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flowers
이 정물화는 고도의 기교로 표현되었다.
반 고흐는 시각적 풍부함과 형태를 잃지 않고 해바라기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주요 색상으로 '세 가지 크롬 옐로(chrome yellow), 옐로 오커(yellow ochre),
말라카이트 그린(malachite green)' 그리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았다.
'내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사람들도 내 그림이 거기에 사용한 물감보다,
내 인생보다 더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1888년 편지 중에서
Sunflowers
January 1889, Arles
Oil on canvas, 92 x 71 cm
Museum of Art, Philadelphia
반 고흐의 예술을 대표하는 작품은 단연 <해바라기>다.
그는 해바라기를 총 열한 점 그렸는데, 1887년에 네 점, 1888년에 다섯 점, 1889년에 두 점을 그렸다.
<해바라기>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작품은 현재 런던 국립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한 두 가지 버전을 더 그렸고 각각 도쿄 세이치 토고 기념 박물관과
암스테르담 반 고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Sunflowers.
1888.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London, UK.
고갱은 반 고흐의 이 정물화에 매료되어 아를에서 그와 함께 작업하겠다고 약속했다.
1887년 고갱은 반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작품 중 두 점을 소장했고
반 고흐가 그들의 작업실인 옐로 하우스를 '커다란 해바라기들'로 장식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옐로 하우스의 빛나는 벽은 그들의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상징한다.
반 고흐는 해바라기 그림 여섯 점을 그릴 계획을 세웠지만 열한 점으로 늘어났고 그중 네 점만 가졌는데,
그가 보유한 네 점 중 두 점이 완성작으로 여겨진다.
노란색 배경의 작품은 런던에, 푸른 배경의 다른 한 점은 현재 뮌헨의 노이에 피나코테크에 있다.
그러나 두 그림 모두 작업실에서 완성한 것이 아니다.
반 고흐는 아파트 전체를 해바라기로 장식하기로 결정하고 두 점을 가져와 손님방에 걸었다.
10월 말에 고갱이 이 작품을 보고 좋아했지만 그는 노란색 바탕의 해바라기를 더 마음에 들어 했다.
고갱은 이후 이 그림에 대해 "빈센트의 양식을 보여주는 완벽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반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열한 점 중 두 점의 모습.
왼쪽은 고갱이 좋아했던 작품으로 현재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오른쪽 작품은 뮌헨 노이에 피나코테크에
있다.
이 작품을 평가할 때 보통 평론가들은 정물화를 하나의 도전과제로서
창의적으로 나타내려고 한 점을 높이 산다.
고갱이 후에 덧붙인 것처럼 '원색에서 파생된 점의 향연'이다.
고갱은 노란 배경에 호박이 있는 정물화를 그렸고 고흐는 노란 배경에 해바라기를 반복적으로 그렸다.
이 예술적 대화는 그들이 서로를 그린 초상화에도 등장한다.
반 고흐는 호박 앞에서 정물화를 그리고 있는 친구를 묘사했고
고갱은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리는 모습을 담았다.
고갱에게 반 고흐의 예술은 이 특별한 그림으로 상징되며 1888년 말 아를을 떠날 때
그는 고흐에게 그 그림을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흐는 '완성되지 않은 캔버스에 대한 화가의 권리'를 들어 단번에 거절하면서
대신 새로운 그림을 그려주었다.
그렇지만 고갱이 작품을 교환하지는 제안은 하지 않았기에 해바라기는 고갱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Twelve Sunflowers.
August 1888. Oil on canvas.
Bayerische Staatsgem�ldesammlungen,
Neue Pinakothek, Munich, Germary.
이 주도권 다툼은 <해바라기>의 중요성을 반영한다.
반 고흐는 그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1889년에 기록한 것처럼
'그가 처음으로 해바라기를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헨리 팡탱라투르가 제비꽃을 그렸고 어니스트 쿠스트가 접시꽃을 그렸지만
해바라기를 특화한 것은 고흐가 처음이었다.
해바라기를 해석한 그의 방식 또한 완전히 새로웠다.
정물화는 항상 완전히 만개한 꽃을 보여주지만 그는 지기 시작하는 해바라기를 그려서
씨앗과 시들어가는 모습을 묘사했다.
반 고흐는 낡고 일상적인 사물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 사실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젊은 여성보다 나이 든 부인을, 높은 구두보다 진흙이 묻은 신발을 좋아했고
무너져가는 초가집을 사랑했다. 해바라기도 이와 같은 맥락에 속해 있다.
시든 꽃잎이 아래로 쳐진 것은 반 고흐가 지칭한 대로 '약간 저문 삶이 지나간 것 같은' 매력이다.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의 모습을 담은 고갱의 작품은 실제 초상화가 아니다.
반 고흐는 꽃병에 꽂힌 해바라기를 앞에 두고 있는데 시든 꽃은 고갱의 창작물이었다.
이는 고갱이 친구를 상상이 아닌 실물을 그리는 사실주의 화가로 묘사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감성은 고갱에게는 사라졌지만 그는 고흐가 식물을 그린 방식에서
현대적인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1887년 정물화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형태학을 따르기보다는 고흐는 원시적인 것을 선호했고
간략하게 표현하기를 즐겼다.
그가 활짝 핀 해바라기 대신 녹색을 띠는 시든 해바라기를 묘사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원시적인 해석은 이후 고갱의 선택과 조화를 이루어
에밀 베르나르의 '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림'에 이른다.
반 고흐는 친구에게 자신의 진정한 재능을 보여주고 싶었고 근대 예술 속 믿음직한 동지로서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강렬하고 단순한 색상 속에서 구현하려고 했다.
Four Cut Sunflowers.
August-September 1887.
Oil on canvas.
Rijksmuseum Kröller-Müller, Otterlo, Netherlands.
<해바라기>는 단순히 눈을 즐겁게 하는 작품은 아니다.
고흐는 이 작품을 통해 더 높은 목표를 추구했다.
작품 속에서 그는 '음악처럼 무언가 편안한 것을 말하고' 싶었고
이를 색채의 '실질적인 빛과 공명'으로 전달하려고 했다.
이 점을 <해바라기>에 적용하면서 고흐는 편안한 '음악'처럼 완벽한 색상을 만들었고
이 때문에 지금도 그의 작품은 편안한 느낌을 준다.
비록 색상은 약간 어두워졌지만 빛나고 다양하게 그늘진 노란색이 우리를 매혹한다.
또한 이 작품에는 즐거움이 녹아 있다.
고갱이 도착자기를 기다렸던 반 고흐의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그려진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면 그가 '즐거움과 행복, 희망과 사랑의 필요'에 마침내 만족한 것처럼 보인다.
명작이란 무엇인가
저자 크리스토퍼 델, 공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