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12746F414DF19B6036)
제 4회 마음의 행로(行路)
--------------------------
* 간사한 것이 인간의 마음
그 동안 1여 년의 세월이 흘러 또다시 봄이 찾아왔다. 사람이란 묘한 존재, 처음에는 그렇게 좋아하다가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모든 것이 평범해 지는 법,
기관장이란 타이틀이 준 승진의 기쁨도, 사장이라는 지위가 주는
즐거움도 일상(日常)이 되어 일년이 지나자,
모든 것이 평범해졌다. 경이로움들은 사라졌다.
처음 그렇게 감탄했던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 같이 생각되었다. 간사한 것이 인간의 마음인가,
마치 좋은 집을 사서 이사를 가거나,차를 샀을 때 처음에는 그렇게
좋아서 날뛰며 흥분하다가 1,2년이 지나면 평범해 지듯이.... 집은 1년,자동차는 6개월, 신혼은 3개월이라는 농담이 있듯이......
직원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그것이 무슨 큰 중요한 것이나 되는
것처럼 열심히 수첩에 메모를 하였고,
마치 메모하는 그 자체가 일인양,토씨까지 받아 적는 것 같았다. 내가 졸병시절에 그랬듯이..... 직원들이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초청에도 으시대며 응했다.
그들의 초청에 참석해 주는 것이 큰 시혜를 베푸는 양, 건방을 떨고 있었다. 처음하고는 달리,총무부장을 통해 들어오는 초청의 승락여부도
선별하고 있었다.
나의 특성을 이뤄었던 자제심도 약간은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의 모습을 실제보다 더 크게 보아주고, 주위에서
부추킨 탓도 있기는 하였다. 참모들은 나에게 직원들과 너무 격이 없이 지내지 말라고 충언하였다. 근본적으로 겸손하고,자상한 모습을 유지했지만,
부하직원들하고는 친밀하면서도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했다.
조직 관료화의 시작이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33B2404DF19BCE32)
* 삼페인을 준비하다.
노조도 큰 말썽을 부리지 않았고, 큰 이슈도 없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마치 내 경영능력의 결과인 양 우쭐한 마음이 커가고 있었다. 이제 "게임은 이미 끝났다"라는 생각이 슬그머니 내 머리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것이 게임의 시작인지를 알지 못했다.나는 잘나갈 때 조심하고,
호황일 때 불황을 준비하라 했거늘,
벌써 삼페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승진한 지도 오래 되었고,주위에 인정도 받았고,자연스럽게 모두들
권위를 인정해 주었다.
처음같이 잘 해야된다는 긴장감도 조금씩 사라졌다.주위에서
알아서 해 주었다.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져,무의식속에 새로운 어떤 변화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예감하기 어려운 무엇인가,
누군가의 존재감이 아련한 북소리와 함께 지척으로 다가 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이렇게 가까이에서 기다리고 있는 줄은 몰랐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055F454DF19C2D26)
* 기적은 기적같이 다가온다.
마침,전국적인 축제행사인,인근 도시인 "진해 군항제", 벚꽃놀이가
시작되어 모두들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4월이었다. 시인 엘리어트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데,
왜 4월이 잔인한 달인지... 만물은 소생하고 꽃을 피우고 있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나는 습관적으로 2층 창문 너머로 담장을 타고 올라오는
넝쿨장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안락함 속에 젖어 있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17F46484DF1A13625)
그 때,여비서인 "가 음정", 그녀가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나는 처음에는 결재를 맡으러 온 줄 알았다. 아무 용무없이 출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사무실을 치우거나,정리할 일이 있으면 꼭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감쪽같이 해치우는 것이었다.
"사장님, 저하고 차 한잔 같이 하시면 안되어요?" 아주 어렵게
말문을 여는 듯 했다. "아니, 차 한잔 하자는 말이 그렇게 어렵나? 일년이나 같이 지냈는데....
"내가 그 동안 너무 엄했나 보지?" "아니에요, 사장님! 커피로 가져오겠습니다." 미리 준비해 둔 듯, 그녀는 바로 커피 두잔을 들고 들어왔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까, 나는 순간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76AB484DF19FF934)
"저-, 사장님하고 이 자리에 앉아 차 한잔 마시고 싶었어요!" 한참만에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그동안 손님들에게 그렇게 많은 차대접을 하면서도
이렇게 단 둘이 마주앉아 차를 마셔본 기억이 없었다. 조금은 말이 끊긴,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사장님! 이번 토요일 날 저하고 데이트 시간 내시면 안되어요?" 그녀는 어렵게, 그러나 오랫동안 생각해 두었던 말을 하는 듯했다. 그러고는, 늘 참으로 이쁘다고 느껴온 그 맑고, 그윽한 눈빛으로
나의 대답을 촉구하고 있었다. 나는 그 눈빛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나는 한참동안 대답을 잃고 있었다. "..............."
나는 갑자기 얼떨떨하여,지금의 이 상황을 판단할 수가 없었다. 좀 생각 하느라 약간 뜸을 들리자, 그녀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가까운 진해 벚꽃놀이를 같이 가보고 싶지만, 사장님 입장 생각해서
부산 해운대나 태종대가 어떠하신지요?
회사 사람이나 아는 사람을 만날 위험이 적으니까요." 나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여 약속을 표시했다. 내 마음이 가는 곳,거기에다 나를 맡겼다.
(제 4회 마음의 행로(行路) 끝)
![](https://t1.daumcdn.net/cfile/cafe/2054983B4DDED9630E)
|
첫댓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좋은 글 올려 주시길 기대합니다.
초여름 풋보리처럼 순수함이 느껴지는 님의 글이 너무 좋습니다 그러면서 삶의철학과 깊이가 ...님의 인품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실제 일탈을 하셨나요? ㅎㅎ 지나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수준이 대단합니다. 다음회가 기다려지고요...여주인공 이름이 넘 멋지네요.
지나가는 나그네, 과객(過客)님의 필명이 예사롭지 않네요.
일탈? 수기가 아니고 소설입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