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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의 과학 - 디크리
수행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기도와 명상, 그리고 주문이나 디크리를 바치는 것처럼 소리로 하는 수행입니다. 기도는 사랑을, 명상은 지혜를, 디크리는 힘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세 가지의 균형은 대사의 가르침을 실천함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그 효능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에 비해 디크리의 과학 즉 '발언의 과학'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는 오해되고 있기도 하고 일부러 억제되어 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발언의 과학'은 고대 아틀란티스와 레무리아의 사제들이 빛의 힘을 불러일으킬 때 쓰던 기술로 대사들은 이 테크닉들을 다시 복원하여 가르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이 시대의 제자들이 몰라서는 안될 중요한 테크닉이기 때문입니다. 호흡수련이나 기수련은 크게 볼 때 명상수련에 들어갑니다.
'발언의 과학(the science of the spoken Word)'은 만트라, 챈트(chant), 기도문, 기원문(invocation), 시인(affirmation), 찬가, 빛의 명령 등을 바침에 있어 '목 챠크라'와 함께 목소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시인은 긍정문으로 예를 들자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같은 것이지요. 즉 존재의 진리를 긍정하여 그것이 현현하게 하는 것 빛의 명령은 피아트(fiat)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빛이 있어라' 또는 '잠잠해져라'하는 등등의 명령문이지요. '잠잠해져라' 는 영어로 'Peace be still'인데 예수께서 바람을 잠재울 때 쓰던 명령이지요. 이는 감정을 잠재울 때 사용되는 명령입니다.
여러분은 신의 진화하는 의식의 한 단면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그리스도적 존재의 잠재력을 열 수 있게 해주는 자기-지식에 이르는 열쇠를 주려는 것은 신의 최고의 바램입니다. 자기 다스림의 에너지와 지성, 동기를 발출케 할 그 열쇠는 응답을 촉구하는 부름(call)입니다.
부름은 응답을 재촉한다. call compels answer.
부름은 말 그대로 신을 불러서 원하는 것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겠느냐? 구하라, 그러면 얻으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신은 당신의 자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신으로부터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와 함께 계신 신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우리와 함께 계신 신은 우리를 위해 일할 만반의 태세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디크리는 그 신과 신의 일꾼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명령을 내리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신 자신입니다. 좌우지간 신은 우리가 달라고 하면 안 주고는 못배긴다는 겁니다. 단, 그것이 신의 뜻과 일치하는 것일 때입니다.
‘발언’은 영어로는 'spoken Word'입니다. 여기서 Word는 단 순한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말씀'이라고 번역되는 것으로 요한은 그 말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나니, 그가 하느님과 함께 있었고, 그가 곧 하느님이라. 모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어졌으며, 그로 인하여 지어지지 않은 이가 없더라." 이 말씀은 우주의 창조력입니다.
발언의 과학은 바로 그 말씀의 힘을 발출시키는 테크닉입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 분의 그리스도 자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고, 성난 파도와 바람을 잠재웠습니다. 그것은 그가 말씀(그리스도)과 하나가 되었고 그의 명령은 곧 신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그의 명령 앞에 모든 만물은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그리스도는 예수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 안에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하나입니다. 그래서 '독생자'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는 예수께서 했던 것과 똑같이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이미 있는 것입니다. 아니 그 이상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한 일을 그가 할 것이며, 그 이상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 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믿는다함은 예수와 하나가 되었고, 모든 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그리스도가 자신의 참자아이며 자신의 실체임을 받아들이며, 그가 바로 나의 구원자이며 세계의 구원자임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가니깐 너희는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얘기는 예수께서 우리의 기도나 디크리를 하늘에서 더 증폭시켜 준다는 얘깁니다. 이런 일은 비단 예수뿐만 아니라 다른 대사들도 그렇게 하고 여러분이 승천한 다음에도 또 그렇게 할겁니다. 그래서 승천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지구 전체의 빛이 증가하여 점점 좋은 곳이 된다 이겁니다.
'발언의 과학'은 그 말씀이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이 세계에서 일하기 위해서 육신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이 세계에서 일할 초점을 필요로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초점입니다. 여러분이 신의 뜻에 따를 때 여러분은 말씀의 도구가 됩니다.
디크리에 관한 세인트 저메인 대사의 가르침 --------
---사람은 디크리의 올바른 사용법을 이해해야 한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람이 말한 일체의 사소한 말에 대해서도 심판의 날 그에 따른 응보가 주어지리라. 너희는 너희 말로 인해 의롭다함을 얻겠고, 너희 말로 인해 저주를 받으리라." 디크리는 부주의한 말이 아니다. 그것은 세심한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권하는 패턴은 사람을 위해 지고의 선을 불러일으키기에 적합한 것이다.
(실상 사람의 모든 말은 디크리이고 만트라(주문)입니다. 우리의 말을 통해서 신의 에너지는 항상 작용합니다. '나는 바보다'라고 말한다면 '내 안에 계신 신은 바보다'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신의 에너지는 당신을 바보로 만드는 데 쓰일 겁니다. '나는 빛이요, 진리다'라고 한다면 '내 안에 계신 신은 빛이요 진리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은 당신 안에 빛과 진리로 현현될 것입니다.
'너는 왜 그리도 모자르냐'고 상대방을 힐난하면 내 안에 있는 신의 에너지가 상대방을 멍청하게 만드는데 쓰입니다. 그렇게 나간 신의 에너지는 상대방의 성장을 방해하는 족쇄로 현현됩니다. 그래서 비난을 오랫동안 받게 되면 대개의 사람은 성장을 멈추고 풀이 죽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미 자신에게 있는 능력도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말은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용한 대가는 반드시 자신이 거두게 됩니다. 내가 어리석었어. 라고 말할때, 그게 자기 반성에 그치면 되겠지만 그게 자기 존재의 모습에 대한 시인이라면 정말로 멍청해 질 겁니다. 그게 맨날 되풀이되면 정말로 멍청이가 됩니다. 그게 왜곡된 신의 힘 즉 마야의 힘입니다. 물론 본질은 어리석지 않겠지만요. 쓸데없는 말이 부정적인 카르마를 만들기 때문에 수행자는 침묵을 금처럼 여겨야 하는 겁니다. 필요한 말만 하고 그 외는 '예'나 '아니요' 만으로 대답하라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자기의 존재를 시인하는 것하고 현재의 자기 모습을 완전하다고 보는 것하고는 다른 얘깁니다. '너희는 신이다'라고 했을 때 자신의 현재의 모습(에고)을 그 자체로 신이라고 여기는 것은 그야말로 네피림적인 생각입니다. 교만과 탐욕의 덩어리인 자신의 모습을 신으로 보고 자신의 매사를 합당하다고 본다면 그 악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역사를 보면 실제로 그런 존재들이 권력의 꼭대기에 앉아서 얼마나 큰 비극을 가져다주었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신성에 대한 견해는 겸손과 '자기 존재의 긍정' 사이의 균형 속에서 자리잡아야 합니다. 겸손은 자신의 현재 모습 이 결코 신이 아니라 거짓된 것이기에 드러나지 않은 신성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자기 존재의 긍정'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자신의 신성이 자기의 본질이자 자기 존재의 법칙임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러한 긍정은 되풀이 될수록 존재의 참빛이 점차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흔히 만트라 또는 디크리라고 하는 것은 신성 에너지를 좀더 효과적으로 발산할 수 있도록 그 의미와 단어를 세심하게 배열해 놓은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문이나 디크리를 할 때 평소보다 좀 더 집중해서 말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말보다 효과가 강한 것입니다. 세인트 저메인의 말을 계속 인용하겠습니다. )
디크리는 일반적으로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디크리는 신께 보내는 편지로 여겨져야 한다.
(1)디크리의 인사말은 기원적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과 딸들의 개별화된 신적 현존체와 영적 하이어라키를 구성하고 있는 하느님의 종들에게 고하는 것이다. 이런 인사말(디크리의 서두)은 경건히 바쳐졌을 때, 하느님과 승천한 이들의 응답을 재촉하는 부름이 된다. (즉 아엠 프레젠스와 여러 대사들, 천사들의 이름을 서두 부분에 넣습니다.) 소방수가 그대의 도움요청을 거절할 수 없듯이 우리도 이러한 소환 요청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 인사말의 목적은 그대들이 개인적으로 또는 합심하여 사랑스럽게 소리내는 신께 보내는 편지의 몸체부에 대한 응답 안으로 승천대사들의 에너지를 즉각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다. (즉 자기의 기도에 대사나 천사들을 끼여들게 하는 겁니다.)
(2)편지의 몸체부는 자신이나 남을 위해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특질들, 보통의 기도에서도 포함될 수 있는 기원들을 명시한 글귀로 구성된다. 그대의 외면적 의식과 하부의식 그리고 초의식 또는 상부 자아를 통해서 발언의 힘을 발출하게되면, 그대가 불러일으킨 승천 대사의 지고한 의식 도 그대가 간구한 것의 발현에 관여하게 된다는 점을 확신해도 좋다. (즉 대사나 천사들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실현되게끔 일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존재들은 우리가 신의 뜻에 합당하게 요구하는 기도나 간구에 대해 반드시 응답해야 합니다. 이기적이거나 저질적이라면 어두운 것들이 일할 위험이 있지요).
(3)이제 디크리를 종결함에 이르러, 하느님의 가슴 안에서 편지를 봉인하는 받아들임(the acceptance)은 영의 권역으로 위임하는 마음으로 바친다. 그러면 그곳으로부터 연금술(alchemy : all-chemistry of God 하느님의 일체적 화학)과 침전의 틀림없는 법칙을 따라 발현이 물질적 형태의 세계 속으로 되돌아온다. ( 종결부분에서는 자기가 바라는 바가 꼭 발현하고 확대되길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수학에서 제곱의 힘을 이해하는 자는 집단으로 신의 에너지를 불러일으킴에 동참할 때 단순히 일 더하기 일 베이스로 참여자의 수만큼 그 위력이 증대되는 것이 아니라, 디크리를 하는 사람 수와 디크리의 횟수로 제곱하여 발언을 실현시키기 위한 힘의 발산을 증대시켜 주는 '제곱의 옛 계약' 속으로 동참자들이 진입해 들어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두워진 세상으로 보내는 빛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의식을 수련하는 사람들의 생명안으로 말할 수 없는 축복을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는 개인적인 디크리를 충심으로 권하고 있지만, 그룹 디크리는 소원하는 선에 대한 강력한 심상화가 동반되었을 시에는 개인적인 디크리보다 세계적 규모에서 더욱 효과적이며, 참여한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서 신속한 응답을 초래하게 된다. ( 심상화는 시각화, 영상화 즉 visualization을 말합니다. 그러니깐 여럿이 모여서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디크리를 하면 전쟁이나 재난도 막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 성 주위를 돌면서 소리를 지르니까 성이 무너져 버렸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것이 그 예지요.)
명심할 것은 누적된 필멸적 악취로 에워싸인 오늘날의 형태의 세계 속으로 선(Good: God 신)을 불러일으킬 때면 언제나 부름에 대한 응답으로 높은 데서부터 발출되어 오는 선(빛)은 (그 빛의 높은 진동수 때문에) 지구의 대기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부정적 바이브레이션에 의해(이들 바이브레이션의 낮은 진동수때문에) 거의 항상 자동적으로 반발된다는 점이다. (이 점 때문에 디크리를 함에 앞서 자기 주변에 보호의 역장을 형성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대사들이 주는 디크리 중에는 개인적, 세계적 악에 도전하는 디크리가 있는데 이런 것은 충분한 준비없이 하다가는 오히려 반작용에 말려들어가 버리기 쉽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버리기도 하고 갑자기 분노가 일어나거나 두려움이 엄습하는 것도 반작용의 하나지요. 반작용은 대부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빛에 비례해서 나타납니다. )
디크리에 있어서 박자 또한 중요하다. 올바른 박자는 디크리를 통해서 불러일으키고 있는 신의 특질들을 혹성전체로 끌어 당겨올 영적인 바이브레이션의 가장 침투적인 투사를 만들어 낸다. 혹성체 위로 물결치는 원들을 형성하는 이들 파장의 모멘텀은 헌신자가 같은 노력을 쏟기 위해 모이는 그 어느 곳에서도 빛의 심화를 창출해낸다. "너희는 일을 명하라. (Thou shalt decree a thing.) 그러면 그 일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이사야?) 이 말은 디크리를 지배하는 법칙을 밝힌 고대의 격언이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은 "하느님께서 '빛이 있어라' 하니 빛이 있었다."라고 했던 그 태초에 하느님이 사용한 그것을 작용케 할 수 있는 동일한 힘을 갖고 있다.
디크리를 지배하는 법칙과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아름다운 결과를 알지 못한 채 우리의 모임에 참석하여 처음으로 디크리하는 것을 접하는 사람은 어떤 부정적 세력이나 엔터티(entity)들의 영향 아래 놓일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들 세력은 자연스레 다이나믹 디크리의 사용을 정면으로 반대한다.
(디크리를 하는 장소에 처음 들어가거나 디크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처음 듣게 되면 거기서 발출되는 강렬한 빛으로 인해 그 사람의 내면에 숨어있던 엔터티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분노나 두려움에 휩싸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들 의식 속에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받아들인 온갖 종류의 엔터티들이 숨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수행을 방해하고 빛의 흐름을 왜곡하는 요인들입니다. 이는 빛의 정화작용을 통해서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제대로 하면 그런 엔터티들이 발동을 못합니다. '성령과 불에 의한 세례'로써 신성의 빛과 에너지로 변환(transmutation)시켜 버려야지요. 엔터티는 인간하부의 감정덩어리 같은게 응집되어 나름대로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엔터티 중에는 알콜의 엔터티, 마리화나의 엔터티, 자살의 엔터티 같은게 있는데 술자리라면 알콜의 엔터티같은 게 형성되는 장소고 또한 이런 엔터티들이 술을 더 부추기지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술을 먹고 그로 인해 발산되는 에너지가 그 엔터티들의 생명원이니까요.)
디크리의 올바른 사용은 연습을 요한다. 처음부터 우주의 완전함이 자신의 생명에 쌓인 일체의 쓰레기를 쓸어가 버릴 거라고 기대해선 안된다. 올바른 디크리는 기술이다. 좀 더 숙달됨에 따라 디크리의 속도를 높여갈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즉 바치는 비율을 가속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속도를 높여감에 따라 어떤 일이 생기는지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신의 전자적 패턴의 진동율을 고양시키는 이러한 가속은 그 사람의 세계 속에 있는 부정적 생각과 감정들을 떨쳐버리고 변환시키기 때문이다. -----
뭐든지 잘하려면 꾸준한 연습을 통해서 그 모멘텀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서 수행은 마치 피아노같은 악기를 연습하는 것처럼 여겨야 할 것입니다. 악기 연주자는 한두 대목을 연습하고 또 하고 또 합니다. 어떤 수행도 마찬가지지요. 힘 안들이고도 쉽게 효과를 가져오는 방법을 믿지 마십시오. 생명의 에너지들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신의 모든 아들과 딸들의 그리스도적 주체 또는 상부 자아의 특권입니다. 인간적 자아는 불완전하고 미완인지라 창조적 명령을 발할 수 있는 권능이 없습니다. 그래서 디크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안에 계신 전능한 하느님의 현존이신 '아앰'과 나의 거룩한 그리스도 자아의 이름 안에서"
'In the name of Mighty Victorious Presence God I Am in me, and My Holy Christ self'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것과 같은 원리지요. 자신의 현재의 한계와 능력을 인식하는 제자는 일체의 육적인 장벽을 극복하고 성령의 힘으로 자신의 의식을 새롭게 할 신의 전능함을 시인합니다. 성령은 제자의 심장 안에 세줄기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는 거룩한 불로 발현되어 있습니다.
디크리 또는 신적인 명령과 디크리하는 자, 그리고 디크리에 대한 응답 모두는 신으로 신의 삼위일체적 발현인 것입니다. 디크리하는 자는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이 이 디크리를 바치는 것이다. 그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에너지이다. 그리고 내 안에서 발현하고 있는 '발언의 힘'에 의해 법칙을 실현하고 있는 이도 바로 하느님이다"라고 인식해야 합니다. 사람(하급 자아)은 신의 가슴으로부터 나와 발현된 완전함으로 응집되는 빛의 도구인 것입니다. 그는 빛의 원천도 아니고, 창조의 주재자도 아니며, 빛으로 하여금 자신의 명령에 따르게 할 고유의 힘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신의 빛, 신의 말씀, 신의 디크리가 자신을 통해 흘러나가 창조주의 완전한 일을 드러낼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살아있는 희생물로 순결에 헌정합니다. 그처럼 누가 '행위자(doer)'인지를 명심하고 제자는 아버지/어머니 하느님(아앰 프레젠스)과 성자(자신의 그리스도 자아로 현현된 만유의 그리스도)와 성령(형태와 의식에 신의 에센스인 생명을 부여하는 거룩한 불의 에너지들)의 이름으로 디크리를 바치는 거룩한 의식을 집행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문이다(I AM the Door)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라고 했을 때 'door'는 'doer'입니다. 그리고 '나는'은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하느님)'입니다. 즉 바로 진정한 행위자는 하느님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예수께선 '내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자기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했던 것이지요. '부처가 부처를 깨닫는다'는 말하고 일맥상통하지 않습니까? 이런 인식이 참다운 수행의 요체입니다.)
디크리하는 장소는 잘 정돈되고, 깨끗하며, 환기도 잘되고, 조명도 적당한게 좋습니다. 먼지가 많거나 어수선한 곳, 탁한 공기, 어두운 불빛은 디크리의 효과를 떨어트립니다. 이런 것들은 빛의 흐름을 방해하고 천사들을 물리치기 때문입니다. 이들 천사들은 신의 거룩한 에너지를 증폭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천사들입니다. 수행할 때 천사 또는 신장 또는 데바라고도 하는 존재들이 옆에서 수행을 돕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주변을 정돈하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은 아주 민감한 존재라 약간의 부조화스런 진동도 꺼려합니다. 불가에서 오채를 먹지말라고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오채의 냄새나 진동이 이런 존재들을 못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음식들은 수행자의 몸속에 들어가 수행자의 부조화스런 의식의 일부가 됩니다.
이런 존재들은 수행자를 외부의 나쁜 진동에서 보호하는 일도 하지만 신의 에너지를 전달하고 수행자의 기도를 전달하는 사자 역할도 합니다. 야곱이 천사들이 사다리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꿈을 꾼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일은 안 보이는 세계에서 늘상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입니다.
영상화 또는 시각화(visualization)
'아앰 프레젠스' 위에 있고, 당신의 하급 자아는 바이올릿 불꽃에 휩싸인 채 거룩한 그리스도 자아의 보살핌을 받고 있고, 심장에서는 세줄기 불꽃이 고동치고 확대됨을 마음속에 그립니다. 세줄기 불꽃 중에 파란 불꽃은 왼쪽, 핑크빛 불꽃은 오른쪽, 노란 불꽃은 중심에서 타오르고 있습니다. ('아엠 프레젠스'가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으로 자기 위에 있음을 그리라는 얘깁니다.) 마음속에 어떤 선명한 이미지를 그리고 그걸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같은 이미지에 대해 오랜 동안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합니다. 자꾸 하다보면 그 이미지가 점차로 분명해 지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면 그것은 아주 유익한 도구가 됩니다.
의식과 몸이 정화되어 기가 잘 유통될 수록 시각화가 수월해집니다. 돼지고기나 술같은 것 잔뜩 먹고 마음속에 거룩한 이미지를 그리긴 어렵지요. 그 음식의 진동 때문에 이미지가 자꾸 일그러질 겁니다. 우리가 시각화한 고상한 이미지는 신의 에너지가 이 세계로 흘러나오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포하트는 이미지화 된 키(key)를 따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수행자의 마음속에 그려진 이미지를 따라 성령의 에너지가 흐른다는 말입니다. 포하트(Fohat)는 성령의 에너지를 말합니다.
이런 이미지로 흔히 사용되는 것이 빛의 구나 히란야와 같은 대칭적인 기하학적 이미지들입니다. 이런 것을 선명하게 오랜 동안 시각화할 수 있으면 거기서 흘러나오는 신성한 에너지로 인해 존재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는 예수나 크리슈나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다보면 그 모습에서 흘러나오는 예수나 크리슈나의 에너지에 의해 수행자가 오히려 변화하게 되는 데서 볼 수 있습니다.
디크리의 실제 수행: 편안한 의자에 앉아 척추와 머리를 곧게 세우고, 다리와 손은 서로 교차되지 않게 합니다. 발바닥은 바닥에 붙입니다. 나쁜 자세는 부정적인 힘들에게 의식을 열어 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감정의 출입구인 태양 신경총 챠크라(배꼽)가 제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구부린 자세가 그렇습니다. 다리를 꼬거나 손을 마주잡으면 개인에게서 흘러 나와 모든 인류를 축복하는데 쓰일 에너지들이 그 사람 안에서만 짧게 순환하고 말게 됩니다. 발과 손을 통해 에너지가 외부로 흘러 나가게 하라는 얘깁니다. 발과 손도 하나의 챠크라입니다. (흘러나간 에너지는 아앰 프레젠스로부터 실버코드를 타고 계속 보충됩니다. 자신이 빛의 통로가 되는 겁니다. 대사학에서는 세줄기 불꽃이 크기가 그 사람의 수준을 말해준다고 하는데 이 불꽃을 키우는 비밀은 '주는 것'입니다. 주는 것은 신의 사랑의 속성 아닙니까?)
디크리가 실린 책이나 메모를 보면서 할 경우 눈높이 정도에 놓고 보도록 합니다. 그걸 보느라고 몸을 구부리는 일이 없게끔. 손에 아무것도 안 들려 있을 경우 무릎이나 탁자에 놓되 대사들을 통해 신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손바닥을 위로 가게 합니다. (반드시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서건 눕건 다 좋은데 구부리는 건 삼가라는 얘깁니다. 절을 하는 건 좋습니다. 그러나 엎드린 채로 오래 있으면서 주문같은 걸 외면 안 좋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분노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배알이 틀린다고나 할까요)
긴장하지 않은 채 디크리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천천히 또렷하게 디크리를 바칩니다. 그런 다음 리듬에 집중하면서 속도를 늘립니다. 목소리는 힘차고 당당할수록 좋습니다. 부득이한 경우에만 조용히 바칩니다. 호흡은 깊고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쉬는 숨과 함께 당신의 온 몸으로 빛이 투사되어 일체 생명을 축복한다고 생각하도록 합니다. (호흡은 한번에 훅하고 마시고 디크리를 바치면서 천천히 내뱉습니다.)
만일 누군가를 위해 디크리를 바친다고 할 때는 서두 부분에서 그 사람의 이름을 명시합니다. 예를 들자면 '나의 아엠 프레젠스와 그리스도 자아의 이름으로' 한 다음 '누구누구의 아엠 프레젠스와 그리스도 자아의 이름으로'라고 추가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돌아가길 원하는 축복 등을 구체적으로 거명할수록 좋습니다. 좀 더 구체적일수록 그 효과가 집중해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처럼 상대방의 '아엠 프레젠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그 상대방의 세계안으로 하늘의 문을 열어서 그 사람에게 빛의 축복이 흘러 들어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 사람은 현재 나타나 있는 (정신적/육체적) 불완전한 상태들로부터 치유될 수 있습니다. (친구나 누구를 말로 설득해서 안될 때 이런 방법을 써 보세요. 틀림없이 상대방이 변하게 됨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상대방이나 구체적인 축복을 거명하지 않을 경우 디크리나 만트라로 불러 일으켜진 에너지는 승천 대사들이나 천사들에게 위임되어 필요한 아무 곳이나 아무에게나 쓰이게 됩니다. (낭비되는 에너지는 한 푼도 없습니다. 우리가 남용하는 것 말고는)
디크리가 발현하길 받아들임이 또한 무척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신의 빛이 필요한 곳은 바로 여기 육계(physical octave)이기 때문입니다. 디크리를 통해 수행자는 완전한 영역의 에너지를 끌어와서 이 세계의 불완전함을 치유하는 겁니다. (아엠 프레젠스와 그리스도 자아의 세계는 이미 완벽합니다. 변화가 일어나야 할 곳은 이 세계인 것이지요.) 디크리에 대한 응답이 발현하길 의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신의 순수한 에너지는 물질적 형태의 세계로 붙지 않은 채 존재의 상부 영역에 그냥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발언'은 하늘에서 땅으로 빛으로 끌어당기는 열쇠입니다.
예수의 경우를 보면 병자를 치유할 때에 하늘 나라에 이미 완성되어 있는 완전함을 물질계로 현현시키기 위해서 빛을 발출시키는 명령을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나자로를 살릴 때 권위있고 힘찬 목소리로 '나자로, 나와라!'라고 말하자 나자로가 살아서 나왔습니다. (매직이나 연금술에 있어서도 최종적으로 그 결과가 나타나게 하려면 목소리로 크게 '나타나라'라고 말을 해야 합니다.)
프레젠스로부터 나오는 빛은 여러 챠크라를 통해서 발산됩니다. 디크리할 때 말씀의 힘은 목 챠크라를 통해서 흘러 나갑니다. 이 챠크라는 파란 전자 광선을 내뿜는 모습으로 시각화합니다. 심장은 세줄기 불꽃. 이마 정가운데는 에머랄드빛 녹색, 정수리에서는 그리스도의 후광인 황금빛 광채가 나갑니다. 집중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프레젠스의 에너지가 '발언된 말씀'을 실현하기 위해 그 사람의 '주의(attention)'의 흐름을 타고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머무는 곳에 기 가 있다'(심기혈정 心氣血精)고 하지 않습니까. 디크리할 때 주의는 심장의 불꽃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또한 주의를 원하는 결과에 고정하고 마음의 눈으로 디크리가 발현하는 것을 그리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시작하는 처음에는 심장에 집중하고 서서히 그 결과를 심상화하란 얘기지요. 아니면 그저 자신의 챠크라로부터 빛이 나가서 세상을 축복한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디크리나 만트라의 글에 익숙해지면 눈을 감고 자신이 불러일으킨 활동이 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그려봐도 좋습니다. 때로는 각각의 단어나 구절을 신의 에너지로 충전된 상념 -패턴 또는 '컵'이나 '잔'으로 그려봐도 좋습니다. 어떤 사람이 꿈에 디크리하는 모습을 보니까 입에서 번쩍거리는 단어들이 튀어나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아까 얘기한 엔터티중에서 이것은 빛의 엔터티라고 봐도 되지요. 이런 빛의 엔터티들이 생성되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거지요.)
만곱하기 만의 힘
1961년 로드 마이트레야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나, 마이트레야는 오늘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승천 대사들과 대광명 형제단의 위원회들은 심사숙고 끝에 인간적 폭정이 민중의 마음을 너무 오랫동안 지배해왔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날의 학인들에게 '만곱하기 만의 힘'이라고 알려진 것이 주어지도록 간구하였다. 인간적 폭정이란 인간적 의식, 인간적 에고의 횡포를 말합니다. "이제 이날 이후로 너희가 바치는 모든 디크리는 '만곱하기 만의 힘'에 의해 증대될 것이다. "나, 마이트레야는 선언하노니, 이날 이후로 디크리를 바치는 자는 엄청나고도 거세며, 신속하게 움직이는 가속화를 창출하게 되리니, 그것은 인류의 지상적 의식을 쓸어버리고 이 지구에 자유를 가져다주리라. ----------
아래는 세인트 저메인의 말입니다.
--- 오, 그대는 디크리의 올바른 사용을 통해서 그대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그대 자신에게 얼마나 커다란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아는가! 자유에 이르는 얼마나 큰 혜택인가! 세상은 선한 쪽으로 얼마나 영광스럽게 변모할 것인가! 말씀의 힘에 의해 땅이 형성되었다. 말씀의 힘으로 인해 인간의 자유는 신의 이름 안에서 당당히 주장될 것이다. 그대는 디크리를 사용하라! 사람들의 견해를 두려워 하지마라. 하이어라키는 이미 말했으니, 듣는자는 혜택을 얻으리라.----
(이 얘기는 우리가 바치는 기도나 디크리의 힘을 승천대사들이 일억배로 증폭시켜서 우리 세계로 내보낸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디크리하면 일억명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단 얘기지요. 지금은 25800년간 인류가 쌓아온 카르마와 상대하는 시기입니다. 아직도 부족한 실정이지요. 적어도 백여만명 정도는 매일 디크리해야 모든 위기를 완전히 넘길 수 있을 겁니다.)
(강의중 질문 모음)
1. 패턴(Pattern)이란?
패턴은 '단어나 어귀의 배열‘같은 건데, 패턴이 중요한 이유는 신의 순수한 에너지가 통과되어 나오는 프리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거룩한 이미지도 일종의 패턴이지요.
2. 하이어라키란?
하이어라키는 계층구조. 계급구조로 이 우주는 신으로부터 시작해서 엘로힘, 대천사, 천사, 대사 등등 큰 존재에서 작은 존재로 계층구조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의 에너지는 하이어라키의 계층을 타고 점점 감압되어져 이 세계에 이르게 되고 다시 우리의 기도같은 건 하이어라키를 통해서 위로 증폭되어 가지요.
3. '연금술과 침전의 틀림없는 법칙' 이란?
연금술은 비금속을 금속으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알고 있지만 또한 인간적 저급한 의식을 지고한 신의식으로 바꾸는 신의 화학작용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거룩한 불에 의한 세례라는 것이 바로 그런 화학작용을 말합니다. 침전의 법칙은 영적 세계의 이미지가 형태로 나타나는 법칙이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4. 절하면서 디크리를 할 수 있나요?
절할 때는 호흡이 곤란해서 디크리가 잘 안될 겁니다. 간단한 진언을 외는게 좋을 것 같군요. 절할 때도 있고, 조용히 명상할 때도 있고, 큰 소리로 디크리 할 때도 있고, 다양한 방법들이 있습니다. 또 '옴 마니 밧메 훔'같은 것도 있고 여러 가지 진언이 있지요.
5. 제곱의 옛 계약은 뭔가요?
'옛'자를 붙이는 이유는 성서하고 관련이 있는듯 싶군요. 이스라엘의 족장들과 신이 맺은 계약은 우리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계약입니다. 성서의 계약은 '옛적부터 계신 이'(사나트 쿠마라)와 이스라엘 백성의 계약이지요. 이스라엘은 'Is Real' 즉 가슴속에 '세줄기 불꽃'을 가진 모든 신의 아들과 딸들을 얘기합니다. 특정한 혈연 문제는 아닙니다.
6.내부에 있는 악의 엔터티를 정화하는 방법은요?
악의 엔터티를 우리 스스로 파악하고 제거하긴 아주 어렵습니다. 때로는 그게 나자신인 것같이 보이니까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에 내재된 그런 요소들을 하나 하나 거명하며 신에게 파괴해달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빛을 불러일으키는 진언이나 디크리를 바칩니다. 바이올릿 불꽃의 디크리나 불교 진언이 그것입니다. 불교 진언 중에는 '옴 아 훔 바즈라 구루 파드마 시디 훔'하는 진언이 있는데 이게 제일 파괴적인 것 같습니다. 이는 파드마 삼바바의 진언인데 파드마 삼바바는 악귀를 제압 잘하기로 유명하지요. 또한 아주 중요한 스승이기도 하고요
옴 아 훔 바즈라 구루 파드마 시디 훔
누워있거나 자다가 갑자기 공포가 엄습하거나 할 때가 있다면 그런건 외부의 힘이나 엔터티일 수 있습니다. 그런 힘이나 엔터티는 마치 구름처럼 떠돌다가 구미에 맞는 게 있으면 그리로 꼬입니다. 즉 그건 그 사람 내면에 그런 공포의 요인이 있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예를 들면 무의식속에 깊이 감추어진 과거의 비참한 사건같은 것, 그런게 기억은 안나도 알게 모르게 사람에게 영향을 줍니다. 뜻모를 공포는 대부분은 그런 거지요. 죽어서 떠도는 영혼을 'discarnate' 엔터티라고 부릅니다. 이런 영혼은 에너지로 변화되는 게 아니라 천도된다고 그러지요. 대사들의 학교가 있는 데로 데려다가 공부시키지요. 심상화를 강하게 하려면 할수록 강한 에너지가 발산되는데 그럴수록 반발도 심해지기 때문에 먼저 보호의 역장을 형성하고 미카엘 대천사 같은 이에게 지켜달라고 하고서 하는게 안전할 겁니다.
7. 승천을 위한 일상적인 수행이 있나요?
좋은 습관이 승천의 관건입니다. 매일 그날 일을 참회하는 것과 항상 자비로써 남을 대하려고 노력하는 것, 늘 정진하는 것 등등입니다.
8. 선도에서는 성명쌍수법을 지키지 않아 깨달은 자들도 병에 걸린다는데요?
진정으로 깨달은 자라면 자기 몸의 병 정도는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도 병에 걸리는 이유는 자기가 갚아야 할 카르마를 회피하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도 있고, 인류의 카르마를 대신 짐으로써 병을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좌우지간 그런 병은 이미 그들이 그런 정도는 거뜬히 이겨낼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성명쌍수는 중요한 거지요. 몸을 내팽개치는 것은 수행의 연장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이고, 몸에 너무 치중하는 건 본말이 거꾸로 된 거지요. 몸과 마음의 조화와 균형은 수행의 빠른 진척 및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선도를 하는 사람들이 간혹 오해하고 있는 건 성명쌍수라고 해서 몸만들기를 중시하는데, 몸을 마치 금강불괴처럼 만든 다음에 마음을 닦는 수행을 하거나 기수련을 해야하는 것처럼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간 평생 마음닦는 수행은 시작도 못하기 쉽습니다.
몸이란게 일하고 수행하기 편한 정도로 건강하면 되는 것이지 그 이상 몸에 치중하는 것은 시간 낭비고 정력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몸과 정신의 구분은 원래 없습니다. 몸을 잘 다스리는 것도 중요하고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도 중요하며 몸을 잘 다스려야 마음도 잘 다스려지고 마음이 잘 다스려져야 몸도 잘 다스려지는 거지요.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요? 선사(禪師)들은 '아엠 프레젠스'를 깨달은 겁니다.
9. 음악을 듣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현재 유행하는 일부음악은 명백히 사탄의 세력들이 이 문명을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입니다. 록뮤직. 랩뮤직. 째즈도 포함될 겁니다. 챠크라로부터 저급한 형태로 에너지를 발산하게 만듭니다. 록비트를 들으면 힘이 나는건 챠크라에서 에너지가 나오기 때문인데 아주 저급한 형태로 나옵니다. 그런 저급한 에너지들이 지구 전체에 심각한 공해(영적, 물질적)를 유발시킵니다. 그 결과 지구에 어둠의 무게가 점점 커지지요.
챠크라에서 고상한 에너지를 발산케 하는 음악도 있지요. 바하나 베토벤과 같은 고상한 클래식들입니다. 헨델의 메시아는 성모 마리아와 라파엘 대천사의 영감으로 나온 음악이지요.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도 실은 천상의 음악이지요. 성모 마리아의 키노트라고 하는데 키노트는 그 대사의 코잘체에서 울려나오는 음악으로 그 대사를 깊이 명상하면 내면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이지요. 예를 들어 베토벤 합창 교향곡의 4악장은 석가모니의 키노트고,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는 사나트 쿠마라의 키노트고,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은 엘 모리아 대사의 키노트입니다.
클래식 음악 중에는 대사들이 특별한 목적으로 영감을 제공한 음악이 있습니다. 또 그런 작곡가들은 이미 태어나기 전에 음악의 사원에서 훈련을 받고 태어난 사람들이지요. 현대에 그런 음악가들이 나타나지 않는건, 그런 음악가들이 태어나는 시기도 있지만 보다 큰 원인은 종교나 사상의 타락과 연관이 깊은 것 같습니다. 현대에도 대사들의 영감을 받은 작곡가들이 있지만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알려진 사람들 중에는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