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감샘의 전설/ 이흥규

[화려한 겨울]

*한강문학 3호, 여름호

단편소설

감샘의 전설

이 흥 규

“아니, 이 땡볕 가뭄에 우리 논은 어찌케 허라고 말도 안 허고 남의 물을 다 퍼 갔당가. 시방?”

“미안 허구만이라우. 논바닥이 몽땅 타들어 가는디 보고만 있을랑께 가슴에 불덩어리가 올라와 눈깔이 뒤집혀졌든 개비요.”

“그래도 그렇지. 미리 말을 혀서 양해를 구하고 퍼가든지 말든지 해야제, 남 다 자는 밤에 몰래 살짝 퍼가는 것이 도둑이 아니고 뭣 이랑가?”

“도둑이라고라우? 그래도 마른 나락조께 살려 보것다고 퍼가는 물 도둑은 도둑이 아니란 말도 있잔능개비요.”

“오메! 저 뻔뻔한 낯짝 좀 보소. 벨 꼴을 다 보겠네. 아주 환장을 했구먼 환장을 혔어.”

“흥수 엄마. 그렇지만 흥수네 논은 저렇게 나락이 쌔파랗게 잘 자라고 있는디 뭔 걱정이요. 화 푸시오. 이?”

어머니들의 물싸움을 우두커니 서서 보고 있는 흥수와 시동이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가슴만 답답합니다.

흥수는 지금까지 어머니가 저처럼 화를 내며 싸우시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다정하고 말씨도 얌전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던 어머니가 얼굴에 핏대를 올려 욕설을 퍼붓고 싸우는 것은 처음 봅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시동이 어머니와 싸우는 것입니다. 시동이 어머니는 마치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그저 흥수 어머니의 화풀이에 굽실거리며 변명만 합니다.

나이가 동갑인 흥수는 시동이와 단짝친구입니다. 시동이는 날마다 아침 밥 숟가락 놓기가 바쁘게 흥수네 집으로 내달아옵니다. 둘이는 하루 종일 함께 놉니다. 그래서 흥수는 지금 이 순간 시동이를 볼 낯이 없습니다. 살그머니 곁눈질로 시동이 표정을 살펴봅니다. 시동이는 시무룩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발로 맨땅만 비벼대고 있습니다.

“뭣이라고? 남의 속에 불 다 질러놓고 화 풀어라고? 흥수야, 가자!”

흥수 어머니는 시동이 옆에 서있는 흥수의 손을 낚아채듯 움켜잡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갑니다. 흥수는 시동이에게 사과나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지만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끌려가다시피 따라갑니다. 시동이 어머니는 논바닥이 지진이라도 난 듯 쩍쩍 갈라져 물 한 방울 없이 벼가 누렇게 타들어 가는 위 다랑이 논을 바라보며

“휴 우!……”

긴 한숨을 내쉬고 힘없이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이글거리는 해님은 땅위의 생명들을 모두 다 태워 버릴 듯 뜨거운 햇볕을 석 달 째 내리 퍼붓고 하늘에서는 비 한 방울 뿌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높은 곳에 있는 천수답들은 이미 벼 잎이 오그라져 동네 사람들 모두가 하늘만 바라보며 땅이 꺼지도록 한 숨을 내 쉬지만 어찌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흥수네 논은 석 달 동안의 땡볕 가뭄에도 걱정이 없습니다. 그것은 감샘 때문입니다. 흥수네 집에서 안동네 쪽으로 난 큰길을 끼고 있는 널따란 닷 마지기 논을 마을사람들은 <감샘뱀이>라고 부릅니다. 그 까닭은 이 감샘뱀이 논에는 큰 연못이 있는데 이 연못을 ‘감샘’ 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감샘 물은 불타는 가뭄에도 끄떡없습니다. 두레로 퍼 올려도 퍼 올려도 하룻밤만 자고 나면 다시 샘에 물이 가득가득 차는 이상한 샘입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감샘뱀이 논임자인 흥수네를 부러워합니다. 이 감샘은 원래 이름이 ‘가마 샘’이였답니다.

흥수네가 사는 곳은 눈이 많이 오기로 이름난 고장입니다. 하얀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인 어느 해 겨울,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마을 사람들은 군불지핀 따뜻한 방에 웅크리고 앉아 밖에는 얼씬도 할 수가 없었더랍니다.

그런데 새 신부를 태운 가마가 감샘뱀이 논이 있는 큰 길을 지나가면서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 때문에 가마꾼들은 길인지, 논인지, 연못인지 분간조차도 하지 못하고 가다가 그만 연못 속에 빠져버렸다고 합니다. 가마와 가마꾼이 모두 연못 속에 빠졌지만 워낙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에 그 위로 계속 쌓여 가마도 사람들도 모두 샘 속에 묻혀 얼어버리고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고 합니다. 그 뒤부터 이 연못을 ‘가마 샘’이라고 부르다가 언제부턴가 ‘ㅏ’자가 줄어들어 <감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흥수야. 감샘에는 새 각시 물귀신이 있으니께 모시매들은 절대로 감샘에서 멱 감으면 안 된다. 알것냐?”

할머니가 감샘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당부한 말씀이었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동네 아이들은 감샘뱀이 논에 물을 댑니다. 감샘에서 솟는 물을 큰길 아래로 흘러 내려가지 않게 물고를 막아 놓기만 하면 감샘뱀이 논은 넘실넘실 물이 가득 찹니다. 물이 가득 찬 논에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면 드넓은 감샘뱀이 논은 얼음판이 됩니다. 이 얼음판은 동네 아이들의 신나는 놀이터가 됩니다. 동네 아이들은 모두 나와 신나게 대발 스키를 탑니다. 어느 날엔 청년들, 어른들도 얼음판에 나와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감샘 둘레에는 금줄을 처 놓고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새 각시 물귀신이 감샘 속에 들어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날씨가 추운 날이면 감샘에서는 안개처럼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한여름에는 물이 차갑기가 얼음장 같습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동네 아이들은 참 이상한 샘이라고 하면서 가마 귀신이 부리는 조화라고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흥수네 감샘뱀이 위에는 시동이네 논이 두 다랑이가 있습니다. 시동이네 논은 하늘만 쳐다보는 천수답 이여서 금년처럼 가뭄이 들면 물 댈 곳이 없기 때문에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벼가 누렇게 타들어 갑니다. 시동이 아버지 어머니는 타들어 가는 논을 보다 못해서 어젯밤에 두레로 흥수네 논의 감샘 물을 품어 올려 시동이네 아래 다랑이 논은 매 말라 고스러지던 벼가 파릇파릇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정답게 지내던 두 집이 오늘 아침 어머니들이 물싸움을 한 뒤 흥수와 시동이도 서먹서먹해졌습니다. 둘이는 아침 밥 숟가락을 놓기가 바쁘게 어울려 놀던 단짝입니다. 그렇지만 시동이는 하루 내내 흥수네 집에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혼자 심심한 흥수는 사모바위로 갑니다. 사모바위는 시동이네 집에서 흥수네 집으로 오는 길목 중간쯤의 감샘 옆 산기슭 잔디밭에 있습니다. 사모바위 주변은 폭신한 잔디가 깔려 있어서 놀이 장소로는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모바위 동산은 동네아이들의 즐거운 놀이터입니다. 그리고 거의 날마다 흥수와 시동이가 노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모바위란 이름은 큰 바위가 마치 혼인식 날 신랑이 머리에 쓰는 사모(모자)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감샘을 가마샘, 또는 각시샘이라고도 하고 사모바위는 신랑바위라고도 하며 신랑이 산기슭 잔디밭에서 각시의 예쁜 모습을 가슴을 두근거리며 바라보고 있다고도 합니다.

흥수가 사모바위에 거의 다다랐을 때 아이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솔팍 사이로 보이는 사모바위에서는 시동이가 흥수 또래의 안동네 아이들과 놀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재미나는지 웃고 떠드는 소리가 흥수의 귀에까지 크게 들려옵니다.

흥수는 아이들이 노는 곳으로 다가갑니다. 시동이는 흥수를 얼핏 보고는 못 본 척 다른 애들과 딴전을 피웁니다. 저희들끼리만 노는 모습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는 흥수는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입술을 깨물고 노려봅니다. 그래도 시동이는 관심도 없다는 듯 본체만체 다른 아이들과 재미있게 놉니다. 흥수의 가슴속에서는 심술보가 부글부글 끊어 오릅니다. 사모바위 위에 차려놓은 상에 발을 탁 올려 놉니다.

“야! 비켜. 여기는 내 자리니까 비키란 말이야!”

“야! 이게 네 자리라고 쓰여 있기라도 허냐? 발 치워!”

안동네 길채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부라리며 달려듭니다.

“이 산은 우리 산이야. 그리고 이 바위는 내 사모바위야 내꺼야!”

하고 싸울 듯이 길채에게 다가가 가슴을 내밉니다.

“야! 그럼, 너는 감샘 각시귀신 서방이냐? 얘들아! 흥수 신랑귀신 나왔다!”

하고 도망치는 흉내를 내며 조롱을 합니다. 흥수는 길채의 놀림에 약이 바짝 올라 씩씩거립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꼬리를 사납게 치켜 올리며 길채를 노려봅니다. 금방 큰 싸움이 벌어질 것만 같습니다. 만약 싸움이 벌어진다면 혼자인 흥수가 질 것이 뻔합니다. 그렇잖아도 흥수네 부모님들이 화가 잔뜩 나 있는데 흥수가 다친다면 큰일입니다. 미리 피해버리는 것이 상책입니다. 억지를 부리는 흥수를 본 시동이는

“에이! 치사해서, 즈그네 산이라고 놀지도 못하게 허네. 야! 얘들아, 우리 집으로 가자.”

하고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시동이네 집으로 가버립니다. 아이들이 몰려가버리자 혼자 우두커니 서있는 흥수는 골이 나서 참을 수 없습니다. 사모바위 위의 소꿉놀이 물건들을 발로 힘껏 걷어찹니다. 사금파리는 ‘쨍그랑!’ 하고 저 아래 길로 떨어지고 골이 난 흥수는 발만 아픕니다.

그날 밤, 모깃불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흥수네 집 마당에는 온 식구가 멍석 위에 모여 달콤한 참외를 깎아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눕니다.

“어머님, 시동이네 말 이예요. 시상에 원 이 가뭄에 염치도 없지, 밤에 도둑질 하듯 우리 감샘물을 퍼 올려가요 글쎄, 혹시 오늘밤에도 두레소리가 나는지 들어봐야겠어요.”

어머니의 말에 할머니는 ‘휴 우!’ 한숨을 내쉽니다.

“내 칠십 평생에 이런 가뭄은 첨 봤다. 시동이네도 식구덜 명줄이 붙어있는 나락 잎싹 꼬실라지는 것 봄시로 오죽이나 속이 탔으면 그랬것냐? 한번 퍼 올라간 물이니 이제 더는 말하지 말그라.”

인정 많고 마음이 너그러운 할머니의 무거운 말씀에 어머니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맙니다. 연기를 꾸역꾸역 피워 올리던 모깃불이 점점 사그라져 불빛이 잦아듭니다.

이튿날 새벽 날이 채 밝기도 전입니다. 시동이 아버지가 흥수네 집으로 달려와 다짜고짜 삽으로 마루를 탕탕 두들기며 악을 씁니다.

“원 세상에, 이럴 수가 있어? 아무리 인심이 야박하다고 이럴 수가 있냔 말이여!”

흥수네 집 식구들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첫 새벽에 들이닥쳐 큰 소리로 악을 쓰는 시동이 아버지의 행동에 넋이 나간 듯 어안이 벙벙하여 말문이 막힙니다. 흥수 아버지가 문을 열고 마루로 나오며 꾸짖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인가? 남에 샘물 다 퍼 갔으면 되얐지, 그도 모자라서 또 무슨 행패란 말이여?”

“뭣 이라고? 물 다 퍼갔다고? 아무리 그래도 타들어 가는 나락 조께 살려 보것다고 심들어 퍼 올린 물을 그렇게도 야박스럽게 다 빼내간단 말이여?”

시동이 아버지는 흥수 아버지의 멱살을 움켜잡고 흔들어 댑니다.

“허어이! 이 사람 무슨 소리를 헌당가 시방? 물을 빼갔다고? 누가 누구네 물을 빼 갔단 말이여?”

“아! 내 말이 그짓말잉가 가 보더라고, 가 봐!”

시동이 아버지는 흥수 아버지의 멱살을 더욱더 세게 조이며 끌어당깁니다.

“이런 버르장머리 웂는 막된 사람을 보았나? 누구 멱살을 함부로 잡고 난리여! 이거 놓지 못해?”

흥수 아버지는 시동이 아버지의 팔을 잡고 비틀어 뿌리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시동이 아버지는 좀처럼 손을 놓지 않습니다. 흥수 아버지와 시동이 아버지는 서로 멱살을 맞잡고 밀고 당기고 흔들며 악을 씁니다.

“아, 가 보자니께? 누가 누구의 물을 빼갔는지 가 봐!”

흥수 아버지와 시동이 아버지는 논으로 갑니다. 흥수네 식구들은 시동이 아버지가 왜 저처럼 화를 내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른들이 멱살잡이를 하고 싸우는 모습을 보는 흥수는 가슴이 벌렁거려 숨이 막힙니다. 그리고 어른들이 멱살잡이를 하고 가는 논으로 따라갑니다. 감샘 물을 품어 올려 어제는 가득 찼던 시동이네 논의 물이 흥수네 논으로 모두 빠져나가서 흥수네 논의 물은 철철 넘치는데 시동이네 논은 바닥이 드러났습니다.

“여 봐, 보라니까! 이래도 물 안 빼갔단 말이여?”

시동이 아버지는 더욱더 기세 등등이 핏대를 올려 악을 씁니다. 흥수 아버지는 어찌된 일인지 그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우리 샘물 퍼갔다고 해서 자네네 논두렁에 손댄 일 추호도 웂승께 그런 줄 알더라고…….”

“뭣이여? 이 논바닥 뻔히 봄시로 그려? 도둑놈보다도 더 무섭구만.”

“어허! 말 함부로 하지 말더라고, 그러고 찬찬히 살펴보더라고.”

흥수 아버지의 침착하게 가라앉은 말에 시동이 아버지도 화를 조금 누그러뜨립니다. 시동이 아버지는 맨 처음 물이 다 빠져나간 빈 논바닥을 보았을 때 두 눈에 쌍불이 켜지고 감정이 복받쳐 올라 물불 가리지 않고 행동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흥수네 논의 물이 아래 논으로 철철 넘쳐흐르고 있는 모습은 시동이 아버지로 하여금 도저히 참을 수 없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을 되찾아 생각해보니 평소에 흥수 아버지의 언행으로 봐서 그토록 야박하게 행동할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저 물은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흥수 아버지와 시동이 아버지는 천천히 논두렁을 살펴봅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논두렁에는 아래 논으로 물을 빼기 위해 삽질을 한 자국이 없습니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때, 흥수 아버지가 무엇을 찾았는지

“여기다! 여기에 구멍이 났다.”

하고 외칩니다. 시동이 아버지가 달려와 봅니다. 논둑과 밭 사이 언덕진 풀 속에 커다란 쥐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물은 밤새도록 이 쥐구멍으로 빠져나가 흥수네 논으로 흘러간 것입니다.

“농사꾼에게 농사는 <천하지 대본> 인디 논두렁 단속을 어찌케 했간디 이 모양이여? 그러고 똑똑히 알고나 행동 혀! 사람을 어찌 알고, 허참! 기가 막혀. 앞으로는 조심 좀 허드라고.”

흥수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며 집으로 갑니다. 시동이 아버지는 넋이라도 나간 듯 멍하니 하늘만 쳐다봅니다.

“할머니, 감샘 말이에요. 그 뒤로 가매랑 새 신부는 어떻게 되었어요?”

“으응, 이듬해 봄, 날이 풀리자 얼음이 녹아서 가매와 새 신부가 떠올랐단다. 그런디 새 신부는 겨울이라 날씨가 추우니께 시체가 썩지도 않고 화장도 지워지지 않고 산 사람맹키로 가매 속에 얌전히 앉아 있었더란다. 감샘에서 새색시 꽃가매가 떠올랐다는 소문은 날개 달린 것맹키로 금방 이웃마을로 이웃고을로 퍼져갔지. 신부는 다름 아닌 이웃 무장고을 김진사네 막내딸 이였더란다. 김 진사 네는 그렇잖아도 소식을 몰라 궁금하든 차에 그 소문을 듣고 가족들이 찾아와 울고불고 생판 난리가 났었더란다. 그리고 이것도 하눌남이 시키시는 운명잉갑다 허고 하인들을 시켜 가매채 그대로 대덕산 골짜기에 묻어 주었단다. 그래서 그 골짜기를 가매골 이라고 헌단다.”

“예, 저도 그 가매골에 가 봤어요.”

할머니는 흥수가 가마골에 갔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물으십니다.

“오메! 그래야. 언제? 누구랑?”

“시동이 형 복동이가 가매골로 나무하러 갈 때 시동이랑 같이 따라갔어요. 그런데 그 골짜기에 있는 큰 무덤을 가매무덤이라고 했어요.”

“오메! 그래야, 앞으로는 가매골에는 절대로 얼씬도 허지 말그라. 새각시 귀신이 나오니께, 그러고 감샘에는 그 뒤로 총각이 빠지면 죽고 처녀가 빠지면 살아난단다. 감샘에서 처녀가 빨래하며 물을 푸다가 빠졌는데 치마가 쫙 퍼져서 질경이 풀을 잡고 나왔단다. 그렇지만 총각은 빠지기만 하면 죽는단다. 그래서 달밤에 처녀들은 감샘에서 시원한 물로 목욕을 하지만 총각들은 얼씬도 않는단다.”

할머니 팔을 베고 누워 얘기를 듣는 흥수의 눈에 밤하늘의 별들이 들어옵니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들은 더욱 총총히 빛납니다. 은하수가 강물처럼 하얗게 흐르고 십자성 북두칠성은 초롱초롱 반짝입니다. 두 별이 서로 마주보고 도란도란 정답게 얘기를 나누듯 깜박깜박 눈총을 쏘아대는 별들도 있습니다.

저 까만 밤하늘에 속삭이는 수많은 별, 하늘의 아름다운 꽃처럼 빛나는 별, 흥수는 별을 떼어 가슴에 별꽃을 달아보고도 싶습니다. 할머니의 얘기와 반짝이는 별들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흥수는 할머니의 시원한 부채 바람에 스르르 잠이 듭니다.

이튿날, 어른들은 모두 일을 나가시고 집에 혼자 있는 흥수는 몹시 심심합니다. 텃밭에 자라는 단쑤시를 꺾어 먹어도 시동이랑 먹을 때와는 맛이 다릅니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마음 붙일 곳이 없습니다. 사립문 밖에서 안동네 쪽으로 환히 꿇린 큰길을 바라보는 흥수의 머리에 어젯밤 할머니가 들려주신 감샘 이야기가 퍼뜩 떠오릅니다. 감샘에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가슴속에 부풀어 오릅니다. 흥수는 부리나케 감샘으로 달려갑니다.

그제 저녁 시동이네가 샘물을 모두 품어가서 새물로 가득 찬 감샘 물은 네댓 길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맑습니다. 수정처럼 맑은 물속에 파란 하늘이 들어 있습니다. 하늘에 둥둥 떠 있는 하얀 뭉개구름이 더욱더 새하얗게 보입니다. 마치 어젯밤에 본 은하수처럼 샘물 속에 잠겨 있습니다. 흥수의 머리 위에도 푸른 하늘이 있고 흥수의 발아래 샘 속에도 맑고 푸른 하늘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아! 그런데 하얀 구름 사이로 예쁜 각시붕어 두 마리가 신나게 헤엄치며 놀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푸른 하늘에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니듯, 샘물 속 하늘에는 새빨간 각시붕어들이 날아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각시붕어들은 하늘의 뭉게구름을 헤집고 신나게 술래잡기를 하고 노는 것처럼 보입니다. 샘물이 너무 맑아서 하늘의 뭉개구름이 너무 새 하야서 색깔 고운 각시붕어들이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더욱 예쁘게 보이는 것 이였습니다. 흥수는 각시붕어에 정신이 팔려 보고 있다가 가까이 더 가까이 헤엄쳐 다가오는 각시붕어를 잡으려고 재빨리 물속으로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순간, 흥수는 저도 모르게 발이 뒤로 미끄러지며 거꾸로 감샘 물속에 빠져 버렸습니다.

“풍덩!…….”

흥수는 빠져 들어가는 순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온몸이 빙글빙글 돌면서 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누군가가 꼭 끌어당기는 것 같습니다. 아마 새각시 물귀신이 잡아당기는지도 모릅니다. 한참을 들어가던 흥수는 ‘쿵!’ 하고 깊은 샘물 속 바닥에 머리가 닿자 ‘아! 내가 물속에 빠졌구나.’ 하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저 막연히 그렇게 느끼기만 할 뿐 밖으로 나와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일어나지 않고 멍하니 그저 편안 합니다.

그때 위 논에서 그나마 남은 논물이 새어나가지 않게 논둑을 다독이고 있던 시동이 형 복동이가 흥수가 감샘 속에 빠지는 것을 맨 먼저 보았습니다.

“흥수가 빠졌다! 흥수가 감샘 속에 빠졌다아!……”

외치며 감샘으로 달려갑니다. 밭에서 일하고 있던 흥수 어머니도, 들에서 일을 하고 있던 동네 사람들도 복동이가 외치는 소리에 일손들을 멈추고 ‘웬 일인가?’ ‘무슨 소린가?’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달려옵니다.

복동이는 부리나케 감샘으로 달려오자마자 샘가 둔덕에 찰싹 엎드려 흥수가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흥수가 재차 물속에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르자 복동이는 흥수의 한쪽 발을 잽싸게 낚아채어 붙잡고 끌어당깁니다.

그제서야 흥수는 퍼뜩 정신이 들어 마구 허우적거립니다. 복동이는 온 힘을 다해 흥수를 샘 밖으로 끌어냅니다. 샘 밖으로 끌려 나온 흥수는 일어서려고 합니다. 그러나 온 땅이 온 하늘이 빙글빙글 돌면서 몸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하늘도, 땅도, 사람도 모두 빨갛게, 노랗게, 파랗게 색깔만 거슴츠레 하게 보이고 정신이 빙 빙 빙 돕니다.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가까스로 몸을 가누고 일어서려던 흥수는 비틀거리다가 그만 샘가 논 속으로 쓰러집니다. 허겁지겁 달려온 흥수 어머니는 흥수를 안아 일으키며

“아이고, 내 새끼야! 하마터면 죽을 뻔 했구나.”

눈물을 펑펑 흘리며 통곡을 합니다. 모여든 동네 사람들도

“쯧 쯧! 귀한 집 아들 새 각시 물귀신 밥될 뻔 했구먼…….”

“허어! 감샘에 사내아이가 빠지면 살아날 길이 웂는디, 흥수는 인자 명도 길것다.”

“흥수 엄마, 큰 일 날 번했소. 차암! 다행히 아닌게라우?”

하고 흥수 어머니를 위로합니다. 그제야 흥수 어머니는

“아니지라우, 우리 흥수는 복동이가 살려냈지라우. 복동아! 네가 우리 흥수 살려냈다. 아이고, 복동아! 고맙다. 복동아.”

울면서 복동이 어깨를 토닥거립니다.

그날 해질 무렵 흥수네 온 식구가 마당 한 가운데 모깃불 가에 모였습니다.

“아이고, 내 새끼야! 이처럼 이쁜 내 강아지를 새 각시 물귀신이 데려 갔으면 어쩔 번했을꼬. 쯧쯧!”

할머니는 흥수를 보듬고 엉덩이를 토닥거립니다.

“에미야!”

“예, 어머님.”

“우리 흥수 살려 낸 복동이 그냥 말면 못쓴다.”

“예, 어머님. 어찌 허면 좋을랑가요?”

“복동이 부모 시원한 여름 옷 한 벌 지어 입으라고 저 장롱 속에 넣어둔 모시 배 한 필 허고 복동이 새 옷 한 벌 사 입히라고 나락 한 섬 값 갖다 주어라.”

“예, 어머님. 그리할게요.”

“쇠뿔은 단김에 빼랬다고 오늘 넘기지 말고 지금 당장 갖다 주고 고맙다고 혀라.”

“예, 어머님!”

“아참! 그러고 논바닥 보면 얼매나 속이 타것냐? 우리 감샘은 물이 마르지 않을팅게 시동이네 논에 물도 품어가라고 혀라.”

흥수는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봅니다.

흥수 별 시동이 별이 더욱더 정답게 총총히 빛나고 있습니다.

♠ 芝堂 이 흥 규 시인 약력

- 한국문인협회, 광주광역시 문인협회 회원 - 광주광역시 문인협회 시분과 회장 역임 - 광주광역시 교원연수원 강사 역임 - 무등 시립도서관 문학 강좌 강사 역임 - 국제문화교류회 문화교육상 문학부문 수상 - 새싹회 글짓기지도교사상, 광주전남아동문학상 - 대통령 표창 2회 와 녹조근정훈장수훈 - 「우리문학」시 추천 등단, 국보문학 소설당선 - 전남 도민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 시집 ; [임 바라기] 외 3권 상재 - 소설집 ; [도시의 불빛] 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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