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라디아서 2장 20절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히브리서 11장 1절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어야 함
오늘 나는 이 두 구절만 읽겠다. 요 며칠 간 우리는 이기는 생명이 다름 아닌 바로 그리스도임을 보았다. 이기는 생명이란
자신의 진보나 자기 개선이 아니며 또한 자기 힘으로 그리스도를 닮는 데 이르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았다. 이김은 곧 내 안에 사시고 날 대신해 사시는 그리스도이시다. 전에 그분은 날 구원하시려고 내 대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고 오늘은 우리가 승리할 수 있도록 우리 안에 살고 계신다. 이 며칠 간 우리는 이기는 조건의 첫째가 항복이고 둘째가 믿는 것 임을 보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시고 우리 안에서 그분의 승리를 살아 나타내심을 믿는다. 이제 우리는 항복이란 무엇인가를 반복하여 보았다. 오늘은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보기로 한다. 나는 많은 사람이 항복했을지라도 믿지 않기 때문에 이기지 못할까봐 염려스럽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이 항복했다 할지라도 믿지 않았다면 여전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항복하는 것은 다만 소극적인 면에 불과한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것은 적극적인 면이다. 소극적인 면에서 항복하고 적극적인 면에서 믿었다면 분명히 이기게 된다.
연대에 상해에 갔다 온 한 형제가 있었다. 집회를 마친 후 집에 돌아가서 말하기를 "나는 이미 항복했지만 여전히 이기지 못햇다. 오늘도 하루 종일 형편없었다. 옛날과 똑같이 오늘도 직장에서 화를 한 번 냈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항복하는 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것은 소극적인 면에 불과하므로 또한 믿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내 말을 받아들이고 이기게 됐다. 마지막 집회에서 그는 하나님을 찬미했고 처음으로 선포하기를 자신에게 자랑할 것이 없고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다 하신다고 말했다.
형제자매들이여, 이기는 조건은 다만 항복만이 아님을 기억하라. 항복하는 것만으로는 이기지 못한다. 항복한 후에는 전적인 믿음이 필요하다. 항복하고 또 믿었다면 분명히 이기게 된다.
사도 바울의 체험은 어떠한가? 그는 어떻게 이겼는가? 그의 첫걸음은 항복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말했으므로 그는 이미 "내가 아니요"를 체험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뜻하는 바는 그분이 내 안에 살아 계심을 믿고 그분이 나를 사랑하사 날 위해 자기를 버리신 분임을 믿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항복했는데 왜 아직 이기지 못했는가? 그 이유는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말할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말할 수는 없고 대략적으로 말하겠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믿음과 이김은 얼마나 큰 관계가 있는가이다.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사실을 믿음
성경 안의 모든 일들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다 이루신 것이다. 작년 1월 집회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세가지를 언급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언약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실들이며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들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들은 이 세가지에 포함된다. 언약에 대하여는 새 언약을 말할 때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오늘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약속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장래 이루실 것들이다. 사실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시고 성취하신 것들이다. 오늘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사실과 그분의 약속에 관해 언급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사실이 무엇인지 모른다. 주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모든 사람 곧 온 세상 사람을 위해 죽으신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사실이다. 그러나 구원 받은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오직 믿은 사람뿐이다.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으므로 사람들이 이것을 믿든 믿지 않든 다 구원받게 되는가? 그가 믿어도 구원받고 믿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은 것이 하나님께서 이룬 사실이므로 믿으나 믿지 않으나 다 같은가? 그리스도께서 믿는 이들 안에 살고 계신다고 말할 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그리스도는 머리이시고 우리는 몸이다. 그리스도인은 머리가 느끼고 지배하며 다스리고 책임지듯이 그렇게 느끼고 지배하며 다스리고 책임을 지어야 한다. 오늘 주 예수가 머리이심을 본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되는가? 오늘 그리스도께서 느끼고 계신가, 아니면 당신이 느끼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지배하시는가, 아니면 당신이 지배하는가?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가, 아니면 당신이 다스리는가? 그리스도께서 책임을 지시는가, 아니면 당신이 책임을 지는가? 우리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문제는 바로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주 예수께서 머리이신 것은 믿지만 모든 것을 머리가 다 책임지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데, 사실은 믿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성경에서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말했다(요 15:5). 이 말씀은 그분이 우리의 포도나무가 될 것이고 우리는 그분의 가지들이 될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당신이 믿든 믿지 않든 그분은 언제나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언제나 그분의 가지들이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만이 그들을 통해 진액이 흐르는 것을 체험하고, 일을 통해 열매를 맺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애써서 일하여 열매를 맺으려 하지만 그들에게는 주님의 생명이 흘러가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그들에게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는 것을 알려 준다면, 그들은 왜 자신들은 일을 할 수 없고 왜 열매를 맺을 수 없느냐고 말할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님이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라면 우리가 믿는가 믿지 않는가는 중요하지 않고 또 하나님의 사실은 항상 하나님의 사실이 아니냐고 대응할 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사실을 실체화하는 것임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는 믿음의 중요성을 말한다. 이 구절은 온 성경 안에서 믿음의 정의를 제시하는 유일한 구절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실상" 이라는 단어에는 여러 가지 번역이 있다. 헬라어에서 이 단어는 아주 번역하기 어렵다. 이 단어를 점 정확히 번역하려면 "실제화"로 번역해야 한다. "실체화"란 어떤 것을 실제가 되게 하는 역량을 뜻한다. 예를 들어, 여기에 등의 모양과 벽 색깔과 오르간 소리가 있다 하자. 우리는 무슨 방법으로 이런 모양과 색깔과 소리를 실제화시킬 수 있는가? 색깔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두 눈뿐이다. 가령 여기 한 장의 그림이 있다 하자. 초록색의 부분이 매우 보기에 좋고 빨간색 부분도 좋고 노란색 부분도 좋다 하자. 그러나 이 보기 좋은 색깔들이 우리에게 실제가 되려면 눈이 필요하다.
만일 눈이 없다면 아무리 보기 좋은 색깔이라도 실제가 될 수 없다. 오르간 소리가 듣기에 매우 좋지만 귀가 있어야 그것이 우리에게 실제가 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귀머거리라면 소리를 실제화 시킬 수 없다. 눈은 볼 수 있지만 소리를 실제화 할 수 없다. 손은 접하고 만질 수 있지만 소리를 실제화 할 수 없다. 오직 귀만이 소리를 실제화 할 수 있다. 물체의 모양에는 네모난 것, 동그란 것, 평면으로 되어 있는 것, 삼각형, 곡선이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손으로 만지거나 눈으로 보아야만 그것의 실체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물체의 존재와 그 물체의 존재를 실체화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이 세상에 많는 것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실체화할 수 있으려면 어떤 능력이 있어야 한다. 믿음도 이와 같다.
여기에 산과 물과 화초와 나무들이 멋진 풍경화 한 폭이 있다고 하자. 당신에게 눈이 있다면 이 그림의 아름다움을 감상한 다음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 줄 수 있다. 만일 여기 때어날 때부터 색깔을 본 적이 없는 장님이 있다 하자. 가령 당신이 그에게 여기 붉은 색이 있고 붉은 색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말한다면 그는 붉은 색이 무엇이냐고 말할 것이다. 당신이 여기 초록색이 있고 참으로 아름답다고 알려준다면 그는 초록색이 무엇이냐고 말할 것이다. 당신은 붉은 색은 붉고 초록색은 초록색이라는 정도밖에 말해 줄 수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그림 한 폭이 있지만 그 장님은 그 그림이 얼마나 멋진가를 누리지 못한다. 그림 속의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지만 이러한 멋진 경치를 즐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피아노를 잘 연주하는 자매가 있다고 하자. 귀 있고 음악을 아는 사람은 이 자매가 연주한 것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귀머거리나 음악을 모르는 사람은 연주되는 음악을 알아듣지 못한다. 우리의 믿음도 이와 같다.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모든 사실들이 다 실제이다. 그러나 오직 믿음만이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사실들을 실체화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체화하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을 확증해 주기 때문이다.
장님은 그림의 풍경이 멋지더라도 그러한 그림은 보지 못한다. 그러나 보지 못한다고 해서 이 그림이 존재하지 않는가? 그림이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의 사실이다. 당신이 볼 수 있든 볼 수 없든 하나의 그림이고 아름다운 색상은 그림 속에 있다. 문제는 이 그림이 주는 유익을 당신이 얻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세상 사람을 위하여 피 흘러 죽으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 위에서 주님이 죽으신 사실을 실제화하는 믿음에 있어서 자신이 유익을 얻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믿음이 없다. 그러므로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하나의 사실이지만 그들은 이것을 체험하지 못한다.
형제자매들이여, 믿음의 중요성을 보았는가? 우리가 눈과 귀와 손으로 물질적인 대상을 실체화하는 것처럼 믿음으로 영적인 사실들을 실체화할 필요가 있다. 영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우리가 어떤 것을 실체화하려면 반드시 믿음이 필요하다. 손은 물체의 모양을 실체화할 수 있고 귀는 소리를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손은 색깔을 만질 수 없고 귀도 색깔을 들을 수 없다. 색깔은 오직 눈으로만 실체화할 수 있다. 영적인 것들도 이와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주님은 머리이시고 우리는 지체이다. 이러한 연합은 하나의 사실이며 결코 다시 나뉠 가능성이 없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라는 것도 사실이며, 분리될 가능성이 없다. 당신이 이 사실을 믿으면 유익을 얻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말하지만 진액과 생명이 없고 열매도 맺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은 머리 속에서 한 가지 진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한 가지 사실을 본 것이요 그 사실을 실체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 피흘려 속죄를 이루신 것에 대해 들었다. 구속을 위해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음을 듣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러한 사실에 동의했을 수도 있다.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는 말을 듣고서,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말하는데 다른 사람과 동의했을 수도 있다. 또한 우리는 주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 안에 살아 계신다는 말을 듣고서 그분이 나의 생명이요 내 안에 살아 계신다고 말하는데 동의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러한 사실들을 실체화하지 못한다.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은 이미 자신을 내려놓았고, 자신이 할 수 없음을 알고 쓸모없음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또 자신의 손을 이미 내려놓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모두 소극적인 면에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들에 불과하다. 적극적인 면에서 당신은 여전히 그리스도를 실체화해야 한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단지 몇 초면 그리스도께서 성취한 사실들이 당신 몸에서 실체화될 수 있다.
여기 아름다운 그림이 있다.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보았기 때문에 알 수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풍성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러한 풍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골로새서에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여졌다는 말씀이 있는데 어떻게 당신이 온전하여진 것을 알 수 있는가? 그분을 보았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을 본다면 당신은 조금도 온전하지 않다. 사람들이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여졌다고 말하지만 당신은 어떻게 말하는가?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여졌는가? 주님은 그분의 충만을 우리에게 주셨고 은혜 위에 은혜를 주셨다. 당신은 이것을 가졌는가? 이것은 당신이 머리 속에 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당신 마음속에서 그렇게 믿었는가를 묻는 것이다.
에베소서 1장 3절에서는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신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런데 이 복들은 어디에 있는가? 형제자매들이여, 모든 문제는 믿음 곧 하나님의 말씀이 참됨을 믿는 것에 달렸다. 이것은 참으로 간단하며, 더 이상 설명할 길이 없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이것을 보기로 한다. 그리스도인의 한 가지 큰 실패는 곧 믿지 못하는 것이다. 믿음은 사실을 실체화하는 것이다. 일단 무언가를 볼 때 그것을 실체화할 수 있다. 믿을 때 사실을 실체화하게 되며, 믿을 때 즉시 얻게 된다.
과거 영국에 웹페블로씨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의 딸이 죽었다. 딸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와서 다음날 무슨 제목으로 주일 설교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교인들이 내 딸이 죽은 것을 알고 상심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위안이 될 메시지를 전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제목을 택했다. 그는 이 말씀을 제목으로 삼고 성경 말씀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 설교 준비를 했다. 다 마치고 나서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이 제목을 축복해 달라고 구했다. 그는 기도하면서 진정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에게 족한가를 자문했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지 않다면 내가 어찌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다 말할 수 있는가? 만일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다고 말하면서 내 딸의 죽음으로 인해 내가 괴로워하고 마음이 아프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나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그는 제목을 바꾸려 했지만 시간이 이미 늦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튼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게 족하게 하시도록 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하나님께 "하나님, 당신의 은혜가 내게 족하게 주소서.하나님, 당신의 은혜가 내게 족하게 해 주소서." 라고 구했다. 그가 오랫동안 간구했지만 조금도 효과가 없었다. 이것을 해야 하는가? 바로 이때 그는 문득 벽난로 위에 걸려있는 동일한 성경 구절을 보았다. 이것은 장례식을 치르러 나갔다 왔을 때 그의 어머니가 걸어 둔 것이었다. 이 성경 구절은 세가지 색으로 인쇄되어 있었다. "내" 와 "네"는 파란색으로, "족하도다"는 붉은 색으로, 다른 글자들은 검은 색으로 인쇄되어 있었다. 갑자기 그는 하나님의 빛 비춤을 얻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백하면서 말했다. "하나님, 당신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당신의 은혜가 내게 족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당신의 은혜가 내게 족하게 해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는 한 면으로 죄를 자백하면서도 또 한 면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당신의 은혜가 내게 족하므로 더 이상 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쁨과 감사로 충만했고 더 이상 간구할 필요가 없게 됐다. 이튿날 그는 강단 위에 서서 일생 중에 가장 좋은 메시지를 전했다. 어떤 사람은 그가 능력을 얻어 변한 것이 언제냐고 물었다. 그는 딸을 장사한 후리고 말했다. 그날 이후 그가 변한 것은 믿음을 배웠기 때문이다.
오늘 문제는 바로 사람들이 주 예수께서 머리이심을 듣고서도 주님께 "주여, 나의 머리가 되소서" 라고 구하는 데 있다. 당신은 왜 주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주여, 당신은 내 머리이십니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만일 당신이 이렇게 한다면 즉시 그 사실이 실체화 될 것이다.
어떤 형제가 내게 "니 선생님, 당신은 많은 것을 말씀하셨는데 나는 조금도 얻지 못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당신이 나의 한 말만 들었기 때문에 그러하니 가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기를 구하십시요"라고 말했다. 그는 밤에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나로 이기게 하소서. 승리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 나는 성질이 너무 형편없습니다. 하나님,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렇게 기도 하다가 그는 문둥병자가 주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기도한 것이 생각나서 자신도 주께 "주여, 당신이 원하시면 저의 성질이 떠날 것입니다."라고 간구했다. 여기가지 기도했을 때 그는 주께서 이미 원하셨기 때문에 자신이 더 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님께서 이미 다 이루셨고 그분이 원하신다.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이 고린도후서 12장 9절아나 누가복음 18장 27절을 믿을 있기만 하면된다. 우리는 "내가 원하노니"라는 말을 믿기만 하면 된다. '내가 원하노니"로 어려움이 다 지나가고 성질도 다 지나갔다. 이뿐 아니라 아내가 죽을 병에 걸렸을지라도 주님이 '내가 원하노니'라고 말씀하심으로 모든 것이 잘 될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뭔가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미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우리가 하나님께 해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니다.
한번은 한 형제가 이김에 관하여 말씀을 전했는데 말씀을 마친 후 형제자매들에게 어려움이 있느냐고 묻고, 있으면 질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젊은 자매가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서도 질문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또 다른 한 나이든 자매가 일어나 "이 몇 년 동안 이기도록 기도해 왔지만 계속이기지 못했는데 문제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 형제는 "다른 아무런 문제가 없고 다만 기도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도를 찬미로 바꾼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그 형제가 말을 마치자 한 남자가 일어나서 말했다. "내가 이기려고 11년간 구해왔지만 지금까지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좀 전에 당신과 노 자매와의 일문일답을 통해 빛 비춤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얻게 되었습니다." 이 전도하는 형제가 그 젊은 여자 옆으로 가서 그녀는 어떠냐고 물었다.그녀도 좀 전의 문답을 듣고서 자기도 분명해졌고 이제는 얻었다고 말했다. 오,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손을 놓았다고 해서 다 되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당신에게 믿음이 없다면 결코 사실을 실체화할 수 없다. 그림의 색깔은 눈으로만 실체화할 수 있고 오르간 소리는 귀로만 실체화할 수 있으며 물체의 채질은 손으로만 실체화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으로만 실체화할 수 있다. 우리는 주저하면서 "하나님, 나의 이김이 되소서. 하나님, 당신이 나의 생명이 되소서. 하나님, 당신이 나의 거룩함이 되소서." 라고 구해서는 안된다. 그 대신 "하나님, 당신이 나의 승리이십니다. 하나님, 당신이 나의 생명이시며 나의 거룩함인 것에 대해 감사드리며 찬양합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는 매번 여러가지 시험에 직면한다. 처리하기 어려운 일들이 우리에게 임하고 듣기 힌든 많은 말들도 우리귀에 들려 온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 이기도록 힘을 주시라고 구해야 하는가? 아니다.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여, 당신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당신이 나의 승리이십니다. 주여, 당신이 내 대신 모든 어려움을 견디시는 분입니다. 주여, 당신은 내 머리시요 나는 당신의 지체요, 당신은 포도나무요 나는 가지이신 것을 인해 감사드리며 찬양합니다. 당신이 나의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말씀대로 이미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공급하고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수천 마디 말씀 중에서 한마디를 얻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요한복음 3장 16절에 근거해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요한복음 5장 24절, 어떤 사람은 로마서 10장 10절에 근거해 구원받는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한마디 말씀으로 구원을 받았다. 이기는 것도 하나님의 많은 말씀 중에서 한 마디를 얻어야 한다. 좀 전에 말한 그 형제는 "내가 원하노니" 라는 한 마디 때문에 이김을 얻었다. 어떤 사람들은 고린도후서 12장 9절로 말미암아 이김을 얻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고린도후서 12장 9절로 말마암아 이김을 얻는다.또 어떤 사람들은 로바서 6장 14절을 통해 이김을 얻고, 또 다른 사람들은 고린도전서 1장 30절로 말미암아 이김을 얻는다.
믿음은 바람이 아님
믿음은 바람(소망)이 아니다. 바람이 있는 사람이 다 믿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이기는 문제를 다룰 때, 어떤 이에게 이겼느냐고 물었는데 만약 그가 "이기기를 바란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에게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마치 당신이 구원의 문제를 다룰 때 누가 당신에게 구원받기를 소망한다고 하면 당신이 그에게 믿음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주님께 자신을 구원하고 또 이길 수 있게 해 주시라고 계속 바란다. 어떤 사람은 주님께 자신이 승리하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계속 기도한다. 어떤 사람은 주님께서 자신이 이길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계속 기다린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이미 항복하고 믿었지만 정말 이루어지는 가를 두고 보자고 한다면 당신은 영원히 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믿음은 바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형제는 나에게, 이긴 후에 주 예수가 나의 승리이심을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했다. "내 공장에 일꾼들이 이십명이나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관리해야 하지만 그들을 다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감독인데 아침부터 저녁 여덟 시까지 그 많은 여공들과 그 많은 일들을 다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다면 내가 이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내가 그에게 답변하기를, "당신은 공장에 있을 때 당신이 두 눈을 가졌다는 것을 기억합니까?라고 하자 그는 기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이 공장에서 나올 때 당신의 눈이 있는가의 여부를 알기 위해 손으로 만져 볼 필요가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가 필요 없다고 말하자, 나는 그에게 "당신이 기억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만 당신이 두 눈이 정말로 거기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라고 말했다. 이기는 생명은 우리가 주 예수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는 것임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한다. 만일 우리가 주 예수를 기억해야 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주님을 찬양하자. 그분이 우리를 기억하신다!
믿음은 느낌이 아님
어떤 사람은 바라거나 기도하거나 기다리지는 않지만 느낌을 얻고자 한다. 어느 자매는, "내가 이미 항복하고 주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심을 믿었지만 감히 내가 이겼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의 승리를 영접한 후로부터 오늘날까지 나에게 조금도 느낌이 없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다. 형제자매들이여, 믿으려면 온전히 믿어야 한다. 느낌은 쓸모없다. 그림은 눈으로만 볼 수 있을 뿐 느끼는 것은 소용없다. 느낌이 다른 일에는 쓸모 있어도 주 예수를 아는 일에는 쓸모없다. 손으로는 찬 것과 뜨거운 것을 알 수 있지만 손으로는 그림을 볼 수는 없다. 영적인 것들에 대하여 감각을 사용할 수 없고 믿음으로 실체화해야 한다. 당신의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만이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긴다는 것은 특별한 힘을 느끼는 것이 아니며 며칠간 뜨거운 느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기기위해서는 주님이 주신 한 마디의 말씀이 필요하다.
오늘 아침 한 형제가 와서 자신의 어려움을 말했다. 그는 이미 항복하고 믿었지만 이미 승리했다고 감히 말하지 못했다. 사탄이 여전히 그를 참소하고 있었다. 어제 어떤 일이 있었고 아마 그러한 일로 뒤로 물러난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승리가 참인지를 의심하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 "가령 내가 내 뒷뜰에 있는 화원을 당신에게 팔고 계약서를 당신에게 써 줬다고 합시다. 당신이 화원에 들어갈 때 갑자기 어떤 사람이 가운데 어느 부분의 땅이 자기 것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내가 당신에게 써 준 계약서를 믿고 포함된 모든 부분이 다 당신의 것임을 믿는 것이다. 둘째는 내 말을 믿는 것인데 내 말이 참이라고 믿는다면, 그 사람의 말이 거짓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당신이 누구의 말을 믿느냐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 사람의 말을 믿는다면 그가 거기 거하는 것을 허락할 수밖에 없다. 만일 당신이 내 말을 믿는다면 당신은 그에게 떠나라고 해야 하며 그럴 때 그는 즉시 떠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만한 것이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성질과 교만이 참된 것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당신이 믿지 않으면 당신의 성질과 교만이 실제가 되겠지만 당신이 믿는다면 그 모든 것은 다 쫓겨날 것이다. 하나님은 온유가 당신의 것이요 인내와 겸손과 사랑과 절제가 당신의 것이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당신의 것이라는 언약을 당신에게 주셨다. 그러나 당신이 다시 화를 내게 되고 교만과 더러움이 나타나고 실패하게 될 때 어떻게 하겠는가?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하나님께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 내가 온유할 수 있고 인내할 수 있으며 겸손하고 사랑하며 절제할 수 있음을 당신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기만 하면, 두려워하는 모든 것들이 다 지나가게 된다.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임
오늘 하나님의 자녀 가운데 가장 큰 어려움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데 있다. 그들이 손을 놓게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손을 놓았으므로 믿는 것은 응당 매우 쉬운 일이 되어야 한다. 형제자매들이여, 주님의 임재 앞에 나아오라. 나아와 손을 놓은 후 당신이 통과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완전히 손을 놓고 자신을 하나님께 맡긴 한 자매가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이겼냐고 물어보자 그녀는 아직 감히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무슨 이유인가? 그녀가 아직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직선적으로 말했다. "당신은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인 불신의 죄를 지었습니다. 당신이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짓말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가지라고 말씀하셨고, 당신이 손을 놓을 때 주님의 생명이 살아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당신은 비록 당신이 손을 놓았지만 하나님께서 아직 충분히 구원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본분은 다했는데 하나님이 아직 그분의 본분을 다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했다. "주님, 당신이 이미 모든 것을 내게 주셨음을 인해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형제자매들이여, 주님께서 우리의 머리이시고 생명이심을 우리가 믿는다면 또한 그분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모든 것이 진정으로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믿기만 하면 아무리 어려운 것일지라도 지나가게 된다. 당신이 믿었다면 당신의 승리를 저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할렐루야, 이것이 구원이다.! 오늘날 우리가 믿는 것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실체화하는 것이다. 또한 주님이 머리이심과 당신 안에 주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 것이며, 주님이 당신의 생명이심을 믿고, 주님이 포도나무요 당신은 가지임을 믿고, 주님이 당신을 대신해 이긴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당신이 믿을 때 모든 시험이 다 지나가게 된다. 당신이 믿을 때 그분이 모든 것을 다 하신다.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드리자. 그분이 모든 것을 다 하셨다.
우리가 여기 모인 지 이미 팔구 일이 지났다. 나는 여러분 모두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고자 한다. 여러분 중 이미 손을 놓은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손을 놓았을 뿐 아니라 이미 믿은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먼저, 이미 손을 놓은 사람들은 손을 들어주기 바란다. 그리고 이미 손을 놓고 또 믿은 형제자매들이 손을 들어주기 바란다. 좀 전에 손을 들어 손을 놓았다고 한 사람의 수와 손을 놓을 뿐 아니라 믿었다고 한 사람의 수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믿었다고 표시한 사람의 수가
손을 놓았다고 한 사람의 수보다 약간 적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믿음에 관한 일들을 조금 더 알려 주겠다.
형제자매들이여, 하나님의 하신 말씀은 신뢰할 만한 것임을 기억하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체험이나 느낌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 하나님은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의로움이 되셨을 뿐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가 우리의 거룩함이 되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로움일 뿐 아니라 또한 우리의 거룩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의 거룩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요 거룩함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요 거룩함이심을 믿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신뢰할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도 그리스도가 내 생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거룩함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도 그리스도가 나의 거룩함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나의 승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도 그리스도가 나의 승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
연대에서 나는 한 자매에게 "당신은 손을 놓았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는 이미 손을 놓았습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이겼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솔직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자매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생명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거룩함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거룩함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에게 족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당신과 하나님 중 분명 한쪽이 거짓말쟁이일 것입니다.하나님께서 틀리지 않았다면 당신이 틀린 것입니다. 당신이 틀리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틀린 것입니다. 당신은 감히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당신의 생명이라고 말하는데 당신은 그리스도가 당신의 생명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고,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당신의 거룩함이라고 말하는데 당신은 그리스도가 당신의 거룩함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니 당신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는 것이 아닙니까?" 내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그녀는 안색이 변하여 즉시 "나는 그런 뜻이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라고 답했다.
형제자매들이여, 만일 여기서 여전히 우물쭈물하고 결정을 못 짓고 아직도 그리스도가 당신의 생명인지 아닌지를 모르고
그리스도가 당신의 거룩함인지 아닌지를 모른다면 당신은 이것이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연대에 한 자매가 있었는데 그녀와 집회 전에 몇 마디 나눈 적이 있다. 집회 시간이 다 되어서 나는 그녀에게 손을 놓았냐고 물었다. 그녀가 이미 손을 놓았다고 말하자, 나는 그녀에게 이겼느냐고 물었다.그녀는, "내가 이기지 못했지만 내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또 그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몇 분 후에 떠나야 할 것을 알고서 하나님께 답변할 말씀을 구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웃으면서 믿음이 없다고 말했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큰 죄를 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그리스도가 당신의 생명이요 그리스도가 당신의 거룩함이요 그리스도가 당신의 승리라고 말씀하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믿지 않고 오히려 웃으면서 중요하지 않게 여깁니다. 자매여, 내가 말하지만 당신은 큰 죄를 범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께 이렇게 말하십시오. '하나님, 내가 당신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 나를 용서하여 주시고 나의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제하여 주시고 이 죄를 사하여 주소서.'"
어떤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서, 여전히 웃는다. 그들은 믿지 않는 것을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큰 죄이다. 이 죄는 간음죄보다 더 중하며 살인죄보다 더 중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려야 한다. "하나님, 제가 당신께 죄를 범했으니 저를 용서해주소서. 하나님 저의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제하여 주소서."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는 것을 죄로 여길 때 당신은 통과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말씀은 얼마나 놀라운가! 고린도전서 1장 30절의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 곧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원문 참조)라는 말씀은 얼마나 놀라운가! 골로새서 3장 4절의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는 말씀 또한 얼마나 놀라운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만 하면 된다. 당신에게 다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있다면 확신을 갖게 되며 이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