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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고선
제7회 산행일지 : 충북 영동군 민주지산(삼도봉에서 백두대간으로)
일시 : 2003년 3월 22일(토) 10:30-17:30
차량 : 승용차 이용, 대구-경부고속도-황간IC-물한계곡 주차장에서 산행시작
날씨 : 맑음
오래 전부터 월출산을 1박2일로 계획하고 있었는데 전날 김생곤의 갑작스런 서울 출장계획으로 고민을 하던 중 민주지산으로 정하고 오늘 아침 8시 침산동 동아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났다.
김생곤은 정한 시간에 정확히 도착했으나 전날 서울에 출장을 다녀온 여파인지 감기기운이 완연하였으나 짐짓 산에 못가서 생긴 병이라 생각하기로 하였다.
금도현은 그 좋은 신천대로를 외면하고 시내를 거쳐오는 바람에 20여분 지각도착 하였으나 지난 12월 팔공산 정기산행 이후 실로 3달만에 처음 맞는 산행이라 수술한 다리 걱정보다는 설레임이 더욱 큰 듯 연신 싱글벙글이다.
라이터, 버너 등 몇 가지 필수(?) 준비물을 확인하고 8시 30분경 출발하였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잔뜩 흐려 간간이 비를 뿌리던 날씨 탓에 모두들 오늘의 산행을 조금은 염려하였으나 다행히 아침부터 예상 밖의 좋은 날씨다.
오늘은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다들 감기와 부상(?)이니 회장님이 나서실 수 밖에, 하하... 늘상 막히곤 하는 왜관을 별 막힘없이 통과하고서 주유를 목적으로 칠곡휴게소에 들렀다.
주차장은 온통 관광버스와 화려한 차림의 상춘인파들로 북적거린다. 바야흐로 봄, 행락철인 것이다. 금도현과 난 커피 한 잔을, 그리고 김생곤은 물론 감기탓이기도 하지만 나이에 안어울리게도 값이 두배나 하는 쌍화차 한 잔을 들고는 곧 다시 차에 올랐다.
황간IC를 나와 물한계곡으로 가려면 요금소를 지나자마자 굴다리를 통과하기 전 곧바로 우회전하여야 한다. 이정표 표시가 다소간 애매하다. 황간 IC부터 물한계곡까지는 쉬운 길이다 군데군데 이정표도 잘 되어있다.
지난 여름의 수해로 경부선 철도가 끊어지는 등 이곳 김천지역의 피해가 심하였는데 물한계곡으로 향하는 도로 곳곳이 유실되어 있었으며 복구공사로 계곡의 물은 연신 황톳물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이 계곡의 주변은 한가로운 농촌풍경 그것이었지만 마을의 이름은 핏들 등 다소 생소한 것들이 있었다.
입구에서 식수를 구입하고 좀더 가니 초소가 나타나며 아저씨가 쓰레기 수거비용을 받아간다. 1인당 500원, 1,500원을 건네니 영동군 마크가 선명한 약 10리터들이 쓰레기 봉투하나를 건네주었다. 우리가 쓰레기를 수거해 오면 수거비용(?)은 어디에 쓰지?
물한계곡 입구 도착 10시 25분. 조용한 입구식당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베낭을 메었다. 10시 30분.
황룡사 입구에 민주지산 종합안내도가 붙여져 있다. 오늘 산행은 삼도봉, 석기봉을 거쳐 민주지산에 이른 후 다시 황룡사로 하산하기로 하였다.
금도현 회원의 다리가 걱정되었으나 자신의 능력에 맞게 알아서 하기로 하고. 삼도봉 4.4 km. 식수원 보호구역이어서 철망으로 접근을 막고있는 평이하고 넓은 길을 15분 정도를 지나니 낙엽송과 잣나무 숲이 나왔다.
잘생긴 나무들이다. 이 잣나무 숲에서 삼도봉을 가려면 좌측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물론 큰 이정표가 있다.
사실 오늘 산행의 중심주제는 '봄맞이'였으나 산으로 접어들자 이러한 컨셉은 머릿속 생각에 불과하였다.
따스한 햇살, 그리고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더러 곧 순이 나올 것 같이 통통하게 부은 모습 이외의 봄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비록 땅속에서야 봄이 한창이나 진행되고 있을 지는 몰라도 아직은 겨울산이다.
그래 오늘은 '아쉬운 겨울 보내기'로 해야할까 보다. 눈이 녹고 있는 중이어서 그리 미끄럽지는 않았다.
앞서가던 부부는 석기봉으로 향하는 듯 곧 시야에서 오른 쪽으로 사라졌다. 그리 경사도가 크지 않았지만 그래도 산은 산인지라 땀도 흐르고 갈증도 났다. 삼도봉 약수터 앞 벤치에 베낭을 내렸다. 11시 20분.
김생곤은 약수터의 물을 받으려 하였으나 약수터 안은 겨우내 찾아온 눈 손님만 가득하여 부득이 계곡 물을 담고 금도현은 사진기를 내어 들었다.
난 베낭에서 오이를 내어 물고. 10여분을 쉬었다가 금귤을 주머니에 한 주먹씩 넣고는 다시 일어섰다.
여기서 삼도봉까지는 1.7km. 곧 물한계곡은 우측으로 사라지고 곧바로 다시 숨이 차온다. 300여 미터를 힘들게 진행하니 쉼터다. 다들 힘이 들었는지 약속 없이도 스르르 짐을 내려놓는다.
금도현은 반팔 옷만 남기고 윗도리는 베낭에 집어넣고. 삼도봉 1.4km. 다시 비교적 평이한 길들이 이어진다.
갑자기 앞이 환히 열리면서 삼마골재에 닿는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배경으로 한 컷하고는 비록 능선길이지만 만만치 않은 남은 900m에 마지막 힘을 쏟아야 한다.
삼도봉 바로 아래에서 금도현은 현기증을 느끼며 다소 힘들어했다. 병원에 누워지내는 동안 체력저하가 많았을 것인데 갑작스레 많은 운동을 하니 그럴 수밖에.
마침내 12시 30분, 삼도봉(1,170m)이다. 정상엔 나무도 큰 바위도 없이 대리석제단과 여의주를 떠받치고 있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세 마리의 용의 모습으로 다소 과장된 삼도화합비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여기서 매년 삼도의 산악인들이 모여서 화합을 위한 제를 올린다고 하니 이 돌 하나로 국민이 통합될 수만 있다면 다소 더욱 장대하고 화려하게 만든다고 한들 의의를 달 자가 누구겠냐만 왠지 주변 환경에 잘 어울리지 않는 억지 냄새가 느껴지면서 슬그머니 반감이 생긴다.
비록 이 비석이 잠시 우릴 씁쓸하게 하였지만 삼도봉은 그래도 삼도봉이다. 경상, 전라, 충청 그러니까 조선반도의 명실상부한 삼도가 여기서 하나의 만남을 이루니 그 산맥들의 달려옴이 한눈에 보이지 않는가.
우리가 조금 전 지나온 경상북도 김천시, 지리산에서 시작되어 덕유를 거쳐온 전북 무주군의 백두대간 그리고 지금부터 우리가 지나칠 석기봉, 민주지산, 각호산의 충북 영동방향의 백두대간의 모습이 가슴시리도록 벅차게 다가온다.
비록 멀리 덕유산 정상부근, 마치 학창시절 선생님께 바리깡으로 고속도로가 난 머리통처럼 군데군데 미끈하게 다듬어진 스키장의 모습이 마음에 다소 걸리긴 하지만.
일단의 중년의 등산팀 멤버들이 왁자하게 이 야단스런 비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인사를 건네고 우리는 석기봉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지금부터는 백두대간의 일부를 걷고 있다. 산을 좋아하는 대한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백두대간의 종주를 맛보기라도 하듯 가슴이 뜨겁다. 삼도봉에서부터 석기봉은 1.4km, 그리고 민주지산까지는 4.3km.
배는 고파오는데 능선 길이어서 점심 먹을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일단의 나이 드신 너댓 분들은 삼도봉 바로 아래 대로변에서 물을 끓이고 계셨지만 우리는 그 정도의 배짱은 되지 못하였다.
비록 주능선의 길가지만 석기봉과의 중간지점 부근에서 터를 잡았다.
재빠른 동작으로 창립등반부터 한번도 예외가 없는 재료와 방법으로 라면을 끓이고 식은 밥과 김치로 점심을 행복한 마음으로 해치우고 오렌지를 깍았다.
다행히 지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과일껍질 하나까지 깨끗이 정리하였는데 김생곤은 앞에 있던 다른 사람이 버린 스치로포름 김밥 통을 여러 개 주워 함께 베낭에 넣었다. 참 착하기도 하지. 다음부터는 하산 길에 좀더 적극적으로 쓰레기를 줍자는 의견을 모았다.
다시 힘이 났다. 여기서 석기봉은 10여분 소요되었다. 석기봉(1,180m)은 삼도봉과는 달리 바위산이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정상 표지는 글자가 거의 지워지다시피 하였으나 손으로 잡아보는 느낌은 삼도봉의 그것보다는 친근하였다.
석기봉을 내려오자 길은 비록 황석산의 칼날 능선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매우 급한 경사로를 만난다.
아직도 눈은 그대로인데 다행하게도 로우프가 메여져 있다. 더러는 위험해 보이기도 하는 이런 구간이 몇 군데나 있었다.
역시 금도현은 다리가 불편한 듯 예전의 모습과는 달랐다.
곧 다시 평이한 능선길이 이어지고 길은 눈이 녹아내리고 있는 질퍽 길과 양지쪽의 비교적 마른 길이 반복되고 있었으나 대부분은 아직도 눈이 겨울 그대로이며 사람들 발자국을 조금만 벗어나면 발이 쑥쑥 빠져들었다.
까만 털복숭이 개를 데리고 길을 물어온 다소 뚱뚱한 삼십대의 남자를 만난 것은 이즘에서다.
각기봉(?)을 지나 하산하는 길을 묻길래 석기봉은 여기서 한시간 정도 소요되고 물한계곡으로 하산하는데는 또 한 시간 정도 이상이 소요된다고 하니 시간이 빠쁘니 어찌하면 좋으냐고 되물어 왔다.
그러면 되돌아가서 민주지산 못가서 하산하는 것이 좋다고 대답을 했더니 자기를 닮은 그 개에게 "얘야, 우리가 길을 잘못들었다"고 하며 우리 뒤를 따랐다.
그 사람이 틀어놓은 염불테이프가 듣기 싫었으나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곧 그 염불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 체력이 부친 듯 속도가 많이 늦어지고 있었나 보다.
곧 잣나무숲(황룡사)으로의 하산길로 이어지는 고개를 만났다. 여기서 민주지산 정상은 400m라고 이정표에는 적고 있으나 실제로는 200여미터에도 미치지 않을 정도로 가까이에 정상이 있었다.
금도현더러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했으나 기다리겠다는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그를 우리가 잘 알기에.
충북의 최고봉, 민주지산(1,241m)에 닿았다. 삼도봉처럼 정상은 나무도 바위도 없다. 까만 대리석으로 된 표지석과 시멘트로 된 방위표시 그리고 무슨 신용금고에서 세웠을 것으로 보이는 스텐레스의 좁고 날씬한 표시가 전부다.
그러나 그마저 산새들의 배설물로 희게 덧칠되어 있었다. 여기서 각호산은 다시 3.4km를 더 가야 한다.
남은 밀감과 밤과자를 먹으며 10여분 쉬었다가 각호산은 다음을 기약하고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오후 4시. 석기봉 방향으로 200여 미터를 되돌아 내려와 갈림의 고갯길에서 금도현과 난 아이젠을 착용하고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하다.
길은 관목들 사이로 아늑하고 평이한 내리막길이었으며 눈이 많아 김생곤은 즐거운 모습으로 미끄럼을 탔고 금도현은 다소 뒤쳐지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하산길이 눈길이어서 무릎에 무리가 덜한 것으로 여겨졌다.
30여분 2km를 내려오니 길의 양상이 크게 달라지고 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왔다. 물가에서 비록 겨울이지만 금도현을 따라 모두들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그리고는 탁족. 가히 고통스러운 차가움이었다. 그러나 발은 훨씬 편안해졌다.
아이젠을 벗고 지난 여름 비로 흙은 쓸려 내려가고 돌들만이 남은 길을 내려왔다. 계곡의 물은 폭과 수량, 그리고 소리를 더해가고 있었다.
계곡 가의 큰 나무들은 인간들이 수액을 뽑기 위해 질러놓은 침과 호스들로 어지러이 쌓여 있고 이 호스들은 등산로를 따라 길게 아래로 아래로 모아지면서 내려가고 있다.
군데군데 쌓여진 새 물통들을 보면 이들 나무들이 앞으로 흘려야 할 눈물과 피의 량을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나무들이 받아야만 하는 고통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자연으로부터 빼앗기만 하는 인간들의 군상.
잣나무 숲에 이르렀다. 오후 5시.
학명에 당당히 Koraiesis라는 이름이 포함되어 있으며 중국인들은 신라송, 일본인들은 조선오엽송, 그리고 서구에서는 Korean pine라고 불리운다는 상록침엽교목, 세계의 다른 잣나무들 중 유독히 우리에게 잣을 선물로 안겨주는 우리나라의 특산, 잣나무 숲인 것이다.
나무들이 잘 자란 청년들처럼 보기가 참 좋다. 소나무와 다른 점은 소나무가 잎이 두 개이나 잣나무는 다섯 개라고 하니까 다들 직접 잎을 따서 그 개수를 세어 본다.
다시 20분여를 걸어 황룡사 입구에 닿았다. 5시 30분, 산행이 끝나다.
쓰레기 봉지를 초소에 전해주려 했으나 문이 굳게 닫겨져 있어 황간까지 가져왔다.
식당을 찾다가 여의치 않자 금도현은 용기있게 다리를 다소 절룩거리며 황간 파출소에 들어갔다. 우린 다소 부끄러워하며 차에서 기다렸다. 느리지만 친절한 경찰관으로부터 황간IC 바로 앞 인터식당의 올뱅이 국밥을 추천받아 왔다.
올뱅이는 우리말로 고디, 표준어로 다슬기의 충청도식 이름이었다. 집은 허름하였으나 맛은 좋다고 입을 모았다. 아닌게 아니라 손님도 꽤 많이 찾아오는 것으로 보였다.
7시경 어둑해지는 고속도로를 타고 가슴 가득한 행복감으로 대구를 향했다.
김생곤의 감기는 역시 산에 못 가서 생긴 병임이 확실하였고 금도현에게는 다소 무리한 산행임이 확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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