치지 않게 하는 지혜였습니다.
이러하듯 우리 삶과 우리 마음에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넣고 살면 분명 그 십자가가 중심을 잡아 우리 삶에 평화가 가득 찰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믿는 이들의 중심이 되어주고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삶의 중심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십자가가 중심이 된다는 것은 비움의 기도이며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분명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나눔입니다.
저는 영등포에서 29년째 ‘토마스의 집’을 운영해온 나눔의 봉사자요, 사랑의 한 톨을 엮어 노숙인들께 주님의 은총을 드리며 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백 명쯤 되는 우리 임들에게 사랑 넘치는 총무 박 테레사 자매와 봉사자들이 함께하면서 그 삶은 은총이고 사랑 넘치는 기쁨이었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여러 번 옮겨야 하는 전세방의 설움을 경험했고 보증금이 부족하여 울먹이던 날들로 인해 주님의 십자가에 함께 매달려야 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시설은 미비한데 추운 겨울 어느 날 목욕 봉사를 하던 때였습니다. 소아마비로 하반신이 마비된 주님의 형제가 와 목욕을 시키려는데 목에 건 묵주가 보였습니다. 묵주를 벗기려고 하니 신자는 아니었지만, 어느 외국 수녀님이 준 걸어준 생명과 같은 묵주라며 벗기지 말라고 해서 그냥 씻겨줬습니다. 목욕시키자마자 금방 서서 오줌을 누어 신발도 젖고 양말도 다 젖었지만 새로 사다 입히고 신겨서 멋진 주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의 목에 건 십자가는 마음을 가득 채우는 생명이고 삶을 지탱하는 믿음의 의지였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짊어진 십자가만으로도 벅찹니다. 그러나 평화의 사도로 떠나는 제자들은 십자가를 지는 삶을 통하여 세상에 평화를 주는 방법을 일러 주십니다. 우린 다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나, 천하게 여기는 일, 어려워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그런 일과 심지어 나에게 손해가 온다면 피하고 싶고 포기하기 쉬운 일 속에서 주님의 평화를 얻습니다.
토마스의 집에서 보여 드리는 것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뿐만 아니라 타인의 십자가까지도 지고 함께하는 삶을 살 때, 이 세상은 참으로 평화로워집니다. 진정으로 십자가는 고통과 힘겨움 속에서 얻어지는 평화입니다.
“너희 마음은 기뻐하고 너희 뼈마디들은 새 풀처럼 싱싱해지리라.(이사 6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