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무사히 치르게 해 주십시요. 이렇게 큰 행사를 우리나라에서 치르게 해 주시다니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제 내일부터 시작되는 이 벅찬 행사를 무사히 치르게 해 주십시요. 무사히 잘 치르게만 해 주십시요. 큰 불상사만 일어나지 않게 해 주십시요. 하나님! 하나님......!”
4년전 월드컵 대회를 기다리며 모두들 이렇게 기도했으리라.
수년간을 가슴 떨리며 기다린 월드컵 축구 잔치가 우리 대한민국에서 시작이 되고 있었다. 전야제가 열리는 날 오후 뜨거워진 가슴은 퇴근을 재촉했다. 평소보다 두어 시간 먼저 가게 문을 닫고 집에 왔다. TV로 전야제 행사를 구경도 할 목적이었지만, 더 먼저는 흥분된 마음이 차분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라크전으로 인해 세계가 테러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큰 행사가 있는 곳마다 테러감시는 철저히 하고 있다지만 여간 걱정되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월드컵 성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일 밖에 없었다. 며칠 전부터는 종일 입속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었다. 의식이 있든 무의식이든 간에 월드컵 성공 기원 기도는 계속되고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밀린 빨래거리를 세탁기에 넣고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오랜만에 일찍 들어오니 집안일들이 서로 먼저라며 손을 흔들었다.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정리도 하고 청소도 했다. 들뜬 가슴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게 했다. 그러면서도 오늘 종일 그랬듯이 입에서는 기도가 쉬지 않았다. 몸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머리에서는 온통 월드컵 대회를 위한 기도 뿐이었다. 그런데 설거지를 한참 하고 있을 때 이게 무슨 소린가!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소리는 점점 가까이 오고 있었다. 부엌의 작은 창문으로 눈을 가져가 아파트 뒤쪽 소리나는 쪽으로 얼마나 찾았지만 헬리콥터는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들리던 소리는 한참을 찾다보니 다시 멀어져 갔다.
이제는 울먹이면서 기도가 시작되었다.
“주여! 주여! 테러가 일어났나요? 제발 제발 큰 일이 아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잘 들어 주셨습니다. 주여, 오늘 간절히 빕니다. 이렇게 무릎 꿇고 빕니다. 제발 우리 대한민국에서 월드컵행사만 무사히 치르게 해 주십시요. 특히 광주에서 불상사가 일어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주여! 주여......!”
정신없이 기도를 하고 있는데 또다시 헬리콥터가 오고 있었다. 아파트 바로 창 뒤에까지 온 소리에 벌떡 일어나서 작은 창문을 열고 목이 늘어나도록 찾았다. 그러나 헬리콥터는 보이지 않고 소리는 다시 멀어져 갔다. 서너 번을 그렇게 실갱이를 했다. 나는 울면서 기도를 계속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 하나님 테러만은 아니기를 빕니다. 빕니다. 빕니다......”
기도하면서 어떻게 무엇을 했는지 아무 정신이 없었다. 한동안 소리가 들리지 않자 정신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며 못다한 일을 찾았다. TV가 눈에 띄자 속보가 있는지 얼른 틀었다. 이상한 소식 같은 것은 없었다. 전야제를 앞두고 축제는 한창이었다. ‘아아 예방이나 축하 차원에서 헬리콥터가 비행을 했구나아 괜히 놀랐잖아’ 거실에서 껑충껑충 뛰며 뒤베란다로 가니 세탁기에 빨래가 다 빨아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몇 해나 못 보던 임을 만난 것처럼 크으게 소리쳐 그 이름을 불러댔다.
“세탁기! 세탁기 너였니?”
바보같이 너무나 좋아서 세탁기를 안고 한참을 웃었다. 십년이 넘은 세탁기의 일하는 소리였다.
나는 가끔 그날 일을 잊을세라, 그리고 잊지 않으려는 듯 자랑스럽게 여러 친구들에게 이야기한다. 나의 간절한 기도가 세계 축구 4강과 성공적인 월드컵 대회를 치르게 된 데 크게 한 몫 했노라고, 나 같은 애국자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로부터 4년 후 오늘 독일 월드컵 축제로 온 지구가 뜨겁다. 그러나 2002년의 감동은 없는 거 같다. 4강 지키기는 두고 16강이 일반적인 목표로 정해져 있다. 우리 선수들이 이번엔 얼마나 감동을 줄지 기대가 크다. 온 국민이 그 때처럼 하나가 되어 응원하게 되면 또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 때처럼 가슴 떨리진 않지만 기도는 해야겠다.
첫댓글 그니까 세탁기 좀 바꾸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