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 오후 5시 성과상여금 통지 문자를 받았다. 등급이 아닌 금액을 알려주는 괴랄한 문자였다. 최하위 등급인 B등급 교사에게 “한 해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깍듯한 인사를 덧붙이는 예의는 예의가 아니었다.
1996년 상위 10%의 교사들에게 특별상여수당으로 지급했던 초기 성과급은 큰 논란이 되지 않았다. 2001년 김대중 정부가 ‘100대 개혁과제’ 중 하나로 공무원성과급제를 전면 도입, 상위 70%에게만 등급을 나누어 100% 차등지급하겠다는 발표를 하면서부터 논란과 저항이 시작되었다. 이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8만 1천여 명, 298억원의 성과급 모아 반납 투쟁에 열을 올렸다. 당시를 기억하면 누구도 성과급에 동의하지 않았다. 설령 동의한다고 해도 그 의사를 표현하기도 어려운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에 놀란 2002년 김대중 정부는 교원성과급제도를 폐지하고 자율연수비로 지급하겠다고 한 발 물러선다. 전교조는 성과급투쟁 종료 선언을 하였으나 언론, 학부모단체, 중앙인사위원회가 거세게 반발하였다. 이에 다시 협상이 시작되고 모든 교원에게 지급하되 차등지급률을 10%로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합의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2002년에서 2022년까지 그렇게 차등지급률 10%로 A, B, C 등급으로 지급되어 왔다면 오늘의 이런 울화는 좀 사라졌을까? 그럴 수는 없었다. 역대 정부와 관료들이 지난 20년간 추진한 성과급 제도를 살펴보면 ‘호봉제에 안착하여 호의호식하는 교사 문화에 편지풍파를 일으킬 필요가 있다’는 신념으로 뭉친 거 같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성과급의 차등지급률을 10%에서 20%로 늘리겠다는 발표를 하고, 이에 전교조는 다시 반납 투쟁으로 대응한다. 2006년 758억여 원, 2007년 400억여 원을 모아 반납하려했으나 정부의 거부로 장학기금으로 기탁한다. 차등지급률이 다시 10%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당시에도 나는 C등급 교사였다. 다만, 성과상여금은 정부가 별도의 예산을 편성해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교원 급여총액에서 일정 비율을 지급하는 것이니 호봉에 따라 10%의 차등지급을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다는 합의가 일반적이었다. C등급 교사라는 딱지가 기분 나쁠 뿐이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성과급 차등지급률을 30%로 확대한다. 교원들의 저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2009년에서는 차등지급률을 30%~50%로 다시 확대하고 이를 단위학교별로 결정하게 하였다. 겉보기엔 자율결정이지만, 실제 속셈은 전국적인 저항을 무력화하고 학교별 내부 싸움으로 프레임을 재설정하는 시도였다.
2010년에는 이런 차등지급률을 50~70%로 더 확대하고 차등지급률과 성과평가기준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하였다. 동시에 성과급을 호봉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방식, 균등분배하거나 순환등급제를 추진하는 행위를 엄중 처벌하겠다는 경고를 하며 현장을 단속했다.
2016년 박근혜 정부는 여기에서 두 발 더 나아간다. 차등지급률을 70~100%로 늘리고, 부당수령행위자를 최고 파면까지 가능하도록 ‘교육공무원 징계양정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한다.
문재인 정부라고 다르지 않았다. 2012년, 2017년 대선 공약 자료집 어디에도 교원성과급을 언급하지 않았다. 성과급부당수령이라는 명목으로 파면까지 가능하게 했던 ‘교육공무원 징계양정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지도 않았다. 다만, 차등지급률을 50~100%로 만들어놓았을 뿐이다. 결국 20년이라는 먼 길을 돌아서 2001년 김대중 정부의 ‘좌초되었던 개혁안’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
그렇게 2022년 나는 B등급 교사가 되었다. A, B, C 등급에서 C등급이라는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S, A, B 등급으로 등급명을 변경했던 그들은, 이제는 S, A, B 등급 대신 ‘금액’을 찍어 보낸다. ‘어쨌든 돈은 받잖아’ 이런 속셈인가?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는 왜 기분이 나쁜가? S 등급을 받았다면 기분이 좋았을까? S 등급 대신 최고 금액이 문자에 찍혔다면 괜찮았을까? 지난 20년 교직생활은 성과상여금 제도와 함께 살았다. 반납 투쟁을 하기도 하고, 호봉에 따른 성과급에 불만이 없었던 시절도 있다. 더 적극적으로 혁신학교에서 무탈한 균등분배와 순환등급제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B 등급 교사가 된 2022년에 나는 이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다만 기분이 나쁠 뿐이다.
2021년, 최선을 다해 아이들과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현실의 성적표는 B등급이라는 ‘사실’이 우울하다. 성과상여금 거부 투쟁은 이미 끝났다고, 철 지난 투쟁이라고, 오히려 일 하지 않으면서 등급 챙기는 교사들이 문제라고, 인정하고 가야 한다고 하는 이들을 말을 들을 때마다 자꾸 생각난다. ‘나를 B등급이라는 너희들이 싫어.’
1점도 안되는 점수차로 2등급이 되거나 3등급, 9등급이 되는 학생들이 우리 곁에 있는데, 우리 곁에는 ‘일을 한다’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B등급이 되는 교사들이 허다하다. 내가 오늘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은 나의 분노가 그까짓 돈 몇 푼 더 받겠다고 아웅다웅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아서이고, 내가 오늘 기분이 나쁜 것은 그 거대했던 싸움을 옆반 동료와 교무실 사람들과의 싸움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럼 부장해, 6학년 하면 되지.' 이런 메아리가 들려오는 것도 사실이다.
2022년 1월 27일, 서울행정법원은 성과상여금을 균등분배한 교사에게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 처분을 내린 사학재단에 이를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성과상여금 재분배 행위를 금지하는 법령이 없으므로 위반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성과상여금 균등분배를 금지하는 인사혁신처·교육부 업무지침규정도 ‘법률유보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2022년 4월 3일, ‘교육공무원 징계양정 등에 관한 규칙’ 제2조 제1항 관련 별표의 징계기준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다. “성과상여금을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지급받은 경우, 파면~해임” 이것이 현실이다.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이 무엇인가? 균등분배? 순환등급제? 형식적인 공적조서, 증빙자료가 일상적인 공무원 사회에서 진짜 거짓이나 부정은 무엇인가? 오늘도 나는 안녕하지 못하다.
출처 : 실천교육교사모임(http://www.koreateacher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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