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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어찌하여 도령의 숨결이 저토록 거칠단 말씀이십니까? 부디 아무 탈 없이 도령께서 쾌차할 수 있도록 스님께서 도와주십시오. 하찮은 저희 무당 모녀를 구하다 저리되셨으니 이녁들은 도무지 어찌해야 할 바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낮에 발티 재를 넘어오다 봉변을 당할 뻔 했던 무당 한실(寒實) 이었다. 그리고 옆에 엎드려 기도를 드리고 있는 젊은 아낙은 의옥(毅鈺)으로, 한실을 신어미로 삼고 따르고 있는 애기무당 이었다.
금봉산(錦鳳山,남산) 자락 창룡사(蒼龍寺) 경내 요사체 안이었다.
무당 모녀를 구하려다 표창에 맞은 나이어린 사내가 요를 깐 채 벽을 등지고 누워 있었다.
끊임없이 땀이 흘러내리고 신음소리와 함께 연실 처절한 몸부림을 치며 거친 숨결이 천장까지 높아졌다가 잔잔해졌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표창을 뽑아낸 자리주위로는 시커멓게 타듯이 죽어있는 피부가 보였고 잔뜩 부어올라있었다. 상처 부위 조금 위를 끈으로 둘러 동여매고는 대침으로 상처부위를 여러 번 찔러 제법 많은 피를 짜냈는데 그 빛깔이 검붉었다. 급한 대로 창룡사 주위에서 몇 가지 약초를 구해 찧어서 환부에 붙였다가 떼어내고 다시 붙이기를 서너 번이나 거듭한 중이었다.
스님은 혼절한 젊은 사내의 앞섶을 벌려 흠뻑 젖어있는 땀을 닦아주고 있었고, 곁에 앉은 선비 차림새의 남자는 좌선을 한 채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였다.
두 사람 뒤로 무당 모녀가 안절부절 하며 뒤에 무릎 꿇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으며, 범바위 쪽에서 말을 달려 올라왔던 젊은 사내의 아재비는 퍼붓는 소나기에도 아랑곳 않고 무거운 침묵 속에 요사체 밖에 서있었다.
“스님. 필요하시다면 쇤네 무슨 일이고 하겠습니다. 부디 도령님을 살려내 주십시오. 저리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차라리 이년이 지옥 불속을 뛰어들겠습니다. 제발 좀 살려내 주십시오.”
젊은 사내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만큼이나 괴로운 듯, 의옥 역시 땀에 흠뻑 젖은 채 같은 고통의 몸부림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악물은 입술에 피가 배어나왔다. 꼭 움켜진 작은 두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점 점 암울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만 가고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저 아이도 살고 싶은 게지. 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게야. 좀 더 기다려 보시게나. 사람이고 미물이고 애초 태어날 때 의미가 있었을 터이니, 그 끝마침도 다 하늘의 뜻에 달린 것이 아니겠는가?”
‘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스님. 달리 처방은 더 없는 것이옵니까? 무슨 사단이 나기 전에 스님께서 손을 좀 써주십시오. 그렇게 손 놓으신 듯 염불이나 외고 계시지 마시고요?”
“이런. 이런 황당한 경우를 보겠나? 한 생명이 걸린 일인데 내가 먼 산에 불 보듯 지금 딴청을 피우고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거 말투로 보아하니 새끼무당 딸년보다 오래 묵었다고 어미 만신(萬神, 巫女)의 말투가 여간 매섭게만 들리지 않는구먼. 일단 나름으로는 최선으로 치료를 하였은즉, 이제 부처님의 은덕이라도 빌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여 불경을 외며 부처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십사 하는 나의 태도가 못마땅하단 말씀 아니신가? 그럼 어디 자네의 용한 칠성님이라도 불러내서 저 생명을 구해 달라 해 보시게나. 내 다시 아뢰어 부처님께서는 오지 않으셔도 무방하다 아뢸 터이니, 어서 칠성님을 모셔오도록 하시게나. 어서?”
“스님. 당장 눈앞에 보여 지는 상황이 아득하기만 하기에 부족한 만신 년이 아무 생각 없이 드린 말씀 하나 가지고 이리도 타박을 놓고 하신단 말씀입니까? 불안하고 답답하기에 아무생각 없이 드린 말씀이오니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쇤네가 잘못하였습니다.”
“어험. 어험. 자라 모가지 움츠러들듯 갑자기 그리 표정을 싹 바꾸면 오히려 내가 난감하지 않은가? 어험. 생각해 보시게. 여기 있는 옥산(玉山) 아우님으로 치면 세상천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치 나름으로 의학에 경지를 이룬 사람일세. 그가 처음부터 환자를 보았고, 우선 망진(눈으로 진찰)을 한 연후에 독상을 당했음을 알아채고는 더 이상 독이 전신에 퍼지지 못하게끔 상처부위 위를 묶어 혈의 흐름을 차단하였고, 또한 지체 없이 침을 놓아 맥의 손상은 없도록 조치하였으며, 상처 부위를 처방하여 죽은피들을 뽑지 않았는가? 나름으로 급하게 처방한 연후에 절진(환자의 손과 배를 만져보는 진찰)을 하고 맥진을 하여 약초를 구해 환부를 치료하기 까지 하였거늘, 어찌 이 같은 애씀 들을 당장 눈앞에 차도가 없다하여 이토록 심하게 매도할 수 있단 말인가? 피부에 종기가 있으면 탕약이나 고약으로 고칠 수 있음이요, 혈맥에 병이 있으면 침으로 고칠 수 있겠으나, 독이 속을 지나 골수에 이른다면 편작이나 화타가 온다 해도 고칠 수 없을게야. 하니 이제 남은 것은 바로 환자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운명 아니겠는가?”
스님의 말씀은 결코 만신 한실을 힐책하고자가 아닌 다분히 자조 섞인 쓸쓸함이 가득 배인 말씀이었다.
그때였다.
이제껏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참선을 하던 선비 차림새의 사내가 품안에 갈무리해 두었던 작은 보자기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엄지와 검지 손톱을 이용해 자르는 것이었는데, 꺼낸 그것은 엄지 손톱만한 작은 환약이었다. 환약을 반 등분한 선비는 전혀 망설임 없이 누워있는 어린 사내의 입술을 벌려 안에다 넣고는 자신의 검지를 깨물어 피를 내서는 사내의 입술사이로 넣었다.
“이 이보시게. 아우님. 지금 무슨 짓이신가?”
“보십시오. 형님. 환부의 붓기가 조금 빠지지 않았습니까? 시커먼 색도 조금 덜해졌습니다. 다행히 고비는 넘긴 것 같습니다. 본인이야 무의식중에도 괴롭고 힘들겠지만, 오늘밤만 잘 견뎌낸다면 수일 내로 곧바로 쾌차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일세. 그나저나 방금 전에 처방한 그 환약은 무엇인가?”
“환생단 입니다.”
“아니. 환생단 이라면? 천 년 묵은 박달나무의 뿌리를 열흘을 달여, 거기에 호랑이의 눈과 곰의 쓸개를 넣어 다시 열흘을 달인 후 환약으로 만든다는 그 귀한 약 말씀이신가?”
“네 그렇습니다. 일전에 묘향산에서 기연을 만나 구하게 되어, 훗날 언제고 쓰여 질 날이 있겠구나 싶어 늘 지니고 있었습니다. 다행이 오늘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오! 그 귀한 것을...... 이 어린 사내가 의기를 가지고 지극히 험한 일에 용기를 내었다가 크게 경을 칠 환란을 맞기는 하였으나, 마침 이곳을 지나던 중에 이렇게 자네를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니, 이것 또한 보통의 연(縺) 이라고 볼 수는 없겠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옥산 아우님. 정말 수고가 많았네. 이젠 환자 스스로가 살려는 의지를 가지고 이 밤을 견뎌내면 될 것이니....... 아우님. 비록 빗속이기는 하나...... 우리 어디 내려가서 곡차라도 한잔 하면서 고된 하루를 보낸 심신을 좀 녹여야 하지 않겠는가?”
“형님께서도 수고가 많으셨으니 그리하시지요. 이 아우는 좀 더 이 아이의 곁을 지켜야만 하겠습니다.”
“아니 아우님. 어째 오늘따라 나만 매정한 사람으로 만들려 하시는가? 나라고 환자의 걱정이 어찌 안 되시겠는가? 허나 아우님 말씀이 이젠 기다리는 것만이 능사라 하였으니 우리도 잠시 쉬자는 뜻인데...... 가려면 혼자나 가라 이 말씀 아니신가? 자네는 밤새 환자 수발을 들 터이니. 거 참. 조상님 병상 지키는 것보다 더 하는 것 같으이?”
“형님께선 이 아이를 모르시겠습니까?”
“이보시게 아우님. 오늘따라 점 점 모를 말씀만 하시는구먼? 그럼, 아우님은 이 사내와 이미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라 이말 인가?”
“알 것만 같습니다. 이 아우는요.”
“이런 답답할 데가 있나? 속히 말씀해 보시게. 변고 로고 변고야. 그러면 나도 알 수 있는 사람인가?”
“형님께서도 익히 잘 아는 사람입니다. 이 아우의 생각이 맞는다면.”
“이런 난감할 데가. 이보시게 아우님. 이것이 농이라면 너무 지나치시네.”
“그는 소제의 조카 이옵니다. 하면 또한 형님의 조카이기도 하지요.”
“에끼 이 사람아. 거 이 상황에 농이 너무 지나치다니까 그러시네 그려. 아무렴 내가 자네의 조카들을 기억 못하겠는가? 또 나야 혈혈단신 땡중 처지이니 조카가 없음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저도 이제껏 생각을 더듬어 오다가, 조금 전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형님께서도 기억을 잘 더듬어 보시면 익히 아실 것입니다. 여기 이 아이의 허벅지에 유난히 큰 쌍점이 보이십니까? 이 아이의 이름은 치겸(治謙)입니다. 제가 이름을 지어 주었지요. 을유 년(1225) 생 이었으니 올 해 나이가 열여섯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아비는 바로.... 막내 석평(石平)입니다.”
“뭣이라고? 방금........ 방금....... 아우님이 뭐라 하셨는가? 석평 이라 하셨는가?”
그때였다.
문 밖에 서서 쏟아지는 소나기에도 아랑곳 않고 시종일관 침묵으로 일관하던 어린사내의 아재비가 벌떡 일어선 것이었다. 그는 즉시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두 분 어르신께 승규(昇揆) 늦게나마 인사를 올립니다. 그간의 모든 부족함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둘
경자 년(更子年,1240) 4월29일 신시(申時, 오후 3시).
바위무더기 옆에 조록싸리 꽃이 피었다. 긴 꽃자루에 작디작은 꽃송이 꾸러미가 앙증맞게 매달리어 피어났다. 세모모양을 띤 세 개의 잎사귀 언저리마다 핀 꽃은 빛깔이 참 곱다. 이제 막 피어나고 있는 꽃은 옅은 분홍색 눈썹 모양의 자줏빛 꽃무늬가 있다. 새침데기 삐친 듯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고 웃고 있다.
한낮의 솔숲엔 그곳만의 향기가 났다.
산천 어디인들 소나무가 없으랴 만은, 붉은빛 세월의 옷을 입고 거북등 터지 듯 그 옷들이 헤어진, 힘에 겨워 손을 들고 있기가 힘에 부친 듯 가지를 축 축 늘어뜨린 노송들이 함께 모여 숲을 이루고 스쳐 지나는 삭풍에 지난 시절을 시로 읊어 날려 보내노라면 나그네는 그 숲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마음이 혼란스러운 게야.”
숲을 거닐던 사내는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비록 잠시 다른 생각에 몰두하였다고는 하나, 자신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누군가가 근접해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혼란스러움의 근원 또한 자신 안에 있는 것이니 부디 자중하시게나.”
단호한 듯 위엄이 서린 음성이었으나 또한 한없이 자애로움이 담긴 음성이었다.
“비장(裨將) 큰 어르신. 삼가 지평이 인사 올립니다. 그간 무탈 하시었사옵니까?”
“비장 이라니? 내가 아직도 막비(幕裨,장수를 수행하던 부관. 비장) 란 말인가? 하하하. 다 부질없으이. 관아에선 나를 막되어먹은 종놈이라 해서 막비라 부르긴 하네만.”
잡목 우거진 수풀 속에서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덜너덜 누더기 베옷을 걸치고 허옇게 쉰 백발을 새끼줄로 이마에 질끈 동여맨 노인이 나무지팡이를 손에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보이기와는 달리 걸음걸이 하나만은 아직 시퍼런 청년의 걸음걸이였다.
“그 사람도 나를 어쩌지 못하건만, 나를 이래라저래라 하는 자는 아마도 지평이 자네 뿐 일게야. 허허허. 그래 그 사람은 잘 있는가?”
“송구하옵니다. 큰 어르신. 스승님은 여전 하오십니다. 진즉이 제가 찾아가 뵈올 것을.”
“아닐세.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으나 자네가 왔다니 의당 만났을 것임이며, 이곳을 내가 택하였은즉 내발로 온 게야. 더 늙기 전에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넨, 이곳이 어딘지 아는가?”
“어림(蓹林,충주 안림동의 마을) 이라 들었습니다.”
“어림 이지. 이궁지(離宮址) 라고도 하고, 둘러보면 주초석과 받침돌들이 수풀 속에 널려 있을게야. 한때 백제의 이상을 꿈꾸던 귀한 장소라네.”
한강유역을 도읍지로 백제의 개로왕은 고구려 정벌의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고구려는 선왕(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물려받은 장수왕의 시기였다. 곧 고구려도 남진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위협을 느낀 개로왕은 중국 위(魏) 나라에 원군을 청하여 협공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위나라의 배신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던 중, 고구려의 첩자 도림(道琳)이 바둑을 핑계로 접근하여, 지형적으로 보다 안정된 곳을 찾아 천도를 하자는 꼬임에 속아 서둘러 천도를 계획 하였다. 그리하여 위례성을 버리고 새 도읍지로 물색한 곳이 중원의 전략적 요충지 국원(충주) 이었으며 이곳 어림이 새 도읍지의 궁궐터였다. 개로왕은 왕자 문주(文周王)를 보내 가행관(假行官)을 짖고 본격적인 궁궐을 축수하기 시작했다. 허나 너무나 막대한 비용이 들고, 갑작스런 공사로 많은 노동력이 동원되자 민심은 점점 흉흉해 지고 마침내는 국가의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강성해진 고구려의 대군이 들이닥친 것이다. 위례성은 함락되었고 개로왕은 장수왕의 고구려군 에게 살해되었다. 결국 문주왕은 충주 천도를 포기하고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것이었다.
“큰 어르신. 저는 어느 나라의 백성 입니까?”
“자넨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고려의 백성이옵니까?”
“그렇기도 하고.”
“백제의 백성이 아니옵니까?”
“그 또한 그렇기도 하겠네.”
“하오시면. 우리의 적은 누구입니까?”
“적이 바로 적인게지.”
“고려가 적이옵니까?”
“그렇기도 하겠지.”
“북이(北夷.오랑캐)도 적이옵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하오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우리에겐 모두가 적이 아니옵니까?”
“그럴 수도 있겠고 아닐 수도 있겠네만.”
“스승님께서도 답을 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역시 큰 어르신도 답을 주시지 않는군요.”
“혼돈의 시대인 게야.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은 쉽다네. 허나 그 여파는 아주 오래갈 수 있음이야. 흘러간 물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야. 그러니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신중하고 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게야.”
“분명한 답을 얻고 싶습니다. 그리하여야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목표로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이제껏도 잘 해왔고, 자네는 앞으로도 잘 해나갈게야.”
“벗어나고 싶습니다.”
“벗어나고 싶다. 벗어나고 싶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 허면 자네는 이미 벗어나 있는 게야. 자네 스스로를 붙잡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누가 무엇이 어떻게 자네를 붙잡을 수 있겠는가? 그 순간 이미 벗어난 게야. 내 생각은 그렇다네. 그런데 이렇게 내가 말을 해 주었음에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때는 자네는 벗어날 수 없는 게야.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하던 무슨 짓을 하던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게야. 아시겠는가? 모든 것은 자네 맘속에 있는 것이야.”
“어렵습니다.”
“살아남아야지. 이제껏 우리가 그래왔던 것처럼 결론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것이야. 지금 자네가 격고 있는 고충은 내게도 있었고 자네 스승에게도 있었네. 똑같이 벗어나고 싶었지. 다 같은 마음 이었을 것이야. 허나 누구도 벗어나지 못했네. 고충은 우리 같은 한 두 사람으로 족한 것일세. 자네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이 어떤지는 알고 있지 않은가? 더 말을 해 무엇 하겠는가? 그들의 삶 앞에 자네나 나의 고충은 어쩜 사치일지 모르네. 그네들에 비하면, 자네는 수월하게 벗어날 수도 있겠고 뜻한 바를 추구하고 성취할 수도 있겠지. 어디든 정착해서 소중한 사람과 행복과 안정도 찾을 수 있을 것이야. 그러면 그 나머지 그네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괴롭습니다.”
“괴로워야지. 살아남기 위해선 더 괴로워야지. 그네들의 삶을 위해서 더 괴로워야 한다면 자네는 의당 더 괴로워야지. 살이 찢기고 벼가 부서지고 영혼마저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을 당할지라도 그들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선 더 괴로워야지. 그게 이미 자네를 옭아맨 운명인 게야. 자네가 원했던 원치 않았던 말일세.”
“큰 어르신은 그 고통에서 한 걸음 비켜나 보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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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