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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 왕의 친구(동류)
요15:9-15
- 유대인들의 친구의 개념/
*친구의 모든 일을 안다. 친구와 생사를 함께 한다는 뜻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친구의 청을 들어줘야한다.
눅11:5-13 한 밤중에 찾아온 친구를 맞아 주며 굶주린 친구를 위하여 한 밤중에 친구를 찾아가 음식을 빌리며 그 친구는 기꺼이 한 밤중에 빌려 준다.
요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라..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이 말씀은 주님께서 잡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주님께서 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종이 아니라 이제부터 친구라고 하셨는가?
-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종이 아닌 친구가 되기를 원하신다. 종과 친구의 차이가 무엇인가?
종은 주인의 하는 일, 계획을 모른다. 모른다는 것은 그 계획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친구는 주인의 하는 것을 안다. 즉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자는 하나님의 친구이다.
- 주님께서 잡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종이 아닌 친구가 되기를 원하신 이유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비밀을 함께 알고 그 비밀을 위하여 자신처럼 함께 죽임을 당하는 피흘림을 받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신 것이다.
- 친구는 동류이다. 동류는 같은 부류이다. 주님이 멜기세덱이라는 부류의 대제사장이시라면 주님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친구도 멜기세덱의 부류가 되는 것이다.
- 친구의 다른 표현은 벗이다. 성경에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은 사람은 아브라함이다.
약2:23“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사41:8“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벗이라 칭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친구로 합당하게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을 수 있었던 인정받았던 일은 무엇인가?
-창17장 하나님께서 아브람이 이스마엘을 낳은 후 13년 동안 침묵하시다가 아브람 나이 99세에 찾아 오셔서 말씀하신다. 아브람의 이름을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으로 개명하시고 아브라함을 크게 번성하게 하여 민족들과 왕들이 나오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할례언약을 주신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으며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하나님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사라가 이삭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올라가신다.
- 아브라함은 자신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집 안에 있는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한다.
- 아브라함은 도무지 할례를 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포피를 베므로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는다.
-사41:8 “내가 택한 야곱아”
하나님께서 장자를 사랑하시고 택하신다. 그러나 장자였던 에서는 들사람이 되고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긴다. 창25:19-34
그러나 장자가 아닌 야곱은 늘 장자인 형의 발뒤굼치를 잡는다. 즉 장자가 아닌 야곱이 늘 장자의 명분을 사랑하고 얻고자 한다.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하신다. 롬9:13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의 벗으로 인정된다.
- 하나님의 계획은 멜기세덱이다. 멜기세덱은 장자의 명분이다. 그러나 그 명분을 경홀히 여기는 자는 빼앗길 것이며, 얻고자 하여 싸우는 자는 이길 것이다.
- 종은 주인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하지만 친구는 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계획을 숨기지 아니하시고 말씀하신다.
창17장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도무지 지킬 수 없는 상황에서 할례언약을 지키는 것을 보시고 또 한 번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다.
창18장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러 가시는 길에 아브라함 장막에 나타나신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대접을 받으신 후 전송을 받으시면서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17절) 라고 말씀하신다.
창21장/ 사라가 이삭을 낳았다. 그런데 하갈과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것을 보고 사라가 두 사람을 내쫓으라고 아브라함에게 말한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로 말미암아 매우 근심한다.(11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하신다. 이때도 아브라함은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 이스마엘을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자신에게서 베어낸다.
창22장/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무엇을 시험하시는가?
할례언약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를 시험하신다. -이 시험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벗에 대한 시험이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번제는 제사이다. 제사는 죄 때문에 드리는 것이다. 그 죄는 첫사람 아담의 원죄이다. 아담의 죄는 무엇인가?
호6:7 아담의 죄는 할례언약을 지키지 못한 것이며 그 결과는 에서처럼 장자의 명분을 빼앗기는 것이었다.
요15:13
친구는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하나님께서는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내 주심으로 우리의 친구가 되신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과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벗이었던 아브라함처럼 친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베는 할례언약을 행하여야 한다.
요15: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창17:1 하나님께서 13년만에 아브람에게 나타나사 하시는 첫 말씀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는 것이다.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여야 만왕의 왕이신 주님의 친구 곧 동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명하신 계명은 무엇인가?
할례언약이다. 첫사람 아담이 발로 차버린 언약이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자존심, 내가 애지중지하는 자유와 의지 내가 머리가 되어서 살고 싶어하는 것들을 스스로 베어내지 못한다면 에서와 같은 장자의 명분, 곧 멜기세덱의 존귀와 영광을 빼앗기는 것이다.
-할례언약은 무엇인가?
할례는 몸에 하는 것이 아니요 마음에 하는 것이다.
롬2:25-29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골2:11-12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할례는 세례와 동일한 의미인데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는 것이다. 즉 내 생각과 마음은 죽고 하나님의 법인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이 내 안에서 일으킴을 받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손으로 하는 할례와 마음에 하는 할례를 다 받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손할례는 받았으나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함으로 첫사람 아담과 같이 버림을 받았다.
할례는 포피를 베는 것인데 이는 곧 머리를 베는 것이다.
신10:12-16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말씀하신 명령과 규례가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신30:6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렘9:25-26 마음에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을 벌하신다.
요14:15-24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사랑(아가페)은 무엇인가? 요일4:8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 자신이 곧 사랑(아가페)이시며 아가페를 위하여 삼위의 하나님들께서 한 분 하나님으로 삼위일체가 되셨다. 즉 아가페는 하나님의 존재적인 의미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목적이다.
하나님의 사랑, 즉 아가페는 무엇인가?
엡1:10“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하나가 되는 것이 아가페이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될 것이다”
“together under one head”
엡1:21-23, 4:6, 골3:11
하나님의 예정, 그리스도와 멜기세덱
하나님의 형상(설계도)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예정(미리계획하심)이다.
골1:15-20, 26
고전2: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엡3:3,9,11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만왕의 왕: 멜기세덱 친구(동류)1
계20:4
만왕의 왕과 더불어 보좌에 앉은 자들은 2가지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여 이긴 자들이다.
이 죽음은 만왕의 왕으로 승귀하신 맏아들께서 동일하게 죽임을 당하시고 이긴 자가 되신 것이다.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 이다.
계14:12-13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12:17“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예수를 증언한다는 것은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켜냄으로 예수의 증거를 가지는 것이다. 예수에 대한 증거는 예수님께서 부탁(명령)하신 것을 목숨으로 이루어 내는 것이다.
그 부탁은 곧 하나님의 계명을 목숨으로 지키는 것이다. 맏아들 예수께서도 먼저 하나님의 계명을 목숨으로 지켜내시고 마침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히5:4-10,12:1-2,빌2:5-11)
-하나님의 계명은 무엇인가?
마22:34-40 한 율법사가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냐고 주님께 물었다. 주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형제)을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의 기본, 으뜸, 요약이라고 답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나온 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별개가 아닌 하나의 계명이라고 답하신다.
요일4:19-21“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으니”
- 이 계명을 언제 받았는가?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5:10-15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며 곧 나의 친구라”
- 하나님의 계명을 맏아들 예수님의 부탁과 명령대로 지켜내는 자라야 만왕의 왕이신 주님의 친구가 될 합당한 자가 된다.
- 친구는 헬 “필로스”인데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다, 입맞추다 등의 뜻을 가진다. “필로스”는 단순히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나 아는 사람 중에 한 사람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필로스”는 친구와 뜻을 같이하며 그 뜻을 위하여 친구와 목숨을 함께 하는 자이다. “필로스” 입맞추다는 의미는 함께 식사를 한다는 뜻이며 단순한 한 끼 식사를 함께 먹는 의미가 아닌 하나의 목적과 뜻을 나눠 목숨으로 함께 한다는 뜻이다.
- 그러므로 7교회(계12:17“여자”)에서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계3:5)하여 주시겠다고 하신다.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계3:20-21)
- 요15:10-15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며 곧 나의 친구라”
만왕의 왕의 친구(필로스)가 되는 자가 왕의 동료가 되는 것이다.
계20:4-6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니/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요21:15-17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사랑하느냐 물으신다.
첫 번째 물으실 때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신다. 여기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가파스(아가페)”이다.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한다는 단어를 “필로스”로 대답한다. 주님은 두 번째도 “아가파스”로 물으셨고 베드로도 “필로스”로 대답한다. 세 번째는 주님께서 “아가파스”가 아닌 “필로스”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고 베드로는 근심하며 “필로스” 대답한다.
-사랑을 그리스적인 개념으로 아가파스, 필로스, 에로스 나눠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신적인 사랑, 우정, 남녀간의 사랑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그 사랑이 무엇이든 간에 구분되지 않는 동일한 의미가 있다. 진정한 사랑은 그것이 무엇이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다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사랑하는 것이다. 친구와의 사랑, 남녀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고 물으신다. 이 사람들이란 함께 예수님을 버리고 함께 갈릴리바다에서 물고기 잡고 있었던 제자들이다.(요21:2)
베드로는 전에 주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었다.(마16:16
요11:27)
즉 베드로에게 나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할 하나님으로 믿느냐고 물으시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 물음에 “필로스”로 대답한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을 주님께서 “필로스”로 물으신 것은 베드로가 주님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이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친구가 될 수 없는 하나님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는 친구가 되기를 원하신 것이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종은 주종의 관계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과 관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는 종이 아닌 친구라 하신다. 즉 만왕의 왕과 더불어 같은 옷을 입고 같이 다니며 같이 먹으며 같은 자리에 앉는 친구를 원하신다.
그 친구는 주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목숨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자이다.
-형제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롬12:14-21, 13:8-10, 14:1,13, 15:1-7,
골3:10-15, 갈6:1-
-“헤타이오스” / 친구
마20:13“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마22: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마26:50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헤타이오스”라는 친구라는 단어는 마태복음에서만 3회 기록되었다. “헤타이오스”는 “필로스”와 다른 의미를 가졌다. “헤타이오스”는 친구의 뜻을 모르는 자이며 친구와 함께 목숨을 함께 하지 않는 자를 부르는 단어이다.
2.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만왕의 왕과 더불어 보좌에 앉을 자들이다. 그렇다면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함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짐승은 한마디로 적그리스도를 뜻하는데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자,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이다. 그리스도(메시야)를 대신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자리가 자신이 앉는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사단이요 마귀이다. 사단은 사14:12-14, 겔28 에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앉으려고 했다. 자신이 머리가 되어 살고 모든 사람위에 머리가 되려고 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미혹했던 것도 그러하다.
창3:1-5“그것을 먹는 날에서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맏아들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의 모양으로 오실 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셨다. 빌2:5-8
또한 공생애 모든 기간을 자신이 머리가 되어 행하시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머리로 하여 사시는 훈련을 하셨다.
요5:19-20,30, 8:28-29, 눅22:42-44
맏아들 예수께서 2가지에 대하여 공생애 기간동안 이기심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이루는 것이다.
엡3:2-3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 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골2:2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 려 함이니”
고전12: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