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네 번째 강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새벽 3시반에 기상, 기도를 마치고 6시에 렌트카를 타고 오늘의 일정을 시작합니다. 어제 밀라노에 늦게 도착을 하는 바람에 곧바로 강연 준비를 하느라 밀라노 시내에 있는 유적지 방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출발할 때 밀라노 시내 유적지 몇 곳을 먼저 관람하고 피렌체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오전 7시, 밀라노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인 두오모 대성당에 들렀습니다. 두오모 대성당은 4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유럽에서는 규모 면에서 세 번째로 큰 교회입니다. 1386년에 설계되어 600년이 지난 후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대성당 앞 광장에 들어서자, 크고 웅장함 앞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원래 낮에 방문할 경우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줄도 많이 서야 하고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아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었는데, 스님 일행은 오전 7시에 성당 문이 열리자마자 아침 일찍 방문했기에 여유 있게 주위를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합장을 한 채 성당에 들어가셔서 묵언으로 조용히 둘러보신 후, 예배당 의자에 앉아 조용히 기도를 하셨습니다.
▲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
두오모 대성당 옆에는 ‘빅토리아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쇼핑 센터가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과 함께 명품 상점들로 골목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옛날 건물들 사이를 돔 모양의 지붕으로 연결한 것이 특이했습니다. 사진 몇 컷을 남기고, 스포르체스코 성으로 이동했습니다.
스포르체스코 성은 밀라노의 도심 중앙에 공원과 함께 자리잡고 있는 15세기 성으로 스포르차 왕조가 거주한 르네상스 건축물입니다. 외벽을 붉은 벽돌로 쌓아 성벽 바깥쪽으로는 해자를 파고 침입을 막았으며, 모서리에는 망투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일본에 있는 오사카성처럼 이렇게 성 전체가 잘 복원되어 있는 곳은 많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 있는 산성의 경우 일부분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 스포르체스코 성
아침을 먹지 못해 이동하는 중 빵집을 찾아 빵 몇 개를 구입해서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아침을 해결했습니다. 오전 9시 밀라노를 출발하여, 12시가 다 되어서 피렌체에 도착했습니다. 어제 밀라노에서 강연에 참석했던 이창인 거사님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피렌체에 가면 꼭 둘러봐야 하는 곳 4군데를 안내 받았습니다. 조망이 좋은 카페, 우피치 미술관, 베끼오 다리, 피렌체 대성당, 이렇게 안내 받은 순서대로 4곳을 둘러본 후 강연장으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피렌체 시내의 전경이 한 눈에 보이는 레지아(Reggia) 레스토랑 앞 벤치입니다. 구불 구불한 길을 한참을 올라가니 언덕 꼭대기에 레스토랑 한 곳이 있었는데, 카페 앞에 돌로 된 벤치가 있고 벤치에 앉으니 피렌체 전체 풍경이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피렌체 시내를 조망하기 위해 미렐란젤로 언덕을 많이 가는데 저희는 거사님의 추천으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가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 피렌체 조망이 한눈에 보이는 레지아 카페 앞.
피렌체 시내의 조망을 본 후 다시 시내로 들어가 우피치 미술관을 관람하였습니다. 보티챌리의 ‘봄의 알레고리’, ‘비너스의 탄생’,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티티안 등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미술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유럽 최대 규모의 미술관이었습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빠른 걸음으로 속도감 있게 전체를 둘러보았습니다. 대부분 예수님의 탄생과 성장, 일대기를 묘사한 그림과 조각상들이 많아서 중세시대까지 유럽 전역에 기독교의 신앙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미술관 앞부분 전시실에는 성화를 중심으로 한 신 중심의 세계관을 보여준다면, 뒷부분으로 갈수록 점차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스님께 간단한 소감을 여쭤보았으나, 스님께서는 그냥 웃음을 보이셨습니다.
▲ 르네상스 시대 미술품들이 총 망라되어 있는 우피치 미술관.
우피치 미술관을 둘러본 후, 바로 옆 강가에 있는 베끼오 다리에 가보았다가, 피렌체 대성당을 찾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번에도 대성당에 들어가셔서 조용히 기도를 잠시 하신 후 나오셨습니다. 밀라노 대성당처럼 건물 외벽에 새겨진 조각상, 실내를 떠받치는 높은 기둥 등 그 세밀함과 웅장함을 보면서 과연 중세 시대 유럽인들에게 기독교는 어떤 의미였을까 잠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피렌체 대성당에서 걸어서 5분 거리, 비좁은 골목 사이에 ‘Suore Oblate dell'Assunzione' 수도원 건물이 있었는데, 오늘 저녁 강연 장소와 숙소는 이곳 수도원으로 잡혀 있었습니다. 강연장이 1층이고 숙소가 2층이여서 숙소에 짐을 풀고 곧바로 강연을 할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이곳 수도원을 빌리기 위해 요청 공문을 보냈는데, 수도원 원장 수녀님이 스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소개를 읽고 감명을 받고 흔쾌히 사용을 허락해 주셨다고 합니다.
피렌체는 원래 강연을 할 계획이 없는 도시였으나, 작년에 밀라노에서 강연을 할 때 오신 이창인 거사님이 “르네상스 문명의 꽃이 피렌체이니까 스님께서 피렌체를 꼭 가보셔야 한다” 고 계속 얘기를 하셔서, 스님께서 그냥 듣고 흘렸는데, 이번에 세계 100회 강연 일정을 잡으면서 교민들이 적게 있든 많이 있든 가보자 하는 취지가 있어서 오늘 강연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유럽에서는 교민들이 1000명 이상 되는 곳을 찾아가보는데 피렌체는 교민 수가 200명 정도 되었습니다. 아마 전체 강연 중에서 가장 적은 수의 인원이 모여 강연이 이뤄질 것이라 예상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몇 명이나 올까 내기를 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10명을 예측하셨고, 스텝들은 대부분 15명을 예측했고, 최말순 보살님은 20명을 예측했는데, 결국 누가 내기에서 이겼을까요? 정답은 사진 속에 있습니다. 몇 명이 왔는지 한번 세어 보세요.
▲ 피렌체 강연이 열린 ‘Suore Oblate dell'Assunzione' 수도원
그리고 피렌체에는 아직 정토회와 인연이 된 분이 아무도 없어, 강연 신청자 한분이 일찍 오셔서 강연 준비를 도와주시고, 스님 일행과 스텝들이 강연을 모두 준비했습니다.
저녁 7시, 강연이 시작되자 예상했던 것보다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보고 이곳까지 찾아왔는지 정말 궁금할 정도로 15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찾아와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이탈리아 한인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강연 소식을 접하고 베네치아에서 2시간 걸려 이곳까지 왔다는 학생 2명도 있었고, 유학 온 학생 몇분, 기업에서 사업차 파견 나와 계신 분 몇분, 현지에서 의류업을 하고 계신 분 등 다양한 분들이 오늘 강연을 함께 했습니다.
총 5개의 질문이 있었는데, 베네치아에서 온 조선족 학생의 질문도 있었습니다. 조선족 학생은 통일한국의 희망과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지 묻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이탈리아에 유학을 와서 외국인 친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불편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혼자서 이곳 이탈리아에 유학을 와서 이탈리아 친구와 일본 친구와 함께 집을 같이 쓰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친구는 굉장히 캐릭터가 강합니다. 모든 걸 자기 위주로 생각합니다. 언어가 딸리니까 참고 넘어가는 것이 많은데, 울컥울컥 할 때가 있어 괴롭습니다.”
“사물에는 두 가지 성질이 있어요. 첫째,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둘째, 다른 면이 있습니다. 즉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고 두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쉽게 얘기하면 콩을 100개 정도 한움큼 쥐었어요. 이 100개의 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기와 빛깔, 모양이 조금씩 다 달라요. 얼른 보면 다 같은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다 다릅니다. 그런데 그 콩을 팥과 비교하면 어때요? 콩 사이에 서로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고 팥과 비교했을 때는 모두 같은 콩이라고 말합니다. 크기와 모양, 빛깔이 다른 데도 같은 콩이라고 말하죠. 콩끼리 비교할 때는 서로 다른 콩이라고 말하지만, 팥과 비교할 때는 같은 콩이라고 말합니다. 또 콩과 팥은 서로 다르지만 채소와 비교할 때는 같은 곡식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콩과 팥, 채소를 돌멩이와 비교할 때는 어때요? 같은 식품이라고 말합니다. 같은 콩이라고 말하는 속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콩이에요. 사물에는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고 동시에 두 가지 성질이 함께 있어요. 다르다 해도 같은 점이 있고, 같다 해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존재의 본질적 측면에서는 같은 점도 없고 다른 점도 없습니다. 즉,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닙니다(不一不二). 같다, 다르다 하는 것은 우리가 인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같다고 인식할 때도 있고 다르다고 인식할 때도 있습니다. 인식을 떠나버리면 존재는 다만 존재일 뿐입니다. 그것은 다만 그것일 뿐이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서 사물을 인식할 때에는 같다고 인식할 때도 있고 다르다고 인식할 때도 있습니다. 같다, 다르다 하는 것은 우리들의 인식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동시에 상대적입니다. 즉,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존재 그 자체는 다만 그 존재일 뿐인데 그 사물을 인식을 할 때 같다고 인식할 때고 있고 다르다고 인식할 때도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해보면 취미도 같고, 이상도 같고, 종교도 같고, 이렇게 같은 것이 4,5가지 발견이 되면 굉장히 기뻐지고 친해집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서로 다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나보니까 같은 점이 발견되면 호의적 반응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연애를 하거나 결혼해서 살 때는 너와 나는 같은 점이 많다는 점이 전제가 되어 버립니다. 처음에는 같은 점이 발견되니까 친해졌지만, 애인이 되거나 결혼을 하면 계속 다른 점이 발견됩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청소를 할 때도 계속 다른 점이 발견되니까 싫어지는 마음이 일어나는 겁니다.
이것은 그 이탈리아 친구와 살 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 선생님들의 고민도 자기 반의 한 아이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서 저 아이만 없으면 살만하다 생각하지만 그 아이가 없어지면 해결될까요? 아니에요. 결혼해서 살면서 남편 때문에 힘들다고 할 때도 이혼을 하면 해결 될까요? 아니에요. 더 큰 문제가 자식을 키우면서 일어납니다.
이태리 친구와 룸메이트를 하고 살 때는 당연히 한국 사람과 이태리 사람이니까 서로 다르죠. 그 다른 것을 ‘저렇구나’ 하고 바라보세요. ‘저 친구는 수건을 저렇게 침대에 던져두는구나’ 하고 바라보세요. 그것은 그 사람의 습관입니다. 그것은 쉽게 안 고쳐집니다. 특히 어릴 때 형성된 것은 거의 못 고칩니다. 그래서 ‘그냥 그렇구나’ 이렇게 봐야 합니다. 그것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그 자체는 그 사람의 삶입니다. 양은 양대로, 소는 소대로, 돼지는 돼지대로 각자의 자기 삶을 사는 겁니다. 나를 기준으로 하니까 옳다 그르다 하는 인식이 생기는 겁니다. ‘그렇구나’ 하고 그대로 받아들여 보세요.
그런데 이게 항상 잘 안되죠. 인간은 항상 자기 기준으로 바라보니까요. 그런데 이 이탈리아 친구를 통해서 그런 나를 극복해 버리면 앞으로 회사에 취직하는데 있어서도 굉장히 자기 단련이 됩니다. 결혼을 해도 잘 살 수 있게 됩니다. 남편이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이 친구보다는 덜할 테니까요.
이탈리아 친구와 살면서 그것을 나의 수행으로 받아들여 보세요. 참으면 안 됩니다. 참으면 화가 나고, 화가 나면 갈등이 생기고, 이것이 습관이 되면 나중에 결혼을 해도 옛날의 상처가 덧나서 남편과의 관계도 힘들어집니다. 억지로 참았던 습관은 나중에 결혼생활과 직장생활에 모두 장애가 됩니다. 참는다는 것은 결국 나를 움켜쥐고 있다는 겁니다. 존재의 본질적 측면에서는 용서해줄 것도 없습니다. 서로 다를 뿐이기 때문에. ‘내가 내 기준을 굉장히 고집하는구나’, ‘나를 움켜쥐고 있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고 내려놓으면 됩니다.
모든 걸 다 극복해야 되느냐? 그건 아닙니다. 너무 안 맞으면 같이 안 살면 됩니다. 결혼을 해도 서로 안 맞으면 이혼을 하는데, 룸메이트가 서로 안 맞아서 헤어지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일까요? 결혼도 다 맞아야 사는 게 아닙니다. 안 맞아도 같이 사는 이유는 헤어질 때 오게 되는 과보가 크기 때문에 안 맞아도 같이 사는 겁니다.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하려고 하고 싫은 것은 다 안하려고 하는데, 현실의 삶은 좋다고 다 할 수도 없고, 싫다고 다 안할 수도 없습니다. 좋고 싫고 하는 그 자체가 자기 삶의 습관에서 오는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탈리아 친구는 평생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못 느낄 겁니다. 내가 시비를 하는 거죠. 그래서 저 친구한테 맞추는 게 어렵겠다 싶으면 같이 안 살면 되고, 그렇게 되면 방값을 내가 더 많이 부담해야 되겠죠. 이런 이해 관계가 걸린 겁니다. 이해 관계가 걸렸으면 싫어도 참으면 안 됩니다. 참으면 상처가 됩니다. 그래서 참지 말고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저렇구나’ 하면서 좋다 나쁘다로 보지 말고 인정하고 이해하고 살던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업이 그와 부딪히는 걸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으면 내가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더 벌더라도 생활 문제는 혼자 살아야겠다 이렇게 바꾸던지, 그것은 내 선택입니다.
이탈리아 친구를 시비할 때는 참거나 욕하거나 하는 것 빼고는 해결책이 없었데, 이것을 내 문제로 보면 그냥 살아도 되고, 수입을 조금 더 늘여서 환경을 바꿔도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질문자의 문제이지 이태리 친구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태리 사람 중에서도 이 아이는 특별하다” 이렇게 가져다 붙이지 마세요. 이태리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늘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는데, ‘여기는 그렇구나’ 하면서 여기에 맞추면 됩니다. 엄격하게는 서로 다를 뿐이에요. 이것을 예수님은 뭐라 그랬습니까? 남의 눈에 티끌은 보고 자기 눈에 대들보는 못 본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으로 삼아 보세요 그 사람과 같이 살면서도 웃을 수 있다면 질문자의 포용력도 넓어지고 더욱 성숙해지는 과정으로 간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질문한 여성 분의 얼굴이 스님의 답변을 듣고 활짝 밝아졌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자 분을 찾아가 오늘 강연 참가 소감을 물었더니, 혼자서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다보면 힘들고 외로운 마음을 그 누구에게 상담받기가 참 어려운데, 오늘 이 자리가 정말 소중한 자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 먼 곳까지 손수 찾아와주신 스님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에 참석해준 분들을 위해 책 사인과 기념사진 촬영을 해주셨습니다. 강연을 마치니 밤10시가 다 되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수도원으로 들어오는 골목길에 붙여진 강연 포스터를 떼는 일을 함께 했는데, 스님께서도 함께 도와주셨습니다.
오늘은 현지에서 강연 담당자가 없어 스텝들이 강연준비까지 모두 하다 보니 스님과 스텝들 모두 저녁 식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뒷정리를 마친 후 수도원 인근 카페에 가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8월30일, 새벽 3시30분에 기상하여 천일결사 기도를 마친 후 개인 정비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들어온 원고들을 검토하시다가 수도원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수도원 원장 수녀님께 하룻밤 재워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수녀님도 "Thank you very much” 하시며 감사 인사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셨습니다.
이제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강연장인 로마로 갑니다. 세계 100회 강연 중 다섯 번째 강연이 로마 Villa Benedetta 수도원에서 열립니다. 내일은 로마 강연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