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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변죽 울리기[제6구간]
☞ 외항재-고헌산-백운산-소호고개-700.1m-단석산-당고개 ☜
- 칼바람 정맥길 : 단석산(斷石山)과 신라의 얼 -
♣ 산행개요 ♣
◆ 산행지 : 낙동정맥 제6구간[외항재-당고개]
◆ 일시 : 2006. 1. 6.(금)/7.(토)[무박산행]
◆ 날씨 : 맑음/매서운 칼바람
◆ 종주경로 : ☞ 외항재(550m) → 고헌산(1,033m) → 소호령(670m) → 백운산(870m) → 소호고개(550m) → 수의동(470m) → 단석산(827.2m) 갈림길 → 당고개(321m) ◀
◆ 시간대별 산행코스 :
□ 04:10 외항재 출발
□ 04:45 돌탑
□ 04:56 돌탑군/능선분기봉/1,022m/좌내리막
□ 05:05 고헌산(1,032.8m)
□ 05:15 산불감시초소
□ 05:48 소호령
□ 06:01 692.7m
□ 06:40 백운산(892m)/5분 휴식
□ 07:10 호미지맥(땅끝기맥) 분기점
□ 07:32 일출
□ 07:59 683.5m지나 송전탑
□ 08:04 소호고개
□ 08:20-08:40 700.1m봉 오르막언덕에서 조식
□ 08:48 700.1m/삼각점(언양303 1982재설)
□ 09:06 700m
□ 09:15 684.8m/헬기장터
□ 09:22 헬기장터
□ 09:31 임도/직진 오르막
□ 09:44 535.1m
□ 09:55 관광단지개발예정지구 임도
□ 10:01 도로끝
□ 10:17 봉우리
□ 10:27 605.1m
□ 10:39 메아리농장
□ 11:02 3거리 임도
□ 11:15 512m
□ 11:27 송신탑
□ 11:30 수의지/OK 그린목장
□ 11:55 방주교회
□ 12:01 652m
□ 12:09 봉우리
□ 12:20 비지고개 갈림길
□ 12:28 단석산 갈림길
□ 12:45 단석산(827.2m)/삼각점(경주26 1989재설)/15분 조망 및 휴식
□ 13:15 단석산 갈림길 복귀
□ 13:45 662m
□ 14:05 당고개/땅고개식당/구간종료
◆ 산행거리 : 약 25km[단석산 왕복 1.6km포함] ☞외항재-2.5km-고헌산-2.5km-소호령-2km-백운산-3km-소호고개-7km-수의동-4km-단석산 갈림길[→단석산 0.8km]-2km-당고개◀
◆ 산행시간 : 9시간 55분(휴식 및 단석산 왕복 포함)
◆ 형태 : 덕칠이 합동산행[서훈식고문, 夷希美 회장, 허공 대장, 정범모 총무, 창암, 밤안개, 천사, 하상배, 윤비, 오르고파, 뚜벅이, 김석호, 황재동, 나푸른솔, 탱크, 산정무한, 서송수+1, 흑기사, 록수, 주유천하 : 2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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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과 詩 ♥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 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神)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 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 게다.
아직 트이지 않은
신(神)의 발성법(發聲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내 영혼의 현(絃) 끝에서
바람은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일 게다.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의 질책,
아가, 일어나거라,
벌써 해가 떴단다.
아, 1월은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
- 오세영, “1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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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6년 산행을 시작하며
이제 2006년 丙戌年 새해를 맞았다. 지난 연말의 술자리모임 등 어수선한 시간들을 흘려보내고 心機一轉하여 낙동정맥 제6구간으로 2006년 산행의 힘찬 시동을 건다. 산에 다니다보니 누구보다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지만 너무나 시간이 빨리 흐른다. 이제 어영부영 50줄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들어섰고 하는 일은 없이 쓸데없이 나이만 먹어가고 있으니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차피 과거는 과거고 이제 나의 후반기 인생을 리모델링할 시점이다.
돌이켜보면 2004년은 백두대간으로 나의 산행을 마무리하였고, 2005년에 9정맥 중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 한북정맥(수피령에서 우이령까지) 종주를 마쳤고, 한강기맥종주도 마쳤다. 낙동정맥과 낙남정맥은 목하 종주중이다. 중간 중간에 이 나라 이곳저곳의 좋은 산들도 많이 다녔다.
1년에 1,000km이상 산길을 누비고 있으니 산은 나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산이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지만 산에 가면 어디 시달릴 것도 없고 모든 게 편하니 생각 없이 그냥 산으로 간다. 無念無想의 산행이다. 주말과 비어있는 시간을 대부분 산과 함께 보내다보니 웬만한 다른 것에는 별다른 재미도 못 느끼고 신경을 쓸 겨를도 없다.
올 상반기에 낙동정맥과 낙남정맥종주를 마치는 대로 호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그리고 틈틈이 시간이 되는대로 지맥이나 기맥줄기도 찾아볼 생각이다. ‘年月日時가 旣有定인데 浮生이 空自忙이라!’ 태어난 사주팔자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뜬구름 같은 인생이 공연히 바쁜 척 하는 형국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좋아 내가 가는 산이 아닌가?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이 나라의 정맥줄기를 밟아보면서 산과 더불어 사는 인간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2.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 제6구간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 제6구간은 외항재에서 당고개까지의 구간이다. 지난해 11월 13일 배내고개-외항재 구간종주를 마치고 근 두 달 만에 다시 걷는 낙동정맥길이다. 이번 구간은 영남알프스의 변방 고헌산을 지나 울산광역시 울주군에서 경북 경주시로 진입하면서 낙동정맥 초반부는 끝났고 이제 본격적인 낙동정맥길로 들어선다.
이 구간 정맥길 구간 거리가 약 23km, 여기에 단석산 왕복거리를 포함하면 약 25km의 장거리 구간이나, 고도표를 보니 초장에 고헌산과 백운산을 오르내리는 것 이외에는 고도차가 별로 없어 그리 힘들만한 구간은 아니다. 산이름이 있는 봉우리도 고헌산과 백운산 정도밖에 보이지 않고 주로 동네 야산과 같은 무명봉들로만 이어지는 마루금이다.
이번 구간에는 새벽어둠 속에 고헌산과 백운산을 지나기 때문에 산다운 산을 만나기 어렵고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정맥길에서 약간 비켜나 있는 단석산을 반드시 올라보아야 한다. 단석산(827.7m)은 경주 동쪽의 토함산(745m), 서쪽의 선도산(381m), 남쪽의 금오산(494.4m), 북쪽의 소금강산(142.6m)과 함께 경주 오악 중 하나로 단석산은 경주 일원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단석산은 김유신의 설화와 함께 신라화랑의 수도장으로서 그들의 浩然之氣를 느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단석산 표지석과 단석
지난 한 달은 한라산 심설산행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무박 장거리산행은 하지도 못하고 송년모임 등 술자리만 많이 가져 몸이 거의 망가진 상태라 원래의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애 깨나 써야 될 듯하다. 單純과 節制를 생활의 모토로 삼고 있지만 그게 잘 지켜지지 않는 때가 많다. 2006. 1. 6. 금요일 밤 퇴근 후 산행준비를 마치고 날씨가 추울 것에 대비하여 고소내의까지 챙겨 입었다. 엊그제 小寒때부터 기온이 급강하하여 제법 추운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밤 10시 집을 나와 버스와 지하철로 양재동으로 가는데 시간이 지체되어 밤 11시가 다 된 시간에 양재역에서 산정무한님을 만나 서초구민회관으로 가보니 우리들의 버스가 막 출발하려고 하고 있다. 그 동안의 YES 관광 우등버스가 아니라 Club Let's Go 우등버스이다.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고 산정무한님과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 구간에는 덕칠이 회원 21명이 참여하여 지금까지의 구간 중 가장 많은 회원이 참여하였다. 앞으로는 20여명 수준에서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별 무리 없이 낙동정맥 종주를 마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안락한 우등버스에서 편하게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2006. 1. 7. 일요일 새벽 2시 조금 넘어 평사휴게소이다. 속이 더부룩하여 밥 생각은 없고 휴게소에서 점심대용으로 빵과 우유를 구입하였다.
이번 구간은 날씨가 추워 손도 시리고 볼펜도 얼어버려 메모도 제대로 하지 못해 경로이동과 구간상황을 좋지 않은 나의 기억력에 의지하여 개략적으로만 적어본다. 이런 식으로라도 그때그때 적어두지 않으면 다시 쓰기는 어렵다.
단석산 정상에서 보는 영남알프스의 산무리들
3. 영남알프스를 벗어나며 :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고헌산과 백운산
[외항재→고헌산→백운산 : 7km//2시간30분]
버스는 새벽 3시 50분경 이번 산행의 기점인 외항재에 도착한다. 하늘의 별은 총총하고 한겨울의 날씨답게 차가운 바람이 귓전을 얼얼하게 한다. 이곳의 地境이 불고기단지가 있는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 ‘와항’마을임에 비추어 이 고개이름을 와항재로 불러야 할 것 같은데 지도에는 외항재로 되어 있고 사람들도 이곳을 외항재로 부르고 있다. 고갯마루에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경계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이곳 고개를 넘어서면 울주군으로 넘어가고 정맥길을 따라 소호고개에서부터는 경주시 지경으로 편입되게 된다.
모두들 산행준비를 마치고 버스에서 내려 배낭을 둘러매는데 후미대장 겸 유격조교인 흑기사님이 모두 배낭을 부려놓으라고 한다. 달밤의 체조 아니 산행전 체조시간이다. 착한 학생들처럼 조교의 시범에 따라 입속에서는 뿌연 입김을 뿜어대며 10여 분간 스트레칭 겸 체조로 경직된 몸의 근육을 풀어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뭐 먹을 거나 있는지 그냥 내빼는 사람들이 많은데 특히 겨울철에는 운동이나 산행 전에 간단한 체조나 스트레칭으로 가볍게 몸을 풀어주는 것이 좋다.
체조를 마치고 새벽 4시 10분 우측 절개지의 옹벽을 기어올라 오늘 구간 산행을 시작한다. 외항재(550m)에서 고헌산(1,032.8m)을 오르기 위해서는 500여m의 표고차를 극복해야 하는 오르막이 이어진다.
키 큰 소나무 숲 속의 길은 뻥 뚫려있고, 한겨울답지 않게 눈도 없고 땅바닥은 푸석푸석한 게 먼지가 날 정도로 바짝 말라있다. 호남지방과 충청지방은 폭설로 피해가 만만찮은데 강원지역과 경상도지역은 눈도 별로 내리지 않고 오히려 가뭄걱정을 해야 하는 지경이니 이 조그만 땅덩어리 안에서도 이렇게 기상의 변화는 심하다.
기상청은 북극 상공에 발생한 강한 고기압 공기덩어리 중 하나가 한반도까지 남하해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올 겨울은 한반도 동쪽에 자리한 저기압이 고기압을 저지하면서 서고동저형 기압배치가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서쪽에서 몰려온 찬 공기는 서해상을 통과하면서 상대적으로 따뜻한 해수면을 만나 눈구름을 만들어내고 이 구름이 강한 북서풍을 타고 내륙지방으로 들어와 충청과 호남지방에 많은 눈을 뿌리고 있다는 것이다.
랜턴불빛으로 어둠을 밝히며 오르막을 따라 위로 올라갈수록 인근 도시의 야경이 눈에 들어오고 등산로라기보다는 임도같은 넓은 길을 따라 오르는 길이다. 아마도 방화선길 같다. 슬슬 워밍업이 되면서 땀이 흘러대고 몸에 열기가 나기 시작한다. 급경사 오르막과 완경사 오르막을 연이어 올라가면서 실루엣 같은 봉우리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선두대장 허공님 일행이 길을 찾으며 멀리 앞서 나가고 후미에서 흑기사 후미대장이 서로 무전으로 연락을 취하며 진행을 한다.
방화선길 오르막을 따라 높이 올라 시야가 트이면서 바람은 더더욱 세차게 귓전을 때린다. 날이 밝은 때이면 조망이 확 트이는 시원한 곳일 텐데 어둠 속에 반짝이는 별을 벗하여 총총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돌탑이 있는 지대를 지나 돌길 오르막을 오르니 다시 돌탑군이 있는 능선분기봉이다. 지도상의 1,022m봉으로 이곳에서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자갈길 내리막을 내려선 다음 방화선같은 넓은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서면 돌탑이 있는 고헌산 정상이다. 모든 것은 어둠 속에 묻혀있어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외항재에서 55분이 걸려 당도한 고헌산 정상에서 다시 오기 어려운 고헌산 정상을 밟은 기념으로 어둠속의 정상표석을 사진으로라도 박아보려고 하는데 손이 시리고 카메라 렌즈가 펼쳐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가지고 다니던 카메라를 두고 새로 개비한 카메라를 가져왔는데 오늘은 사진박기가 글렀다. 고헌산을 언양의 진산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언양 방면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나, 매서운 칼바람에 너무 추워 머무를 생각도 없고 그냥 백운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영축산에서 시작한 영남알프스의 산군을 벗어나는 것이다.
고헌산 정상에서 넓은 길을 따라가니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다. 이곳에 삼각점이 있다고 하는데 너무 추워 확인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서려고 하다가(아마 이 길은 고헌사로 내려가는 길 같다) 길이 아닌 것 같아 직진하다가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바람소리가 바다의 성난 파도소리마냥 이 산봉우리를 집어삼킬 것만 같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은 크고 작은 돌들이 널려있는 자갈길이라 발길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몇 사람은 돌길에 굴러 넘어지기도 했다.
자갈길 내리막이 끝나는 지점에서 넓은 방화선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임도가 지나는 소호령(蘇湖嶺)이다. 그런데 ‘사람과 산’에서는 이 지점을 소호령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조선일보의 ‘실전 종주산행’에서는 692.7m봉을 지난 지점을 소호령으로 표기하고 있다(랜덤도엽도 마찬가지). 백운산과 700.1m봉 사이에 ‘소호고개’라는 곳도 있다. ‘嶺’이나 ‘고개’나 그게 그건데 어떻게 이름을 달리하여 붙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인근의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의 지명에 따라 소호령과 소호고개라고 편한대로 고개이름을 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소호령을 지나 방화선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콘크리트포장도로가 다시 흙길로 바뀌고 계속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꼭지점인 692.m에서 내리막으로 내려섰다가 뻥 뚫린 방화선도로를 따라 오르막을 올라서면 백운산이다. 산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시골길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백운산 정상에서
정상 표지석이 두개나 세워져 있고 한켠의 나뭇가지에는 정맥 표지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정상표지석의 표고는 901m와 907m로 다르게 되어 있고, 지도에 따라 백운산의 표고를 892m로 표기하는 것도 있고, 889.7m로 표기하는 것도 있다. 모두들 제멋대로 놀고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앞으로 전국 주요 산 정상의 위치와 높이에 대한 일제 정비ㆍ통일사업에 들어가는데 그 동안 통일되지 않았던 산 높이와 표고기준이 빨리 정비되기를 기대한다.
백운산(白雲山)은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이 수련했다는 곳으로 신라때는 인박산(咽薄山), 열밝산이라 불리었다고도 하고 신라때부터 사람들이 받들어 오던 신령스러운 산이었다고 하는데 어둠 속이라 아무 것도 느낄 수 없고 고헌산과 같이 그냥 어둠 속에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산이다.
백운산(白雲山)이라는 이름의 산이 전국에 수십 개 산재해 있고, 한국의 100대 명산에도 백운산이 호남정맥의 광양 백운산, 한북정맥의 포천 백운산, 강원도 정선 동강 백운산 등 3개나 들어있을 정도로 흔하디흔한 산이름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은 산이름일 것이다.
외항재에서 백운산까지 7km의 거리를 오는데 2시간 30분이 걸렸다. 시간은 아침 6시 40분이나 새벽어둠 속이고, 일출을 보려면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할 듯하다. 그러나저러나 너무 추워 증명사진만 몇 장 박고 소호고개쯤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고 길을 떠난다. 고헌산과 백운산으로 이어진 정맥길을 걷고 뇌리에 남는 것은 미친년같이 앙칼진 칼바람밖에 없다.
4. 유순한 정맥길 : 말없는 무명봉의 행렬
[백운산→단석산 갈림길 : 14km//5시간43분]
백운산을 지난 이후의 정맥길은 편하고 유순한 길이고 오늘 고생은 일단 끝이 났다고 보아도 된다. 백운산에서 소호고개까지는 3km의 거리이다. 백운산을 지나면서 방화선은 끝나고 본래의 산길을 되찾는다. 방화선 길은 시원하고 걷기는 편할지 모르나 한여름에는 땡볕에 그대로 노출되어 진절머리 나게 만드는 길이다. 이 이후 당고개까지는 정맥길에 산이름이 붙어있는 산은 없고 말없는 무명봉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여명이 밝아오면서 동쪽 하늘에는 불그스레한 양기의 기운이 넘쳐나고 산하는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키 큰 산철쭉과 잡목들의 태클을 받으며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간간이 눈이 내려있기는 하나 전체적으로는 초겨울쯤으로 느껴질 만한 분위기이다.
약간의 바위와 잡목과 억새능선이 짬뽕이 된 길을 내려가다 보니 이른바 호미지맥 분기봉이 나타난다(07:10). 누가 나뭇가지에 호미기맥 분기점임을 알려주는 표찰을 붙여놓았다. 호미지맥은 낙동정맥의 백운산을 지난 지점의 약 845m 분기봉에서 천마산-치술령-원고개-토함산-추령-만리성재-삼봉산-조항산-금오산-공개산-우물재산-고금산을 거쳐 호미곶까지 이어지는 98km의 산줄기를 말한다.
호미지맥 분기점 표찰
박성태님 등은 이 산줄기를 ‘호미지맥’으로 부르고 있으나, 잔디밭산악회의 김종국 대장님 같은 분은 이 산줄기가 동쪽 끝에 있다고 하여 ‘동끝기맥’으로 부르며(호남정맥의 바람봉 분기점에서 해남 땅끝마을 사자봉까지 이어지는 ‘땅끝기맥’과 같이) 안내산행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확고한 기맥이나 지맥의 체계정립 없이 기맥과 지맥이라는 말을 혼용하여 쓰다보니 혼란만 가중되는 면이 없지 않다. 산에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은 이 나라의 다른 학문과는 달리 지리학계와 재야 산악계는 완전히 따로 놀고 있는데 이는 서로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호미지맥 줄기[박성태의 신산경표에서]
어쨌든 이 분기봉이 백두대간 피재의 삼수령에서 한방울 빗물의 운명이 동해의 오십천, 서해의 한강, 남해의 낙동강으로 갈려 흘러가는 것처럼 여기서도 한 방울 빗물의 운명이 낙동강, 형산강, 태화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결정짓는 삼수봉(三水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실제 현지 주민들은 이 봉우리를 삼강봉(三江峰)으로 부르고 있다고 하니 이 역시 山自分水嶺의 철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일출 기운을 받고 있는 백운산
소호고개로 내려가는 길에 뒤돌아보는 백운산의 모습이 일출의 기운을 받으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산줄기와 산철쭉 등이 붉은 일출의 기운을 받아 불그죽죽 화염산같이 불타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아침햇살을 받고 타오르는 낙동정맥
몇 년 전에 실크로드를 탐방하면서 투루판을 지날 때쯤 서유기의 무대인 화염산을 본 적이 있는데 붉은 사암이 햇빛을 받아 산 전체가 불게 타오르는 것처럼 불그죽죽한 모습이었다.
일출의 순간
드디어 7시 32분 동쪽 하늘에서 튀어오를 듯 튀어오를 듯 뜸을 들이던 해가 순식간에 볼록 솟아오른다. 나로서는 새해 들어 처음으로 맞는 일출이다. 이 환희와 감격을 맛보려고 이 추운겨울에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닌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매일 떠오르는 해이지만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조화인가?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 박두진 “해” 부분
일출의 여운을 기운을 길게 받으며 내리막으로 내려서다 철지난 억새능선을 지난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683m봉을 지나 내리막 사면에 있는 송전철탑을 우회하여 내려서니 좌우로 도로가 지나는 소호고개에 이른다. 이곳부터는 지경이 경주시로 들어서게 된다.
아침 8시가 넘어가면서 배가 고파오고 소호고개에서 밥을 먹기 위하여 바람막이 장소를 찾다가 다음 봉우리를 오른 후에 찾아보기로 하고 도로를 건너 직진하여 억새능선 오르막을 오른다. 참나무와 누런 억새 뿐 산은 텅 비어 있다. 700.1m로 올라가기 직전의 오르막 사면에 약간 바람을 막아줄 듯한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한다. 나는 밥을 싸오지 못하여 회장님으로부터 따끈한 찰밥 한 덩어리를 얻어먹는다.
20여분간의 식사 및 휴식을 마치고 일어서는데 손이 시려 혼날 지경이다. 몸의 온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몸놀림을 바삐 할 수밖에 없고 먼저 일어나 오르막을 오른다. 삼각점(언양303 1982재설)이 있는 700.1m봉을 스쳐 지나간다.
호젓한 소나무숲과 억새밭이 펼쳐지는 유순한 정맥길을 편하게 걸어간다. 약간의 오르내림은 있으나 전체적으로 육산이고 평탄한 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등산이라기보다는 트레킹을 하는 기분이 든다.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지만 곳곳에 표지기들도 잘 달려있고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700m봉에서 내려섰다가 오르막을 올라 억새숲 속에 옛 헬기장터가 있는 684m봉을 오르내린 후 다시 헬기장터가 있는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완만한 내림길에 만나는 임도를 따라가면 3거리 임도가 있는 넓은 공터가 나타난다. 방향을 가늠하며 직진하여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좌측으로는 울타리 철사줄이 쳐져 있는 것이 사유지경계를 나타내는 것 같다. 봉우리에 올라서니 암릉 전망대가 나오고 바로 앞에 535.1m 암봉이 나온다. 철망을 넘어 암봉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지나온 산줄기의 무명봉들은 말이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535.1m에서 10여분 내려서면 숲을 빠져나오니 무슨 개발지구인지 산을 깎아 방치해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도를 보니 청우농산 관광단지개발지구로 되어 있다. 마루금으로는 울타리가 쳐져 있어 제대로 마루금을 잇지 못하고 개발지구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도도로가 좌우로 갈리는 지점에서 도로를 가로질러 둔덕 위로 올라선 곳에서 밤안개님이 쉬고 있다.
마침 표지기 중에 큼지막한 것이 눈에 띠는 것이 있어 살펴보니 ‘1대간 1정간 13정맥 갈 때까지 간다’는 표제 하에 우리나라 지도에 남북의 1대간 1정간 13정맥 줄기를 그려놓은 것이다. 밑에 부산의 어느 국밥집 전화전호가 기재되어 있는데 국밥집 표지기 치고는 꽤 거창하고 훌륭한 표지기라 이를 ‘펌’ 하여 밤안개님 배낭에 매어달도록 한다.
정맥길 곳곳에 주렁주렁 매달린 표지기 중에서 하나를 솎아내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에서만 ‘펌’(퍼옴 또는 퍼나름의 뜻)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맥길에서도 ‘펌’을 한다. 다른 사람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그림을 퍼와 자신의 홈피에 올리는 ‘펌킨족’과 ‘퍼뮤니케이션(purmmunication)’이 이 시대의 한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지 아니한가. 내가 쓰는 글도 언제 누가 ‘펌’해 갈 수 있으므로 가급적 남에게 상처를 주는 글이나 말은 피하고 표현에 주의해야 한다.
휴식 후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가파른 오르막이지만 부담이 없고 한 봉우리를 오르내린 후 다시 오른 봉우리가 605.1m봉이다. 정맥길은 이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꺾이어 내리막으로 바뀐다. 숲에서 빠져나오니 억새밭과 목초지가 펼쳐진다. 목장길을 따라 내려서면서 보니 멀리 단석산도 보이고 삼각형 교회건물도 눈에 들어온다. 바로 앞에는 지도상의 메아리농장건물이 보인다.
메아리목장 가기 전의 억새밭에서
목장길로 내려서다 다시 우측 숲으로 들어선 후 울타리를 빠져 나오니 메아리농장을 지난 지점이다. 다시 우측 숲으로 들어선 후 산길 오르막을 오른다. 정맥길 치고는 길이 꽤 넓다. 아마도 목장용지 때문에 길을 확장해놓은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좌측으로 임도가 올라오는 3거리지점(어떤 조각상이 있다)에서 직진하여 자갈길 오르막을 오르다가 우측으로 전망이 트이는 곳에서 몇 분이 쉬고 있어 같이 귤을 까먹으며 잠시 쉬어본다.
다시 오르막을 올라섰다가 내려선 후 다시 오른 512m에서 내려서는 길에 송신탑이 있고 조금만 내려가면 좌측으로 수의지라는 저수지가 있고 우측전면으로는 대관령초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넓은 초원지대가 그림같이 펼쳐지면서 단석산 앞의 교회건물도 가까이 다가온다. 이 초지가 바로 OK 그린목장 초지이다. 지금은 목장이라기보다는 야외촬영지같은 곳이다. 이곳부터는 경주국립공원 단석산지구 바운더리가 된다.
OK 그린목장 초지에서 바라보는 교회건물
경주시는 이 목장용지에 태권도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는데 전북 무주에 태권도공원예정지가 지정되는 바람에 경주시는 최근 미국태권도협회(ATA), 홍콩의 투자사인 조인트 웨이브 인터내셔널(Joint Wave International)사 등과 투자양해각서를 체결, 경주시 산내면 내일리 단석산 일대 옛 OK목장터에 75만평 규모의 전통무술 테마도시 ‘세계 무림촌’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한다.
시원한 목초지를 밟으며 오르막을 올라 목초지가 끝날 즈음의 아늑한 곳에 선두 셋만 빼고 일행들이 후미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한다. 마지막으로 흑기사님이 올라오면서 선두는 지금 단석산에 있고 모두들 단석산으로 올라오라는 연락이 왔다고 전해준다. 몇 사람이 단석산으로 가는 것을 망설였으나 대부분 단석산을 갔다 오는 분위기로 변한다.
10여분 휴식 후 오르막을 올라 좌측의 삼각형으로 근사하게 지어놓기는 하였지만 썰렁한 모습의 방주교회를 찔끔 쳐다본 후 우측의 정맥길로 접어든다. 좌측으로 단석산 가는 길을 따라 바로 올라서면 652m이고, 다시 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면 안부상에 비지고개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단석산까지는 1.5km. 이 3거리에서 직진하여 오르막을 오르면 10여분 만에 단석산 갈림길이 나온다.
5. 정맥길 보너스 : 단석산 - 김유신과 신라의 얼
[단석산 왕복 : 1.8km//약 50분]
지금까지 밋밋하게 이어져 온 정맥길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우측 단석산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배낭을 부려놓고 단석산으로 오르려는데 밤안개님은 컨디션이 좋지 않으신지 배낭지킴이를 자처하면서 일행들이 단석산에 올라갔다가 오는 동안 기다리기로 한다.
단석산 갈림길에서 단석산까지는 0.8km정도 거리이고 빠른 걸음으로 오르니 15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중간에 신선사로 가는 갈림길이 있고 이곳에는 유명한 마애불상이 있다. 이곳은 경주국립공원 단석산지구의 핵심인 단석산이다. 경주국립공원은 토함산지구, 남산지구, 소금강지구, 화랑지구, 서악지구, 구미산지구 등으로 나누어 관리되고 있다.
경주국립공원 구역에 속하는 단석산은 백제의 침입으로부터 신라의 수도 경주를 지키는 자연산성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단석산은 옛 서라벌의 서쪽 담장역할을 한 산이다. 단석산 동쪽에 사직의 중심을 두고 있던 신라인으로서 전략적인 측면에서 단석산의 자연방어선 역할은 신라의 국운을 어깨에 걸고 있던 화랑들에게 이곳은 군사훈련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단석산 정상에는 그 유명한 斷石이 있다. 바로 이 단석은 김유신이 칼로 자른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돌이 두부모 자르듯 반듯하게 잘려있는 것이 신기하다. 단석산은 삼국통일의 주도 역할을 담당한 김유신이 수련한 산으로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 나와 있다. 김유신은 화랑이 된 지 2년째인 17세 때 외침이 잦자 뜻을 세우고 단석산의 석굴에 들어가 수양을 쌓고 있던 중 한 노인이 나타나 비법을 전수해 주고, 또 하늘에서 내린 영험한 빛이 그의 칼에 내리치면서 바위를 잘라낼 수 있는 보검이 되었다는 구라가 전해져 온다.
단석산정상에서
원래 역사는 구라를 바탕으로 한다. 김유신은 그러한 하늘의 힘을 얻어 백제와 고구려를 누르고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단석뿐만 아니라 김유신이 물을 떠 마셨다는 장군수(將軍水), 김유신이 말에게 물을 먹였다는 음마지(吟馬池) 등이 단석산 자락에 있다고 한다. 김유신은 김춘추(무열왕)와 처남매부사이이고(김유신의 누이 文姬가 김춘추의 부인이 된다), 매부인 무열왕과 문무왕을 도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다.
김유신의 설화 중에 생각나는 것은 김유신의 말(馬)이다. 김유신이 어느 날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 무슨 생각에 골몰히 젖어 있었던 탓으로 말고삐를 집으로 돌리지 못했다. 말은 주인의 눈치를 채고 늘 주인이 드나드는 기생집에 멈추어 섰다. 김유신은 깜짝 놀라 말이 집으로 가지 않고 기생집으로 갔다고 말의 목을 베었다는 이야기인데… 주인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말을 칭찬하지는 못할망정 말의 목을 벤 김유신도 참으로 옹졸하지 아니한가.
그런데 한반도 전체에서 보면 동쪽의 변방에 치우쳐 있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함으로써 고구려가 지배하고 있던 광활한 만주일대를 잃고 한반도 내륙으로 국경이 고착화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함으로써 한민족을 지켜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고구려가 왕성했다고는 하지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을 때 중국의 동화정책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중국 주변의 국가 중에서 현재 한국과 베트남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국의 한족에 동화되고 만 역사를 보시라.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시라. 동북공정이다 뭐다 하면서 고구려를 자기들 역사라고 우기는 중국놈들을 보시라. 신라의 삼국통일의 의미를 폄훼(貶毁)하는 자들이 많은데 좀 생각해볼 일이다.
그건 그렇고 단석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기가 막히다. 겨울철이라고는 하지만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지는 영남알프스의 산무리들이 한눈에 쫙 들어온다. 좌측으로 오늘 지나온 백운산과 고헌산에서부터 멀리 신불산, 재약산, 가지산, 운문산 등 영축산을 빼고 영남알프스의 산무리들이 첩첩 빼곡히 산그리메를 이루어 들어차 있는 모습은 가히 압권이다. 눈을 북동쪽으로 돌리면 멀리 경주시내와 경주를 둘러싼 산줄기도 아늑하고 포근하게 다가온다.
단석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영남알프스 산무리들 : 좌측부터 백운산-고헌산-신불산-재약산-가지산-운문산 등 산그리메가 펼쳐진다.
6. 마무리 : 당고개/땅고개
[단석산갈림길→당고개 : 2km//50분]
단석산에서 훌륭한 조망을 즐기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내려가는 길에 흑기사님으로부터 근래 있었던 법률분쟁 이야기를 듣다보니 바로 단석산 갈림길로 복귀한다. 다시 배낭을 메고 오늘 구간의 종점인 당고개로 내려간다.
이 갈림길에서 당고개까지는 2km이고 내리막만 있는 줄 알았더니 662m봉을 오르내려야 한다. 662m봉을 지나 능선3거리에서 좌측 방향의 내리막을 타면 그 이후는 출창 내리막길이다. 오랜만에 장거리 산행을 하는 터라 계속되는 내리막으로 무릎에 하중을 주다보니 무릎이 욱신거리기까지 한다.
단석산갈림길에서 당고개까지는 생각보다 길게 50분이 소요되었다. 오후 2시 5분 20번 국도인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당고개에 이르니 땅고개식당이 있다. 표지판에는 이곳에서 경주까지는 21km로 되어 있다. 버스에서 옷을 갈아입고 식당으로 가서 간단히 식사를 하면서 Sunrise-Sunset주로 목을 축인다. 선두 허공님과 뚜벅이님, 산정무한님은 이미 1시간도 전에 도착하여 한잔들을 했는지 불콰한 모습이다.
오후 3시 20분 버스는 당고개를 출발하여 저녁 7시가 조금 넘어 복정역을 경유하여 양재동으로 간다. 복정역에서 내려 지하철로 집으로 돌아오니 너무 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꿈꿀 수 있다면
개미 한 마리의 손톱으로 사천오백 날쯤
살아낸 백송, 뚫고 들어가 살아보는 일
나무 속에 살면서
제 몸의 일부를 썩이는 일
제 혼의 일부를 베어내는 순간을 닮아보는 일
나무 속에 살면서
향기가 악취되는 순간을 껴안는 일
다시 꿈꿀 수 있다면
제 것인 양 슬픔을 연기하는 배우처럼
누군가의 슬픔을 소리낼 줄 아는 새가 되는 일
새가 되어 살면서
미처 못 간 길, 허공에 길을 내어주는 일
그 길을 또다시 잃어버리고도
개미 한 마리로 살아내게 하는 일
나무 속에 살면서 새가 되어 살면서
축복은 神이 내리고
불운은 인간이 만든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
-박라연 “다시 꿈꿀 수 있다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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