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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사울 왕이 죽은 이유
말 씀 역대상 10장 11-14절
베드로후서에 개가 토하였던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는다는 속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돼지는 처음부터 깨끗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리 깨끗하게 씻겨도 더러운 구덩이에 눕는 것이고, 개는 어떤 것을 먹어야 하고 먹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토한 것을 도로 먹는다는 말일 것입니다.
주인이 아무리 청소를 해 줘도 우리를 스스로 치우지 못하고 도리어 더럽히기 때문에 돼지우리는 항상 더러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살아가는 자리를 항상 깨끗하게 치우지 않는 것은 돼지처럼 깨끗한 것이 무엇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없는 개가 토해 놓은 것을 다른 개가 먹을까 봐 허겁지겁 다시 먹는 모습은 욕심이 많은 인간이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는 죄를 허겁지겁 먹어 버리는 모습과 너무 똑같습니다.
자기가 눕는 자리를 더럽히고, 먹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 동물처럼 인간이 자기가 사는 자리를 치우지 않고 아무 음식이나 먹는다면 동물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고양이가 모래에 배변을 하고 보이지 않도록 잘 덮어서 자기의 자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밥을 먹고 나서 온 몸을 깨끗하게 닦는 것을 보면 확실히 개나 돼지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무리 달라도 동물은 동물일 뿐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동물과 다릅니다.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뿐 아니라 복합적인 뇌 구조를 가진 것은 인간이 유일하기 때문에 분명 동물과 다르게 행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사고할 수 있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으며, 더럽고 깨끗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자기의 자리를 청결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인간과 동물은 이렇게 확실히 다른 것입니다.
인간은 돼지우리와 같이 더러운 곳에서 살 수 없고, 개처럼 토한 음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만약 이렇게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과거에 가장들이 사냥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던 것처럼 지금의 아버지도 가족을 위해 전쟁터와 같은 세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현대를 사는 어머니는 직장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어머니들은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며 그것을 자기의 행복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면 가족이 굶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어머니가 좋은 음식으로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지 못하면 가족들이 병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현대는 남녀평등이라고 말을 하며 남녀의 역할이 바뀌었다고 말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남녀에게 정해주신 책임은 그대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다할 때 가정이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제 동물과 인간의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면 이번에는 불신자와 그리스도인의 선을 분명하게 그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불신자는 빛 되신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에 어둠에 거해도 그것이 어둠인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은 빛을 알기 때문에 어둠에 거하지 않습니다.
만약 빛을 아는 그리스도인이 게을러서 영적 어둠에 거한다면 그의 삶은 돼지가 더러운 구덩이에 누워있는 것과 같고 개가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처럼 욕심과 정욕에 넘어진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빛으로 세상과 자신을 비춰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깨끗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더러운 자리에 앉아 있다면 그는 앉은뱅이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여러분은 세상에서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그 인생위에 그리스도인으로써 거룩한 삶을 쌓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상 28장 5-6절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무엘이 죽고 나서 블레셋과 그의 종족들은 사울을 공격하기 위해서 군대를 모집했습니다.
블레셋의 공격이 확실해지자 사울왕은 크게 두려워하며 여호와께 기도했지만 응답하시지 않았고,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었지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자 사울은 인간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장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여 아들을 한꺼번에 죽이는 죄를 범했고, 성도로써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여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이 죽고 나자 사울은 그제야 사무엘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울타리였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무엘과는 달리 그 누구도 사울을 도와주지 않았고, 사무엘 만큼 사랑을 가지고 사울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울은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을 찾지 않고 도리어 과거에 자기가 쫓아내었던 신접한 여인을 찾았습니다.
그 여인은 죽은 자의 혼을 불러 내어 사후세계와 교통하도록 돕는 일을 하는 신들린 여인이었습니다.
레위기 19장 31절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사울은 신하와 함께 다른 옷으로 변장한 후 여인을 찾아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는 절대로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고 추종하지도 말라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스스로 신접한 여인을 찾은 것입니다.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고 추종하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더럽히는 행동이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의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신접한 사람을 따르게 되면 하나님의 대적이 되어 결국 사망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보이지 않는 미래와 두려운 원수까지 모두 막아주실 터인데 그것을 믿지 못해서 신접한 자를 찾는 것은 인간의 욕심을 버리지 못한 악한 행동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신접한 자를 찾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도 알고 있고,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신접한 여인을 찾는 것이 죄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고, 선지자들 조차 기도해주지 않자 그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다니엘처럼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간절한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만이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 20장 6-7절에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중에서 끊으리니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 분명히 명령을 어기면 죽이겠다고 하셨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죽이겠다고 하셨는데도 순종하지 않는 것은 설마 당장 죽이시겠는가 하는 인간의 얕은 생각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의 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현실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접한 여인은 찾아가면 만날 수 있고, 원하는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습니다.
사울은 이미 40년이란 시간을 돌이킬 수 있는 기회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신접한 여인을 찾았기 때문에 죽었다고 기록했지만 사울은 신접한 자를 찾기 전에 이미 하나님을 배신했고 타락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죽임을 당했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과정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조금만 고난이 있으면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주느냐고 불평합니다.
꼭 하나님께서 일부러 고난을 주신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고난이 있기까지 돌이키지 않은 죄의 시간이 더 길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받으면 그 고난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돌이키는 척 하지만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중심은 변하지 않고 고난이 두려워서 돌이키는 척 한 것을 알고 계십니다.
사울처럼 돌이키는 척 하지 말고 뼛속까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죄의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그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실한 믿음만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왕으로 있는데도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서 또 왕으로 세우시며 사울을 버리셨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만났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울이 죄를 돌이키지 않을 것을 아셨으므로 그를 이미 오래전에 버리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에게 왕권을 바로 넘기지 않고 악한 사울이 40년 동안 치리하도록 한 다음 왕권을 다윗에게 넘겨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인간이 알 수 없는 백 가지 상황과 미묘하게 얽혀져 있는 인간의 감정과 사단의 장난을 모두 보시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성도의 절대적인 순종과 충성만이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모든 것을 다 가졌고, 더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순종하지 않은 사울왕은 시내산에서 주신 명령을 거역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왕이 된지 얼마 안돼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린 다윗을 사용하실 수 없기 때문에 다윗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기로 했다면 그를 왕에 올려 놓고 훈련 시켜도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이 악행을 저지를 때는 가만 두었다가 신접한 여인을 만나고 나서 그 죄로 죽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정하실 때 일관성이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인간의 이해는 필요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도의 무조건적인 순종이 왜 필요한지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 경우를 비유로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날 부목사님이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살라는 명령을 하셨다면서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당황한 저는 처음에 거절했는데, 부목사가 계속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평생 저와 함께 살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며 저를 설득했습니다.
저는 자녀라 할지라도 함께 사는 것이 편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경원이네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같이 살면서 제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면서 무릎 수술과 폐렴, 장염으로 입원했고 눈 수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함께 살지 않았다면 새벽에 폐렴과 장염으로 응급실에 가서 입원하는 것과 무릎과 눈을 수술할 때 많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제 모든 병치레를 끝내고 다시 저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평생 같이 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어기고 지금 집에 돌아와 있는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집에 와 있는 저에게 집에서 편히 쉬면서 몸을 회복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평생 같이 살라고 하셔놓고 이제 다른 말씀을 하실까요?
그렇게 평생 같이 살아야 한다고 강하게 부목사한테 말씀하신 것은 제 성격이 절대로 자녀들과 함께 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저를 움직이기 위해서 강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근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에 도와줄 사람이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드신 것입니다.
저도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분명 명령하신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순종했을 때 육신의 어려움을 잘 넘길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기도하면 집에서 건강을 회복하면서 목회하는데 전념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무조건 믿게 되면 평생 함께 살라고 하신 그 계획뒤에 분명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이 끝이 아니라 그 다음 계획과 응답을 위해서 지금 순차적으로 이 명령을 내리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여러분이 원치 않던 일이라 할지라도, 먼저 순종한다면 하나님의 그 다음의 계획을 알 수 있고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윗을 기름 부어 왕으로 세웠지만 다윗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시고, 사울의 악행을 끝까지 참아주신 것은 바로 평생 자녀와 함께 살라고 말씀하셨다가 제가 모든 치료가 끝나자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평생이라고 말씀하실 때 순종하다 보면 평생이라고 하신 평생이 끝까지 같이 살아야 하는 그 평생이 아니라 앞으로 제가 겪을 병치레를 혼자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안전한 치료를 위해 미리 환경을 조성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자 더욱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해줘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당장 할 일을 한가지씩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아마도 왕위에 올랐을 때 자기가 고난을 당할 때는 왜 당하는지 몰라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날도 있었지만 지금 나라를 다스리기에 가장 합당한 때에 자기를 왕으로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깊이 감사했을 것입니다.
40년 동안 통치했던 사울이 죽고 왕권을 받고 난 후 다윗은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펼칠 수 있는 위대한 왕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절대로 깨달을 수 없으므로 먼저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합왕이 받았던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합왕이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아합을 죽이겠다는 저주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아합은 너무 두려워서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며 금식하면서 행보를 천천히 했습니다.
그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갑자기 엘리야에게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보였으니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않고 그 아들의 시대에 내리시겠다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을 순식간에 뒤집은 것입니다.
악행을 저지른 아합이 저주의 말씀을 듣고 너무 무서워서 겸손한 척 한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저주의 말씀을 거두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속으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아들의 시대에 재앙을 내리시겠다는 말씀은 아합을 용서하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대까지 그 재앙이 이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들의 시대에 재앙을 내리시겠다는 것은 아합이 말씀을 듣고도 돌이키지 않을 것이고 그의 아들 역시 아비의 행동을 따라 할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와 자손 모두를 버리시겠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합은 무서운 심판을 들은 그 자리에서만 돌이키는 척 했을 뿐 그의 중심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듣고도 인간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저주가 그대로 임한 것입니다.
저주를 받을까 봐 두려워서 잠시 돌이키는 척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속지 않으시기 때문에 행동은 물론 믿음과 생각까지 모두 돌이켜야만 본인은 물론 자녀들까지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쉽게 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틀림없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깨끗하고 거룩한 자리에 앉게 하실 것이며, 악한 자와 악한 영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울타리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사무엘상 28장 14절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하니 그가 이르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하더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죽은 사무엘을 불러 달라고 부탁한 사울은 땅에서 올라오는 한 노인이 있다는 신접한 여인의 말을 믿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땅에서 올라온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길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는데 왜 나를 불렀느냐고 하면서 호통을 쳤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통해 말씀하시길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네가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이스라엘을 넘길 것이고 또 너와 네 아들들 역시 함께 죽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말을 듣고 너무 두려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땅에서 올라온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한 말을 들어보면 땅에서 올라온 사무엘이 진짜라는 착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에 들어가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기 때문에 그 믿음위에서 이 사건을 보면 신접한 여인과 땅속에서 올라온 사무엘 모두 사단의 장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을 이용하셔서 사울이 들어야 할 말을 미리 말씀하신 것이므로 땅에서 올라온 거짓 사무엘이 한 말이 모두 다음날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울의 죄를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일 뿐 신접한 여인의 능력은 아닌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약속과 섭리 그리고 성경전체를 보는 믿음안에서 이런 사건을 바라본다면 사단의 역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본문 13-14절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하나님께서 신접한 자와 박수무당을 찾지 말라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하나님께 묻지 않고 신접한 여인을 찾았다는 것은 이미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자기의 죄를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지른 사울의 죄는 땅에서 올라온 사무엘이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자기의 죄로 죽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은 사무엘이 신접한 여인에 의해서 땅속에서 올라온 것을 보고 어쩌면 죽더라도 다시 세상에 와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면 사람이 죽으면 천국이든 지옥이든 영원한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자기의 업에 따라 다시 인간이나 곤충이나 그 무엇인가로 태어난다는 이솝우화와 같은 설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사람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인간의 죄는 어떻게 해야 사함을 받을 수 있는지, 인간이 육을 벗으면 어디로 가는지, 이 세상의 끝은 언제인지 확실하고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에 모든 사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 말씀만 믿으면 진화설과 사람이 만든 종교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만 사울처럼 악한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합당한 때에 역사하실 것을 믿어야만 그 날이 올 때까지 잘 준비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날이 왔을 때 그 동안 준비했던 능력과 지혜로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악을 행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그 날을 기대하며 최선을 다해 말씀에 순종하는 다윗처럼 사시기 바랍니다.
책망의 말씀을 듣고도 돌이키지 않아서 자신과 자손까지 모두 사망의 구덩이로 던지는 그런 미련한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말씀에 순종하며 늘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면서 충성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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