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어려움을 겪은 끝에 12월 28일 위고냉 주교가 리지외의 가르멜회 곤자가의 마리아 원장 수녀에게 입회를 허가하는 회답을 보내왔다. 그러나 데레사는 사순절이 지나서 1888년 4월 9일 부활 8일 축제 때에야 봉쇄 수녀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15세 3개월 때였다.
"제가 가르멜에 온 것은 허원 전 심사 때 예수님의 성체 앞에서 선언한 것처럼 `영혼들을 구하고 특히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라고 자서전에서 쓴 데레사는 관상을 통해서 인간이 받기를 거부하는 자비로우신 사랑을 발견하고, 이 사랑에 자신을 봉헌하기에 이른다.
기도할 때도 메마름만을 체험한 데레사는 파리 가르멜 수녀들이 번역한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책들을 읽고 거기에 완전히 빠져들 게 되었다. 십자가의 요한이 16,17세의 데레사에게 준 것은, 데레사가 자기 영혼 안에서 느끼고 있던 직관,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는 무한한 사랑이시라는 직관에 대한 확증이었다.
`가르멜의 산길'과 `영혼의 노래'를 양식으로 하면서 `사랑의 산 불꽃'을 읽은 데사는 십자가의 성 요한을 살았고, 또한 동시에 깊은 고뇌 속으로 들어갔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고 온갖 좋은 것을 아낌없이 베푸시는 분이시라는 요한의 묘사가 데레사의 체험에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가난을 체험하고 배운 것이다. 영혼이 절대적으로 가난할 때, 절대적인 `무'(無)가 될 때만 하느님과 일치하게 된다는 것을 십자가의 요한을 통해서 확인하게 된 것이다. 하느님을 향한 여정에는 두 가지 빛, 즉 하느님 사랑의 빛과 자기 자신의 가난을 인식하는 빛이 계속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 아기의 데레사 성녀가 받은 가장 큰 은총은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깨달음이었다고, 예수 아기의 마리 외젠 신부는 말한다. 데레사 성녀가 세상을 떠난 지 몇 해가 지난 후 교황 비오 10세는 자주 영성체하기를 권장했고,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긍정적인 성화의 길로 이끌어 준다는 점을 상기시킨 외젠 신부는 "19세기의 성덕과 고행은 부정적인 것이었다."면서 여기에 반해 우리 시대의 영성은 긍정적이며, 바로 이것이 성공을 가져온 요인으로서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희생을 크게 강조했으나 오늘날에는 현존과 접촉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는 지적이다. 과거에는 희생에 어떤 숭고한 위엄이 깃들여 있었으나 사랑과 자비에 대해서는 그 만큼의 이해를 갖고 있지 못했는데, 옛날 사람들의 영성은 대다수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으며, 그러한 요 구대로 살아갈 만큼 강한 사람이 극히 적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자비에 대한 인식이 부각되면서 아주 큰 영향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생활의 길을 터 주게 된 것이고, 이렇게 구분되는 두 시기 중에 새로운 시대의 선구자가 예수 아기의 데레사 성녀라는 것이 성녀를 깊이 연구한 신학자의 설명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이시고 자비로우신 까닭에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사랑하시는 데서 기쁨을 느끼시는 까닭에 데레사가 내린 첫 번째 결론은 단 한순간도 하느님을 홀로 버려두지 말아야 하며, 언제든지 하느님 앞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기 어린 딸을 곁에 두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으로 알고 있었던 데레사는 영성체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수도자나, 열심한 신도들이 매일 영성체하기를 열화같이 바라고 실행하는 것을 보고 얼른 수긍이 가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데레사의 다음 말이 그 해답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내가 영성체하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을 위해섭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보고자 하시고, 또 보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그분을 만족스럽게 해 드리려고 그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자서전 A)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하느님 앞에 머물러 있는 것! 그것도 아이처럼.
"내가 천국에 갔을 때 그곳이 생각했던 것만큼 놀랍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는 놀란 척하겠어요.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려서는 안될테니까요."라고 말할 정도였던 데레사는 성안(聖顔) 또는 성면(聖面) 즉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을 통해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분의 얼굴은 나의 빛이요 숭배의 대상입니다."
데세사는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통해 하느님을 바라보았는데, 바로 그 모습 속에 그분의 고통의 흔적과 더불어 그 분의 신성(神性)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데레사 연구자는 말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그를 바라볼 때, 그의 어깨나 등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랑을 확인하는 것과 같이 데레사도 사랑하는 하느님의 거룩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분을 사랑했고, 인간의 모습을 한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봄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니, 이것이 곧 관상이며, 관상은 진리에 대한 단순한 눈길로도 표현된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한 것이었다. 데레사는 복음을 읽는 것도 사랑하는 그분의 성격을 알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니 복음을 실행하는 것 역시 사랑하는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길이 아니고 무엇이랴!
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를 `현대의 성녀'라고 하는 것은 그가 단순히 현대에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현대인에게 완덕에 도달하는 길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완덕에 이르는 길, 다시 말해서 성인이 되는 것은 기적이나 예언을 한다든지, 혹은 탈혼(脫魂)에 빠지거나 세상의 명성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매일 당하는 고통이나 어려운 일들을 통해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데에 있다는 사실을 데레사는 보여 주었던 것이다.
`작은 꽃' 데레사는 또한 작은 것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저를 하늘까지 올려줄 승강기는 오! 예수님, 당신 팔입니다. 당신 팔을 타고 올라가려면 저는 커질 필요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작은 채로 있어야 하고, 점점 더 작아져야 합니다.."
데레사는 또 사랑하며 고통을 겪는 것이 행복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행복이라고 단언한다. 그가 남긴 마지막 시에 이런 진주가 박혀 있다. "사랑하며 고통을 겪는 것은 가장 순수한 행복입니다." 이 시는 `데레사의 사도신경' 이라고 까지 말하는 이가 있는데, 성모님의 고통을 관상하고, 이 관상에서 자기 고통의 정당성과 이 고통을 기쁨으로 튀어오르게 하는 발판을 데레사는 발견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고통, 회망없는 고뇌, 부조리한 혼돈상태 같은 것, 불의 앞에서 겪는 고초, 냉혹한 인간생활의 율법 앞에서의 저항, 이 모든 것을 참고 견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데레사는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담대하게 노래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 방송작가 최 홍준 파비아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