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신앙의 씨앗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본성적으로 인간의 마음 속에 자연적으로 뿌리 박혀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항상 겸손함으로 경건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그에게서 바라고, 그에게서 찾으며, 이미 받은 것들에 대한 감사를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인간 마음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선천적인 지식’이 뿌리 박혀 있지만, 이 지식이 인간의 죄로 인해 소멸되었다는 것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 대한 지식을 ‘자연’ 속에 새겨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 속에서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양심’에 새겨 놓으셨습니다. 이것을 ‘종교의 씨앗’ 또는 ‘신앙의 씨앗’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것은 ‘성경’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지식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만이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1. 자연적 은사의 특성
[기독교강요1권3장1항]
‘인간의 마음 속에 타고난 본능’에 의해 누구나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각이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무지를 구실로 삼아 도피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신성한 위엄을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는 이해력을 각자의 마음 속에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새로움을 더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누구나 ‘한 분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과, ‘이 하나님이 바로 그들의 창조주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거나, 그들의 생명을 바쳐 하나님의 의지에 순종하지 않을 때에는 반드시 자신의 증거로 말미암아 정죄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뿌리 깊은 확신을 갖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비록 짐승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까지도 ‘신앙의 씨앗’을 그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지창조 이후부터 종교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국가나 부족 그리고 가족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새겨져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실제로 ‘우상 숭배’까지도 이 개념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 인간은 다른 피조물을 섬기기 위해 자기 자신을 기꺼이 낮추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기 보다 차라리 나무 조각이나 돌 조각을 경배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이 사실은 인간이 얼마나 신성에 대하여 분명한 감각을 갖고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서 이 증거를 지워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히려 타고난 천성적인 성격을 변경시키는 것이 훨씬 더 쉬울 것입니다. 사실 이 타고난 성격은 인간이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본래적인 교만을 잊어버리고, 가장 낮은 곳까지 스스로 자신을 낮추게 될 때 변화하는 것입니다.
2. 종교는 임의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기독교강요1권1장2항]
어떤 사람들은 ‘종교’란 ‘소수의 사람들이 순박한 민중들을 속박하기 위해 교활하고 교묘한 간계로 지어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과 예배를 만들어 낸 그들 자신은,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믿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실제로 교활한 사람들이 사람의 마음을 더 속박시키기 위해, 종교에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조작해 내어서, 이것으로 일반 대중에게 존경심을 일으키며 공포심을 갖게 하였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만약 인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신앙의 씨앗이 이미 자리잡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들은 이런 일을 성취시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라는 명목으로 소박한 민중들을 교활하게 속인 그들이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전혀 갖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믿을 수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과거에도 더러는 있었고, 오늘날에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지만, 그들은 좋든 싫든 자기들이 믿지 않으려고 하는 바로 그것에 대하여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칼리굴라보다 더 대담하고 방자하게 하나님을 멸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리라는 어떤 징조가 나타나자 그 보다 더 비참하게 떤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그는 자기가 공공연히 멸시하던 하나님을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대담하게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일수록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가장 심하게 놀라는 것입니다.
[레 26:36] 36. 너희 남은 자에게는 그 원수들의 땅에서 내가 그들의 마음을 약하게 하리니 그들은 바람에 불린 잎사귀 소리에도 놀라 도망하기를 칼을 피하여 도망하듯 할 것이요 쫓는 자가 없어도 엎드러질 것이라
이렇게 놀라게 되는 것은 그들이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강한 힘으로 그들의 양심을 때리는 ‘하나님의 복수’에서 오는 것입니다. 실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감추며 하나님의 임재를 자기 마음에서 지워 버리기 위하여 온갖 구실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항상 두려움의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가끔 이러한 공포는 잠시 동안 사라져 없어진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그것은 즉시 돌아와서 새로운 공격을 취합니다. 그들이 만일 양심의 불안에서 잠시나마 놓이는 일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아마 술에 취한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술에 취한 사람은 잠자는 동안에도 평화로운 휴식을 즐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무섭고 떨리는 꿈으로 고통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앙의 사람들 자신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해 주고 있습니다.
3. 실제적으로 신을 믿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독교강요1권1장3항]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결코 지워 버릴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인간의 마음 속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모든 사람에게는 ‘신이 존재한다’는 신념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신념은 선천적으로 모든 사람의 골수에까지 깊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사악한 자들이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완고함 자체가 바로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
그들은 종교를 희롱했고, 하늘나라의 심판을 조롱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냉소적인 비웃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칼보다도 더 날카로운 ‘양심이라는 벌레’가 그들 속에서 더 예리하게 그 속을 파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할 수 있는 한, 하나님에 관한 일체의 지식을 없애버리려고 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파괴하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다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악한 자들이 하나님을 부정하기 위해 열심히 만들어낸 마음의 완고함으로 강하게 말살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도리어 무성해지고 있으며, 현재에도 싹트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학교에서 비로소 배워야 하는 교리가 아니라, 우리 각자가 모태에서부터 배운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사람이 애를 써서 이것을 잊어버리려고 할지라도 본성 그 자체가 허락하지 않습니다.
플라톤이 ‘영혼의 최고 행복은 하나님을 닮는 것이며, 그리고 이 영혼이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붙잡을 때 전적으로 하나님의 모양으로 변하게 된다’고 가르친 것도 이런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철학자들도 ‘종교가 생활에서 상실되면 인간은 짐승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훨씬 더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형태의 죄악에 붙잡혀 그들은 끊임없는 혼란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짐승보다 더 뛰어나게 하며, 이 예배를 통해서만 인간은 불멸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나가면서
인간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본성적인 지식이 뿌리 박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신앙의 씨앗’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는 어떤 사람에 의해 임의의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이미 마음 속에 하나님을 향한 신념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를 말하기를, 무지한 대중을 교묘하게 속이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속았다는 것 자체가 신에 대한 관념이 인간의 본성에 심겨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대적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징조 앞에서는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므로 실제적으로 신을 믿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인간의 마음 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올바르게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