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노소문답가 夢中老少問答歌
◎ 몽중노소문답가는 임술년(1862) 6월경 남원 은적암에 피신하여 계실 때에 쓰신 가사이다. 먼저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에 대해 찬탄하신다.
1 곤륜산의 산맥 한 줄기가 뻗어 내려 조선이라는 나라에 이르러 금강산을 이루었다. 기이한 바위와 돌들로 일만 이천 개의 아름다운 산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금강산은 온 나라의 유명한 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이 아니겠는가?
◎ 늙은 부부가 자식이 없음을 한탄한다.
2 삼각산 아래 한양 땅에 조선이라는 나라의 도읍이 세워진 지 사백 년이 지났다. 또다시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때에 늙은 부부가 마주 앉아서 탄식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 아들이든 딸이든 낳지를 못해, 산신에게 제사도 지내고 부처에게 공양도 드렸지만, 아직까지 자식을 얻지 못했다. 그들은 한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밝고 밝은 천지의 운수를 타고 이 세상에 태어났건만, 어찌 이렇게 단 한 명의 자식도 없는 곤궁한 신세란 말인가?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 우리의 처지는 고사하더라도 부모님께 죄를 짓게 되는 것이 아닌가? 아서라. (이런 한탄은 그만두자.) 옛날부터 지금까지, 착한 일을 쌓은 덕택으로 자식을 얻어서 대를 이은 것을 말로 듣고 눈으로도 보지 않았는가? 우리도 이 세상에서 착한 일이나 하여보세.』
◎ 늙은 부부가 자식을 얻기 위해 불공과 산제를 지내다가 금강산으로 들어간다.
3 이리하여 이들은 있는 재산을 모두 써 가면서, 한결같은 마음과 올바른 기운으로, 온 나라의 부처 앞에 시주도 하고, 산신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제사도 지냈다. 그렇게 수도 없이 절을 하면서 하늘을 향해 밤낮으로 빌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말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하지 않겠는가? 열심히 착한 일을 해 보세. 그렇지만 옛날부터 전해 오는 말에 훌륭한 사람은 신령한 땅에서 태어난다고 하니, 빼어난 경치가 있는 곳에서 살아보세. 밝은 기운은 반드시 이름난 산 아래에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리하여 이들은 온 나라의 좋다는 경치는 다 제쳐 놓고 금강산을 찾아서 들어갔다. 그곳에서 산세가 좋고 방향이 좋은 곳을 가려내어 좁은 골짜기에 몇 간의 초가집을 지으니, 마치 나무를 얽어서 새 둥지를 지어놓은 것 같지 않은가?
◎ 금강산에서 아기가 탄생하여 자라난다.
4 그럭저럭 지내다 보니 아기를 가지게 되었다. 열 달이 되자 하루는 집 가운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덮이고, 금강산이 안과 밖으로 두세 번 진동하더니, 임신부가 아기를 낳으려는 기미를 보였다. 이윽고 아기가 태어나니, 잘 생긴 사내아이가 아니겠는가? 얼굴은 구슬처럼 아름답고, 풍채는 두목지와 같이 늠름하였다. 별일 없이 지내다 보니, 아기는 어느덧 대여섯 살이 되었다. 여덟 살이 되어서는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수많은 시와 글들을 환히 통하여 모르는 것이 없으니,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하였다. 열 살이 되니, 사광이라는 사람처럼 총명하고 지혜와 도량이 뛰어났으며, 재주와 인품도 보통 사람을 능가하였다.
◎ 소년이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인심풍속을 살펴보고 탄식한다.
5 (소년은 이때부터) 인심이 쌀쌀하고 각박한 세상을 늘 근심하기 시작했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는 신하답지 못하며, 부모는 부모답지 못하고 자식은 자식답지 못한 것을 밤낮으로 탄식하였다. 그리하여 울적한 마음이 가슴속에 가득하게 되었지만,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드디어 가족과 가정일을 버려두고 온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인심과 풍속을 살펴보더니, 마침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심이 각박한 세상을) 어찌할 방법이 없구나. 우습구나. 세상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정녕 하늘님의 명령을 돌아보지 않는구나.』
◎ 어리석은 사람들이 괴상한 예언서에 현혹되어 의견이 분분한 모습이 묘사된다.
6 (이때 세상 사람들은) 동쪽 나라(조선)에 떠돌아다니는 괴상한 예언서를 들먹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지나간 임진년 일본군이 침략하였을 때는, 「소나무에 이로움이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명나라의 장수 이여송이 조선을 도와주었다. 이여송의 이름에 소나무라는 뜻을 가진 글자가 있으니, 과연 이 예언이 적중한 것이 아니겠는가?) 또 가산과 정주라는 땅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에서는, 「이로움이 집에 있다.」고 하였다. (이때는 피란하지 않고 집에 있던 사람들이 화를 당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 예언도 적중한 것이 아닌가?) 어화, 세상 사람들이여, 우리도 이런 것을 본받아서, (예언을 통해) 살아날 계책을 마련해 보세. 옛날 중국 진나라 때의 《녹도서》라는 책에는 진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 오랑캐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하여 진나라에서는 그들이 오랑캐라고 부르던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헛되게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러나 2세 임금이 (정치를 잘못하여) 나라를 망하게 하고 난 다음에야, 세상 사람들은 (2세 임금 이름에 오랑캐라는 글자가 있는 것을 알고, 진나라를 망하게 한 것이 오랑캐가 아니라 2세 임금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나라의 예언서에 있는 「이로움이 궁궁에 있다.」는 예언의 내용을 올바로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 예언서의 내용에 따라 이리저리 방황하는 모습들이 묘사된다.
7 이리하여 벼슬을 팔아먹는 권세자들도 한결같이 마음은 궁궁에 가 있고, 돈과 곡식이 창고에 가득한 부자들도 한결같이 마음은 궁궁에 가 있으며, 떠돌아다니며 음식을 구걸하는 가산 탕진자도 한결같이 마음은 궁궁에 가 있었다. 바람처럼 뜬소문에 현혹된 사람들도 궁궁촌을 찾아다니고, 혹은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기도 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궁궁이 서학(천주교)인 줄 알고 입도하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이렇게 하면서) 저마다 제멋대로 말들을 해 대며, 자기가 하는 말이 옳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 옳지 않다고 시비가 분분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날마다 때때로 그런 말들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 소년은 인심풍속에 절망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금강산 높은 봉우리에 도달하여 홀연히 잠이 든다.
8 (세상 사람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소년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만두자꾸나. 그만두자꾸나. 이런 세상 구경은 다 치워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 온갖 시와 글들이나 읽어 보자. 내 나이 열네 살이니 앞길이 만 리나 되지 않은가? 그만두자. 이런 세상은 요임금이나 순임금이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을 것이며, 공자와 맹자의 덕으로 말해도 교화가 되지 않을 것이다.』 소년은 이렇게 가슴 속에 품은 생각을 한순간에 깨뜨려 정리하고는 휘적휘적 걸어오다가 금강산의 높은 봉우리에 도달하였다. 거기서 잠깐 앉아 쉬다가 홀연히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날개옷을 입고 옷자락을 펄렁이는 도사 한 사람이 나타났다.
◎ 꿈속에 나타난 도사는 소년에게 인심풍속을 한탄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시절이 돌아가는 운수를 구경해 보라고 타이른다.
9 (도사는 소년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수많은 골짜기와 산봉우리는 겹겹으로 둘러있고, 사람의 자취는 없어 고요하고 고요한데, 무슨 일로 여기서 잠을 자는가? 몸을 수양하고 집안을 다스리는 일은 하지 않고, 어찌 온 세상을 떠도는가? 인심이 쌀쌀하고 각박한 세상 사람들에게 참견하여 따질 필요는 무엇이 있으며, 이로움이 궁궁에 있다는 가련한 세상 사람들의 말을 비웃을 필요는 또 무엇이 있는가? 때를 만나지 못하였다고 한탄하지 말고, 세상 구경을 해 보라. 세상 사람들이, 「이로움이 소나무에 있다.」든가, 「이로움이 집에 있다.」는 말은 이미 (지나간 일이니) 알았다고 치더라도, 「이로움이 궁궁에 있다.」는 말은 (아직 오지도 않은 일이니) 어찌 알겠는가? 하늘의 새로운 운수가 이미 세상을 둘러싸고 있으니, 근심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서 시절이 돌아가는 운수를 구경해 보라.
◎ 도사는 앞으로 좋은 시절이 올 것이고, 만고에 없는 다함없이 큰 진리가 나올 것이라고 말한 다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다.
10 앞으로 모든 나라들이 괴질과 같은 운수를 극복하고, 다시 새로운 세상을 열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태평하고 성스러운 세상이 다시 정해져서,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게 될 것이니, 슬퍼하며 탄식하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기다려 보라. 저물어 가는 한 시대가 지나가고 다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좋은 시절이 오면, 만고에 없는 다함없이 큰 진리가 이 세상에 나올 것이다. 그대는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억조창생 많은 백성이 태평곡과 격양가를 부르는 것을 머지않아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이 세상에 나오는 다함없이 큰 진리는 영원무궁토록 전해지지 않겠는가? 하늘님의 뜻과 사람의 마음이 통한다는 것을 그대가 아는지 모르겠구나. 하늘님이 뜻을 두게 되면, 비록 금수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렴풋이는 알게 될 것이다. 나도 또한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신선이니, 이제 그대를 본 다음에는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대 또한 신선 세계와 인연이 있어서, 나를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 소년은 잠을 깨어 현실로 돌아온다.
11 소년이 놀라 잠을 깨어 살펴보니 도사는 간 곳 모르게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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