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수 필 의
기본이론
1. 수필의 개념
1) 수필의 기원
“우리를 흔들고 동요시키는 것이 인생이요, 우리를 안정시키며 확립해 주는 것이 문학이다.”라는 명언이 있다.
문학이란 언어를 통해 인간의 삶, 사상, 감정을 의도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은 언어를 도구로 하여 자신의 체험과 감정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표현하려는 문학적 기질을 갖고 있다. 그 문학의 유형 중에서 삶과 죽음에 가장 근접해 있는 문학이 수필이다.
그러면 수필의 기원으로 명칭은 어디에서 왔는가?
먼저 동양에서 맨 처음 수필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중국 남송(南宋) 시대의 홍매(洪邁, 1123-1202)가 쓴 『용재수필』(容齋隨筆)이란 문헌에서이다.
나는 게으른 버릇으로 책을 많이 읽지 못하였다. 그때마다 뜻하는 바가 있으면 붓 가는 대로 기록을 했는데, 앞뒤 차례를 다시 정돈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명목을 달아 이르기를 수필(隨筆)이라고 하였다.
홍매의 『용재수필』은 중국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체험한 것과 독서하며 얻은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학, 철학, 일상사 및 풍속, 자연 등 여러 분야를 고증과 평론으로 짧게 쓴 단문을 집대성한 책이다. 『용재수필』은 내용 면에서 주제나 소재에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쓰인 글이다. 또한 형식 면에서도 글자의 수나 형태, 구성 등에 아무런 제약도 없이 보고 느낀 대상들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표현했다.¹⁾
수필이란 말은 한자의 ‘따를 수(隨’'와 ‘붓 필(筆)’자가 합쳐진 것으로서,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란 뜻이다. 이 말은 “자신의 체험을 앞뒤 차례를 가리지 않고 그대로 진솔하게 기록하는 글”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 서양의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Montaigne, 15331592)는 자신의 인생과 자연을 관조하며, 삶의 체험에서 얻어진 사색의 조각들을 솔직하게 고백한 Las Essais(레제세)를 1580년에 발표했다. 수필을 뜻하는 영어 에세이(Essay)는 시험(Testing) 혹은 계획(Attempt)이라는 의미가 포함된 프랑스어 레제세(Las Essais)에서 유래된 말로, 이는 라틴어 엑시게레(Exigere)에서 발전되었다. 몽테뉴의 Las Essais는 수필이라는 말로, ‘에세이’라는 말을 처음 쓴 수필집으로서 개인의 사소한 일상의 체험을 쓰는 글이라 했기에 수필의 원조가 된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도 1597년 펴낸 The Essays에서 수필은 “개인의 사사로운 일부터 국가의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다루는 글”이라고 정의했다. 베이컨의 The Essays는 현대수필의 작법으로서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 아니고 논리적인 구성과 체계적인 전개의 이론적 기초를 정립하였다.
그렇다면 한국 수필의 기원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수필이란 명칭이 처음 나타난 것은 조선시대 영·정조 때의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쓴『열하일기(熱河日記)였다. 이 책은 1780년 6월 24일부터 8월 20일까지 두 달간 보고 듣고 겪고 느낀 청나라 여행을 기록한 내용으로서, 전 26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기행문, 일기, 사상적 단상, 일신수필, 소설 등 다양한 형식의 글이 실려 있다.
박지원은 청나라 황제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사절단의 군관의 자격으로 가서 열하와 북중국, 남만주 일대를 돌아보며 체험하고 관찰했던 일들을 기록했다.
…우리나라 성상 4년(청나라 건륭 45년, 정조 4년, 1780년) 6월 24일 신미일, 아침에 비가 내렸다. 온종일 비는 오락가락… 반 밤도 못되어 폭우가 쏟아져 위로는 장막이 새고, 아래로는 풀섶이 축축하여 어데고 피할 곳이 없었다. … 이윽고 하늘이 활짝 개 뭇별들은 총총 나지막하게 드리워 손을 내밀면 금방이라도 만져질 것만 같았다.…
도강록 편의 압록강 건너서는 말몰이꾼과 하인들의 농 섞인 대화가 이어진다. 경호요원인 군졸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각 방에서 무슨 호령이 내리면 만만한 것이 군졸들이다. 그들은 듣고도 일부러 못 들은 척하고 있다가 연달아 십여 차례나 부르면, 그제야 입속으로 무어라고 중얼대면서 부르는 소리를 처음 들은 듯이 목청을 길게 빼서 대답한다.…
한번 말에서 뛰어내리면 허둥지둥 돼지 식식거리는 소리, 소헐떡이는 시늉을 하면서 나팔이며 군령판이며 필연 등속은 어깨에 둘러메고 방망이 한 자루 는 질질 끌면서 대령한다.…
벼슬이 없었던 박지원은 사절단장 정사 박명원 형님의 개인 수행원 자격으로 합류하여, 조선과 청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 문물의 격차와 이념을 냉정한 지식인의 관점으로 살폈고, 서민들과의 어울림을 얽매임 없이 자유로운 문체로 기술했다.
즉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청나라의 신문물에 대한 정보와 열린 학자로서의 사유, 여행의 흥미와 벅찬 감흥을 치우치지 않게 담아 낸 일기였다.
특히『열하일기』에는 「일신수필」이란 글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수필이란 말이 처음 나왔으며, 그 내용은 1780년 7월 15일부터 7월 23일까지 9일간에 중국의 신광녕을 떠나 산해관에 이르기까지 연도에서 본 이국의 풍물과 체험의 견문과 수상을 기록한 일기형의 기행문이다.
이같이 한국수필은 중국 남송시대의 학자 홍매의 『용제수필』서문에서 말한 대로 “생각하는 내용이 있으면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수필”이라는 경향이 컸으며 내용도 신변잡기 및 기행 내용이 많았다.
그 경향에 따라 조선시대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에 「일신수필」에서 시작되어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쓴 글, 무형식의 글로 여유가 있으면 쓰는 글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수필이란 말과 함께 수상, 감상, 잡문, 단상, 수감, 산필, 산문, 소품, 연구 등으로 다양한 명칭이 사용되어 왔다. 1919년 『창조』와 1921년 『폐허』에서는 수필이라는 말 대신에 기행, 감상, 수상이라는 명칭 등으로 수필은 전문적이 아니고 취미로 쓰는 주변 문학 혹은 비전문 문학으로 경시되어왔다.
그 후에 서양의 몽테뉴와 베이컨의 논리적인 구성과 체계적인 전개로 정립된 수필 (Essay)이 1940년대 및 1950년대에 해외문학파인 피천득, 이양하, 민태원, 김진섭 등에 의해 현대수필 작품들이 나왔다.
그리고 1955년 창간된 종합문예지 『현대문학』과 1968년 창간된『월간문학』 등의 신춘문예, 종합문예지들이 1970년대에 수필문학을 문단 등단에 포함시키면서 문학장르로서 위상을 굳혔다.
2000년대 현재는 시 부문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가진 장르가 되어 수필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지름길이 되었다.
그러나 수필의 양적 팽창에 비해 질적 향상이 따르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수필을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통념을 넘어서 현대수필 작법에 따라 논리적인 구상과 체계적인 전개로 새로운 수필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이와 같이 수필의 유래와 명칭은 동양에서는 중국 남송시대의 홍매가 붓 가는 대로 쓴 『용재수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양에서 수필, 즉 ‘에세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프랑스 몽테뉴의 Las Essais와 베이컨의 The Essays에서 ‘논리적인 구성과 체계적인 전개’의 현대수필 작법이 정립되어, 오늘날 현대수필(Essay)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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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사현, 『수필문학 총서(서울: 북랜드, 2013), 68-72쪽.
2024.6.20.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