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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필 2023년 05월호(통권 339호) - 90~99
문학적 기행수필을 위하여 –신화를 수필로
최원현
수필가⋅문학평론가⋅사)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월간 한국수필
발행인⋅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
1. 들어가며-무엇이 글을 쓰게 하는가.
문학을 하면서 가장 일반적인 고민이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잘 쓰느냐일 것이다. 늘 쓰는 일인데도 항상 어렵다. 출발점이 되는 그 가장 기본이 되는 것에서부터 우린 갈등한다. 왜일까. 아마도 첫 문장을 뽑아내는 게 쉽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 처음이 주는 무게감과 부담감은 결국 나 때문이 아니라 내 글을 읽을 누군가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이다. 그래서 잘 보이려는, 멋지다고 인정받으려는, 내가 생각해도 이거다 할 수 있는 것으로의 그런 부담감이 너무 크게 작용하다 보니 첫 문장을 만들어내기가 더 쉽지 않다. 사실 첫 문장은 전체 글의 나아갈 방향이며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는 첫인상이다. 해서 무엇으로 어떻게 시작할까를 고심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첫 문장만으로 몇 날 며칠을 끙끙대기도 한다. 첫 문장만 뽑아내면 비교적 다음은 꼬리를 이으며 나오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삶의 풍요를 희구한다. 그 풍요 속엔 삶의 여유도 포함된다. 그 삶의 여유로 여행을 찾는다. 일탈도 되고 새로운 자기 찾기도 되고 나름 휴식과 여유도 부릴 수 있는 방법여행이다. 자유롭고 편리해진 여행 환경만큼 그걸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기고도 싶어 한다. 사진이나 영상이 더 좋을 것 같지만 여전히 글을 선호한다. 한데 여행을 통하여 새로운 것들과 만나고, 보고, 생각한 것을 글로 옮길 때엔 그 시작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내가 본 그 많은 것 중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여 내 생각으로 모을 것인지를 분명히 하기가 쉽지 않아서이다.
여행을 통해 만나는 것들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만나는 수많은 대상들이다. 따라서 그 많은 것들 중에서 주의 깊게 깊이 관찰하고 의미를 찾고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을 재해석하면서 ‘나’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나를 만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은 의미가 있다.
우린 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쓸 때 기행문, 여행기, 견문록, 기행수필 등 여러 이름으로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한 것들에선 별로 문학의 깊은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왜일까. 이미 우리에게 보여진 것들에서 너무나 식상해 있기 때문이다. 아 그거? 하고 내용을 읽어보지 않고도 그게 어떤 내용일지가 짐작되어 버리는 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식상한 글 아닌 문학 냄새 짙은 문학적 기행수필은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
2. 기행수필,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1) 잘 보아야(⾒) 한다.—보이는 것에서 찾는 것
여행은 보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시작은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본다는 것은 눈으로만 본다고 생각하지만, 작가적 ‘본다’는 귀로도 코로도 곧 오감(五感)으로 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맛을 보다’라고 하듯이 입맛도 본다고 한다. 그러니 보는 것은 냄새도 맛도 본다. 그런데 보다 보면 느낌(맛)이 온다. 그러니 그냥 볼 것이 아니라 잘 보아야 한다. 그럼 어떻게 보는 것이 잘 보는 것인가. 한 가지로, 보이는 대로만, 보이는 것만 보지 말라는 것이다. 곧 보이지 않는 것도 보고, 거꾸로도 보고, 뒤에서도 보고,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보고, 보는 각도를 달리해서도 보라는 것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보거나 주마간산(⾛⾺看⼭)으로 보면 내가 본 것도 보아야 할 것도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 나만이 보는 것, 그게 글을 쓰는 우리에겐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잘 보면 보이는 것이 많고 대충 보면 볼 수 있는 것도 보지 못하고 본 것 조차도 알지 못한다. 이 ‘보다’에서 비로소 느낌으로 이어지는 다음 과정도 열린다. 똑같이 보았는데도 본 사람이 있고 못 본 사람이 있고, 누구는 슬프게 보고, 누구는 외롭게 보고, 누구는 화가 났다고 보는 것처럼 보는 것은 각기 다를 수 있지만 잘 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잘 보아야 느낌도 온다. 생각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잘 보는 것은 신선한 발상의 전환을 전제로 해야 한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서서 흐르는 강’으로(최원현), 베어진 나무 그루터기를 낡은 측음기판으로(이현원) 보는 것처럼 새롭게 보는 시도 곧 생각의 전환이 함께 하는 보기일 때 비로소 보는 눈도 열린다.
2) 느낌(感)을 잘 잡아야 한다.
느낌은 순간적이면서도 참으로 다양하다. 오랜만에 만난 내 모습을 두고도 어떤 이는 좋아보인다고 하고, 어떤 이는 조금 말라보인다고 하고, 어떤 이는 살이 쪘다고 한다. 이처럼 느낌도 그때의 분위기나 기분 그리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 다를 수 있지만 보는 것에서 느낌으로 내게 올 때는 또 달라진다. 흥겨운 공연을 보면서도 어떤 사람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몸을 마구 들썩인다. 어떤 사람은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아무 느낌도 받지 못한다. 물론 느낌이 오는 속도와 강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즉시적으로 오건 순차적으로 오건 누구에게나 느낌은 오기 마련이다. 그 느낌은 바로 표현하고픈 욕망이 된다. 그 느낌을 잡아야 한다. 그 순간적인 느낌으로 첫 문장을 얻어내야 한다.
‘호박꽃이 터져 별이 되는 경쾌한 리듬, 비에 젖은 호박별 하나가 바람에 진다. 호박꽃이 황금별이 되어 어우러진 공간 속으로 성큼 한 걸음 들어서면 흰 수건을 머리에 쓴 어머니가 칼국수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반죽을 미는 홍두깨 소리가 들려온다.(민예 「내 별똥별의 고향」 중)
보는 것에서 오는 느낌을 어떻게 붙잡아내느냐가 중요하다. 이런 은유의 서사, 서사의 은유가 느낌으로 잡힐 때 단순한 '봄'이 형상화의 '느낌'으로 확연하게 다가온다.
3. 기행수필,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본(⾒) 것에서 느낌(感)을 받으면 표현(表現)하고픈 욕망이 일어난다. 이것은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보고 느끼고 표현하고픈 이런 욕망을 흥(興) 또는 ‘신명나다’라고 하는데 이런 흥 또는신명은 춤으로, 그림으로, 글 등으로 표출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글로 쓴다는 것은 무언가. 쓴다는 것은 니체의 말처럼 ‘증거’일 수 있다. 곧내 존재의 흔적으로 내가 보고 느낀 것의 증 거, 내 생각 내 느낌이 어떠했는지를 나타내는 증거다. 특히 여행 기록은 더욱 그렇다. 되는 문장을 찾아내어 ‘생각하기’로 그걸 ‘정리하기’로 순서있게 개성있는 ‘언어만들기’를 해야 한다. 그러면 이번 해외 심포지엄을 통한 여행의 기행수필 쓰기를 생각해 보자.
기행수필은 우리 수필문학의 효시다. 기행수필의 시작은 신라시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ㆍ734)』에 두고 있다. 그 후 관유기(觀遊記), 사행기(使⾏記), 유배기(流配記), 표류기(漂流記) 등이 고전수필의 기행수필로 이어져 오다가 근대로 넘어와선 1920년대 이광수의 『오도답파 여행』(1917), 『금강산유기』(1924), 최남선의 『금강예찬』(1925), 『백두산 관참기』(1926), 유광열의 『개성행』(1923), 김영진의 『서경행』(1926), 이선근의 『남행산필』(1926) 등이 발표 되었으며 1987년 『김찬삼의 세계여행』(1987) 전10권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 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많은 이들이 기행수필집을 내고 있는 상황이고, 한국수필가협회에서도 매년 인산기행수필문학상을 선정 시상하는 것처럼 수필가들도 여행수필집 한 권쯤은 갖고 있을 만큼 기행수필 쓰기는 일반화되었다. 하지만 정보 내지 흥미 위주 또는 자기 기록 목적의 글로 스스로 제한하는 경향이 많아 문학적 가치로 크게 평가받기엔 미흡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이러한 것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특별한 테마 기행수필 집을 내고도 있다.
기행수필은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자신이 겪은 여행의 경험이나 관찰한 것, 여행 중의 상념(생각) 등을 담아낸 글이다. 따라서 목적있는 좋은 기행 수필을 쓰고자 하면 몇 가지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1) 예습 곧 여행 전의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
아무 사전 지식이 없이 갔을 때보다는 여행할 곳에 대한 경로를 미리 알아보면서 자신의 여행 목적도 정하는 것이 좋다. 내가 갈 곳에 대한 문화 역사 기후 등도 미리 알아보고 사전지식을 갖고 가면 여행의 맛을 더 확실히 맛볼 수 있다. 여행 중에 함께 할 사람들, 여행지의 문화와 역사 및 자연환경 등의 사전지식도 적극적인 관찰과 그때그때 느낀 것을 기록할 때 큰 도움이 되며 나중에 글로 정리하기도 쉽다.
소수서원은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말의 성리학자인 안향 선생을 기리고자 건립한 최초의 서원으로 처음에는 백운동서원이라 불렀다.(이용옥 「선인의 길을 따라 중」)
2) 잘 보고 짧은 묘사의 메모로 남기거나 관찰을 기록으로 남긴다.
여행의 생생한 묘사와 정확한 관찰은 곧 글의 내용이다. 여행지에서 먹어본 음식의 맛과 향 그리고 모양, 그곳에서 만나거나 마주친 사람들의 인상이나 분위기, 처음 보는 건축물에서 느낀 신비로움 등을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눈으로 특징들을 잘 살펴본 후 그림을 그리듯 기록해 놓으면 글이 생동감 있고 현장감이 넘치게 된다.
어둠이 죽었다. 간밤 어둠이 보이지 않는다. (채선후 「바람소리 씻김소리」 중)
3) 독특한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이 필요하다.
여럿이 함께 하는 여행도 결국은 나만의 여행이다. 내가 보고 느낀 감정과 생각을 스토리텔링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눈으로, 내 생각으로 경험한 바를 나만의 새로운 가치 판단과 비판의 눈 그리고 호기심 등으로 담아낼 때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조금씩 보여주던 바다가 갑자기 자신을 전부 드러내니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이내 시작과 끝은 본래 하나였음을 보여준 것이다. 바다에서 태양은 조각조각으로 나뉘어 반짝이고 있다. (조정임 「간월암에 물이 차 오른다」 중)
4) 글의 구성과 문체가 중요하다.
수필에서의 구성과 문체는 글의 품격 결정의 중요 요소다. 잘 읽히면서 글쓴이의 개성이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구성이 필요하다. 여행지의 무엇을 어떤 순서로 쓸 것인지 어떻게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읽는 이도 나처럼 보고 느끼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글을 써가면 좋은 글이 될 것이다. 좋은 구성과 좋은 문체로 쓰인 글일 때 좋은 수필이 된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경이(驚異)는 오로라를 만나기 위해, 지상의 마지막 남은 순백의 빙하를 찾기 위해 북극으로 떠났다. 오로라와 빙하천국이라는 알래스카를 자동차로 달리면서도 나는 오로라를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초조감을 느꼈다. 지금 내가 달리며 내뿜는 자동차의 매연에 질린 오로라가 어찌 그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알래스카의 페어뱅크스를 지나 북극선 위카츠브 지역까지 차를 몰고 신나게 달렸다. 그곳은 여름 석달은 밤이 없는 지역이고, 겨울 두 달은 낮이 없는 지역이다. (허상문 「오로라를 기다리던 시간」 중)
2002년 5월 9일, 날씨는 쾌청하고 바람은 싱그러웠다. 오후 2시 40분, 북경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우루무치로 향했다. 실크로드 8박 9일의 일정 시작이다. 비행기는 몇 시간 째 사막 위를 날고 있다. 나는 평생 처음 만나는 사막이 신기하여 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지상을 굽어본다. 푸른 빛이 사라진 황톳빛 대지, 몇 시간 전에 떠나온 신록의 푸른 산하, 푸른 우리 강산이 문득 그리움으로 다가선다. (변해명 「길없는 길을 따라」 중)
구성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울 때 글도 잘 읽힌다. 또 잘 이해가 된다. 좋은 문체가 된다.
5) 새로운 정보와 지식도 제공하는 글이면 더욱 좋다.
이미 알려져 있는 정보 말고 내가 처음 보거나 알아낸 나만의 정보는 내 수필을 읽는 독자들이 만나는 기쁨이 될 것이다. 기행수필에서의 정보와 지식은 독자에겐 유익한 서비스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땅덩어리에 비해 무덤이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큰 것이 문제되어 화장을 권장하게 되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산사람이 차지하고 살아야 할 땅도 모자랄 만큼 작은 나라에서 죽은 자가 땅을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신수옥 「아들과 함께한 나들이」 중)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일 수 있어도 이렇게 글을 통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보나 지식은 공감대를 불러오게 한다.
6) 테마수필로의 기행수필
전문성과 탐구성을 갖춘 문화기행, 미술기행, 종교기행, 박물관기행, 수도원기행, 사찰기행, 섬기행, 숲기행, 맛기행 등 다양한 테마 기행수필을 도전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피피섬은 디카프리오의 <더 비치>라는 영화를 촬영한 곳이고 우리나라에 소개된 몇몇 광고 영상도 이 섬을 배경으로 하였다고 한다. 배경이 너무 아름다워 나 같이 인물이 조금 빠진 사람에게도 좋은 장면이 연출될 것 같았다. (조우신 「영화 한 장면 찍어」 중)
영화 촬영장소만을 찾아 쓰는 기행수필, 사찰 기행, 맛 기행, 섬 기행, 작은 교회 기행, 간이역 기행, 사라져 가는 우리 것들, 방언 기행, 지역 민요 기행 등 자기만의 테마를 찾아 글을 쓰는 것은 자기만의 브랜드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채선후는 진도 생활 7년을 담아 진도 수필의 책 한 권을 내었으며, 이정원의 꽃 수필, 유혜자의 음악 수필도 이미 자리가 잡혀있는 상황이다.
7) 형식의 다양성에도 도전
테마수필을 얘기했지만 일기문 형식, 편지글 형식, 사진과 함께하는 형식 등 형식의 다양성을 추구하면 그냥 쓰는 수필보다 훨씬 격있어 보이고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다양한 형식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겠다. 에세이란 말 자체가 그런 시도의 뜻을 품고 있지 않은가.
상인들의 달콤한 유혹이 눈과 귀를 쫑긋하게 한다.시끌벅적 떠드는 소리, 즐겁게 웃는 소리, 경쾌한 음악소리, 쉼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소리, 덤이라도 더 달라 하니 안 된다 하는 흥정의 소리는 재래시장에서 볼 수 있는 사람 냄새다.(박원명화 디카에세이 「재래시장 풍경」 중)
8) 기행수필 쓰기에 줄 수 있는 팁
대개의 기행수필이 갖는 매너리즘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의 ‘꽃피는 산골’이다. 왜 나의 살던 고향이 누구나의 고향과도 같은 ‘꽃피는 산골’만이어야 할까. 기행수필뿐만 아니라 체험을 글로 만드는 수필에선 ‘그 속에서 놀던 때’와 ‘그 속에서 놀던 때의 나’를 그려내어야 한다. 그래야 천편일률적인 글이 되지 않는다. 꽃피는 산골은 누구나의 고향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놀던 나’는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다른 ‘나만의 때와 나’가 글이 되어야 한다.
4. 나가며-내가 쓴 글이 향기나는 작품이 되게 하려면
기행수필은 특히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기행수필이야말로 자기만의 독특한 정서를 품는 맛깔스런 글이다. 따라서 최소한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를 구상하고 시작해야 한다. 또한 보고 느낀 정경의 묘사에만 치중하다 보면 몇 장의 사진을 보는 것 같을 수 있다. 그 속에서도 내 삶 그리고 내가 주체여야 한다. 따라서 무언가 의미가 되기 위해선 자기만의 발견과 해석 그리고 의미부여가 있어야 한다. 내가 갔을 때 보지 못한 것을 작가가 보여줄 때 독자는 더 크게 공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기행수필은 내가 가야만 쓸 수 있는 글이다. 여행은 여기서는 보지 못해서 꼭 거기에 가야만 볼 수 있기에 떠난다. 그렇게 하여 내 눈에 직접 그곳을 담아오는 것이다. 어쩌면 숭고하고 거룩한 미지의 땅에서 낮에는 하늘의 해가 망을 봐주고 밤에는 별과 달이 우리를 지켜주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체험이니 얼마나 소중한 일이고 행복한 일인가. 그것을 눈으로 본 것으로만 그친다면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내 필력이 모자란 것이 한이라던 옛 선인들의 한탄이 헛말이 아닐 것이다.
계획을 세울 때부터 두근대던 가슴이 떠나기 전날 최고도로 고조되고 그곳에 도착했을 땐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탄성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 여행의 기쁨 아닌가. 그걸 섬세하게 정밀하게 은은하고 향기롭게 글로 만들어냈을 때의 기쁨은 여행 중에서 만났던 기쁨보다 적지 않을 것이다. 내가 쓴 글이 그런 향기롭고 아름다운 작품이 되도록 해보고 싶지 않은가. 이런 미지의 신화를 수필로 만드는 기쁨은 더 크고 멋질 것이다.
㈜ 인터넷에서 <기행수필의 맛과 멋내기(최원현)>를 검색해서 연계해서 읽어보시면 더 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