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수사 道修詞
◎ 도수사는 유학자들의 탄압을 피해 남원에 도착하여 계해년 12월 말에 지으신 가사이다. 이 가사는 관청의 탄압을 피하여 전라도 남원으로 떠나올 때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 넓고 넓은 이 천지에 정처 없이 떠나올 때, 울적한 나의 마음은 의지할 곳이 없었네. 오직 명아주 지팡이만 벗을 삼아 걸었네. 밤에는 객사의 창에 기대앉아 있다가, 엎치락뒤치락 잠 못 이루노라면,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네.
◎ 도를 받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일, 남원으로 떠나올 때의 일을 회상하신다.
2 하늘님의 은혜가 망극하여, 내가 이 세상에서 만고에 없는 다함없이 큰 도를 꿈인 듯 생시인 듯 받았네. 구미산 용담은 아름다운 곳이었네. 나는 가난해도 그 속에서 도를 즐겼네.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먼 곳과 가까운 곳 할 것 없이, 어진 선비들이 모여들었네. 그들은 마치 바람처럼 구름처럼 모여 왔네.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었던가? 비록 이내 몸의 좁은 생각이지만, 법과 도를 정성껏 가르쳤네. 그러나 불과 일 년이 지나고 나서 정처 없이 떠나온 이내 발걸음이여, 불현듯이 며칠 안에 떠난다고 말했을 때에, 사방에서 찾아온 나의 벗들은 묵묵히 한마디의 말도 못 하고, 나도 또한 세세한 정을 말 못했다네.
◎ 제자들에게 정성과 공경을 지켜서 도를 닦으라고 가르치신다.
3 이제 나는 수천 리 머나먼 곳에 이렇게 외롭게 혼자 앉아서, 내 소견이 좁았다고 생각하고는, 천 리 밖 고향 땅에 계신 벗들께 이렇게 글과 말을 전해드리니, 어진 벗들은 무정한 이내 사람 갋지를 말고, 정성과 공경이라는 두 글자를 지켜 차츰차츰 도를 닦아 가면, 이것이 다함없이 큰 도가 아니겠소? 때여, 때여, 그때가 오면, 도와 덕이 이뤄지지 아니하겠소?
◎ 스승의 가르침을 올바로 전해 받아서 법도를 어지럽히지 말라고 가르치신다.
4 나의 모든 어진 벗들이여, 어리석은 이 사람을 잊지 말고 생각해 주소. 성현의 경전을 살펴보았다면 연원과 도통이라는 말을 알 것이오. 처음 스승이 도를 전해주면 이를 받은 사람이 다음 스승이 되어 계속 그 도를 전하는 흐름이 연원이요, 그런 흐름 가운데 정통성 있는 계통을 도통이라 하니, 공자님에게 육예를 전해 받아 이를 통달하여 전한 것이 가장 훌륭한 도통의 사례일세. (그러나 공자님의 제자들이) 스승의 도덕을 한결같이 꿰뚫었다 할지라도, 삼천 제자 가운데 육예를 통달한 이가 몇 분이나 되었던가? 칠십이 명이 도를 통달하여 먼 미래의 세상에 한결같이 전하고자 했지만, 천 년도 못 지나 전자방과 단간목과 같은 이가 법도를 어지럽혔으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소?
◎ 게으르지도 말고 급한 마음도 갖지 말고, 차근차근 도를 닦으라고 가르치신다.
5 나의 어진 벗들은 예와 지금의 일들을 본받아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따르고 받아들이시오. 십년을 공부해서 도와 덕을 이룬다면 빨리 이룬다 할 수도 있겠지만, 다함없는 이내 도를 삼 년 안에 못 이루면, 다함없는 도란 말이 그 아니 헛말이겠소? 조급한 여러분이여, 여러분은 사람이 할 일은 아니 하고 하늘님이 도를 빨리 주시기만 바라서는 안 되오. 갑자기 부자가 되면 좋은 조짐이 아니라는 말도 오랜 옛날부터 전해 오지 않았던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먼저 닦고 하늘님이 주시는 사명을 기다려야 함을 여러분도 자세히 알겠건만, 어찌 그리 급하신가?
◎ 마음을 조급히 하거나 말을 경솔히 하지 말고, 정성을 다하여 도를 닦으라고 가르치신다.
6 사람의 재주를 상중하로 가리기도 하지마는, 좁은 나의 소견으로 바라보니, 소위 활달한 현인군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세상을 탄식하며 마음과 뜻을 바쁘고 급하게 하는 것이 분명하게 보이오. 입도한 사람들 가운데 더러 이치에 어두운 사람들은 말로만 듣고 입도를 하여 입으로만 주문을 읽으니, 어떻게 도와 덕을 이루겠소? 「나도 도를 얻었다. 너도 도를 얻었다.」 이렇게 말들이 많으니, 어지럽고 야박한 이 세상이지만 어이없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어찌 그리도 어이가 없는 말을 하는가? 어진 벗들은 자세히 살펴보며 마음을 평안하게 하시오.
◎ 윗사람과 남편이 솔선수범하라고 가르치신다.
7 윗사람이 믿음직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의심을 하게 되며, 윗사람이 공경할 줄 모르면 아랫사람도 거만해지는 것이니, 이런 일을 보더라도 책임은 지도하는 사람에게 있지 않겠소? 이 또한 그렇지만, 나의 행실을 닦고 집안을 올바르게 하지 않고서야 도와 덕을 어떻게 이룰 것이며,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세 가지 강령과 다섯 가지 윤리를 다 버리고 어떻게 어질고 미덕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집안의 분위기가 화목하고 순조로운 것은 부인에게도 달려 있지만, 남편이 행동을 엄숙하게 하면 화목하지 못한 얼굴빛이 왜 있겠소? 부인의 잘못을 타이르는 일조차 던져 버리고 자신마저 괴이하게 행동하니, 참으로 통탄스럽고 안타까운 일이오. 그 남편에 그 부인이라고 치부하고 말면 그만이겠지만, 그러나 어질고 맑은 벗들은 차츰차츰 서로 타이르면서 마음 편하게 이끌어 주시오. 그런 일로 인하여 가르치는 입장인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면, 나의 옆에 있는 여러분들도 아름답지 못한 일이 아니겠소? 그들이 하는 행동을 바라보기만 하지 말고 지극히 착하고 아름답게 깨우쳐 주어서 나의 부끄러움을 씻어주면, 그 어찌 무성한 덕이 아니겠소?
◎ 스승과 제자의 도리에 대하여 가르치신다.
8 남의 스승이 되는 법은 오는 사람을 막지 않는 것이 아니겠소? 오직 가르치는 것을 주로 하니 그밖에 무엇이 있겠소? 남의 제자가 되는 법은 백 년 동안 변치 않는 의리를 맺고, 공경스럽게 받은 글을 터럭만큼도 변치 않는 데 있는 것이오. 빼어난 군자도 가끔 있지마는, 이렇게 스승이 되고 제자가 되니 우리 도의 성스러운 덕이 아니겠소? 예로부터 성현의 제자들은 온갖 학파의 시와 글을 외우면서도, 스승으로부터 내려오는 도의 정통성을 지켜 내었소. 그렇게 하면서 공자님의 어진 도덕을 더욱 밝혀서 천추에 전해 오게 하였으니, 그 아니 기쁜 일이겠소? 나 또한 이 세상에 다함없이 큰 도를 닦아 내어, 오는 사람을 깨우쳐 삼칠 자를 전해 주니 자연스러운 교화가 아니겠소?
◎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지 말고, 스승의 가르침에 충실하라고 가르치신다.
9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운 세상 사람들이 자신이 본래 지닌 존귀한 마음은 다 버리고, 자기의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스승의 가르침에도 없는 법을 혼자 앉아서 지어내니, 천추에 없는 법을 어디에다 본을 보이겠으며, 입도 한 지 몇 달 만에 어떻게 그리 신속하게 도를 이룰 수 있단 말인가? 애달프다, 저 사람이여. 밝고 밝은 이 운수는 모두에게 다 같이 밝건마는, 어떤 사람은 군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저 모양인가? 오로지 어질고 의로우며 예의를 지키고 지혜를 기르는 것밖에 달리 무엇이 없거늘, 아득한 저 소견으로 또다시 무엇을 알려고 하는 것인가?
◎ 믿음과 예절의 중요성에 대하여 가르치신다.
10 이에 분명하게 기록하여 거울같이 밝게 전해 주니, 자세히 살펴보고 마음을 평안히 하시오. 어이없는 그릇된 행실에 대해서는 남의 이목도 살펴보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 행실을 닦으면서 남들처럼 도를 닦아 보소. 세상에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 가운데 믿음이 으뜸이니, 도량이 큰 사람의 의로운 기개와 법도가 믿음 없이 어떻게 나오겠으며, 사람이 지켜야 할 세 가지 강령과 다섯 가지의 기본 윤리도 예절 없이 어떻게 나오겠소? 도량이 큰 사람의 지혜와 법도는 부끄러움을 아는 데 있소.
◎ 도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을 깨우치신다.
11 우습구나. 저 사람은 자기가 자신을 버리고 돌보지 않으면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장난을 하니, 이는 도를 어지럽히는 사람이오. 스승에게 배우지도 못한 순서 있는 도의 법칙을 자기가 혼자서 알았다고 하니, 이는 법을 어지럽히는 사람이오. 도와 법을 어지럽히는 사람이 나를 볼 면목이 있겠는가? 그와 같이 하면 자신의 신수도 가련해지고 나의 도도 더럽혀지게 되니, 밤낮으로 하는 걱정이 이것밖에 다시없다오.
◎ 마음을 굳게 먹고 도를 닦아 좋은 시절에 만나자고 하며 글을 마치신다.
12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 마음이 변치 않으면, 결국 아름다운 덕을 갖춘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한 구절 한 글자를 잘 살펴서, 마음을 바르게 하며 도를 닦아 두면, 춘삼월 좋은 시절에 또다시 만나 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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