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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夕의 생명이야기5] 육의 양식이 음식이라면 영의 양식은 사랑입니다.
육속에 갇힌 생명 속에서의 영혼은 양식이 필요한데 그것이 애정입니다.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영을 이야기 할 수 있겠어요. 세상 사람들이 도덕이나 윤리에 혹시 어긋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애정이 있어야 사는 것입니다.
육속에 갇힌 생명 속에서의 영혼은 양식이 필요한데 그것이 애정입니다.
그간 성인들이 육 생명을 너무 천한 것으로 봤기 때문에 그거까지도 천하게 봤어요. 그래서 성행위도 사랑이 있는 성행위는 거룩한 것입니다. 마음으로만 사랑하면 뭣합니까. 육적인 사랑행위까지 갔을 때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마음으로만 사랑을 하면 프라토닉한 사랑이고 귀신사랑입니다. 그것은 온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유영모선생님이 함석헌선생을 좋아했으면서도 함선생에게 실망을 많이 하셨는데 그것은 함선생에 대한 연문의 소식이 들리자 강경하게 나무라셨어요.
저는 유영모선생의 그 행위에 대해서는 찬동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영적인 존재라 함은 육 생명의 약식인 음식을 먹어야 살듯이 영생명도 채워져야 하는데 영생명의 양식은 사랑입니다.
우리 생명을 육과 영이 온전해질 때 생명이라고 하듯이 사랑도 생명 속에서의 사랑은 영적인 행위에서 육적인 행위까지 가야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애정만 생각하면 감성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영혼성이나 진실성은 순간적인 것입니다. 그 순간적인 영혼성과 진실성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부부간의 사랑 행위입니다.
아무리 사랑한 사람도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육적인 관계가 없다면 남남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도 마음에서 출발해 육적인 관계까지 가야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짝사랑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실 반쪽 사랑도 아닙니다. 상대방과 육적인 관계에서 함께 이루어져야 온전한 사랑이지요.
우리가 성이라고 할 때 마음 심 자에 날 생자를 쓰거든요. 마음에 생긴다고 할 때 어떤 마음이 최고의 마음일까요.
사랑하는 마음이 최고의 마음이지요. 그래서 그것이 하느님의 마음이고 성입니다. 단순히 남자 여자 생식기능이 달라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데 왜 하느님이 남성 여성을 따로 만들었을까요.
육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 생명으로서 남자는 여성을 통해서 사랑을 배우게 되고 여성은 남성을 통해서 사랑을 배우고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이신 하느님의 본체를 알 수 있는 첫 경험도 남자는 여성에게서 여성은 남성에게서 느껴지는 것입니다.
성서의 창조이야기에서 보듯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실체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남성 여성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사랑이라고 하면서 사람이 어디서 사랑을 느껴보겠습니까. 어린 아이 때는 엄마에게서 성인이 되면 아내에게 그리고 자녀들과 사랑을 나누고 살지요. 그래서 애정이 중요합니다.
육적인 쾌락이 아닌 그 사랑을 통해서 아내사랑 자녀사랑 형제사랑 이웃사랑을 넘어 종국에는 우리 영혼의 깊은 내면의 세계 하느님이 계신 하느님의 사랑까지 가라는 것이지요.
그런 사랑을 체험해 보지 않고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사람에게서 사랑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라도 사랑하게 되는데 애완견이나 고양이, 새라도 식구가 되는 것이지요. 그럴 대상도 못 찾는 사람은 정신이상자가 됩니다.
동전을 모우거나 우표를 모우고 편집하는 등 그 어떤 무엇인가에 몰두하는 것도 결국 애정을 쏟아야하는 사랑의 대상인 것으로 봅니다.
부부간에도 사랑이 없는 사람끼리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살 경우는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내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계속 먹는 것과 같아요.
내 몸에 맞지 음식을 계속 먹어서 내가 죽듯이 사랑 없는 Sex는 쾌락에 빠져서는 영혼이 죽어갑니다.
그런 Sex가 아닌 사랑이 실린 Sex라면 충분히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인사는 건강하시고, 사랑이 충만하십시오. 라고 인사합니다.
즉 육생명과 영생명이 온전한 상태에서 온전한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받는 생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누라도 평생 애인의 개념으로 살면서 영혼의 만남이 되도록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100년을 살아도 삶이란 찰라에 불과해요. 건강하게 그리고 사랑이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애정이 실린 Sex도 쾌락으로 갈 때에는 죽음으로 가기 쉽지요. 이것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내 몸에 맞는 음식도 계속 먹다가 식도락으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애정이 실린 Sex도 인격이 성숙된 어느 단계에 가서는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많은 성현들 간디 톨스토이 다석 유영모선생이 그랬듯이 그런 길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서석]
첫댓글 사랑이 없는 부부관계는 내게 맞지 않는 음식을 계속 먹는 것과 같다...!!! 으흠~~~ 비유가 놀랍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