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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요즘 어딜 가나 인공지능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이른바 ‘가장 잘 팔리는’ 콘텐츠로 꼽힙니다. 머신러닝으로 통하는 이 기술의 본질적인 연구부터 인공지능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에 대한 예상까지 이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집니다. 카카오도 어떻게 보면 그 대열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접근하는 관점은 조금 다릅니다. ‘사람’을 중심에 두었다는 것이지요. 기술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들을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관점에서 지켜보자는 의도로 시작한 ‘카카오스쿨’에 인공지능은 무엇보다 첫 주제로 잘 어울리는 이야기일 겁니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은 여전히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지금 당장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을 열쇠라고도 말합니다. 어떤 이야기가 맞는 걸까요? 사실 그 답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인공지능과 더불어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가장 완벽하고 혁신적인 기술일까요?
우리의 반응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인공지능이 뭔가 새로운 기술을 제대로 보여줄 때마다 우리는 묘한 두려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알파고가 바둑으로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 컴퓨터와 사람이 쓴 신문 기사를 구분해내지 못할 때 우리는 사람과 일의 의미를 돌아보게 됩니다. 삶을 더 편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의도로 시작한 기술이 오히려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드는 묘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꼭 인공지능이 사람을 뛰어넘는 무엇인가를 보여줄 때마다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볼 것은 아닙니다. 프린터는 사람보다 글씨를 더 빨리 쓰고, 계산기는 더 정확한 값을 뽑아냅니다. 우리가 자동차보다 빨리 달릴 수 없다고 해서 사람다움을 위협받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알파고에게 예상치 못한 성적표를 받아든 직후 바둑 프로들과 만나서 들었던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처음에는 놀랍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알파고는 수천년을 이어온 바둑에 새로운 충격을 주었습니다. 오히려 알파고가 만들어낸 기보들을 통해 새로운 기술들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바둑 기사의 일자리를 걱정하던 때, 바둑계는 오히려 알파고를 통해서 바둑의 우수성을 확인하고 새로운 기술이 주는 변화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놓치면 안 되는 것이 이세돌 9단의 “승부는 졌지만 인간이 두는 바둑의 아름다움은 계속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둑의 본질은 이기고 지는 승부가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바둑돌이 만들어내는 점들이 이어지면서 그려내는 과정 자체가 아름답고, 우리가 즐기는 것 역시 바로 그 부분에 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는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도 인공지능을 접한 뒤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티센크루프는 센서와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엘리베이터가 고장나기 전에 미리 어떤 부분을 손봐야 하는지 알려주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두고, 사람이 점검하는 일을 빼앗는다고 바라보기보다 더 안전해지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엘리베이터 고장은 사람의 목숨과 연결되고, 엔지니어의 역할은 고장을 고치는 데에 있습니다. 업계의 고민을 인공지능으로 풀어낸 셈입니다.
사람다움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 기술이 추구하는 방향은 결국 도구입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대신해주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금 더 일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 본질은 바로 ‘사람다움’이겠지요. 카카오스쿨이 짚은 여덟가지 이야기도 영화 속, 소설 속, 기계 속에서 인공지능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습니다."
결국 사람다움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사람을 위협하는 것만 바라보고 겁을 먹을 게 아니라 사람다움을 더 돋보일 수 있는 활용 방법을 찾는 게 인공지능 시대를 앞둔 우리가 풀어야 하는 가장 큰 숙제일 겁니다.
그 숙제의 해답이 될 수 있을만한 8인의 강연자의 AI 온라인 강연내용이 4월 19일(목) 부터 매주 2명씩 순차적으로 공개 될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와 성원 부탁드립니다.
최호섭
카카오스쿨 AI학기 온라인수업을 연재 IT 컬럼니스트. 프리랜서로 동아사이언스, 바이라인네트워크, 비즈한국, 아레나, 한국경제TV 등 다양한 매체에서 독자를 만나고 있다. 저서로는 <화웨이>, <샤오미>, <손에 잡히는 4차 혁명> 등
인공지능 시대의 창의성
들어가며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대부분은 컴퓨터가 인간을 닮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됩니다. 궁극적으로 내 일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특히 컴퓨터가 프로그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세상의 지식과 경험들을 배울 수 있게 되면서 그 두려움은 더 커졌습니다.
물론 여전히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컴퓨터가 사람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은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머신러닝은 사람처럼 무엇인가를 새로 배우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속도나 결과물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알파고가 바둑을 배우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한 두 달입니다.
물론 여전히 컴퓨터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0과 1의 연산만을 처리할 뿐이지만 그 안에는 사람들이 의미와 새로움이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의미를 가진 ‘창의성’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시나 음악을 짓거나 뉴스 기사를 쓰기도 합니다. 컴퓨터가 ‘인간성’의 영역에 들어오고 있다고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김영하 작가의 이야기는 바로 이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새로움과 인간성의 경계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의 이야기지요.
세상엔 ‘나쁜 창의성’도 있다?
인간성 부분에서 가장 빠르게 ‘침범’을 당하는 영역이 바로 글입니다. 이미 로봇 기자가 스포츠 경기 결과를 뉴스로 쓰고, 인공지능 시인이 시를 짓습니다. 소설이라고 못 쓸까요? 그 아슬아슬한 현장을 김영하 작가는 ‘인공지능 시대의 창의성’이라는 이야기로 내다 봅니다.
과연 우리 모두가 창의적이어야만 할까요?
창의성은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요?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 ‘창의성’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가 열리면 사람과 컴퓨터의 구분이 창의성에서만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분위기도 한 몫을 합니다. 김영하 작가는 창의성이 긍정적인 부분만 너무 강조되면서 사람들을 억누른다고 설명합니다.
"창의성이라고 하면 틀에 갇히지 않고, 기존의 관습을 깨고, 참신하면서 비범하다는 생각만 떠올립니다. 그렇게 나온 창의성이 과연 긍정적인 부분만 있을까요? 도둑들도, 범죄자들도 창의적입니다."
창의성은 물론 사람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이렇게 빨리 만들 수 있는 동물은 없습니다. 그래서 창의성이 곧 인간성이라고 연결되던 것이 아닐까요? 창의성이 필요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분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뇌의 인지적 자원을 많이 소모하는 것이 창의성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번에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기 위해서 일을 습관이라는 것으로 묶어버립니다. 사람이 특별히 고민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다가 떠오르는 것이 창의력입니다."
사람의 두뇌는 반복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의적인 생각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때문에 규칙이나 습관이 정해지면 사람들은 그대로 따릅니다. 다른 변화에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하지요. 사실 기존의 생각을 깨는 것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창의성의 시작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꼭 창의적이어야만 하나
‘창의적인 생각’은 곧 ‘이상한 생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김영하 작가의 설명입니다. 새로운 것을 요구하지만 우리 세상은 과연 그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까요? 사실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 김영하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갈릴레오는 지동설 이야기를 꺼냈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적서 차별이 부당하다고 이야기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습니다. 다른 생각을 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 생각을, 또 그 생각을 한 사람을 미워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100년은 조금 다릅니다. 기술 발전을 통해서 창의성을 가진 사람들이 돈을 벌고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는 환경이 된 것이지요."
지나고 나서 보면 우스운 상황이지만 당시에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생각 자체가 불경한 생각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겠지만 사회 생활을 위해, 관습을 위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영하 작가는 창의성이라는 부분이 우리 생활에서 지나치게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곤 “인간은 과연 창의적인 존재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꺼내 놓았습니다.
"소방관이나 군대는 창의성을 맨 앞에 꺼내 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창의성보다도 정해진 매뉴얼을 정확히 따르는 것이 더 낫습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창의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은 창의성의 스위치를 끄고 사는 존재입니다. 가끔 켜야 할 때가 있지요."
우리 사회는 모두에게 지나칠 정도로 창의성을 요구합니다. 어떻게 보면 획일화된 능력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와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창의성이라는 것이 나오라고 해서 툭 튀어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막연히 새로운 것을 찾는다면 오히려 기계가 더 잘 할 수 있다
"사람은 글을 쓰면서도 여러가지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게 과연 새로울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기계는 더 기괴하고 파격적인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더 이상한 글을 쓰라고 하면 써냅니다."
예술을 창의성이라는 부분만으로 보면 이걸 사람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창의성은 곧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말합니다. 그게 꼭 좋은 결과로만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원하지만 그게 정말 필요해서인지, 아니면 새로워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꺼내놓으려는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이 깊어질수록 새로운 것은 더 찾아내기 어려워지는 법입니다. 오히려 새롭다는 의미로서의 창의성은 기계를 이용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인간의 역할과 가치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술은 왜 존재하는가
"예술은 창의성의 아웃소싱입니다."
생소하지만 놀라운 이야기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김영하 작가는 예술과 창의성 사이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예술에서 창의성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하고, 또 상상합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다 맞으면 좋을까요? 이는 미술을 비롯한 다른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평소에 떠올리지 못했던 생각으로 나를 놀라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김영하 작가는 사람들이 예술에 지갑을 여는 이유가 그 놀라움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예술 속에 담긴 이야기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거나 생각해보지 않은 상황들을 만들고 풀어갑니다. 그래서 이야기로 경험한 것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경험이 감정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김영하 작가는 예술의 완성도가 꼭 기대하지 못했던 새로움, 즉 창의적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새롭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오히려 로봇이 새롭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들을 더 많이 만들 수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공감과 소통, 감정을 통한 학습입니다. 이야기를 통해서 장애인의 입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 입장에서 경험하면 그것은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감정을 통해서 어떤 것을 경험하면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우리는 ‘사회성’, ‘인간성’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방법과 소통, 신뢰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의 상황이 마음으로 다가오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 공감은 기계가 하지도, 만들어내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예술은 그 공감의 과정이자 결과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인공지능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기계와 사람은 공감할 수 없습니다. 인공지능에는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이 담기긴 하지만 기계가 쏟아내는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설령 그게 감동적이라고 해도 ‘컴퓨터가 썼다’고 하면 김이 빠지는 느낌이 들 겁니다.
김영하 작가도 “기계에는 마음이 없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인공지능을 만나면서 더 사람다운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차별점’이라는 관점에서지요.
"인간이 가장 잘하는 것은 창의성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인공지능이, 기계가 더 새롭고 창의적인 결과물들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소통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들은
여전히 인간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인류는 이제껏 문학과 예술을 통해서 그 인간다움을 확인하고 깨닫는 과정을 반복해 왔습니다. 인공지능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반복 작업을 돕는 도구일 뿐 사람의 감정 영역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라는 IT 기업들의 이야기도 굳이 비틀어보기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인공지능보다도 숨가쁘게 흐르는 현대의 삶 속에서 공감할 여유를 빼앗기고 있는 우리 스스로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문학과 예술의 의미를 감수성에 두는 김영하 작가의 마지막 말에 어떻게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별 것 아닌 것처럼 입에 올렸던 ‘인간답다’는 말이 그 어느때보다 묵직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AI 시대의 직업, 그리고 교육
카카오브레인 CSO 라이언
들어가며
지난해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세기의 대국을 마친 뒤 온 세상은 묘한 걱정에 휘말렸습니다.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 즉 일자리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만이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바둑을 컴퓨터가 온전히 익혔고, 세계에서 손에 꼽는 실력자를 4:1로 이기기까지 했습니다. 잘 해야 ‘박빙’일 것이라는 기대는 그대로 무너져 버렸지요.
가장 ‘사람다운’ 일 중의 하나인 ‘바둑 두기’가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바둑 기사’라는 직업이 흔들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공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지요. 카카오브레인의 CSO을 맡고 있는 라이언은 바로 이 AI 시대의 직업, 그리고 교육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 놓았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일자리란
‘컴퓨터가 일자리를 빼앗는다?’ 라이언이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입니다. 일자리는 우리에게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돈을 버는 직업이라는 뜻으로 가장 많이 통하지만 우리의 삶과 인생의 목표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우리는 젊음을 공부에 투자합니다. 일자리가 흔들리면 결국 교육의 방향도 움직이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 라이언이 꺼낸 화두입니다.
"이제까지는 아이들에게 국, 영, 수를 열심히 가르치고 좋은 학교를 보내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주변은 아직도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선행학습을 하고 있는데 그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아이들에게 꿈을 꾸라고 하는데 직업적인 꿈을 지금부터 심어주는 것은 과연 좋은 일일까요?"
라이언의 이력은 묘합니다. 금융사에서도 일했고, 변호사를 거쳐 지금은 카카오브레인에서 전략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인식으로는 세 가지 직업 사이의 연결 고리는 전혀 없습니다. 그 변화의 중심은 데이터에 있습니다. 4차 산업 혁명으로 대변되는 인공지능 기술도 결국 수십명씩 매달리던 특정 반복 작업을 기계로 대체하는 데에 있습니다.
세계적인 투자, 금융기업인 골드만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Lloyd Blankfein) 회장이 “우리는 테크놀로지 회사”라고 한 발언은 업계에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실제로도 골드만삭스는 직원의 절반이 엔지니어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여겨왔던 대면 업무들을 인공지능 기반의 기술들로 대체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27살에 학교를 마치고 55세까지 직장을 다닌다고 보면 28년을 일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20년 넘게 유지되는 기업들은 많지 않습니다."
한 가지 기술과 역량으로 같은 직업에서 버티는 것이 어려워지는 시대입니다.
평생직장이라는 말도 옛날 이야기가 됐지요. ‘기술을 배워야 먹고 산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도 이제 한 가지 기술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특정 기술이 아니라 개개인이 새로운 역량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풀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직업보다 역량’ 주목받는 시대
일자리에 대해 위기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위안이 될까요? 실제로 텔레마케터나 대출상담원, 계산원, 택시 운전사 등의 일은 가장 안전하지 않은 일자리로 꼽히고 있습니다. 세상이 원하는 사람의 일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책상에 앉아서 성실하고, 꾸준히 일하는 것에 대한 가치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인공지능으로 풀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관심을 받을 겁니다. 창의력과 감정이 필요한 일들이지요. 디지털에 대한 이해가 깊게 깔리고, 그 위에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성, 감정을 처리하는 일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역량을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 가르쳐줄까요? 학원이 있나요? 아닐 겁니다. 라이언은 기업과 지원자들 사이의 괴리가 여기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학교가 기업이 필요한 역량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불만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지만 모바일과 인공지능을 통해 급격하게 달라지는 세상에 기존 교육 환경이 적응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지난 9년간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변화
"우리나라 교육 과정은 보통 6년 주기로 변합니다. 2009년 이후 2015년에 한 차례 개정됐습니다. 이 사이만 봐도 아이폰이 등장했고, 유튜브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소프트웨어 교육이 시작됩니다. 대학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해주고 있나요?"
세상이 원하는 인재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성적이나 학벌로 줄 세우는 것으로는 적절한 인재를 찾아낼 수 없습니다. 직업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교육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여러가지 재능과 역량을 만드는 것이 흔히 말하는 21세기 인재의 요구조건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교육의 기회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직접 교육에 나서고 있습니다. 미국 통신사 AT&T는 10억 달러, 우리돈으로 1조원 단위의 돈을 들여서 직원들에게 재교육을 합니다. 구글과 애플도 소프트웨어 교육과 관련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무크(MOOC) 시장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유다시티’나 ‘코드닷오아르지’, ‘에덱스’, ‘코세라’ 등 컴퓨터 앞에서 전 세계 유명 강의들을 무료로 들을 수 있고, 유튜브나 커뮤니티를 통해서도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교육의 기회에 대한 불안보다도 무엇을, 왜 배워서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더 시급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소프트웨어 교육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도구 활용방법이 아니라 문제를 찾고, 고민해서 풀어내는 과정이라는 이야기와 맞아 떨어집니다.
미래는 크리에이터의 세상
“미래는 창작자들의 세상이 될 겁니다.”
라이언의 이야기는 결국 ‘더 사람다움’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디지털과 인공지능은 수단이 되는 일들을 대신해주기 때문에 사람은 더욱 창의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남의 일을 대신해주는 일은 점차 가치를 잃어가게 마련입니다. 컴퓨터가 대신해줄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바뀔 세상에 살기 위한 역량은 당연히 ‘디지털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에 있습니다. 라이언은 단순히 기기에 익숙해지고, 웹툰을 즐기는 그런 게 아니라 디지털을 이용해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가 소프트웨어, 즉 ‘*코딩’입니다. 문제 해결 능력과 감정 능력을 어떻게 눈 앞에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능력인 것이지요.
"코딩도 변하고 있습니다. 어려워보이는 딥러닝도, 실제로 돌아가게 만드는 코드가 10~20줄 정도인 경우도 많습니다."
개인에게 필요한 2020 핵심역량, *디지털 리터러시
전문 용어나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개념이 중요한 세상입니다.
라이언은 코딩 기술에만 집중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올해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이 시작됐습니다. 물론 아직 그 교육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교육의 방향성 역시 ‘코딩 기술’로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은 소프트웨어적으로 사고하고, 문제를 고민하고, 스스로 해결 방법을 고민하는 겁니다.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정답이 없는 일들이 훨씬 많습니다. 소프트웨어 교육이 주목받는 이유도 그 고민들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코딩이 매력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직업, 그리고 역량을 풀어낸 이 긴 이야기는 결국 한 마디로 정리됩니다.
"코딩 기술이 아니라 디지털로 뭔가 만드는 경험을 가지세요."
AI 시대, 언어를 알면 인간이 보인다
작가 조승연
들어가며
80~90년대 공상 과학 소설은 당시로서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 많이 담겼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들을 보면 상당 부분이 지금 우리 삶에 들어와 있습니다. 얇은 평판 TV나, 태블릿, 누구나 하나씩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 그리고 더 나아가 혼자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자동차와 언어 장벽을 허물어주는 만능 통역기입니다.
기술의 종류도 제각각이지만 일단 현실화될 것이라는 기대조차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에 대한 고민도 아예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기술들이 우리에게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기술들이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언어와 인문학으로 유명한 조승연 작가는 바로 이 인공지능과 언어 사이의 관계를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언어가 파괴되면 생각이 발전한다
언어의 장벽을 깨는 것은 컴퓨터 업계의 오랜 숙제 중 하나였습니다. 많은 데이터와 빠른 연산 처리를 바탕으로 언어의 구조를 집어넣으면 컴퓨터가 전 세계 어느 말이든지 알아듣고, 또 다른 언어로 바꾸어줄 수 있을 것으로 모두가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 번역기는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그 한계를 드러내게 됩니다. 잘 번역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언어, 그리고 사람의 언어 활용 능력을 너무 우습게 봤던 것은 아닐까요.
구어체를 완벽히 번역하지 못하는 현재의 기술
그 장벽이 허물어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습니다. 머신러닝이라고 부르는 인공지능의 한 기술이 도입되면서부터입니다. 한 번역 프로그램이 쏟아낸 문학 번역에 행사를 진행하던 통역사가 넋을 놓으면서 ‘뭔가 한 단계의 계단을 올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승연 작가도 컴퓨터가 바로 이 언어를 이해하게 되는 상황에 집중합니다. 외국어를 장기로 삼던 사람들은 컴퓨터의 번역 기술 발전을 위기로 받아들인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조승연 작가는 그 기술에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의외로 인공지능 기술의 한계점을 ‘언어 파괴’에서 찾았습니다. 언어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언어 파괴가 오히려 인공지능에 맞서는 인간 지능의 주 무기라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 이야기인가요.
자연어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그만큼 언어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언어파괴의 역사는 우리가 언어를 쓰면서부터 이어져 온 현상입니다. 놀랍게도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언어 파괴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언어는 생각의 호흡’이라는 조승연 작가의 설명도 흥미롭습니다. 사람의 말을 담는 것이 언어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인간의 호흡과 말하는 호흡은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글을 쓸 수 있게 되면서 호흡이나 운율을 맞출 필요가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섬세한 감정이나 지식이 논리속에 담기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됐습니다.”
머신러닝 기반의 자연어 처리 전문가들도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글로 쓰여진 문어체와 입으로 나오는 구어체의 문장 구조나 흐름이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조승연 작가는 이 글들이 나오면서 사람의 언어와 생각, 철학, 지식, 사고 등 모든 환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글로 남기는 기록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항상 당시의 언어가 기록되는 방법과 그 시대적 의미를 두고 언제나 갈등을 겪어왔습니다.
“지금은 영어를 공부할 때 셰익스피어의 글을 읽고, 그 작품을 통해 지역과 공간에 관계 없이 생각과 그 사상이 공유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당시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에는 사람들이 셰익스피어의 글을 읽느라 공부를 게을리하고, 언어가 파괴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언어는 규칙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인식과 늘 부딪치게 마련입니다."
'스웨그(SWAG)'라는 말을 제일 처음 만든 사람, 셰익스피어
요즘 유행하는 ‘스웨그(SWAG)’라는 말도 셰익스피어가 만든 말이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셰익스피어는 당시에도 논란이 될 만큼 신조어와 언어파괴를 이끌던(?) 작가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글은 영어의 유연성과 표현력 등을 이끄는 가장 혁신적인 ‘언어의 마술사’로 꼽힙니다. 조승연 작가가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언어의 유연성과 적응력을 반영하는 부분입니다.
언어, 가장 사람다운 수단
이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언어의 유연성이 곧 사람다움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기계보다 인간이 우월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정해진 규칙이 있지만 소통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사람들은 언어를 묘하게 고치고, 또 그 결과를 받아들입니다. 규칙이 변하는 게 아니라 말, 그 자체가 사람을 통해서 변합니다.
“언어는 매우 유연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유연성이 어디에서 오는지 잘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가 그 유연한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사람은 애매모호한 존재입니다. 정확한 감정으로 소통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가 묘한 겁니다.”
흔히 우리말의 우수성을 일컫는 이야기로 색 표현을 꼽습니다. 신호등의 보행자 신호는 초록색인데 ‘파란불’이라고 해도 모두가 알아듣습니다. 초록색의 강산도 푸르다고 합니다. 조승연 작가가 이야기한 바로 그 ‘모호함’이 바로 이 색 표현에 모두 녹아 있습니다. 뒤따르는 “인간은 정확한 것보다 애매모호한 것을 알아듣는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감정도 언어에 포함됩니다.
“같은 돌다리를 보고 프랑스 사람들은 ‘탄탄하다’는 인상을, 독일 사람들은 ‘우아하다’는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이유에는 언어가 있습니다. 유럽어는 단어에 성별을 구분하는데 프랑스어의 다리는 남성, 독일어의 다리는 여성 명사입니다. 이 때문에 말을 하다보면 성에 대한 선입견이 사물에 전해집니다. 사람은 뭔가 배울 때마다 뇌의 모양이 바뀌는 존재입니다.”
언어는 단순히 말과 글자로만 설명할 수 없는 묘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이야기는 언제 나오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조승연 작가가 꺼내 놓은 ‘우리가 언어를 받아들이는 방법’ 그 자체가 바로 사람과 인공지능의 가장 큰 차별점 중 하나입니다. 살아있는 언어와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성입니다.
그 동안 컴퓨터가 언어를 번역하기 어려웠던 것 자체도 바로 이 언어의 묘한 특징에 이유가 있습니다. 머신러닝은 그 어느 때보다 막대한 데이터를 통해 사람의 말을 흉내내고 있지만 여전히 기계와 소통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언어는 단순히 글자 그대로의 의미만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어를 배울 때 문화를 함께 배워야 한다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겁니다. 언어 속에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조승연 작가는 인간이 주관적이고 정확하지 않은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편견과 고집도 있고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기 전에 결론을 내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보다 그렇지 않은 것을 더 잘 알아듣는 것이 사람이라는 겁니다. 결국 그 모호함이 우리의 언어이고, 생각 체계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스토리”이며, “글자가 아니라 스토리를 말하는 것이 또 하나의 ‘사람다움’”라고 그는 이 복잡한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생각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사고하고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흉내내는 인공지능에 두려움을 느끼는 겁니다.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빠르게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배우고, 생각하기 위한
기계가 아닙니다.
스토리텔링, 이야기하는 존재입니다.
글 : IT컬럼리스트 최호섭 (work.hs.choi@gmail.com)
조승연
7개 국어를 구사하는 언어 천재이자 커뮤니케이션의 달인. 현재 오마이스쿨 대표강사로 다양한 자리에서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AI 시대에 컴퓨터와 대화하는 방법
카카오미니 총괄 조디악
들어가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공지능은 어떤 이미지일까요? 우리가 실생활에서 처음 접한 충격적인 인공지능의 모습은 대부분 바둑을 두던 알파고였을 겁니다. 하지만 알파고는 그저 결과물을 모니터에 점 하나로 찍어주는 게 전부였습니다. 이세돌 9단 맞은 편에서 바둑을 두던 아자 황 박사를 보고 ‘알파고가 참 사람처럼 생겼다’는 우스갯소리가 떠오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공지능의 모습은 바로 대화에 있기 때문이지요.
인공지능 스피커인 ‘카카오 미니’를 개발한 조디악 총괄은 '컴퓨터와 대화하는 방법’을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불과 2~3년 사이에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 삶 가까이에서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아마도 인공지능 스피커일 겁니다.
컴퓨터, 사람과 대화하다
카카오 미니를 비롯해 아마존 에코, 구글 홈 등 셀 수 없이 많은 스피커들이 인공지능 어시스턴트를 끌어안고 세상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인공지능 스피커의 어디가 ‘지능’일까요? 사실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우리가 겪는 직접적인 특징은 바로 ‘말’일 겁니다. 조디악의 이야기는 바로 컴퓨터가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의 의미를 돌아봤습니다.
“음성은 인공지능 시대에서 컴퓨터와 대화하는 *인터페이스의 한 축으로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컴퓨터가 처음 등장하던 시절 앨런 튜링은 이미 컴퓨터가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컴퓨터의 목표가 바로 인공지능에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현실은 꽤 멀리 있었습니다. 컴퓨터는 사람의 말은 커녕 지금처럼 단어조차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최초의 컴퓨터로 불리는 ‘에니악(ENIAC)’은 전쟁에서 포탄의 궤도를 계산하는 큼직한 계산기였습니다. 애초 컴퓨터라는 말도 ‘연산하다’라는 의미의 ‘컴퓨트(Compute)’에서 시작했습니다.
사람과 컴퓨터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 HCI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사람들의 메시지를 컴퓨터에게 입력할 수 있을지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학문적인 의미로서의 ‘휴먼 컴퓨터 인터렉션(HCI, Human Computer Interaction)’가 연구되기 시작한 겁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마우스입니다. ‘터닝 포인트’라고 할 만큼 마우스는 컴퓨터 환경을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마우스는 2차원적인 컴퓨터 화면에서 원하는 곳을 정확히 짚어내는 도구입니다. 이 작은 화살표는 컴퓨터의 역사를 바꾸었고, 지금까지도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쓰는 입력장치로서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윈도우나 맥OS의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낳기도 했습니다.
“휴먼 컴퓨터 인터페이스의 두 번째 터닝포인트는 터치였습니다. 물리적인 주변 기기가 없이도 입력할 수 있다는 장점과 멀티터치, 재스처 입력 등 기존 입력의 한계를 깨는 것이 바로 이 터치 스크린입니다.”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만지는 컴퓨터’에 대한 활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이전에도 터치스크린이 없지는 않았지만 아이폰이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기존 입력장치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터치를 고민한 화면 구성과 운영체제 환경을 갖추었다는 점입니다. 두 살짜리 아기도 아이폰을 들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아낸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 만지는 인터페이스에 대해 많은 부분을 설명했습니다.
음성은 가장 완벽한 입력 수단
조디악이 세 번째 터닝포인트, 즉 지금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기술로 꼽은 것은 바로 음성 인터페이스입니다. 대표적인, 그리고 가장 성공한 사례는 아무래도 아마존의 음성인식 서비스 ‘알렉사’와 이 플랫폼이 들어간 스피커 ‘에코’겠지요. 터닝포인트를 둔 조디악의 해석이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입력장치를 배제한 첫 개인용 컴퓨터’라는 부분입니다. 키보드도 없고 화면도 없습니다. 마이크와 스피커를 사이에 두고 말로 대화를 하는 것이 컴퓨팅인 기기입니다.
음성 인터페이스의 특장점
“아마존은 음성으로 모든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UI, User Interface)’도 없고, 메뉴나 버튼을 골라서 들어가는 단계(Depth UI)도 없습니다. 말하는 것이 곧바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음성 인터페이스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말은 가장 자연스러운 인터페이스입니다.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방법을 배울 필요도 없습니다. 누구나 기기에 손 하나 대지 않고 말로 기기를 제어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방해받지 않고 또 다른 제어를 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 인터페이스이기도 합니다.
단 한 마디 말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컴퓨팅 환경을 진화하게 하는 것입니다.
"스마트 스피커는 인공지능 시대의 경험을 미리 해볼 수 있는 장치입니다. 인터페이스라는 것 자체가 없다고 생각이 될 정도의 시대로 진화해 갈 겁니다.”
생각해보면 컴퓨터 환경에서 ‘인터페이스’라는 말의 의미는 의사 소통의 접점으로 해석됩니다. 사람은 컴퓨터에게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키보드와 마우스, 터치스크린을 두드렸고, 컴퓨터는 다시 사람에게 그 결과를 전달하기 위해 모니터와 프린터 등을 이용했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은 아직 사람과 격차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화는 서서히, 그리고 분명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음성 인터페이스입니다.
*인터페이스 : 좁게는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조작 방식을 말하며 넓게는 서로 다른 두 물체 사이에서 상호간 대화하는 방법을 의미합니다. (출처 : daum백과)
조디악
본명은 이석영. 인공지능 스피커 ‘카카오미니’를 탄생시킨 카카오미니 총괄. AI와 인간의 대화가 더 편하고 자연스러워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AI와 인간의 연결 : 육감의 심리학
김경일 교수
들어가며
세상의 무엇인가를 감각으로 느낀다는 것은 생명체와 기계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 감각이 동물, 혹은 사람만의 것일까요? 최근의 센서 기술들은 바로 인간의 전유물로 꼽히던 감각을 데이터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사진 속의 이야기를 읽기도 하고, 소리도 듣습니다. 가속도나 기울기를 알아채는 것은 이미 스마트폰의 기본 역할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냄새로 무엇인가를 찾는 로봇 코도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기계도 사람처럼 감각을 통해 사물을 읽어들이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우리같은 동물적 감각은 아니겠지만 ‘오감’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수치로, 데이터로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는 바로 이 감각을 가운데에 두고 인간과 인공지능의 연결고리를 찾습니다.
사람은, 명확하다고 여겨지는
이 오감 안에서조차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사물을 그대로 받아들일까?
김경일 교수의 이야기는 바로 오감, 그리고 동물적 감각인 육감에서 시작합니다. 육감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 우리는 느끼고 있는 감각일 겁니다. 그리고 이 육감은 사람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은 사물의 정보를 받아들일 때 오감을 이용합니다. 시각, 청각, 촉감각, 후각, 미각 등입니다. 그런데 김경일 교수는 우리가 과연 정보를 감각 그대로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감각을 통한 정보가 머릿속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에는 상당히 많은 변수들이 영향을 끼칩니다. 무엇보다 그 변수들은 정확한 해석을 해치기도 하고 세상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김경일 교수는 굴렁쇠 사진을 꺼냅니다.
“굴렁쇠는 동그란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를 사진이나 비디오 등을 통해서 볼 때는 찌그러진 타원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굴렁쇠를 둥글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망막으로는 2차원의 찌그러진 원으로 보일 겁니다. 둥근 굴렁쇠는 우리가 머릿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우리 방식대로 해석하는 겁니다.”
우리는 찌그러진 원을 온전히 동그랗다고 받아들입니다. 사물이 주는 정보를 다르게 이해하는 것이지요. 사람이 사진 속 굴렁쇠를 동그랗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눈으로 들어오는 이미지를 한번 다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경험과 기대, 가정, 믿음 등 복잡한 사람만의 처리 방법을 더해 머릿속에서 이 2차원 이미지를 3차원으로 만듭니다. 이를 이용하는 것이 바로 ‘착시효과’지요.
인간이 정보를 끊임없이 해석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착시’입니다.
우리의 경험이 시각적으로 들어오는
2차원적인 데이터를 다시 가공하는 것입니다.
착각이나 착시는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인 뒤 다양한 주변 상황과 함께 묶어서 해석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인공지능은 아주 오랜 학습을 통해서야 비슷하게 흉내를 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센서 기술은 급격히 발달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특정 조건에 따라 아주 세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센서가 사람의 오감을 데이터로 만들고, 사람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을 달고 알아서 뭔가를 해주는 기기들이 만족스럽지 않지요. 아직도 인공지능은 사람이 오감을 해석하는 능력만큼 예민하지 못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사람이 감각에 기대어 판단하는 것은 정확할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인간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몇 가지 요인에 손을 대면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김경일 교수의 감각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정확하지 않은 감각과 틀린 판단의 역설, ‘인간다움’
“인간은 세상의 다양한 장면과 상태를 내 몸의 상태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그 상태를 역으로 변화하면 생각이 바뀌는 경우도 일어납니다. 면접관들에게 따뜻한 음료와 차가운 음료를 나누어주면 컵의 온도에 따라 우호적이거나 냉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리적 온도가 따뜻하면 스스로가 더 따뜻한 사람처럼 느끼고, 차가워진 사람은 마음도 차가워졌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이런 실험 결과를 학계에서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실험이 반복되면서 이 역시 사람의 한 특성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다고 합니다. 바로 ‘사람이 감각을 이용해 생각을 바꾼다’는 것이지요.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자세에 따른 행동 변화입니다. 김경일 교수는 피실험자의 성격과 관계 없이 당당한 자세를 취하게 한 사람과 소극적인 자세를 했던 사람 사이의 행동이 다르다는 실험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자세에 따라서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반대로 위축되고 소극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합니다.
자세가 바뀌면, 생각이 바뀐다
“누군가는 인간이 오감을 통해서 또 다른 감각과 판단을 내린다는 것을 알고 이용하기도 합니다. 오감은 여섯번째 생각과 판단을 만들내는 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우리가 컴퓨터와 다르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다섯가지 감각은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오감이 합쳐지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여섯번째 감각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특정 감각을 제어하는 것으로 정확한 판단력을 잃기도 합니다. 김경일 교수는 인간이 감각을 통해서 명확하게 짚어야 할 역할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바로 인간의 존재 이유로 연결됩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기본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은 세상에 대한 분석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정보를 정확하게 분석해야 하는 것 자체가 존재의 이유가 아닙니다."
오감을 통해 세상에서
어떤 것을 느끼고, 결정할 지 정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역할이자 존재의 이유입니다.
바로 여섯번째의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인간의 역할, ‘여섯번째 감각’
많은 전문가들이 인공지능과 경쟁을 두고 인간 고유의 역할과 의미를 찾곤 합니다. 공감과 판단, 그리고 결정이 주로 꼽히지요. 김경일 교수의 설명도 그 뿌리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동안 결정을 이끌어내는 판단으로 흘러가는 과정을 감각과 묶으니 쉽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우리가 그 동안 ‘동물적 감각’이라고 말하던 ‘육감’인 셈입니다. 요즘 말로는 ‘느낌적 느낌’일까요?
이제 상대적으로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역할은 더 뚜렷해집니다. 정확한 정보의 수집과 분석입니다. 컴퓨터의 탄생과 존재 이유 자체가 데이터를 정확히 처리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기대하는 그 역할은 딱 거기까지라는 것이 김경일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어설프게 인간을 흉내내는 인공지능을 싫어합니다. 일본의 한 무인 호텔은 1층에서 3가지 로봇이 투숙객을 맞이합니다. 전형적인 로봇, 공룡 모양의 로봇, 그리고 사람을 쏙 빼닮은 로봇입니다. 역할은 똑같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공룡 모양의 로봇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사람을 닮은 로봇을 가장 멀리했습니다. 사람들은 분석보다 느끼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인간의 모습을 하고 다섯가지 감각을 분석만 하는 인공지능을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인간과 닮은 로봇은 친숙함을 기대했겠지만 오히려 어설픈 인간 흉내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형체에 기대했던 행동과 다른 무엇인가가 묘한 거부감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불편함의 골짜기(uncanny valley)’라는 이론으로 연결되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이, 로봇이 사람과 더 비슷할수록 사람과 닮지 않은 부분이 더 쉽게 드러난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신 사람과 전혀 다른 형태의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줄어들고, ‘나를 돕기 위한 기술’이라는 점에 집중하게 됩니다.
물론 인공지능의 어색한 부분들은 서서히 줄어들게 되고, 더 정교한 사람 수준의 무엇인가가 만들어질 겁니다. 하지만 과연 인간의 생각까지 데이터로 만들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이 인간의 생각처럼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수준으로 발전할까요? 새로운 것에 대한 출발은 욕구에 있습니다. 반면 기계는 어떤 것이라도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마련입니다. 바둑 대결이 끝난 뒤 커제 9단과 알파고는 각각 무엇을 했을까요.”
인공지능의 역할은 특정 상황에서 특정 행위를 사람과 비슷하게 처리하도록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보이는 행동은 비록 사람과 비슷할 수 있지만 그 다음의 행동은 다를 겁니다. 김경일 교수는 그 욕구를 데이터로, 함수로 풀어내는 것이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금까지 1%도 진행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그 욕구를 어떻게 건드려주고, 조정하느냐에 따라 갈등과 소통이 결정된다는 설명도 흥미롭습니다. 결국 김경일 교수는 인공지능의 역할을 두고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까지 도움을 주는 것이고, 그 욕구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으로 정리합니다.
“인공지능은 앞으로 우리가 느끼는 오감을 통해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기 직전에 현재 상태를 확인해주고, 어떤 결정들을 내릴 수 있다는 지표를 안내해주는 데에 머물 겁니다."
결정과 판단 직전까지의 안내자이고,
그 나머지는 인간의 몫입니다.
그래서 그 영역은 영원히 인간의 역할로
남게 될 겁니다.
‘인공’화 할 수 없는 사람의 본성과 그 역할에 대한 가치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읽으면 될까요. 인간의 몫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한번쯤 인간의 불확실성과 욕심에 대해 우쭐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게 우리 인류의 역사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우리를 지켜줄테니까요.
글 : IT컬럼리스트 최호섭 (work.hs.choi@gmail.com)
김경일
메타인지를 통해 인간을 연구하는 인지심리학자.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AI와 생활의 연결
카카오 AI 부문장 클로드
들어가며
인공지능 기술은 우리 주변에서 제법 많은 곳에 쓰이고 있습니다. 보안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지런히 일을 하는 인공지능 기술도 있고, 음성 비서처럼 직접 우리와 맞닿아 있는 기술도 있습니다. 특히 스피커는 가까이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도구로, 요즘 가장 관심을 받는 IT 제품이기도 합니다.
카카오를 비롯해 아마존, 구글 등 많은 기업들이 말로 명령을 내리고,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스피커를 내놓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흔히 ‘인공지능 스피커’라고 부르지만 사실 정확하게는 이 스피커 자체가 엄마처럼 이용자에게 닥친 문제를 알아서 해결해줄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음성 인식, 자연어 처리 등 우리가 스피커와 대화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기반 기술들이 더해져서 스피커를 똑똑하게 만드는 겁니다.
카카오는 왜 스피커를 인공지능 접점으로 골랐나
카카오 역시 ‘카카오미니’라는 스피커를 내놓고 있습니다. 카카오는 왜 스피커를 개발했을까요? 카카오의 AI 부문장인 클로드는 카카오미니를 통한 카카오의 철학과 기술, 그리고 이를 통해 카카오가 보여주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 놓았습니다.
카카오의 모토는 모든 것은 연결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연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고, 어떤 연결이 중요한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카카오의 출발은 모두가 알고 있는 카카오톡이지요. 바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커뮤니케이션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 연결은 카카오의 가장 기본 철학이라고 합니다. 클로드는 카카오가 인공지능 기술을 고민하던 출발점 역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서비스가 출발하는 철학은 결과물에 큰 차이를 빚어내게 마련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카카오톡의 커뮤니케이션
이 고민의 시작은 ‘인터넷’이었다고 합니다. 컴퓨터가 처음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인터넷으로 묶인 뒤 점차 많은 일들이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게 됐습니다. 세상이 모두 연결된 것처럼 느껴졌지만 모바일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그 동안의 연결과는 다른, 그러니까 스마트폰을 통한 완전한 연결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모바일 시대에 인공지능 기술이 더해지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아직도 세상에는 연결되지 않은 무엇인가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공지능은 이를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어떻게 쓰일지에 대해서만 충분히 고민된다면 스마트폰이 그랬던 것처럼 컴퓨팅 환경에 큰 변화가 다가올 겁니다.”
스마트폰이 기존의 인터넷과 가장 다른 부분은 바로 ‘온라인’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그 전에도 우리는 메신저를 썼지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려면 상대방이 접속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메모를 남겨 놓을 수는 있었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은 아주 명확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모바일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는 항상 온라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는 잠들 때까지도 스마트폰을 끌어안고 있지요.
그런데 그 항상 온라인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은 그 이전의 컴퓨터 시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켜져 있는 기기를 항상 몸에 지니고 있다는 것이지요. 클로드가 구분하는 인공지능 시대의 가장 큰 변화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기기를 꼭 쥐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목소리를 이용하기 때문에 마이크가 허용하는 안에서 몇 미터 떨어져서도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서비스 제공자도 웹 페이지를 만드는 것 대신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과 정보를 정리해두는 것으로 서비스의 형태가 달라지게 될 겁니다.”
카카오미니는 하나의 ‘모습'
커뮤니케이션과 정보 접근성은 카카오의 인공지능 기술의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결국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하게 되면 그 뒤로는 복잡한 시나리오들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게 클로드의 설명입니다. 카카오미니가 바라보는 목적도 바로 기본적으로 기기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접점이 되는 겁니다.
클로드가 처음 원했던 카카오미니의 형태는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마이크의 모양을 숨기고 더 많은 곳에 적절히 배치해서 아무 곳에서든 말로 원하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는 겁니다. 결국 지금은 스피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 스피커의 모양이 카카오미니의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이 기술이 소매점에 놓이게 되면 직원을 찾지 않아도 원하는 정보를 안내받을 수 있고, 자동차에 들어가면 운전중에도 안전을 방해받지 않고 차량을 제어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얻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또 다시 달라진 세상에서 살게 될 겁니다.
결국 카카오미니는 처음 현실로 만든 모양이고 이게 나중에는 어떤 모습으로든 바꿀 수 있는 구조라고 합니다. 클로드는 단순히 스피커라는 고정관념으로만 바라보지 말아달라고 당부합니다. 스피커라는 틀을 벗어나는 상상력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인공지능 기술 열풍에 대해 각 기업들이 꺼내 놓은 수많은 스피커들은 비슷한 듯 서로 다른 목표지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제품이나 기능에 따라 ‘이걸 왜 인공지능 스피커라고 부르는가’에 대해 묘한 혼란이 오기도 합니다. 카카오가 대화 그 자체를 떠나 카카오미니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 목표와 철학이 명확해야 이용자나 생태계에 참여하는 서비스들도 제품을 받아들이기 쉬울 겁니다.
인공지능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클로드는 음성으로 대화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만들고, 어떤 형태의 접접을 이용하든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이용자가 서비스에 필요한 것들을 요구할 수 있는 것에서 카카오미니가 시작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기기와 서비스가 당장 이용자의 명령 없이도 무엇인가 필요한 것을 알아서 해주는 형태로 진화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꼽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클로드는 “서비스와 생활의 연결을 통해 인공지능 기술을 집사로 만드는 것”이라는 비전으로 연결했습니다.
카카오미니는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나
카카오의 비전은 모든 것을 연결한다는 의미, ‘커넥트 에브리띵(Connect Everything)’에 있습니다. 카카오는 인공지능 시대의 연결을 위해서 정보, 사람, 오프라인, 사물을 연결하는 비전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중심 기술은 ‘카카오 I’로 집중됩니다.
카카오 I는 카카오 인공지능의 가장 기반이 되는 기술입니다. 음성, 시각, 대화, 추천, 번역 등 사람이 보고 듣고 이해하는 것들을 도구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카카오 스스로도 이 기술들을 엮어서 카카오미니를 비롯해 사진 분석, 인터넷 검색, 번역 등의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각 서비스를 조금씩 더 알아볼까요?
음성 인식과 시각 엔진을 이용한 서비스들
“음성 인식은 카카오가 오랫동안 쌓아온 기술입니다. 음성 인식 전체 과정에 대해서 자체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서비스가 이뤄졌고, 데이터는 10년 동안 쌓아 왔습니다. 이미 카카오내비와 다음 검색에 활용될 정도로 완성되어 있습니다.”
음성 인식 기술은 목소리를 데이터로, 즉 글자 형태로 인식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요즘의 음성 인식 기술은 단순한 받아쓰기가 아니라 명령을 내리는 목소리만 정확하게 듣는 것이 중요한 기술입니다. 그래서 잡음을 없애는 기술부터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인공지능 기술까지 더해집니다. 카카오의 과제는 ‘더 멀리’에 있습니다. 현재는 5미터 정도 안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를 7미터 이상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멀리 떨어진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거리를 넘어, 더 작은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인공지능 기기의 ‘귀’가 들을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으로 통합니다. 보이지 않게 기기를 곳곳에 숨겨서 생활에 더 밀접하게 만들겠다는 카카오미니의 출발점과도 통하는 겁니다.
시각 엔진도 중요한 기술입니다. 사진을 비롯해 글자 등을 읽고 그 안에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지요. 이미지의 내용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곧 사진이나 동영상을 글자로 검색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죠. 이미 카카오에서는 꽃 검색을 비롯한 서비스에 적용됩니다.
대화엔진의 구조
대화 엔진은 음성 인식과 연결되는 기술입니다. 클로드는 ‘대화 매니저’ 기술을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문맥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 날씨는 어때?”라고 물은 뒤에 “그럼 내일은?”이라는 불완전한 문장을 말해도 앞 뒤의 문맥을 다 합쳐서 파악하는 것이지요.
추천 엔진은 말 그대로 개개인의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개인화 서비스입니다. 음악을 비롯해 인공지능 서비스들에 자주 접목되는 기술들이지요. 번역 역시 인공지능 기술인 '딥러닝(Deep Learning)’로 급격하게 자리잡은 기술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기술들이 단순히 카카오만의 것이 아니라 세상의 아이디어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클로드는 카카오 I의 기술들이 더 많은 곳에 쓰이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저희가 모든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자동차나 아파트에 쓰이는 서비스는 각자의 전문성을 가진 기업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카카오 I를 이용해서 인공지능 기반의 서비스를 운영하고, 카카오가 이 인공지능 기술들을 업데이트하면 각 서비스들도 진화되는 것입니다.
카카오는 ‘툴’이라는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기업들이 자기 서비스에 카카오 I를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또한 올해는 오픈빌더라는 틀을 내놓을 계획인데, 이를 통해 어디에서든 카카오미니나 카카오톡 챗봇 등의 기술들이 자연스럽게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확장성과 생태계, 기업들이 가장 꿈꾸는 목표이기도 하지요.
“현재는 가정, 자동차, 스피커에 있는 인공지능 서비스가 모두 분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결국 하나로 통합되어야 할 겁니다. 당장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결국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가 만들어지려면 한 회사의 한 가지 서비스를 통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쉽지는 않겠지만 기업들끼리 서로 플랫폼과 데이터를 통합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요.”
클로드는 생활의 연결로 사용자들에게는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연결의 유익함, 카카오가 꿈꾸는 비전이기도 하지요. 라이언을, 스피커는 카카오가 그리는 하나의 ‘모양’일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