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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은 영환이의 구술을 내가 글로 옮겨 놓은 것이다. 물론 영환이의 동의를 얻었습은 당연하다. 따라서 나의 관점은 배재되어 있다. 술 한잔 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일단 지켜보겠다 (저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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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첫사랑이란 사춘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성인식의 한부분이고, 그 과정은 반드시 가슴앓이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짝사랑이어도 상관없다. 이성에 대한 동경이 어렴프시 눈 떠갈 때의 그 첫사랑은 열병처럼 순진한 어린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휙 지나간, 아름다운 아픔이다. 지천명이 눈앞인 지금도 이 단어를 떠올리면 무언가 아릿한 상념에 사로잡히곤 한다. 빛바랜 추억의 한 페이지처럼 말이다. 누가 말했던가 그것은 가시 같은 아픔이고 아름다움이라고...
그 옛날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밤을 뒤척였던가. 그리고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이나 트르게네프의 첫사랑을 잃은 후 창밖에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은 왜 그리 가깝게만 느껴졌던가.
K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때였다. 어느 날 K는 운명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신의 계시처럼 일순간 K는 나를 사로잡아 버렸다. 하얀 교복에 단발머리를 한 K는 봄햇살을 타고 단아하게 사뿐사뿐 옅은 미소를 머금고 내게로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알 수 없는 수줍음에 애써 외면을 하며 먼발치서 바라만 보았다.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가는 꿈을 매일 밤 꾸었다. 햇살 고운 날 학교 연못가 벤취에 앉아 서로 깔깔거리며 대화를 나누었고, 비오는 어느 날 대학교 현관 처마에 몸을 숨기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우산을 받쳐주었고, 화양시장 옆 분식집 구석에 앉아 그녀가 사준 만두를 게걸스럽게 먹었고... 그렇게 상상은 나래를 펴고 마음껏 날아다녔다.
3학년 초, K가 붓글씨를 잘 쓴다는 정보를 얻은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를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를 가지고 특별활동 종목 중에 서예반에 가입을 했다. 그리고 나의 계획은 적중했다.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이 바로 저기에 보였던 것이다. 꽁닥거리는 가슴을 움켜잡으며 그 시간이 영원하기를 기원했다. 붓글씨는 예서가 초서가 되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붓글씨는 안중에도 없었으니까. 매주 한시간 있는 그 특별활동 시간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성적인 면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유독 이성에 대한 수줍음이 남들보다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 또래의 여느 남자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또한 주변의 여학생에게도 꽁무니를 감추는 소극적인 태도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K에게만은 무엇에 홀린 듯 가슴이 두근거려 쳐다보는 것조차 눈이 부셨다. 이성에 대한 열병이었는지 모른다.
하여튼 시간은 흘러 겨울이 지나고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이제 K를 볼 기회는 없었다. K가 옆 동네에 사는 관계로 재수가 좋으면 버스정류장이나 동네 길목에서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요행일 뿐 내 주관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설령 우연히 만난 듯 내가 무슨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자조 섞인 생각도 해 보았다. 현실적인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철이 들어가고 있었을까.
고등학교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간혹 식구들 잠들어 있는 사이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불현듯 K의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그 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하지만 결코 우체통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휴지통에 구겨진 편지지가 가득 찰 때까지 편지 쓰기는 계속 되었다.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은 그 얼굴을 원망도 해보았고 또한 나에게도 혹독한 자책을 가하기도 했다. 도대체 그녀가 내게 무엇이란 말인가.
어느덧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팝송에 심취해 있었다. 하라는 영어공부는 안하고 CCR의 노래책을 오려 영어책에 붙이고 수업시간에도 응얼응얼 가사를 외우곤 했으니까 말이다. 지금처럼 MP3나 그 전의 마이마이 같은 휴대용 녹음기 따위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제대로 된 팝송 하나 들으려면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라디오 팝송 프로그램이나 쇼핑백만한 카세트녹음기나 혹은 빽판이나 라이센스 레코드판 같은 종류가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그 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을 때 아버지와 나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친구들 몇 명과 선유도로 놀러가려고 신나게 계획을 세워 놓았는데 불행하게도 아버지의 반대로 무산이 되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나 되는 다 큰 장정인데도 아버지는 극구 허락을 하지 않았다. 놀러 못가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친구들에게 창피했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 그 고루한 의식 수준에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며칠동안 단식과 묵언으로 나의 의사를 표시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반항한다는 호된 꾸지람뿐이었다. 옛날 같으면 애를 낳은 나이인데 어린애 취급을 하니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하기사 지금의 나를 돌아볼 때 그 모습에서 당신의 흔적을 볼 수 있으니 이것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기는 하다.
하여튼, 그런 속앓이로 끙끙 앓고 있던 어느 날 엽서 하나가 날아들었다. 학교 회장이었던 재찬이가 보낸 엽서였다. 수도부중 14회 동창회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선유도로 못간 아쉬움도 달랠 겸 그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화양리에 있는 학교로 갔다. 남녀 학생 2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모였는데, 먼저 재찬이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낯익은 동창들과도 차례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 때, 그래 분명, 저만치에 있는 K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틀림없는 K였다. 순간 심장이 멎었다. 여자 아이와 잡담을 나누고 있던 K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미소를 짓는다. 아! 저 웃는 얼굴...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 심장소리는 쿵쿵쿵 요동을 치고 있었다. 나의 속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편으론 K가 야속하기도 했다. 오 신이시여! 이것이 당신이 맺어준 인연입니까 아니면 시험에 들게 하는 것입니까.
인원 정리가 되고 레크레이션을 할 때 나는 동네 밥이었다. 그녀를 본 충격으로 가리사니가 없었기에 게임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덩치와 달리 평소에도 행동이 느렸는데 그날은 증상이 심각했다. 그 증상의 원인을 아는 애들이 잊을 리 만무였다. 누가 내 마음을 알겠는가. 누가 이 애타는 마음을 알아주겠는가. 나는 게임을 하면서도 K에게 무언가 행동으로 아니면 말로서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늘이 만들어준 이 절호의 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었다. 여기서도 아무런 결론이 안 나면 이젠 영영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절박했다. 이 머저리 같은 놈...
하지만 모든 건 원래 데로 다시 돌아갔다. K는 지금껏 그래왔듯 그렇게 저만치에 있을 뿐이었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로부터 2년 후, 그 해 겨울이었다.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는 유행어가 회자되었듯 별 볼일 없는데도 너도나도 의무적으로 1년을 더 입시에 매달렸던, 교육적으로 지난했던 시절이었다. 물론 나도 그 부류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공부보다도 술과 담배와 그리고 팝송에 심취해 있던 방황의 시기였다. 나의 자아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보자기에 감추어져 있었고 행동과 의식은 오로지 자기 도취에 빠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연합고사가 끝나고 지루하고 긴 겨울이 시작되었다. 본고사를 보기위해 낮에는 학원에 다녔고 밤에는 동네 도서실로 향했다. 지금도 도서실이라는 게 있는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동네마다 공부방 같은 도서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연탄난로와 칸막이 있는 책상과 좁은 통로와 옥상의 흡연장소와 얼굴을 책상에 파묻고 자는 잠 등등... 그 풍경은 지금 생각해보면 슬퍼지기 까지 한다.
그 날은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학원에 갔다 온 나는 쉴 틈도 없이 집에서 저녁을 먹고 일명 왕십리 굴다리 부근에 있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로변 전파사에서는 크리스마스 추리가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고 어디선가 캐롤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 추리와 캐롤과 함박눈은 한데 어우러져 축복처럼 내 머리 위로 사뿐히 내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털며 도서실 현관을 들어섰다. 도서실 총무인 김영도가 나를 맞이한다. 그런데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황급히 귀엣말로 “선희 왔다 선히”라고 속삭이는 것이었다.
“ 뭐? 선희?”
순간 나는 눈 터는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그 때, 뜻하지 않은 상황을 추스릴 틈도 없이 여자 도서실 문이 열리더니 K의 얼굴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K와 나는 그 짧은 순간에 눈이 맞주쳤다. 그녀는 변하지 않은 그 사과향 같은 옅은 미소로 나에게 눈인사를 했다. 그 마주침도 순간, 그녀는 미소만 남긴 채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잔상은 화살처럼 가슴에 각인 되어 한동안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났다. 마지막 본 K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스쳐지나간 그녀의 미소와 체취는 아마도 30년이 더 지난 후에도 가슴 저편에 부조되어 있을지 모른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녀는 지금 어떻게 변하여 있을까? 만약 몰래 이 알럽에 들어와 이 글을 본다면 어떤 생각에 잠길까? 회한의 미소를 지을까? 아니면 무안함에 도망을 칠까? 사실 나는 이글을 쓰면서 무척 망설였다. 간혹 동창들을 만나면 추억담의 일종으로 가볍게 너스레를 떨었었는데 이렇게 진지하게 글로서 올리려니 얼굴이 뜨겁고 속된 말로 쪽팔리기도 하다. 하지만 고해성사하는 심정으로 한번쯤은 어느 누구에게 털어놓아야할 그러므로 해서 조금이나마 짐을 덜어버리고 싶은 나만의 욕심이기에 친구들은 이해하리라 믿는다.
지금은 그 당시의 감정은 없지만, 어쩌다 동창들을 만날 때면 그 기억들이 아스라이 떠오르곤 한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순수했던 시절은 그렇게 내 마음 한켠에 시간의 보자기에 고이 덥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