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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07(금) :
5일 18:40시 Durban 출항. 예상처럼 Swell이 있었지만 순항. 오늘 17:40 Cape Town에 입항. 바로 접안했다. Wife로부터 엽서 한 장. 노여움으로 가득 찼어도 없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공연한 소릴 해서 미안한 감 없질 않다만 그 자체에도 문제는 있다. 남편의 존재에 대한 일종의 무시 같은 경향. 비록 없으니 결국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굳어버린 모양 같다만, 근본적으로 나를 위해 주려는 배려인 줄은 이해를 한다만 그 발상자체는 내 생각과 정반대다.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진정한 그의 마음과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F학점의 천재들’을 재미있게 읽다.
Aug/8(토) :
No Work. 외항선교원의 친절한 목사댁에 갔다. 종교에 정열을 쏟는 사람들. 일생을 던지는 사람치고는 어떤 믿음과 위엄이 결여되어 보이기도 한다만 정신만은 존경스럽다. 滿月下의 고속도로 연변에 펼쳐진 풍부한 땅과 넓은 Cape Town의 찬란한 불빛이 장관을 이룬다. ‘술집과 국력과 아가씨’. 사람의 벨을 뒤집기도 기분 상하게도 한다.
Aug/9(일) :
집에 전화. 한 달만에 듣는 아내의 목소리. 전번 편지로 여전히 화가 난 듯 했지만 반갑기는 마찬가지. 늘 그랬듯이 전화 수화기 놓으면서 느끼는 서운한 마음. 배가 부르면서도 쉬이 수저를 놓기 싫은 느낌과 같다. 한마디가 아쉬운 이 형편을 이해하기엔 아직도 시간이 결려야 한단 말인가. 정모의 목소리 ‘아빠 빨리 온나’ 콧등이 찡해왔다. 그놈의 새끼! 참. 정화의 입시는 12월 22일. 정주는 11월 중이랬다. 3-4개월 남은 셈이군. 모두 모두 건강과 건투를 빌뿐이다. 내일을 위해서-.
씨를 넣은지 한 달만에 싹이 돋는 두 개의 밀감 씨앗. 신비로움과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가르쳐 주듯 신선한 느낌이 있다. 그토록 무엇을 하고 땅속에 있었던고. 米昇右씨의 ‘왜 수탉은 덩달아 우는가?’에서 결국 인간도 한 갖 동물에 지나지 않음에 비해보면 한결 고결한 생각마져 든다. 그가 한글 학자인줄 알았는데 생물학자였음도 의외의 일이다.
Aug/10(월) :
2타수 때문에 한바탕 부끄러운 소동이 있었다만, 사람이 자라온 환경과 바탕은 속이지 못한다. 거기에 역시 연결된 2/O와 OS-1 등 전부 똑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다. 오후부터 시작된 비, 바람. 남녘에 저기압이 지나고 있는 듯하다. 저녁 작업을 그만두게 했다. 또 하루 늦어지겠다.
Aug/13(목) :
12일 23:00시 출항. 겨우 시간에 닿아 작업을 마쳤다. 술을 버리기로 한다. 필요악인 경우도 있으니까 끊기 보다는 그것을 마음에서 버리는 것이 좋으리라. 그 놈의 술 때문에 또 한 번의 후회가 따른다면 남아프리카 출항 이후 두 번째가 아닌가. 부하 선원들을 보다 인간적으로 대해주고자 했던 내 스스로의 持論에도 많은 모순과 부작용이 있다. 그것도 버리자. 역시 내 생활은 내 것으로 내가 관리하며 시간을 엮어 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大悟覺醒의 기회이고 轉機다. 간부회의. 여전히 꼭 같은 얘기의 반복. 근본적인 것은 그 개인, 그것도 한 두 사람의 이기주의적인 생각 때문에 여러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줄 아는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성의를 강요하는 것도 무리이며 또 스스로의 연구가 모자라는 것도 반성할 일이다.
Aug/16(일) :
경산 영감님께서 꿈에 뵌다. ‘몹시 아프다’고 하셨다. 별고는 없으신지? 형수도 함께 뵜다. 염려스럽다. 오후에 다시 집합 그리고 일장연설. 과연 얼마나 약효가 있고 오래갈라나? 한 끼 $1.19로 떼워야 한다는 계산에 어느 정도 짐작들이 갔는지 모르겠다만 이해는 한 듯한 표정들이다. 다소 마음은 개운하다. 그래 해보자.
이상하게 피부가 너무 약해지는 듯하다. 손만데면 표피가 벗겨지고 만다. 무슨 감자껍질도 아니고-.
Aug/18(화) :
오른쪽 눈이 너무 피로하다. 조그만 오래 책을 읽어도 쉬이 충혈이 되고 침침해짐과 동시에 찝찝하다. 벌써 그렇게 될 나이는 아니지 않는가. 6개월을 보낸다. 그간 뚜렷이 남은 것은 없다. 가장 시간을 많이 앗긴 것은 역시 매일 걷는 것과 書道지만 그놈의 張遷碑는 아무래도 진전이 보이질 않는다. 시작한 Academy 토풀도 아직 다 떼질 못하고 있고, 중국어는 중도에서 놓아 버린 상태다. 유일하게 새롭게 취미를 붙인 것이 기회 있을 때마다 사 보는 ‘Time誌’이다만 그것도 크게 신통한 것은 없다. 오히려 할수록 답답한 것만 더해간다. 남은 반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Bible도 책상 위에 놓아둔 체 손 데지 못한다. 해야 되고 하고 싶은 것은 많으면서도 능률이 나지 않는 것은 역시 그 놈의 게으른 천성 탓이다. 무엇보다 성의를 버리지 말자. 어차피 주어져 있는 시간은 누가 뭐래도 내 것일 따름이다. Next Voy는 여전히 Unfix. 만기자 2명은 France 마르세이유에서 교대시키기로 한다니 Las 경유 일본행은 멀리 간 모양이다. 지난 반년보다 남은 반년이 쉬이 갈 것만 같은 예감은 늘 그랬듯이 체념이 제자리를 완전히 찾은 때문이다. 우선 건강한 게 무엇보다 다행이다. 피부가 약해지는 것이 염려스럽기는 해도-. 한동안 끊었던 Mical을 다시 복용하기로 한다. 정화, 정주에게 몇 자 적어야 할텐데 아직은 생각뿐이다. Wife의 살결이 너무도 갖고 싶다.
Aug/23(일) :
어제 저녁 만기자 2명을 위한 간단한 송별연이 있었다. 술만 들어가면 노래가 나와야 한다는 持論을 펴고 우기는 통신장도 분명히 잘못 된 듯하다. 그래도 Eng. Part에서는 비록 고담준론이 돼지는 못해도 가문과 가정 또는 생활에 대한 얘기들이 오간다. 늘 그 얘기가 그 이야기지만 가끔은 개인의 집안 사정을 안다는데 도움도 참고도 된다. 어느 집안에서든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고 역사를 가지면서 지금이 이르고 있음을 본다. 얘기들의 범위가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Seaman들의 삶과 생각이 제한돼 있는 탓이기도 하리라. 부모, 형제 그리고 재산 등의 관계는 그래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 복잡하고 어려운 것임에는 틀림없는 모양이다. 그런면에서는 좀 더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서양의 사고방식이 훨씬 나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Africa 서안의 Moroco 앞을 지나고 있으나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앞바람을 바뀐다.
Disport Rotation이 Savona, Marseille, Malta, Piraeus로 바뀐다. 27일 새벽녘이라야 닿을 예정. 왼쪽 다리 오금쟁이에 긁은 자리가 결국 덧나 탈을 내는 모양이다. 임파선 몽오리가 서는 자리다. 소독하고 약을 바른다.
Andrew. M Greeley 神父의 소설 ‘The Brother's Life’를 읽다. 세안 신부의 용기와 인간성, 노라와 같은 이지적인 여성들의 힘으로 미국사회가 위대함을 발휘하는 것은 아닐까.
Aug/24(월) :
書譜를 서른 번 반복 쓴 셈이다. 꼭 2년하고도 5개월이 걸렸다. 새삼 시간의 빠름과 그 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에 감회가 깊다. 장천비는 13번째이나 아직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 서보중에도 아직 모르는 글자가 가끔 있다만 쓸 수 있는데까지는 써보자. 엇다 써먹을 것인가는 생각하지 말자. 내년 2월까지 5-6회 더 쓸 수 있어야 할텐데-. 박영한씨의 소설 ‘인간의 새벽’을 읽다. 그 풍부한 상상력과 사상이 부럽다.
Aug/26(수) :
항로를 다시 마르세이유로 바꾸고 ETA를 21:00로 타전했다. Local Agent와 연결하기가 생각보다 무척 힘든다. NYK에서도 4번이나 cable이 있었다. 뭔가 잘 안 되는 모양 같다. Savona가 cancel 되고 그 화물을 마르세이유에서 처리 될 것 같다고만 했다. 입항 3시간을 남기고 VHF로 Continental Fret와 직접 통화. ETD가 31-1일경임을 알았다. 대아에도 즉시 연락을 했다. 대리점 영업을 하는 놈들이 Cable Add.가 없다니 이상한 일이다. 22:30시 아슬아슬한 곡예 끝에 겨우 Moroco Berth에 접안을 끝내다. 엽서 4장을 받았다.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선물이고 위로다. 비록 그 속에 뭣이 들어있는가는 문제가 안 된다. 정모의 손발을 본뜬 것이 퍽 인상적이다. 정주의 발상일까?
Aug/28(금) :
13:30시경 교대자 2명이 도착. 책, 신문, 편지, 먹물들을 받다. 마음부터가 넉넉하고 푸짐하다. 부자가 부럽잖다. 회사에서는 신문도 책도 아무것도 보내지 않은 것이 괫심타. 조그만 신경을 쓰면 여직원들이 잘 할텐데-. 그들의 훈련이 모자라서 인가?
North Enterance 부근의 No.152로 Shifting했다. 편지쓰기가 두려워 진다. 우선 내 자신의 무지부터가 그렇다. 깊은 뜻도 모르면서 읽고 생각난 그대로 써내려 간 것이 탈이 되는 모양이다. 다소 근신을 하자. Wife의 그 본래의 뜻과는 다르면서도 다만 자신감 있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한 그 막말 하는 버릇은 이제 완전히 습관처럼 굳은 모양이다. 물론 이해는 가지만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다. 아니면 정말 그가 내게서 실망과 가치상실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내년 1년쯤은 쉬었으면 싶다. 사실은 금년을 쉬었어야 했었는데-. 가족들과의 보다 가까운 대화와 거리를 위해서도 그렇다. 곧 40대 중반이면 모든 게 짜증스럽고 마음에 차지 않을 때도 되긴 됐다. 좀 더 내가 마음을 정성껏 쏟아 주어야 할 때다. 편지 한 구절에 전부가 담겨져 있거나 모든 것이 표현된 것은 아니지만, 또 그것 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운다는 것도 정상은 아니다. 그만큼 자신들의 생각과 대화의 부족이 간격을 넓혀 두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Seaman들의 공통된 기질의 하나로 되어가고 있는 현상이다. 말 한마디, 편지 한 장에 주먹질을 하고 흥분하는 것은 흔히 보아온 사실이기에 편지 뭉치를 받을 때마다 개인적으로 그 횟수를 적고 한마디 위로의 말을 잊지 않으면서도 막상 내 것은 그걸 잊어버리고 흥분하고 기뻐하는 꼴이다. 좀 더 멀리, 넓게, 크게 보자. 뭐래도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정영 미안할 뿐이다. 5월10일자로 쓴 정화의 편지도 그간 그의 성장의 일면을 보는 듯해 흐뭇하면서도 걱정이 더해간다. 내년이면 19살, 대학생이 된다. 지식이 아닌 지혜와 인생을, 생활이 아닌 삶을 공부하고 체험해야 하는 시기를 맞는 것이다. 20년 보담 앞으로 남은 20년이 더 중요하고 의미와 보람이 있는 시간이다.
Aug/29(토) :
06:30시 만기 교대자 2명을 보냈다. 공항까지 아침 산보삼아 따라 나갈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엊저녁 늦게까지 잠을 못잔 탓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Wife의 편지 때문일 것도 같다. 그것은 그 자체보담도 보다 더 크고 원대한 것을 생각하게 할 Hint를 제시해 주는 듯도 하다. 역시 내가 둔했던가 보다. 오후에 휴무. 시내까지 약 3시간을 걸었다. 주말을 즐기는 프랑스인들의 표정이 한결 밝다. 여유도 있어 보인다. 일 자체를 휴일을 위해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활이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가가 비싸다. Cafe에 앉아 마신 맥주 두 잔에 Pizza 한 접시가 $20가량이 날아간다. 별 맛도 없더만-. 8월 31일자 ‘Time誌’ 사다. 연속 4주째이며 승선 후 8권째이다. 깡그리 읽진 못해도 주요 기사는 대강 outline이라도 이해하는 데서 보람을 찾으며 계속해 본다. 역시 얻는 것은 있다.
Aug/30(일) :
계속 휴무. 날씨도 쾌청이다. No.3 D deck에 실은 약500 CTNS의 G. Fruit 소재 파악하느라 법석을 떨었다. 결국 그것을 Malta에서 Discharge하기는 불가하다는 결론. 늦었지만 NYK에 Telex한다. Piraeus에서 양하하든가 아니면 Malta를 Last Port로 해야 한다.
오후의 배구시합. 오랜만에 즐거운 운동시간을 보냈다만 무리였던가 허리가 아프다. 움직일 수 있는걸 보면 그리 중증은 아닌 모양이다만 불편하기 짝이 없다. 거의 매일같이 운동을 하는데도 그렇다니 고물이 되어 간다는 뜻일 게다.
Sep/01(화) :
9월이 소리도 없이 닥아섰다. 이왕 왔으니 어서 가거라. 마음 푸근히 잡자. 예정보다 2시간 일찍 끝났다. 어제 No.1 B에서 Miss land 된 5300 cartons이 오늘 No.2A와 4A에서 Re-Load되었다. C/O의 보다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화물에 관한한 1등항해사의 역할은 전적인 책임이 있는 자리다. 물론 양하항의 적하를 담당한 관계자들의 잘못이 우선이다만 아무리 그래도 최종 책임은 C/O에게 간다. 본선의 입장에서는-.
허리가 많이 풀린다만 완전하지는 못하다. 후유증을 남기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20:00 출항. Africa 사막쪽에서 날아오는 沙塵으로 하늘이 온통 부옇다. C/E의 말처럼 xx없는 항구는 지루할 뿐이다. 일단 Malta로 향한다. 하루반의 항정이다. Clearance를 잊고 안 받아왔는데 어쩔는지 모르겠다. 원래부터 없는지도 모를 일이다. Agent의 뚱뚱이 Pellisot영감님이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만. ‘Perfect’라고 기분 좋게 몇 번 강조하기까지 했다.
이상하게 배가 쑥 나오는 느낌이다. 특별히 먹은 것도 없으며 그렇게 열심히 걸었는데도-. 받은 신동아 9월호를 깡그리 읽는다. 내일이면 독파되리라. 그놈의 맥빠지는 非理의 기사들에는 욕이 절로 나온다. 그래서야 어느 천년에 서로 믿고 살 수 있으며 불신을 씻어 낼 수 있단 말인가? 뒤집혀도 수십 번은 더 뒤집혀서 모두가 알아야 하고 성찰해야 한다. 불의가 정영 설 땅이 없도록. 에이 씹할 놈의 새끼들, 얼마나 오래 살거라고-.
Sep/05(토) :
3일 09:20시 Malta 입항. 오늘 15:30 출항했다. 섬 전체, 아니 나라 전체가 성곽 같은 곳이었다. 몹시도 매말라 보이고 풍족해 보이지는 않으나 한결 같이 느긋하고 만족한 느낌이다. 어디가나 우리들처럼 서로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아득바득 결사적으로 덤비는 곳은 잘 없는 듯도 하다. 예상대로 화폐가치가 높다. 미국돈 3$가 여기 1Lm(파운드)이다. 엊저녁 C/E와 극장구경. 입장료를 에누리했다. 참 드문일이다. 몇 푼모자라 얘기했더니 그 복스럽던 아가씨가 순순히 표 두 장을 내준다. 상냥한 미소와 함께-. 계속해서 걸은 탓인가 허리가 다시 악화된다. 영 불편하다. Next Voy.가 Bulgaris-Cuba로 Fix된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인다. 전연 생각해보지 못한 코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만 또 써야 할 신경전이 짜증스럽게 여겨진다. 언제 이런 제약없이 마음 푹 놓고 살 수 있을라나? 우리 세대에선 영영 오지 않을 것이구만. Athene 구경은 또 망쳐진 모양이다. 그리스에서 대사관 다녀와야 할 것이고, 그런 다음 일장 연설(?)을 해야 할게다. 내키지 않는 일이다.
경제학 교수 변윤형씨의 자식들에 대한 가정교육 방법이 인상적이다. 마음이 있으면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다. 그것도 진정한 사랑의 말 한 마디가 수백 마디의 연설보다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Sep/07(월) 1987 :
어제 저녁 자정 가까운 시간 Greece의 Piraeus 외항에 닻을 내렸다. 기다리는 선박들이 많은 데다 수심이 깊어 애를 먹었다. 유럽 문명의 발상지 바로 Athene가 이곳이다. 오늘 새벽 06:30 Stand-By하여 07:50시 북쪽의 새로 만든 Container 부두 맨 끝에 접안했다. 의외로 4일이나 걸리겠다고 한다. 역시 찬란한 역사를 지닌 Greece이지만 지금은 그저 살기 바쁘고 빠듯한 3등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왠지 모든 것이 짜증스럽다. 우선은 불편한 허리가 그렇다. 주부식도 문제다. 너무 비싸고 그나마 우리에게 맞는 것이 없다. 가뜩이나 적자 상태가 아닌가? 일단 걷기와 글씨를 그저께부터 일체 중지했다. 종일 누워 있을 수도 없고 안절부절한 상태다. Port state control의 Inspection이 있었다. 제법 까다롭다만 무사히 넘긴다. Oil Record Book이 역시 골치거리다.
Sep/08(화) :
그리스 주재 한국대사관을 들렸다. 불가리아와 큐바의 공산권 기항 허가를 얻기 위함이다. 다행히 사전허가제가 사후신고제로 바뀌었음을 알았다. 진작 그래야지. 아무렴 현지를 방문하는 Seaman들이 가장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정보를 보고 들을 것 아닐까. 오후에서는 유명한 Acropolis에서 Parthenon 神殿 유적을 비롯한 주위의 경관을 둘러보았다. 3000년 전 諸神들 사당은 여전히 어떻게 돌기둥을 쌓아 올렸는지는 지금도 수수께끼라고 한다. 거의 반나체에 가까운 차림과 현란한 색상의 그 수많은 관광객들 속에 긴바지 차림이 오히려 촌스럽고 이색적(?)이까지 하다. ‘왼눈박이 사는 동네에서는 두 눈 가진 놈이 병신’이라더니 -. 몇몇 Group의 일본인 관광객들을 Guide 하는 그 늘씬한 ‘洋版’ 그리스 미인 아가씨의 빨간 유니폼과 유창한 일본어 설명이 근간의 일본 관광실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참으로 부러운 광경이다. 앞서갔던 선조들 덕분에 그 후예들은 다 허물어진 유적 덕분에 숱한 Dollar를 그저 벌어들이고 있다.
Sep/09(수) :
허리 때문에 기어이 병원에 가다. X-ray를 찍고 검진을 받았으니 별 이상을 찾을 수가 없단다. 다행이다만 우선은 아픈 것이 견디기 어렵다. 약을 받았다. 역시 지나침은 화를 부른다. Hatch에서 가끔 썩은 Lemon의 양이 차츰 늘어난다. 하필이면 부둣가에서 선별하고 지랄이다. 하역인부들이 싸 가지고 가는 것도 부지기수다. 아무리 역사가 길고 번영했었다고 해도 지금 배가 고프면 별 볼일 없음은 분명하다. 그 놈의 콧대가 밥맥여 주진 못하니 이럴 수밖에-. 오후에는 줄곧 누워 지냈다. Greece의 그 유명한 해안을 Drive 하면서 돌아보지 못하는 아쉬움은 간절하다만-. 집에 전화했다. 가고 싶다.
Sep/10(목) :
NYK에 P & I Surveyor를 의뢰하다. 아무래도 시원찮다. 역시 종일 약을 먹고 누어보낸다. 저녁에야 찾아온 Surveyor. 그리고 한국 Restaurant 고려정의 초대. 몇 잔 마신 맥주, 그래도 기분전환이 되질 않는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소설책만 읽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보다 더한 어려움도 거뜬히 이겨내지 않았던가. 정신을 차리자.
Sep/11(금) :
결국 화물 1000여상자의 Short가 생겼다. Receiver측에서도 검사관이 붙었다. 찜찜한 찌꺼기가 남는다. 수량이야 본선에서 Check하지 않았으니 별 문제없을 것 같다만 결국 썩고, 인부들이 가져간 것만 해도 사실상 1000여 상자는 넘었을 것이다. 양측 Surveyor들이 알아서 하겠지. 출항직전 구입했던 쌀이 또 기분을 잡친다. 무엇보다 우리 同族에게 속았다는 것이 분통이 난다. 빌어먹을 영감쟁이! 그렇담 사전에 이야기를 해 주워야 마땅한 일 아닌가? 우리가 신청한 California산 쌀이 아니고 꼭 싸레기 같은 것이다. 이것밖에 없다는 구차한 변명을 나중에야 주절거렸다만 한 대 쥐어 박아주고 싶은 심정이다.
14:30 이 항구를 떴다. 아직도 허리는 殘痛이 있다만 호전되어 간다. 희부연 바다 위의 먼지가 마음처럼 흐릿하다. 편지를 띄웠다만 앞으로 달반 가량은 뜸하겠군.
Sep/12(토) :
Aegean Sea를 거쳐 새벽 2시부터 S/B. Dardanells Straite Pilot를 승선, 흑해 입구의 Sea of Marmara를 들어선다. 12:40시 다시 Bosporus Pilot를 바꿔 태우고 Black Sea로 들어섰다. 동서양을 가르는, 지정학적으로 너무도 중요한 목줄기다. 한번 쯤 Istanbul을 다녀갔으면 싶다만-. 양쪽 해안에 늘어선 집과 건물들의 외관은 깨끗하고 아담하지만 직접 고개를 디밀고 보면 엉망으로 지저분함과 고민과 불의가 득실거릴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Pilot들의 하는 짓을 보면 더욱 그렇다.
20:40 Burgalia의 Burgas 외항 비좁은 곳에 겨우 닻을 내린다. 쉬이 잘 끝나야 할텐데. 틈나는 데로 드러 누워 지냈고 약을 계속 먹은 탓인가 허리가 많이 풀려감에 따라 기분도 차츰 개여간다. 미열과 약간의 두통은 간밤의 불면과 무리 때문일거다. 그저 머리속이 텅 빈 느낌이다. 책을 읽어도 도무지 의미를 모르겠다. 그저 글자만 눈으로 더듬다 만다. 근 20여일간 생활의 리듬이 마치 실타래처럼 엉크러져 버린 것이다. 역시 그놈의 타성이란 것이 지독한 것임을 실감한다. 이곳을 다시 뜰 때까지는 계속 될 것이지만 무엇보다 거기 따른 순발력과 적응력을 쉬이 인정하고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생활의 불편이 없다는 것과 만족한다는 것은 천지차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가듯이 마음도 자라고 변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걸 잊어버리는 데서 항시 남에게 뒤지기만 한다. 그래도 조용한 명곡이 흐르는 FM Radio가 있어 좋다. 처음 와 보는 흑해와 東歐圈. 약간의 긴장과 호기심이 찰랑거린다.
Sep/13(일) :
아침부터 느닷없이 닥친 Boarding Office 6명과 국영 Agent 1명. 그리 까다롭지는 않다만 아침부터 Whisky 한 병을 앉은 자리에서 비우고 담배 8 Ctns 가져갔다. 알만하다. 여전히 일정은 五里霧中이다. 사회주의 체제라 전부 국영이다. 자기 일 이외는, 아니면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여실하다. 3-4일 좋이 쉴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저녁참에 다시 Charterer측 Cuban 2명과 현지 직원 1명이 Hold Survey차 다시 왔다. 역시 Whisky 한 병을 바닥내고 담배만 얻어간다. 17일 시작예정에 7-10일 걸리겠단다. 결국 이 달은 여기서 보내게 되겠구만. 13:00 전원 모아 다시 얘길했다. 우리의 현실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역사가 그런 것을 어쩌냐. 어디까지나 북한과 가까운 사회주의 국가인 만큼 조심하는 것이 上手라고.
‘한계’란 말이 문득 떠오르고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역시 한계에 달하고 말았다는 말인가. 책을 봐도 글씨를 써도, 운동을 해도 진척이 없다. 마음이 정신이 풀려 버린 나사처럼 헐렁해진 탓인가? 도무지 의욕이 나질 않는다. 아내의 다사로운 체온과 얘기. 그리고 얘들의 웃음소리만이 자꾸 마음을 긁어댄다. 7개월째를 아직도 한 주일이나 남기로 있는데. 어쨌든 계기를 만들어야겠다. 알면서도 행하지 못함은 곧 의지가 약함, 소심함을, 그래서 스스로 자기합리화 방안을 찾는 비겁함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신인작가들의 중편들, ‘욥의 딸’ ‘임지’ ‘머큐리의 지팡이’ ‘해방의 피안’ 들을 읽다. 그냥 글자만 읽은 것 같다. 글로 감정을 표시한 다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것인 줄을 내 대가리로선 상상을 초월한다.
매양 겉만 훑고 알맹이는 안개처럼 희미한 그놈의 뜻. 늘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하고 싶어도 재주 없어 못하는 것도 불행한 일임에 틀림없다. 10여일간 중단했던 붓을 다시 들어본다만 오히려 짜증의 불에 기름만 붓는 꼴이다. 참말로 제기랄 같은 요즘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