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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는 누구인가 원문보기 글쓴이: 비단금
누구나 살다가 한번쯤은 죽음에 대해 생각 할 때가 있다. 어떤 이들은 아주 어린나이 때부터, 어떤 이들은 지인들의 죽음을 접하게 될 때, 혹은 어떤 이들은 병상에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처자식을 버리고 출가하신 이유에는 죽음문제도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번 생각해 보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일까. 아마도 삶과 죽음일 것이다 - “죽는냐 사는냐 이것이 문제로다”. 세상에 나와 있는 종교는 인간의 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 종교에서 사후세계를 말한다. 중요한 종교의 시발점이 된 분들은 어떠한 형태든지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들이셨다. 그런데, 실상 그분들의 죽음관이 어떠했는지는 후대사람이 알 수는 없다. 각 종교의 경전들이 내려오기는 하지만, 그 경전들을 그분들이 직접 쓰지는 않았다(제가 아는 한 그 종교의 시발점이 된 분이 직접 교리를 기술한 것은 원불교뿐인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각 종교에서 말하는 사후세계의 개념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 죽음을 두려워 하는 그 종교의 신자들을 달래기 위해, 혹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굳건히 견디며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 갈수 있도록 달콤한 미끼를 마련하기 위해 그 종교의 지도자들이 사후세계를 뻥 친 것일 수도 있으며(요즘 세계에서 벌어지는 자살폭탄테러 이면에는 찬란한 사후세계가 보장된다는 달콤한 심리적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윤회전생사상도 인도의 신분제도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지배계급이 고안해 낸 개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 나타나는 윤회설도 인도나 티벳등의 윤회사상이 후대에 끼여 든 것이지 본래 석가모니께서는 윤회를 부정하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방 끈이 긴 많은 사람들은 이와같이 여러 종교에서 말하는 사후세계가 어떤 목적에서 나온 뻥으로, 근거없는 희망과 미신에 바탕을 둔 허구적인 개념이라 생각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죽음을 자주 접하는 분야에서 밥벌이를 하는 관계로, 사후세계, 윤회전생등에 대한 문제에 관심이 많아 이쪽분야의 서적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최근 서구에서는 깜짝 놀랄 정도로 이 분야에서 연구 성과를 보이고 있다. 특히 “가사(near-death)경험”과 “전생을 기억하는 어린이”에 대한 연구에서 많은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번 글에서 이런 분야에서 서구의 죽음의 대한 연구를 소개하겠다(유마와 수자타에 올렸던 글을 조금 정리했음).
<가사체험>
가사(near-death)경험에 대한 최초의 진지한 연구작업은 20세기의 심리학자나 정신병학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19세기의 유명한 스위스 지질학자인 알버트 하임(Albert Heim)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알프스 산맥 등반 중에 추락하여 사경을 헤매게 되었는데, 그때 그는 신비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는 극한 상황과 죽음에 관련된 주관적 경험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몇 십년 간에 걸쳐 치명적인 사고를 당해 거의 죽음상태에 있다가 살아난 많은 사람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또 스스로 관찰을 해서 자료를 긁어 모았다. 예컨대 전쟁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사경을 헤매던 군인, 고공에서 작업을 하다 추락한 인부들, 험한 산맥 공사 및 철도 공사 중에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서도 기적적으로 살아 남은 노동자들, 거의 익사 상태에서 살아난 어부들이 그에게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하임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알프스 산맥 등반 중 추락해서 사경을 헤매다 겨우 살아난 사람들에게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한 설명이다.
하임은 1892년 스위스 등반가 협회의 모임에서 그가 밝혀낸 사실을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거기에서 그가 내린 결론을 보면 사례별로 제각기 다른 환경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사 상태에 대한 주관적인 경험 내용이 놀랍게도 95% 정도나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즉 처음에는 정신활동이 고양되고 증진되며, 사건에 대한 지각 및 그 결과에 대한 예상이 이례적이라 할 만큼 명확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굉장히 길어지며 사람들은 현실을 매우 정확하게 판단도 해가면서 빛과 같은 속도로 활동한다. 대개 이 단계가 지나면 갑자기 인생을 조감할 수 있는 단계가 찾아온다. 그 단계가 절정에 다다르게 되면 초월적인 평온감을 느끼게 되며, 아름다운 초자연적 광경과 천상의 음악소리를 듣게 된다. 하임의 견해를 따르면 갑자기 죽음에 직면하게 되는 돌발 사고의 경우에는 당사자인 희생자들보다도 목격자들이 훨씬 더 “끔찍하고 잔인하게” 느낀다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 목격자들은 깊은 충격을 받아 온몸이 얼어 붙는 공포감에 사로잡히며, 그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게 되지만, 희생자들은 육체적으로 심한 상처를 받지 않는 한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나 그 사건으로부터 빠져 나온다.
1961년 카알리스 오시스와 그의 동료들은 임종을 맞는 환자들을 다룬 경험이 있는 의사와 간호원에게 설문지를 보내 600여장 이상 회수하여 그 내용을 분석해 보았다. 그에 따르면 사망하기 바로 전에 의식을 지녔던 10%의 환자 중에서 상당수가 사후세계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했다고 되어 있다. 그들이 본 모습 중에서 어떤 것은 전통적인 종교 개념이 나타내고 있는 것과 매우 흡사해서 사후 세계는 천국, 낙원, 혹은 영원한 도시와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 밖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 날고 있는 신비스런 광경이라든가, 목가풍의 정원 등과 같이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세속적 이미지도 나타났다. 흔하지는 않더라도 가끔씩 악마, 지옥과 같은 무시무시한 모습이라든지 또는 산채로 파묻히고 있다는 끔찍한 느낌이 경험되기도 하였다. 오시스는 이러한 임종의 경험이 종말론적 신화내용 및 LSD, 메스칼린 등과 같은 환각제 복용으로 야기된 환각 현상과의 유사성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1971년 아이오와 대학의 정신병리학자인 러셀 노이예스는 죽음에 직면했던 사람들의 수많은 체험담을 연구하였는데, 그 가운데에는 하임이 수집해 놓은 스위스 산악 등반가들에 대한 자료 뿐 아니라 칼 구스타프 융과 같은 독특한 인물의 자서전 내용과 문학에 나타난 죽음에 관한 기록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이런 경험 내용중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패턴을 찾아내었는데, 거기에는 3개의 연속적인 단계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그가 저항의 단계라고 이름붙인 단계인데, 자기에게 위험이 닥쳐옴을 알아차리고 죽음의 공포에 떨며 생명을 구하려고 갖은 애를 쓰지만 결국에는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시기이다. 두 번째는 지나온 인생을 조감해 보는 단계로서 그 기간 중에는 임종을 맞이하는 이의 지나간 기억 중 중요한 것들이 다시 되살아 나거나 그의 전생애가 집약되어 주마등처럼 재 경험된다. 마지막은 초월의 단계로서 ‘우주적’ 상태에 의식이 놓여 있다는 경험을 하거나,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단계이다.
노이예스는 자동차 사고를 당한 직후 뒤이어 겪은 내면적 상태를 기술하고 있는 젊은 여인의 다음과 같은 사례를 통해 죽음의 경험을 생생하게 분석해 내고 있다. 그녀가 몰던 자동차는 어느 널찍한 고속도로에서 브레이크 파열을 일으켰는데, 그 후 젖은 도로 위를 마구 미끄러져 운전 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여러대의 차와 충돌하였으며, 마침내 커다란 트럭의 옆을 들이 받고서야 멈추게 되었다고 한다.
“내 차가 요동을 치고 있던 몇 초 동안 나는 시간이 몇 세기나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나는 내 생명에 대해 끔찍스런 공포와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다가 갑자기 내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느끼게 되었지요. 이상하게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자 그 때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깊은 평화와 평온함이 찾아왔어요. 그것은 마치 내가 내 존재의 가장자리-나를 담고 있던 몸-로부터 내 자신의 바로 중심으로 옮겨 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곳은 아무런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 아주 고요하고 편안한 곳이었지요. 내가 전에 명상을 할 때 사용하던 주문이 내 의식 가운데 떠올라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회전하였어요. 영화필름처럼 내 앞에서 주마등 같이 펼쳐지는 나의 지나간 생애를 보고 있노라니 어느덧 시간이 사라져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마침내 죽음의 순간에 도달했을 때 나는 어떤 투명치 않은 커튼을 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어요. 완전히 고요한 상태에서 커튼을 통과해 가는 기분이 드는 순간 나는 그것이 어느 종말의 시점이라기 보다는 과도기적인 성격을 지닌 것임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 다음에 느꼈던 것들을 제대로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만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요? 그 순간에 내가 어떤 상태에 있었던지 간에 나의 모든 부분은 내가 이전에 죽음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을 초월한 훨씬 더 포괄적이고 광대한 연속체가 있음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예요. 그 연속체는 마치 나를 죽음으로 이끌고 갔던 힘 같기도 했는데, 끝없이 펼쳐지는 시야를 통해 나를 계속 과거로 이끌고 가는 것 같기도 하였어요.
내차가 무지무지한 충격을 받으며 트럭 옆구리를 들이 받은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었지요. 차가 멈추었을 때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는데 기적적으로 아직도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 다음에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어요. 내가 뒤죽박죽으로 얽혀 잇는 쇠붙이 속에 앉아 있으려니까 갑자기 내주위의 경계선들이 녹아 없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예요. 내 주위의 모든 것들, 즉 경찰관, 찌그러진 자동차, 지렛대로 나를 꺼내려고 안간 힘을 쓰는 인부들, 앰블랜스, 근처 울타리 너머에 핀 꽃들, 텔레비전 카메라 맨들 모두와 내가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하였어요. 나는 내 몸 어디엔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것이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 상처는 내 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괄하면서 급속히 확대되고 잇는 그물의 한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던 것 이예요. 햇빛은 유난히도 밝고 찬란하게 빛났으며 전 세계가 아름다운 빛으로 가물가물하게 느껴졌어요. 나를 둘러싸고 일어난 극적인 사건의 한가운데도 이러한 상채는 지속되었지요. 그 사고와 그로 인해 제가 겪었던 경험 덕분에 나의 세계관과 인간 존재에 관한 나의 이해 방식은 전적으로 바뀌게 되었어요.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만 해도 나는 정신적인 영역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으며 내가 생각하는 인생이란 단지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기간 일 뿐이라는 정도였지요. 그래서 나는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할 대마다 몸서리치곤 하였지요. 우리는 어차피 한번은 삶의 무대에서 떠나가야 하며 그 다음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는 주장을 나는 신봉하고 있었던 것이예요. 나는 내가 사는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할 기회가 과연 나에게 주어질 것인가 하는 조바심으로 안절부절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이제 내 위치는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지요.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는 이제 제한된 시간 내에 존재하는 제한된 육체라는 개념을 통해서는 더 이상 규정 지어질 수 없다고 느낀답니다. 나는 내 자신이 신적인 것이라고 기술될 수 있는 보다 포괄적이며 창조적이고 무제한적인 조직망의 한부분임을 알고 있어요“
죽음의 체험에 대해 현대 서구인들이 지니고 있던 관심은 1975년에 레이몬드 무디의 ‘삶 이후의 삶’(Life after life)이라는 책이 간행되자 굉장히 증대되었다.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그 책의 저자는 가사 상태에 빠졌던 사람들의 경험사례를 150여개나 분석하였고 임상적으로 사망 판정을 받았으나 그 후 되살아난 50여명의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면담하였다. 그 연구 결과를 근거로 해서 그는 거의 변함없이 나타나는 죽음의 경험에 대한 어떤 전형적 요소들을 추출해 낼 수 있었다.
죽음의 경험을 다룬 모든 보고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실은 이런 주관적인 사건을 도저히 말로서 설명할 수 없다는 체험자의 불평 말고도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는 느낀 것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점은 죽음의 경험과 신비적 상태가 공유하는 특징이다. 또 다른 중요한 공통점은 자신의 몸으로부터 자기가 빠져 나왔다는 것을 명확하게 느꼈다는 사실이다. 혼수 상태에 빠져 있거나 사망 판정을 받은 후에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자기가 자신의 몸을 보았으며, 위에서 혹은 좀 떨어진 곳에서 주변 광경을 목격하였고, 의사, 간호원, 그리고 친척들이 자기의 상태에 관해 걱정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들었는가에 대해서 적어 놓고 있다. 그들은 자기의 시신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했던 행동을 자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의 내용은 후에 실제로 조사를 해봄으로써 그 정확성이 입증되기도 하였다. 몸에서 빠져 나오는 경험은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하며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수시로 모양이 바뀌는 구름이나 에너지의 모습 혹은 순수한 의식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고 말하였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몸을 지니고 있다는 분명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몸이란 현상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들을 수도, 볼 수도 없고, 어느 곳이나 투과 가능한 그러한 것이었다고 하였다. 이따금 육체적인 몸으로 되돌아 가려는 욕구와 두려움, 혼란 등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하지만, 그 밖에도 사람들은 황홀지경에 가까운 무시간성, 무중력성, 평온함의 느낌을 경험하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특이한 소리를 들었노라고 말했는데, 그 중 어떤 이들은 그 소리가 매우 진저리나는 것 이었다고 한 반면, 다른 이들은 장엄하고 초월적 음악과도 같이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소리였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어둡고 밀폐된 곳을 통과해 지나갔다고 말한 사람들도 상당히 많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그들은 그곳을 터널, 동굴, 굴뚝, 원통, 계곡, 물통이나 하수구라고 묘사하였다. 또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죽은 친척이라든가 친구 그리고 ‘수호령’이나 길을 알려 주는 정령들을 만났다고 보고하고 있다. 특히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체험된 것은 ‘빛의 존재’에 대한 환상이었는데, 그것은 신비로운 광선의 근원이며, 사랑, 온화, 동정, 유우머와 같은 인격적인 자질도 지니고 있던 것으로 여겨졌다. 빛의 존재와 만나게 될 경우에는 종종 지나간 인생에 대한 조감이 행해지며, 신의 심판이나 자기 스스로의 판결과 같은 것이 함께 경험되었다. 무디는 그가 발견한 것을 토대로 하여 사후에 겪게 되는 전형적인 경험을 재구성해 보려고 하였다. 사후 상태에 관한 그의 모델은 자기가 실제 체험한 것이라기 보다는 많은 기록에 바탕을 두어 만들어 낸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 우리의 논의에는 매우 흥미 있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 어느 사람이 임종을 맞이하고 있다. 극도의 육체적인 고통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그는 의사가 자신에게 사망 선언하는 것을 듣는다. 그는 커다란 종소리나 윙윙거리는 소리와 같은 불유쾌한 소음을 듣기 시작한다. 이와 동시에 그는 자신이 길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매우 빠르게 빨려 들어 가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 때가 지나면 자신의 육체에서 자기가 빠져 나와 있음을 갑자기 깨닫게 되지만 아직까지는 직접적인 물리적 환경 속에 놓여 있다. 그는 자신이 마치 구경꾼이기라도 하듯이 거리를 두고 자신의 육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여느 때와는 다른 이러한 생소한 위체에 서서 그는 자기를 소생시키려고 애쓰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 보며 감정이 다소 고양 되는 듯한 상태에 머물게 된다. 잠시 후 그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자신의 기묘한 입장에 적응해 나가게 된다. 그는 자기가 아직 ‘몸’을 지니고 있으나 그 몸은 그가 남겨 놓은 육체와는 전혀 다른 성질과 힘을 지닌 것임을 깨닫는다. 곧 다른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다른 이들이 그를 만나러 와서는 도움을 베풀어 주게 되는 것이다. 그는 벌써 오래 전에 죽은 친구들, 친적들의 영들을 얼핏 보게 되며 전에는 결코 본 적이 없던 사랑스럽고 다정한 영-빛의 존재-이 그 앞에 나타난다. 이 존재는 말없이 그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평가하게 하면서 지나온 그의 생애에서 주요한 사건들을 뽑아 파노라마처럼 순식간에 보여준다. 그리고 어떤 시점에서는 지상의 삶과 내세의 삶 사이에 명백한 한계를 긋는 일종의 장애물이나 경계선에 그 자신이 다가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지상에 되돌아 가야 하며 아직은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그는 저항을 한다. 왜냐하면 이제가지 그는 사후 세계를 쭉 경험해 오면서 강렬한 기쁨, 사랑, 그리고 평화의 감정에 압도되어 버려 다시 되돌아 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는 자기의 육체와 결합하여 살아나게 된다.
후에 그는 자기가 경험했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질 않는다. 우선 그는 이런 신비로운 체험을 기술할 만한 말을 찾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자기가 다른사람들의 웃음거리 밖에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더 이상 말하려고 하지 않게된다. 그러나 그 경험은 그의 여생에 계속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며, 특히 그의 사생관은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무디가 관찰한 내용과 내세를 다룬 문헌의 내용, 특히 티베트의 사자의 책에 나오는 바르도(Bardo)상태(티베트의 사자의 서는 번역되어 나와 있다. 정신세계사에서 나온 것도 있고, 나는 경서원에서 출판된 것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서는 바르도를 중음이라 해석해 놓았다)와는 놀랄 만치 유사하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매우 비슷한 요소가 나타나는 부분은 죽음과 재생의 과정에서 당사자가 깊이 있게 죽음과 대면하는 경험을 하고 있을 때이다. 이런 것은 정신분열증 환자에게서 무의적으로 이 따금식 발생하는 상태와도 흡사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
가사(near death)상태를 경험한 사례의 연구가 죽음에 대한 연구에 주를 이룬다. near -death experiences(NDEs)(가사체험) 용어는 1975년에 정의됐다. NDEs에는 사고작용이 빨라지거나, 주마등처럼 살아온 생을 보고나하는 인식(인지)적인 요소와 편온함이나 기쁨의 감정을 느끼거나하는 감정적인 요소, 몸밖을 빠져 나오거나, 미래의 영상을 보거나 하는 비정상적인 요소와 죽은 친척이나 수호령을 만나거나, 생시에는 볼 수 없는 현상을 경험하는 초월적 요소가 포함된다. 1998년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NDEs의 빈도는 9~18%이다. 2001년 Lancet(의학분야에서 인용횟수가 아주 높은 저널이다)에 아주 훌륭한 논문이 발표됐다. 제목은 Near-death experience in survivors of cardiac arrest : a prospective study in the Netherlands이다. 네덜란드에 소재한 병원 10곳에서 심장마비후에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여 회복된 344명을 대상으로 했다. 344명을 NDEs 경험한 그룹과 경험 못한 그룹으로 나누어 추적 관찰하였는데, 2년과 8년 후에 두 그룹을 비교하였다. 이 연구의 목적은 NDEs을 일으키는 원인과 경험의 빈도, 강도 및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무엇인가를 밝히려 했는데, 왜 소수에서 NDEs를 경험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관심있는 분들은 논문을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란다. 의미있는 결과를 추려보면.... 62명(18%)이 NDEs경험했고, 이중에서 41명이 강도가 깊은 경험을 했고, 강도가 깊은 경험을 한 경우에는 심폐소생술 한 후 30일 이내에 사망하는 경우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다고 보고 했다. 추적 2년째에 NDEs 경험한 경우(35명)와 경험하지 못한 경우(39명)에 삶의 태도의 변화도 조사했는데, 두 그룹 간에 통계적으로 의의가 있는 차이를 보이는 결과를 보여줬다. 이 논문에서는 몸에서 빠져나오는 경험을 한 경우를 실었는데, 저자들은 얼마나 큰 호기심을 보였던지 veridical out-of-body experience이라고 veridical(진실을 말하는, 진실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소개하고 있다. 환자를 처치한 CCU(심장질환자중환자실)간호사가 보고한 내용이다.
-- 야간 근무를 하고 있을때, 의식이 없는 44세 남자환자가 엠브란스에 실려 CCU으로 왔다. 목초지에 쓰려져 있는 것을 1시간 전에 행인이 발견하여 신고 되었다. 도착 후 기도를 확보하고 심장충격기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intubation를 실시하려고 보니 틀니를 하고 있어 내가 틀니를 제거하여 crash car(간단한 처치기구나 용품을 놓는 곳으로 이동이 가능한다)에 올려놓았다. 진료진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1시간 반 후 심장이 뛰고, 혈압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호흡이 돌아오지 않아 인공호흡기 처치를 위해 ICU(중환자실)로 옮겼다. 1주정도 지나 CCU로 돌아온 그 환자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내가 그에게 약을 주려할 때 나를 보고 그가 말을 했다. “오! 저 간호사가 내 틀니를 어디에 두었는지 알고 있지” 나는 무척 놀랐다. 그리곤, 그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요, 당신은 내가 여기로 실려 올때 거기에 있었죠. 당신이 내 틀니를 빼서 저 car에다 놓았죠. 그 car에는 여기에 있는 이런 병들이 car 위에 놓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미닫이 서랍이 있는데 거기에 당신이 내 틀니를 넣었지요.” 나는 이 환자가 그 당시에는 깊은 혼수에 빠져 있었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는 너무나 놀랐었다. 그는 위쪽에서 자기가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모습과 심폐소생술을 분주히 하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보고 있었던 듯이, 내가 더 물어보니, 심폐소생술이 행하여 진 곳에 상세한 상황과 그 처치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정확히 묘사를 했다. 그 당시 그는 우리들이 심폐소생술을 그만두지 않을까, 그러면 자기가 죽을 것이라는 두려운 생각을 하면서 지켜 보았다고 했다. 실제로 우리들은 환자가 내원당시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예후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 했었다. 그는 나에게 말하길, 자기는 그 당시에 나는 아직 살아있으니 계속 심폐소생술을 해야 한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는데 알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이 경험이 충경 적이며,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는 4주후에 건강을 회복하여 퇴원했다. --
이 연구에서 NDEs 경험그룹과 비 경험그룹의 삶의 태도변화는 life-change inventory-scores라는 설문지를 사용했는데, 문항에는 사회적 측면에 대한 태도, 종교적 측면의 태도, 죽음에 대한 태도, 기타 등의 항목이 있다.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임사(가사)체험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는 주목할 만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칼 구스타프 융의 자서전에서 인용하겠다. 칼 융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이고, 융의 자서전은 정신세계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반드시 일독을 ‘해야’할 책으로 생각하고 있다.
--1944년 초에 나는 심근 경색증에 이어 다리의 골절상을 입는 재난이 닥쳤다. 의식을 잃은 가운데 헛소리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온갖 환상을 보았고, 그것은 마침 내가 위험한 상태에 빠져 산소호흡과 캄풀 주사를 맞고 있을 때에 시작되었던 것이 틀림없다. 환상의 이미지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나는 죽음이 가까와 온 줄로 생각하고 있었다. 후일 담당 간호원은 “선생님께서는 마치 밝은 광휘에 둘러싸인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그 녀가 덧붙인 말에 의할 것 같으면 그러한 현상은 죽어가는 사람들에게서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나는 죽음의 경계선까지 다가가서 꿈을 꾸고 있었는지, 망아(忘我)의 도취 상태에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생각지도 않은 일이 나의 신상에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우주의 높은 곳으로 올라가 있는 것 같았다. 아득히 먼 아래로 푸른 빛이 빚나는 속에서 지구가 떠 있는 것이 보이고 그곳에는 짙푸른 바다와 대륙들이 보이고 있었다. 아득히 먼 발치에는 세이론이 있고 그 앞쪽 멀리에는 인도반도가 있었다. 나의 시야속으로 지구 전체가 들어오지는 않았으나 지구의 구형은 선명히 떠 오르고, 그 윤곽은 멋진 푸른 빛에 비추어져 은빛으로 빚나고 있었다. 지구의 대부분은 착색이 되어 있었다. 군데군데 그을린 은빛처럼 짙은 녹색의 반점이 붙어 있었다. 왼쪽 아득히 먼 곳에는 커다란 광야가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는 적황색의 아라비아 사막이 있었으며, 은빛 대지가 붉으스레한 금빛을 띠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홍해가 계속되고, 다시 더 아득히 먼 뒤 쪽으로는 마치 지도의 왼쪽 상부가 되는 지점에 지중해를 겨우 조금 볼 수 있었다. 나의 시선은 주로 그쪽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밖의 지역은 거의 똑똑히 볼 수 없었다. 눈에 뒤덮인 히말라야가 보였으나 그곳은 안개가 짙고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왼쪽 방향은 완전히 전망이 가려져 있었다. 나는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어는 정도의 고도에 달하면 이와 같은 전망이 가능한가를 후에 가서야 나는 알았다. 그것은 놀랍게도 거의 일천마일이나 되는 고도였다. 이 고도에서 바라다 본 지구의 조망은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광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한참동안 나는 물끄러미 그 지구를 바라다 본 후 다시 방향을 바꾸어 인도양을 등지고 서 있었다. 나는 북쪽 방향을 향해 서 있었는데 그때는 남쪽을 향해 서 있는 줄로만 알았다. 시야 속으로 무언가 새로운 것이 들어왔다. 약간 떨어진 공간 속에 운석과 같은 시커먼 돌덩이가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거의 나의 집채 만한 크기였거나, 혹은 그것보다 좀 더 큰 돌덩이였다. 그 돌덩이가 우주 공간을 표류하고 있었다. 나 자신도 우주 속에 표류하고 있었다.
이것과 똑같은 돌을 벵갈만의 연안에서 본 일이 있었다. 그것들은 황갈색의 화강암의 덩어리였다. 그들 중 몇 개는 속을 뚫어서 예배당이 만들어져 있었다. 내가 보았던 돌덩이도 그와 같은 거대한 검은 돌덩이였다. 입구는 작은 대기실로 통하고 있었다. 그 입구의 바른쪽에는 흑인인 힌두교도가 돌로 된 의자위에 망아의 상태로 흰 까운을 입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두 발자국을 옮겨서 이 대기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 안에는 왼쪽 편 예배당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벽장에는 각각 접시모양으로 움푹 패여 있었고 그곳에는 야자유가 가득 들어있었다. 작은 심지에 불이 켜지고 그것들이 문의 주위를 밝은 불꽃의 소용돌이로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일찍이 세이론의 칸디에 있는 ‘불타의 성스러운 이’라고 하는 사원을 방문했을 때 이러한 정경을 실제로 본적이 있었다. 문은 몇 겹으로 늘어선 이러한 종류의 기름의 불로 가장자리가 표시되어 있었다.
내가 바위의 입구로 통하는 계단에 다가갔을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즉 모든 것이 탈락해 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목표로 삼았던 것, 희망했던 것, 사고했던 것 모든 것, 그리고 또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나에게서 사라져 가며 이탈해 가고 있었다. 이과정은 극히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남은 것도 조금은 있었다. 그것은 일찍이 내가 경험하고 행동하고, 나의 주변에서 일어났던 것이 전부였으며, 그러한 모든 것이 마치 현재 나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들은 나와 함께 있었으며, 또한 그것들 모두가 나 자신이었을 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자면 나라는 인간은 그러한 모든 사건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의 역사위에 구성되고 있다는 것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나였던 것이다. <나는 존재했던 것과 성취했던 것의 묶음인 것이다. >
이러한 경험은 나에게 몹시 가난한 생각을 갖게 했으나 동시에 매우 충족된 감정을 갖게 하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었다. 나는 객관적으로 존재했으며, 생활했던 존재였다는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박탈되어 버렸다는 소멸감이 강렬했다. 그러나 갑자기 그것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이 존재했던 사실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이 기정 사실이 나와 있을 뿐이었다. 어떤 것이 사라져 버리고 빼앗겨 버린다 할지라도 아까운 것이 없었다. 반대로 나는 나 자신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그리고 나는 그것들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또 다른 것이 나의 주의를 끌었다. 예배당에 다가가서 나는 밝은 방으로 막 들어서려는 참이었는데 그곳에서는 내가 그곳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게 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나와 나의 생애가 어떤 역사적 관련 속에 있는가를 궁극적으로 이해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태어나기 이전에 무엇이었을 까,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을까, 그리고 나의 생명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 것인가를 납득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를 것이다. 내가 살았던 나의 인생은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하나의 이야기와 같은 것으로도 생각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나는 역사상의 한 단편이며, 전후의 문맥을 잃어버린 하나의 발췌이다 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인생은 많은 사건의 긴 연쇄로부터 분리된 것처럼 생각되었으며 많은 문제가 해답이 주어지지 않은 채 남겨져 있었다. 왜 이런 길을 걸어 왔을까. 왜 이와 같은 특별한 전제를 짊어지고 왔을까. 나는 도대체 그러한 전제에 대해서 무엇을 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무엇이 생겼을까. 나는 바위 속의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면 이들 모든 의문에 대해서 당장 하나의 답을 얻게 되리라고 확신했다. 그곳에서는 만물이 이러한 상태에 있을 것이며, 그 밖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또한 나보다 앞서 무엇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나 이후에는 무엇이 오게 될 것인가 라는 나의 의문에 대해서 답해 줄 수 있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되리라고 확신했다.
이와 같이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었을 때 나의 주의를 끄는 일이 일어났다. 아래쪽으로부터, 즉 유럽의 방향으로부터 하나의 이미지가 떠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의 주치의였던 H박사라기 보다는 황금의 쇠사슬이나, 혹은 또 황금의 월계관으로 만들어졌던 H박사를 닮은 모습이었다. 나는 당장에 <아, 이 분은 나의 주치의다. 물론 나를 치료해 주는 분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는 원초적인 모습으로, 즉 코스 지방의 파시레우스(王)로서 찾아 온 것이었다. ((주)파시레우스는 왕이다. 코스는 아스크레피오스 사원의 유적으로서 고대의 저명한 고장이며, 히포크라테스의 탄생지다.) 이 세상에 있어서는 그는 코스지방 왕의 화신이었으며 태초로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원초적 형태의 가상적인 구현이었을까. 이제 그는 원초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나 자신도 원초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습을 나 자신이 볼 수 없었으므로 단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가 내 앞에 섰을 때 우리들 사이에는 말없는 가운데 서로의 생각이 오고 갔다. H박사는 나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지구에서 파견되었던 것이다. 즉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는 데 이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지구로부터 떠날 권리가 없으며, 되돌아 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메시지를 내가 듣자마자 그 환상은 사라져 버렸다.
나는 몹시 낙심했다. 이제 와서는 모든 것이 공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탈락의 고통스러운 과정은 무익한 것이 되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서 동료들과 교제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다시 한번 살려고 진정으로 결심하기까지에는 실제로 3주간이 더 걸렸다. 어떤 음식도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먹을 수가 없었다. 병상에서 바라다본 거리들과 산들의 경치는 점점이 검은 구멍이 뚫린 그림, 무위가 찍힌 커튼처럼 보였으며, 혹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건이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너덜너덜한 신문지처럼 보였다. 허탈한 기분으로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이제 나는 또다시 ‘작은 상자조직’으로 되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왜냐하면 나에게는 마치 우주의 지평선 너머로 3차원의 세계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져서, 그곳에서는 인간들이 제 나름대로 작은 상자 속에서 자신과 대좌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사실이 중요하다고 새삼스럽게 자각해야만 했다. 인생과 전 세계는 나에게는 하나의 감옥처럼 느껴졌으며, 내가 또다시 그 질서 속으로 편입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까닭 없이 화가 나서 못 견디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을 버릴 수 있었으므로 나는 그토록 기뻐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제 또 다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작은 상자 속에서 실에 의해 매달리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우주 공간 속에 표류하고 있는 동안 나는 무중력이었으며, 또한 나를 끌어당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추치의가 나를 이 세상으로 다시 데려갔다는 이유로 나는 그에게 심한 반발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의 일이 염려가 되었다. <그의 생명이 위태롭다. 제발 안전하기를 바란다. 그는 원초적 형태로서 내 앞에 나타났었던 것이다. 누구나 이러한 모습이 되면 그 사람의 죽음을 의미하게 된다. 그것은 그 사람이 이미 ‘원초적인 사람들의 동료’에 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H박사는 나 대신으로 죽을 것이 틀림없다는 무서운 상상이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다. 이 사실을 H박사에게 전달하려고 나는 가능한 한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이와 같은 노력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그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왜 박사는 마치 자신이 코스 지방의 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일까. 박사는 자신이 이미 원초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박사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나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일까> 이 일 때문에 나는 화가 났다. 나의 아내는 내가 H박사에게 무뚝뚝하게 대해 나무랐다. 아내가 말한 그대로였으나 내가 환상을 보고 있었을 때, 우리들 사이에서 경험했던 바를 전혀 논의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의 태도에 대해서 나는 늘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제기랄, 어떻게 해서라도 그는 조심해야만 한다. 그는 자신이 지금부터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매우 조심을 해야 한다고 그에게 말을 할 수는 없을까>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나는 분명히 믿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상 나는 그의 마지막 환자가 된 셈이었다. 1944년 4월 4일 나는 그날까지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고, 병 후 처음으로 침대 옆에 앉을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날에 H박사는 병상에 누워 두 번 다시 병상을 떠날 수 없었다. 듣는바에 의하면 H박사는 간헐적인 발열과 발작의 엄습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 박사는 패혈증으로 별세하고 말았다. 그분은 훌륭한 의사였으며, 또한 의사로서의 천부적 재능을 갖추고 있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내 앞에 코스 지방의 왕으로서 나타나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 몇 주일 동안 나는 이상한 리듬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낮 시간은 언제나 우울했으며 초조했다. 그리고 비참한 느낌을 가지면서 거의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이제 또다시 회색빛 세계로 되돌아가야 한단 말인가>하고 매우 우울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저녁 무렵이 되면 나는 다시 잠을 자고 거의 자정까지 계속 잠을 잤었다. 그 후 나 자신으로 되돌아 온 후에는 약 1시간 동안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은 전혀 다른 마치 황홀경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상태였다. 나는 마치 우주 공간 속을 떠다니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또 우주라고 하는 자궁 속에서 적이 안심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 그곳은 완전한 진공 상태였다. 그러나 그곳은 최고의 행복감에 넘쳐 있었다. <이것은 필설로는 다 할 수 없는 영원한 지복이다. 그리고 너무나 훌륭하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의 주변의 모든 것이 나를 매료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때만은 무언가를 먹을 수 있었다. 식욕이 증진됐기 때문에 간호원은 한밤중에도 음식을 데워서 갖다 주었다. 그 동안 그녀는 실제의 나이보다 더 늙어 보여 나에게는 유태인 노부인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위해서 유태 율법에 적합한 재래용 요리를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그녀를 보았을 때는 그 녀의 머리 주변에 푸른 후광이 비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 자신이 바루데스리모님 즉 석류의 정원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고 더욱이 그곳에서는 티페레트(榮光)와 마르쿠트(王國)의 결혼이 행하여지고 있었다. 또 나는 율법 교사인 시몬 벨 요하이었으며, 내세에 있어서의 그의 결혼식이 거행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것은 카바라적인 전통에 따른 신비로운 혼인이었다. 참으로 훌륭한 혼인식이었으나 말로서는 전달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다만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석류의 정원이다. 지금 행하여지고 있는 것은 마르쿠트와 티페레트의 결혼식이다,>라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 결혼식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결국 결혼식의 주인공은 나였다. 내가 결혼한 것이었다. 나의 지복은 환희에 넘친 결혼이었다.
차츰 석류의 정원은 퇴색하고 변화 무쌍하게 되어 나갔다. 다음에는 축제로 이루어진 예루살렘에 있어서의 ‘새끼양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일일이 세부에 관해서 묘사할 수는 없다. 그것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환희의 상태였다. 그 장소에는 천사가 나타났다. 천사는 빛이었다. 나 자신이 ‘새끼양의 결혼식’이 주인공이었다.
이윽고 그것도 사라지고 새로운 이미지, 즉 최후의 환상이 나타났다. 나는 넓은 계곡을 끝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그 계곡이 끝나는 곳부터 완만한 구릉의 산맥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계곡은 고대의 원형 극장으로 끝나고 있었다. 극장은 푸르디 푸른 풍경 속에서 당당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원형 극장 안에서는 히에로스가모스가 거행되고 있었다. 남녀의 무용수들은 무대위에 올라가 있었고, 꽃으로 장식된 긴 의자 위에는 일리아드에 씌어 있는 것처럼 만물의 아버지인 제우스와 헬라의 신비로운 혼인이 거행되고 있는 듯 했다. 이들 경험은 모두 장엄했다. 밤마다 나는 지복 상태를 방황했으며‘삼라만상의 심상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주제는 차츰 뒤섞여 가면서 흐려지고 있었다. 보통 이 환상은 약 한시간 동안 계속되었다가 다시 잠들곤 했다. 그리고 다시 회색빛 아침이 찾아오고 작은 상자와 같은 조직의 회색의 세계가 나타난 것으로 느껴졌다.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스런 일이었을까. 앞에서 말한 내적 상태가 너무나 몽환적으로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 세계와 비교된 이 회색빛 세계는 정말로 어리석은 것이었다. 이 세계에 있어서의 생활에 또 다시 가까워짐에 따라 그 내적 상태는 점점 더 아스라이 멀어져 가면서, 환상을 보기 시작했던 때부터 3주간이 지나서야 겨우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
이 글을 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위의 사례들을 읽으면서 꿈이나 명상체험에서 비슷한 것을 경험했던 분들은 깜짝 놀라실 것이다. 즉 무의식을 체험해 보면 NDEs와 아주 유사한 것들을 경험한다. 임사상태에서 경험하는 NDEs는 유식의 용어를 빌리면 7식과 8식 경험과 ‘너무나도 유사’한 것 같다. 이런 유형의 체험을 하면 그 인상은 너무나 강렬하여 경험자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그 영향은 악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발전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인용하고 있는 책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beyond death; the gates of consciousness이다. 이 책을 다 읽어보면 저자들이 의식이라 하는 것은 무의식(unconsciousness)과 대비되는 의미의 의식이라기 보다 오히려 유식의 識의 개념에 가깝다고 느낄 것이다.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지금에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어떤 계기에 의해서든 유사한 경험들을 하고 있다. 종교체험이거나 임사체험이거나 또는 명상체험으로든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 이글의 또 다른 목적인 것이다. 대문호 헤르먼 헤세는 깊은 경지를 경험한 명상의 대가이다. 그의 소설 싯달타를 읽어보면 자신의 명상체험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에서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의 글로 기억되는 구절이 있다. 명상 중에 재생되는 과정을 경험한 이한테는 종교가 필요 없다는 구절이 생각난다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레이몬드 무디의 life after life 발간한 1975년 이후 서구의학계에서는 30년동안 가사체험을 연구해 왔다. 가사체험을 연구하는 이들의 학술모임단체가 international assocation for near-death studies 이다. 1978년도 창립되었는데, 2006년 북미학회가 텍사스 대학MD Anderson cancer center에서 열린다. 이곳은 세계제일의 medical complex를 자랑하는 곳(삼성이건희 회장이 폐암을 치료받았던 곳이다)으로 이런 곳에서 학회가 열린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NDEs가 의학계의 주관심사로 접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겠다.
NDEs 의 내용이 개인의 영역을 넘어 문화적, 종교적 영역에 까지 미침에 따라 의학분야에서 종교 혹은 영혼성(spirituality)의 문제까지도 다루려는 변화들이 서구의 의료계에게 일어나고 있다. 일련의 변화들을 영국 Kings college의 정신과교수인 Dr Peter Fenwick의 말을 인용해 소개해 보면, 1. 미국의과대학에서 spirituality에 대한 강의는 1995년에는 3개 대학에만 개설되었던 것이 1998년에 40기관, 2001년에는 무려 100개 의과대학에서 개설되었다. 21세기는 의료교육 과정의 초기에 spirituality 영역을 배운 의료진을 배출하는 시대가 되었다. 2. 1997년도 하버드대학에서 기도에 대한 컨퍼런스가 열린 후 기도의 효과에 대한 연구들이 수행되었고, 여러 연구에서 기도의 치료효과가 있음을 보이는 결과가 얻게 되었다. 최근에서 심장학을 다루는 전문학술지에 미국과 영국의 병원에 환자를 위해 기도해주는 이들을 두자는 논문이 실리기도 하였다. 3. 1999년 영국의 심리학회에서 spiritual psychology 분과를 시작했고 2000년에 분회를 열고 4년만에 800명의 정신과의사들이 이분회에 가입하였다. 4. 2000년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에서 Handbook of religion and health를 출판했다. 이 책의 한 장에 spiritual medicine분야의 연구성과가 담겨져 있다. 5. 현재 spiritual medicine의 여러분야에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의학에서 spirituality의 역할이 실험연구에 중요하고 빈번한 주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