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다드의 서, 제3장 삼위일체와 완전한 균형
미르다드가 말했다.
"그대들은 제각기 자기 자신의 '나'를 증심으로 삼고 있으면서, 동시에 하나의 '나' 를 중심으로 삼고 있다. 그 하나의 '나'야 말로 진정 신의 단일한 '나'이다.
신의 '나'는, 벗들이여, 신의 영원하고도 유일한 언어다. 거기서---'지고의 의식' ---이 나타난다. 그것 없이는 신은 절대의 침묵이다. 그것에 의해 '창조주'는 자기 창조를 이룬다. 그것에 의해 '형상없는 하나'가 다양한 형상을 취한다. 피조물은 다양한 형상을 거쳐 다시 형상없는 것으로 돌아간다.
신을 느끼고, 신을 생각하고, 신을 말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 이미 생겨난 사물, 앞으로 생겨날 사물,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 앞으로 다가올 시간..... 이 모든 것들은, 모래 한 알 조차 빠뜨리지 않고 전부 말하면서 '말씀' 속에 집어 넣는다.
이 '말씀' 에 의해 모든 사물은 창조된다. 이 '말씀' 에 의해 모든 사물은 보존된다.
이 '말씀'이 의미를 갖지 않는 한, 언어는 허공에 헛되이 울려 퍼지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이 '말씀'의 의미가 영원하지 않은 한, 언어는 목구멍에 난 암이요, 혓바닥에 생긴 종기에 불과하다.
'이해' 를 전혀 갖지 못한 자만 아니라면, 신의 '말씀'은 허공에 울려 퍼지는 헛된 메아리가 아니요. 목구멍에 난 암도 아니요, 혓바닥에 생긴 종기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해'란 '말씀'에 생기를 부여하고, 그것을 '의식' 과 결합하는 '성령'이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이해'는 영원의 균형을 유지하는 천칭의 추이며, 천칭의 양쪽 그릇에는'시원(始源)의 의식' 과 '말씀'이 올려져 있다.
'시원의 의식', '말씀', '이해의 성령.‘ 보라, 벗들이여, 이 '존재'의 삼위일체를. 그것은 하나이자 셋이요, 셋이자 하나이며, 똑같이 평등하고, 똑같은 넓이를 갖고 있으며, 영원히 공존한다.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고, 자기 자신을 알며 자족하고 있다. 결코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는다. 영원히 평화이며, 영원히 동일하다. 이것이야말로, 벗들이여, '완전한 균형' 이다.
이것을 인간은 신이라 이름 붙이지만, 실제로 그것은 너무나 경이로워 이름을 붙일 수 없다. 그 이름은 신성하지만, 그것을 신성하게 보존하는 혀 또한 신성하다.
그런데 인간이 신의 아들이 아니라면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인간이 신과 다를 수 있겠는가?
도토리나무는 도토리 속에 싸여 있지 않던가?
신은 인간 속에 싸여 있지 않던가?
따라서 인간 역시 이 성스러운 삼위일체, 즉 의식, 언어, 이해의 삼위일체이다. 인간도 신과 마찬가지로 창조자이다. 인간의 '나'는 인간의 창조물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신처럼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는가?
만약 이 수수께끼의 해답을 알고 싶다면, 미르다드가 명확히 밝혀 주는 것을 들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