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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3일 주일예배 설교내용 – 율법의 역할.
본문: 로마서 2:12-16
롬 2: 12 율법을 모르고 범죄한 사람은 율법과 상관없이 망할 것이요, 율법을 알고 범죄한 사람은 율법을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4 율법을 가지지 않은 이방 사람이, 사람의 본성을 따라 율법이 명하는 바를 행하면,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율법입니다. 15 그런 사람은, 율법이 요구하는 일이 자기의 마음에 적혀 있음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들의 양심도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들의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기도 하고, 변호하기도 합니다. 16 이런 일은, 내가 전하는 복음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사람들이 감추고 있는 비밀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드러날 것입니다.
12.律法を知らないで罪を犯した者は皆、この律法と関係なく滅び、また、律法の下にあって罪を犯した者は皆、律法によって裁かれます。13.律法を聞く者が神の前で正しいのではなく、これを実行する者が、義とされるからです。14.たとえ律法を持たない異邦人も、律法の命じるところを自然に行えば、律法を持たなくとも、自分自身が律法なのです。15.こういう人々は、律法の要求する事柄がその心に記されていることを示しています。彼らの良心もこれを証ししており、また心の思いも、互いに責めたり辯明し合って、同じことを示しています。16.そのことは、神が、わたしの福音の告げるとおり、人々の隠れた事柄をキリスト・イエスを通して裁かれる日に、明らかになるでしょう。
사람의 몸을 올바르게 세우는 기관은 척추입니다. 바디 바이블이라는 책을 보면 척추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척추를 통해서 몸이 곧바로 세워질 뿐 아니라, 척추를 통해 온 몸의 신경이 서로 연결되고 소통하기 때문입니다. 척추를 통해서 우리의 몸의 자세와 밸런스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몸의 각 기능이 원래의 능력을 충실히 사용하기 위해서는 척추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쳤습니다. 교회와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척추의 기능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율법과 교리입니다. 바른 율법과 올바른 교리의 도움을 받아 교회와 성도는 건강하고 신실한 믿음을 지켜 나아 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율법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계명으로, 십계명을 기초로 하여 각종 생활에 관한 법규를 뜻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반드시 이행해야 할 248개의 준수법과 행하지 말아야 할 365개의 금지법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제사하는 법을 가르치신 이유와 동일합니다. 바로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요. 희생제사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짓는 죄를 씻고, 속죄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속죄 받은 삶은 일상에서 율법을 통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독교의 교리와 신앙고백, 그리고 교회의 규범 등이 바로 율법의 역할을 하고 있지요. 더구나 율법의 기초가 된 십계명은 유대인들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유효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십자가의 복음으로 구원받은 자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속죄를 받은 우리와 같은 이방인 성도에게 612여개나 되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직접 명령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유대인에게 광야의 율법이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에게도 지켜야 할 교리와 교회의 규범이 존재합니다.
사도행전 15장에는 초기 기독교회의 이방인들에 대하여 율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논란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특히 28-29절에는 제자들이 서로 많은 논의 끝에 내린 ‘이방인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렇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율법이 612개였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파격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으로 삶에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율법을 따라서 거룩함을 지켜 내기를 원했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령을 따르면 거룩함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유대인에게나 그리스도인에게나 율법은 매우 중요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다만 그 율법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 하는 것을 이해해야 하지요. 바울은 오늘 본문의 12절에서 율법을 모르는 사람은 율법과 관계없이 멸망할 것이고, 율법을 알고도 범죄한 이는 율법을 따라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시대의 지식인이며 존경받는 학자인 이어령 박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지혜이다.“ 그렇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언젠가 때가 되면 반드시 죽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죽음 뒤에 심판이 있다(히 9:27)고 가르쳐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반드시 주님 앞에서 삶에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를 심판하시는 기준이 바로 율법입니다. 바울의 가르침대로 율법을 모른 이들은 율법을 모르기에 죽으면 그것으로 멸망하는 심판의 결과가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처럼 율법이 무엇인지 표면적으로라도 알고,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규범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그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초적인 규범은 바로 기독교의 기본교리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 이야기할 수 없으나… 저와 여러분이 매 주일 신앙고백을 하는 사도신경이 그 교리의 기초가 됩니다. 또 각교단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규정한 신앙생활과 교회의 규칙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교리에 대해서(특별히 우리교회가 속한 감리교회의 교리에 대해서) 시간을 내서 양육과 교육을 받기 원한다면 언제든지 그 자리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이미 교회에 정식으로 등록할 때 ‘클래스 101양육’을 통해서 가장 기초적인 교리와 생활규범에 대해 안내해드리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여하튼 교리나 율법이 무엇인지 피부에 직접 와 닿지 않는 것은 교리교육이나 그에 관한 양육을 의무적으로 받으시도록 강제하지 않기 때문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유대인의 율법이나, 그리스도인의 교리와 교회의 규범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연이어 13절을 보면 율법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율법을 듣는다고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들은 것을 행할 때 의로워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율법과 교리를 배우고 아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그에 따라 순종할 때 우리는 거룩한 삶과 영혼을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이어트를 하는 이들에게 명언이 있습니다.
“다이어트를 하는데 체중계는 매우 중요한 물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체중계라도, 그 기계가 우리의 살을 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체중계는 다이어트를 하는 이들에게 체중의 변화를 알려주는 고마운 도구입니다. 같은 말을 혈압계에도 적용할 수 있겠죠. 혈압을 관리하는데 혈압계는 매우 요긴하고 중요한 물건입니다. 하지만, 그 기계가 직접 우리의 혈압을 낮춰 주지 않습니다. 건강에 좋은 생활습관이 우리의 혈압과 당수치, 그리고 체중을 안전하게 지켜줍니다.
건강관리를 하는 이들에게 체중계나 혈압계와 같은 역할을 율법이 합니다. 그래서 혈압계로 아무리 재고 들여다봐도, 혈압이 거저 내려가거나 올라가지 않습니다. 혈압을 조절하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하지요. 자신의 몸을 실제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혈압을 재는 기계나 체중을 재는 기계가 없어도 건강관리는 할 수 있습니다. 14절에 율법을 갖지 않는 이방인은 스스로가 율법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의로움을 지켜내려는 본성을 따라 살려는 의지가 자신에게 율법이 되기 때문이지요. 마치 매일 체중계 위에 올라가면서 한숨을 짓는 대신에 러닝머신 위에 올라가 뛰는 사람이 살을 뺄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생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교리와 율법을 알기도 전에 이미 양심을 따라 옳은 행실을 행하고자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15절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일이 자기의 마음에 적혀 있음을 드러내 보인다고 바울이 진단하는 이유입니다.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사람이라면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응당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선한 가치관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유교에서는 성선설(性善説)이라는 것이 있지요. 사람이 본성적으로 선하다고 하는 것인데요. 사람 안에는 태생적으로 ‘인의예지’라는 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한 본성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네 가지 마음을 단련하는 실천규범이 있는데요. 불쌍히 여기는 마음,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삼가고 절제할 줄 아는 마음,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지요. 유교는 신을 모시지 않기에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깊이 있게 관찰하여 진리의 그림자를 파악한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해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의 내면에 있는 선한 양심에 대하여 현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반복하면 저나 여러분과 같은 이방인은 비록 성경의 계명과 율법은 알지 못했었지만, 스스로 선을 지키기 위해 ‘양심’이 주는 의지로써 나름의 율법을 삼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선한 본성이나 양심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욕심과 탐욕으로 인해 오염되기도 하지요. 결국 양심이 무뎌지고 마는 것입니다.
16절에는 결국 복음을 기준으로 이 모든 율법과 양심과 도덕과 윤리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날이 온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감추고 있는 비밀”이란 바로 양심, 도덕, 윤리, 철학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율법과 계명을 알지 못했어도 사람 안에서 율법과 계명의 기능을 하고 있는 소위 ‘비밀’들이 나타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역할은 바로 이 ‘비밀’들이 복음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밝혀주는 가이드 역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다면 사람은 완전히 거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예외가 없이 죄인이라고 선언합니다(전 7: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누구도 율법을 지켜서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은 없다는 것이지요. 612개의 율법, 혹은 10개의 계명 중에 단 한 가지만 지키지 못하여도 우리는 유죄심판을 받습니다. 결국 사람이 율법을 아무리 잘 이해하고, 기억하고, 지키려고 노력해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복음’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인간의 노력으로, 철학으로, 혹은 윤리와 도덕으로 이룰 수 없던 것을 완성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부활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율법과 십계명도, 사도의 신앙고백도, 교회의 규칙도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선하고 의롭고 거룩한 삶을 위한 훌륭한 가이드입니다. 질서입니다. 규범입니다. 이 율법이 세운 질서를 지킬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마 5:17).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 3:17).
우리가 복음을 믿고, 복음을 배우고, 복음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곳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율법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교리와 신앙고백, 교회의 규범은 예수의 복음을 더 잘 믿고, 더 분명하게 믿고, 더 바르게 믿기 위한 가이드입니다. 따라서 계명과 교리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율법과 교리가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선하게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자아)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먼저는 자신의 악한 의지(자아)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을 믿습니다. 자기의 의지가 악하다는 사실은 율법과 교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마음과 생각의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이 또한 율법과 교리와 규범을 통해서 배울 수 있지요. 바라기는 여러분이 꼭 시간을 내셔서 한 번 쯤은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정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복음으로 살 수 있기를 결단하고 매일 주님을 바라보며 사는 일상을 연습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을 범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속죄하여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며 영생을 살게 해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율법의 요구하는 바를 완성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완성하신 사역입니다. 율법과 교리는 우리를 거룩하게 살 수 있도록 측정해 주고, 경고합니다. 계명과 율법이 요구하는 거룩한 삶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고, 임재의 복음으로 살아 갈 때 비로소 나에게 적용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율법과 교리에서 증언하는 복음의 은혜와 놀라운 기적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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