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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학2:1-23, 살후2:1-5, 13-17, 눅20:27-38
제목 ; 우리가 가르친 진리를 굳게 간직하라!
요즘 보험사기가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병원
마다 교통사고와 관련된 나이롱환자가 넘쳐난다고 합니다. 어
느 병원을 가던지 환자복을 입고서 술을 마시고 있거나 담배
피우고 있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들려드리는 이
야기는, 어느 기자가 밝힌,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쉰 세 살 김 아무개와 쉰 네 살의 최 아무개는, 같은 회사를
다니다가 명예퇴직을 당했습니다. 이들은 재취업한다는 게 무
척 어렵다는 것을 알고, 두 사람이 함께 힘을 모아서 창업하기
로 했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생각한
것이 보험을 이용해서 돈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보험사기를 치기로 한 것입니다.
보험 중에는 ‘후유장애보험’이라는 것이 있는데, 손과 다리에
각각 30%만 장애를 입어도 막대한 보험금을 탈 수 있다는 겁
니다. 그런데, 30% 장애는, 손가락뼈에 이상이 있거나, 발가락
다섯 개 정도가 관절장애를 입었을 경우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김 씨가 먼저 아파트 4층
높이의 공사장 계단에서 굴렀습니다. 이때, 최 씨가 뒤에서 밀
어주었습니다. 그 결과, 3억 원의 보험금 타낼 수 있었다고 합
니다. 일단, 이들의 1차 계획은 대성공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는, 최 씨 차례가 되었습니다. 김 씨가 뒤에서 밀었습
니다. 그런데 그만, 최 씨가 잘못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그 자
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김 씨는, 사업은 고사하고, 사람
을 죽인 살인자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김 씨는 경찰에
서 모든 사실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결국, 두 사람이 벌인 보험
사기극은, 한 사람은 죽는 것으로 끝났고, 다른 한 사람은 장애
자 신세가 되어서 일 년간 징역을 받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그
누가 주님의 날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말을 하더라도, 그런 뜬
소문에 당황하거나 흥분하지 말라(2)’고 하면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거기에 미혹되거나 속아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3)’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먼
저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 생기고, 지옥의 자식인 무법자가
나타날 것(3)’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옥의 자식’은 ‘모든
신을 다 무시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옥의 자식’은 ‘찬양과
예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다 부수어버린다(4)’는 것입니다.
‘지옥의 자식’을, ‘공동번역’에서는 ‘멸망할 운명을 지닌 악한
자’라 번역했으며,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멸망의 아들인 무법
자’로, ‘쉬운성경’에서는 ‘지옥에 속한 악의 자녀’로, ‘표준새번
역’에서는 ‘불법을 행하는 사람, 곧 멸망의 자식’이라고 번역하
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지옥의 자식’이란,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는 악한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 ‘악한 자녀’는, 심지어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스스로 ‘하
나님’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그곳에 앉아서 자기가 하나님이라 주장할 것이
다(살후2:4)’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악하고 교만한 자
입니까? 그런데, 이런 사람이 세상에는 하나둘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거스르는 자, 곧 거짓되고 악한 사기꾼은
다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능멸하는 자,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
아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거나 방해하는 자는, 결국
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0장 27절 이하에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
해서 함정에 빠뜨리려고, 참으로 엉뚱한 질문을 하고 있는 내
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두개인들은 부활과 영생,
그리고 천사나 영혼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
을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한 것입니다.
모세의 법에는,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식을 두지 못하고 죽었
을 경우, 동생이 그 형수와 결혼해서, 죽은 사람의 대(代)를 이
어 자식을 낳아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집에 일곱 형
제가 살고 있었는데, 첫 번째 맏형이 결혼했으나 자식 없이 죽
었다. 둘째 형도 그 형수와 결혼하였지만, 그 역시 자식을 두지
못하고서 죽었다. 그래서 차례로, 일곱 형제가 다 그 여자와 결
혼했지만, 그 누구도 자식을 남기지 못한 채로 죽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여자도 죽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다 부활했을 때,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가? 그 일곱 형제가 다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니, 나
중에 부활하면, 과연 그 여자는 누구와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 이 사람들이 이런 사실이 정말 궁금해서 예수님께 물
어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믿고 있는 바, 부활이
없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서, 그처럼 말도 안 되는 예를 들
어가지고, 질문 아닌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다음과 대답하셨습니다.
결혼은, 세상에서 살고 있을 때에만 하는 것이다. 죽었다가
부활해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은 사람들은, 다시 결혼하는
일도 없거니와, 다시 죽는 일도 없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천
사들과 같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왜냐하면, 죽
었다가 다시 살아남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묻고 싶은 것은, 바로 ‘부활이 가능한가, 그렇지 않
은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거기에 대해서는, 모세가
증명해준 기록이 있다. 가시덤불 속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셨을
때, 모세는 하나님께 대하여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
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을, 그 누구의 하나님
이라고 부른 것은,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한
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
들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모든 사람
이 다 살아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거기에 있던 율법학자 몇 사람
이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성
경을 연구해온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고 했으니,
그 누가 무슨 말을 덧붙일 수가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기자는
‘아무도 더 이상 감히 묻지 못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봤자, 120년 이
상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런 인간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계
셔서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 하나님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작은 먼지나 미
물보다 못한 것이 우리 인간인데, 그런 인간이 뭘 얼마나 안다
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더군다나, 우리 인간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습니다. 그
야말로, 미래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다 눈 먼 봉사에 불과합
니다. 그러니,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여호
와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옥의 자식들’은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물론, 입으로 하나님을 찾으면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 중에서
도, 실질적으로는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밝은 눈동자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시고
있건만,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을 속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행동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에
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그러니,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도 어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데살로니
가교회’는, 어려운 형편에 놓여있는 예루살렘교회를 돕자고 했
을 때에, 정말 최선을 다해서 도왔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얼마
나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교회가 모범적인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성령의 역사와 진리를 굳게 믿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물
론, 하나님께서 그런 그들의 마음을 굳게 지켜주셨기에, 그들의
믿음은 변질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진리를 굳게 간직하면서 성결하게 생활했던 것입니다.
16세기 영국의 순교자 가운데, ‘존 후퍼’라는 사람이 있었습
니다. 그는, 성직자도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 때문에, 그리
고 ‘사제가 떡과 포도주를 놓고 축사하면, 그것이 곧 그리스도
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化體說)’을 부정했다고 해서,
런던탑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1년 반 이상이나 감옥에 갇혀 있던 그에게, 한 친구가 찾아
와서 이렇게 권했습니다. “여보게, 인생은 달콤한 것이지만, 죽
음은 아주 쓰디쓴 것이라네. 이 점을 생각하고, 제발 고집을 버
렸으면 좋겠네!”하고, 세상 권력과 적당히 타협해서 죽음을 피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하지만, ‘후퍼’는 단호한 말투로 그 친구에게 “내세에서 누리
게 될 영생(永生)은, 이 세상에서 누리게 되는 것보다 훨씬 더
달콤하다네. 그리고 ‘지옥의 고통’은 죽음보다 훨씬 더 쓰다는
것을 알아야 하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얼마
후에 화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맞게 된 ‘후퍼’는 사형
집행관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복을 빌어주었습니
다. 그런 다음, 그는 “주 예수여, 제 영혼을 받아주소서”라고 외
친 다음, 드디어 순교의 제물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때 당시, ‘후퍼’가 그 친구의 권면대로 세상권력과 타협해
서 생명을 더 유지했더라면, 오늘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후퍼’
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반면에, 배교자 ‘후퍼’라
는 이름이 남아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천국이 아
닌 지옥에서, 그는 지금도 계속 고통당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내 후년이면, 학운교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혹시 ‘학운교회 50년사’를 발간하게 될지도 모릅
니다. 그러면, 50년사를 쓰는 사람은, 학운교회와 관련된 사람
들을 일일이 찾아서 만나보고, 역사기록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학운교회에 출석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내려
지게 되리라고 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큰 공헌을 한 것으
로 평가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기록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니다 그만 둔 사람, 열심히 다닌 사람,
다니다 말다하기를 거듭한 사람, 누가 봐도 모범적으로 신앙생
활을 한 사람,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들도 기록할 것입니다.
그리고 ‘학운교회 50년사’는, 우리 후손들과 신앙의 후배들이
두고두고 읽어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선배들이 어떻
게 믿음생활을 했는지, 특히 자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얼마
나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지 유심히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자신의 선조가 훌륭하고 아름답게 기록되어 있으면,
그들은 아주 대단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활동하던, 그 당시의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신앙생활 행적이 사도 바울에 의하여 자세하게 기록
되어서, 이처럼 수천 년을 걸쳐서, 수많은 나라 수많은 사람들
에게 소개될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이 한 가지 마음으로 살았을 뿐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사도 바울이 가르쳐준 그대로 살
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하
나님께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던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바울이 가르쳐준 대로 살지 않고 그 반대
로 살았다면,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기는커녕, 오히
려 근심과 걱정을 해야만 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학운교회를 처음 설립하신 분은 ‘길춘자’ 장로님이십니다. 벌
써 오래 전에, 이미 고인이 되어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그런
데, 그 길 장로님이 학운교회를 내려다보실 때마다, 어떤 생각
과 어떤 마음을 갖게 될까요? 감사한 마음일까요, 아니면 안타
깝고 슬픈 마음으로 우리 교회를 바라보시게 될까요?
물론, 우리도 머지않아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
면, 우리의 손자나 손녀들, 아니면 증손자나 증손녀들이 우리
학운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그
래서 우리 마음에 들게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겠
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아주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후손들도 반드
시 있을 겁니다. 그야말로, 신앙생활을 엉망으로 하거나, 아니
면 세상에 푹 빠져 사는 후손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천국과
지옥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으나, 그때에
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너무나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천국에 있는 우리는, 어떤 자녀가 천국에 들어오게
되고, 어떤 자녀는 지옥에 들어가게 될지 이미 다 알 수가 있
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우리의 손자가 지옥에 들어가
는 것이 틀림없게 되었을 경우, 그때 우리 마음은 어떠하겠습
니까? 여러분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안타까워도, 우리가 직접 내려와서 사랑하는
우리 손주들을 천국에 들어가는 길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곳에 있을 동안, 우리 후손들이 본받고
따라올 수 있도록, 모범적이고 열심을 다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제대로 신앙생활 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도, 그들이 따라올까 말까 한데, 과연 지금처럼 우리가 신
앙생활을 했을 때, 과연 우리의 후손들이 얼마나 천국에 들어
갈 수가 있을까요?
이미 말씀드렸듯이, 지금은 우리가 천국이 과연 정말 있는지
없는지 그 확신이 없으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제대
로 하지 않아도 별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
다. 그러나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갔을 때, 그래서 우리의
후손들이 천국으로 올지, 아니면 지옥으로 빠지게 될지 알게
되었을 때, 과연 지금처럼 그렇게 무덤덤한 태도로 우리의 자
녀들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 중에서는 그런 분이 한 분도 없기를 간절히 소망합니
다. 제발, 우리 학운교회 성도들 중에서는, 그 누구 단 한 사람
이라도, 그때에 땅을 치면서 통곡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진리의 말씀을 마음
에 잘 간직하고, 그 진리를 굳게 지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분명 그리
멀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주님은 이 땅에 다시 내려오
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 모두, 재림예수를 영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크게 후회하지 않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무쪼록,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그때까
지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굳게 지켜 살아가시
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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