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물편
2.14 문충공(文忠公) 휘(諱) 정지연(鄭芝衍)
공의 휘는 지연이시며, 밀직공(國龍-국룡)의 장자(長子)로, 중국어에 능하셔서 통역관으로, 누차
원(元)나라에 왕래하셨는데, 충렬왕(忠烈王) 2년에 원나라에 사신(使臣-譯官)으로 가셔서,
원나라로부터 "제주도의 진수군(鎭戍軍)159)은, 너히 나라에서 관리를 보내 다스리도록 하라"
는, 원나라 황제인 세조(世祖)의 교지(敎旨)를 받아 가지고 오셨으며, 충렬왕 3년에는 산원(散員)
160)으로 계시면서, 원나라에 가셔서 황제로부터 기미년(己未年)이래로 중조(中朝)161)에 도입
(逃入)162)한 인구(人口)를 모두 본국에 쇄환(刷還)163)토록 하라는 명을 받고 많은 유량민을
데리고 돌아 왔으며, 이 때(충렬왕조-(중앙일보간, 성씨의 고향1832p) 문과에 올라, 1277년(충렬왕
3년. 丁丑)에 또 낭장(郎將)164)으로, 원나라에 파견되어 쌍성(雙城)165)의 첩자(牒者)를 체포하였
음을 알리고 이듬해에 금, 은패(金, 銀牌)를 받아가지고 귀국하시고, 그 해 1278년(元) 至元15년
(족보상 至元間 임)에 중랑장(中郞將)166)으로 승차하셨으며, 1279년(충렬왕 5년, 己卯)에
좌상시 권수 동지 밀직사사(左常侍 權授 同知 密直司事)에 제수 되셨다,
그후 1309년(충선왕 1년, 己酉)에는 동지 밀직사사(同知 密直司事)를 배명(拜命)받으셨으며
1313년(충숙왕 1년, 癸丑)에는 중대광 도첨의찬성사(重大匡 都僉議贊成事)와 판선부사(判選部事)
를 배명 받으시고 치사(致仕)하셨다,
『이 기록은 고려사에 실려 있는데 단 충숙왕 1 년에 첨의 찬성사(僉議贊成事)를 삼아 인(因)하여
치사(致仕)케 하였다고 되어 있음』
그리고 세기(世紀)의 요항(要項)을 살펴보니, 또 원나라에 가셔서는 객관(客館)에 계시면서 날마다
원나라의 대학자 조맹부(趙孟頫)등과 같이, 시를 읊으시며 잘 사귀시고 화목하게 하여 왕이 볼일
보시는 동안 공이 뒤에서 모든일을 주선하니, 원나라 학자들도 의심나는 것은 모두 공에게 물어
보았으며, 다 공을 추앙하고 공에게 경복하였다,
공은 원나라에 가서 문재(文才)를 발휘하여 나라의 위신을 세우셨으므로, 나라에서 시호(諡號)를
문충(文忠)이라 내려셨다, 「고려사」 (을사보-乙巳譜)
※ 좌상시(左常侍) ; 고려 때 문하부에 속해 있던 간관(諫官)벼슬로 정 3품임,
※ 동지 밀직사사(同知 密直司事) ; 고려 때 왕명의 출납, 궁중의 숙위(宿衛), 군기(軍機)등을 맡아보던 밀직사의 종 2품 벼슬,
※ 중대광(重大匡) ; 고려 충렬왕 때 종 1품관의 품계,
※ 도 첨의 찬성사(都 僉議 贊成事) ; 고려 충렬왕 1년에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합쳐 첨의사사(僉議使司)라 했던 것을 1293년
(충렬왕 19년)에 도첨의사사로 하였는데, 여기에 정 2품 벼슬,
※ 판선부사(判選部事) ; 고려 충렬왕 때(충렬왕 34년, 1308년) 전조(이조), 병조, 예조를 합친 선부(選部)의 장관으로서
종 1품관이었음,
※ 권수(權授) ; 겸직을 말함,
159) 변경을 지키는 군사,
160) 고려 때 별장 다음의 정 8품 무관,
161) 중국 즉 원나라,
162) 도망하여 들어온 것,
163) 외국에서 유랑하는 동포를 데리고 들어옴,
164) 고려 때 정 6품, 무관 벼슬,
165) 금나라 성,
166) 고려 때 정 5품 무관 벼슬로 장군의 다음,
2.15 좌윤공(左尹公) 휘(諱) 정난연(鄭蘭衍)
공의 휘는 난연이시고, 밀직공(國龍)의 차자(次子)이시다,
공은 고려 충렬 왕조에 과거(科擧)에 올라 좌사간(左司諫)167)을 지내시고,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렀으며, 뒤에 중경좌윤(中京左尹)168)에 추증 되셨다,
※ 좌사간(左司諫) ; 고려 중서문하성의 정 6품 벼슬로, 낭사(郎舍) 즉 간관(諫官)임, 1298년(충렬왕 24년)에 좌보간(左補諫)을
개칭한 것인데 1308년(충렬왕 34년)에는 좌헌납(左獻納)으로 개칭함,
※ 정당문학(政堂文學) ; 고려 중서문하성의 종 2품 벼슬로서 1275년(충렬왕 1년)에 참문학사(參文學事)로 개칭하였다가 1290년
(충렬왕 16년)에 다시 정당문학으로 고쳤는데 충선왕(1308-1313)조에 폐지되었다,
※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門下府) ; 고려 때 국가의 행정을 총괄하던 관청으로 (현 내무부와 비슷함), 국초(國初)에는 내의성
(內議省), *982년(성종 1년)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 *1061년(문종 15년)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1275년(충렬왕 1년)
첨의부(僉議府), *1293년(충렬왕 19년)도첨의사사(都僉議使司), *1356년(공민왕 5년)중서문하성, *1362년도첨의부,
*1369년(공민왕 18년)문하부등으로 고쳤음,
※ 삼사(三司) ; 고려 때 국가의 돈과 곡식의 출납, 회계를 맡아보던 관청으로 1014년(현종 5년)에 이를 폐하고 도정사(都正司)
를 두었다가 1023년(현종 14년) 다시 삼사를 두었는데 1356년(공민왕 5년)에 상서성(尙書省)으로 고쳤으나 1362년(공민왕
11년)에 다시 삼사를 두어 직제를 개편, 판사(종 1품) 1명, 좌사(左使-정 2품) 1명, 우사(右使-정 2품) 1명, 좌윤(左尹-종 3품)
2명, 우윤(右尹-종 3품) 2명, 및 부사, 판관, 도사, 등의 계제(階梯-벼슬의 올라가는 순서)를 두었는데 좌윤은 이 때부터
설치되었다,
167) 고려 중서문하성의 낭사(郎舍-諫官)벼슬,
168) 고려 시대 수도인 개성의 좌윤으로, 삼사(三司)의 종 3품 벼슬,
출처; 하동정씨 세적실록 2008년인쇄본
雲鶴 炳逸 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