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의 은사시 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 정 하
햇볕은 싫습니다
그대가 오는 길목을 오래 바라볼 수 없으므로
비에 젖으면 난 가끔은
비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 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비에 젖을수록 오히려 생기가 넘치는 은사시 나무
그 은사시나무의 푸르름으로
그대의 가슴에
한점 나뭇잎으로 찍혀 있고 싶었습니다
어서오세요 그대
비오는 날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아무런 연락없이 갑자기 오실 때엔
햇볕 좋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제격이지요
그대의 젖은 어깨
그대의 지친 마음을
기대게 해주는 은사시 나무
비오는 간이역, 그리고 젖은 기적소리
스쳐지나가는 급행열차는 싫습니다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 버려서
차창 너머 그대와 닮은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비에 젖으면 난 가끔은
비오는 간이역에서
그대처럼 더디게 오는 완행열차
그 열차를 기다리는
은사시 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