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그림
“머리도 깎아주고 나이도 깎아주는 이발소 어디 없을까?”
“뭐라 하노, 나는 젊음을 돌려받으러 이발하러 왔제. 박박 밀어서 군대 시절로 돌아갈까, 빡빡머리 고등학생으로 돌아갈까. 아니지 백호치고 아버지 품에 안기던 얼라가 되고 싶네”.
어르신들 이발 봉사를 나온 날이라 노인 복지관 한쪽 방이 시끌시끌하다. 예나 지금이나 이발하는 풍경은 변함이 정겹다.
내 어릴 적 섣달그믐이면 우리 집 담벼락에 붙어 이발소가 차려졌다. 깨끗이 이발하고 조상 맞이하라고 이발사가 직접 마을로 찾아왔다. 볏짚 더미를 높이 쌓아 바지게를 기대 세우고 그 위에 조그만 거울을 얹는다. 그 앞에 걸상 하나 놓으면 영업개시였다. 그곳은 동북쪽을 등져 바람이 잠잠하고 남서로 향해있어 종일 볕이 들었다. 후다닥 생긴 간이 이발소지만 제법 아늑했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버지는 사람들이 앉으라고 멍석을 펴주었다. 동트기 무섭게 시작하면 해가 지도록 발길이 이어졌다. 어쨌거나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머리를 깎아야 이발사가 집으로 가는 이발소였다.
이발사 아저씨는 우리 동네만 아니라 근동을 차례로 돌며 출장 이발을 해주었다. 십리 길인 읍내까지 가지 않아도 되었기에 사람들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아차, 날짜를 놓치면 이발사를 따라 이웃 마을로 원정 가야 했다. 그런 이유로 우리 마을까지 건너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개중에 우리 학교 남자애들도 몇 명 오곤 했다. 그들은 공연히 서성이며 담장 너머로 우리 집을 기웃거렸다. 특히 내 차례가 되었을 때는 옆에서 알짱대며 떨어지지 않았다. 여자애가 이발한다고 저희끼리 흉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평소에도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랐다. 그 시절 여자애들은 머리를 길러 땋거나 집에서 잘라 주었는데 나는 아버지를 따라 이발소에 다녔다. 어머니가 바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다니는 걸 좋아했다. 이발소는 읍내 초입 갈림길 한 모퉁이에 있었는데 나는 가는 길 내내 장터에 끌려가는 망아지처럼 궁둥이를 내뺐다. 일 년에 고작 서너 번뿐이었지만 이발소 하면 수염 시커먼 남자들이 면도하러 드나드는 곳이라 여겨져 부끄러웠다. 이발소 근처에 다달으면 누가 볼까 잽싸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드르륵, 문을 열면 그 안은 별천지였다. 집안 풍경과 달라 낯설고 신기했다. 정면을 꽉 채운 거울과 등받이 높다란 의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의자는 키를 키울 수도 있고 뒤로 젖혀 누울 수도 있었다. 의자 위에 판자를 걸치면 아기들도 앉아 머리를 깎을 수 있었다. 난로 위 주전자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또 다른 벽 쪽 기다란 의자에는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이발사의 손놀림을 유심히 지켜봤다. 무엇보다 냄새가 좋았다. 비누 냄새일까, 화장품 냄새일까, 상큼한 향기가 은은하게 감돌았다. 그 냄새 덕분인지 오기 싫던 마음은 사라지고, 점점 단정해지는 거울 속의 내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조금씩 이발소에 익숙해졌다.
또 한 가지, 그곳에는 집에서 볼 수 없는 게 있었다. 액자에 담긴 그림 두 장이었다. 하나는 돼지 가족을 그렸는데, 여덟 마리나 되는 새끼들이 젖을 먹는 그림이었다. 또 하나는 두 사람이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이었는데 훗날 알고 보니 밀레의 「만종」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따로 눈 둘 데도 없어 그림들을 쳐다보고 또 보았기에 지금도 이발소를 생각하면 그 돼지 가족과 밀레의 「만종」부터 떠오른다.
내가 이발소에 가지 않는 것은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였다. 중학생이 되자 남학생들과는 담을 사이에 두고 학교생활을 했고 초등 친구들보다 새로 만난 학교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다. 우리는 어울려서 여드름이나 속눈썹에 관심을 가졌고 손톱 밑의 때 가지고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자연스레 미용실에 가게 되었고 이발소와 멀어졌다.
미용실 풍경도 이발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큰 거울과 의자가 있었고 벽에 그림도 걸려있었다. 이발소보다 훨씬 많았지만 주로 옷이며 머리 스타일이 멋진 여자들 모습이었다. 돼지나 「만종」은 보이지 않았다. 동네 개구쟁이들과 부딪힐 일도 없고 분위기도 고급스러워 좋았지만 왠지 허전했다. 살집 푸짐한 어미 돼지와 토실토실한 아기 돼지 그림이 눈에 삼삼했다.
며칠 전 우연히 이발소에 갈 일이 생겼다. 집에 다니러 왔던 아들네가 집 앞 공원으로 나가던 길에 한 이발소를 보았단다. 아들은 자랄 때 아빠랑 자주 다니던 곳인데 여태까지 이발 네온등이 돌아간다며 반가워했다. 네 살 백이 주현이 머리를 깎인다기에 나도 뒤따랐다. 아이들 키울 적 한 번도 간 적이 없었지만 내 어릴 적 아버지와 다니던 추억이 떠올라 발걸음을 빨리했다.
동네 작은 이발소인데 깔끔하고 쾌적했다. 이발사는 손주를 안고 고향을 찾은 아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하게 바라봤다. 요즘 젊은이들은 일부러 미용실을 찾아가는데 할아버지에게 이발하러 왔다며 좋아했다. 나도 처음 들어선 이발소였지만 그리 낯설지 않고 눈에 익은 듯했다. 혹시나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하! 한쪽 벽을 쳐다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곳에 있었다. 내 어릴 적 보았던 낯익은 돼지 가족이 평화롭게 액자 하나를 가득 채우고 누웠다.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아버지를 만난 듯 반가웠다.
요즘은 남녀가 구별 없이 이미용실을 이용하지만 내게 이발소는 그 나름의 독특한 풍경과 분위기가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돼지 가족’ 그림처럼 푸근하고 정겨운 이야기가 있다. 손자를 안고 간 이발소에서 잠시 옛 추억에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