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사자성어(38)>
38. 조갑천장(爪甲穿掌)
‘조갑(爪甲)’은 손톱을 말하며, 뚫을 천, 손바닥 장, ‘천장(穿掌)’이라함은 ‘손바닥을 뚫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조갑천장’이라함은 ‘손톱이 손바닥을 뚫는다’는 뜻이다. 조갑천장은 “손톱이 자라 손바닥을 뚫고 나올 정도로 어떤 일에 매진 할 때 ”쓰이는 말이다.
여기서 손톱 조(爪)는 손과 손가락을 그린 상형문자이다. 이 조(爪)자를 오이 과(瓜)자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오이 과(瓜)는 넝쿨에 박이 달려있는 모습을 본 뜬 상형문자이다.
⌜외밭에 가서 신발 끈을 다시 매지 말라⌟ 라는 말이 있다.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라고 한다. 괜히 남의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뚫을 천(穿) 역시 다소 어려운 한자에 속한다. 구멍을 뚫을 때 이를 천공(穿孔)이라고 한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것을 수적천석(水滴石穿)이라고 한다.
조갑천장이라는 말은 대동기문(大東奇聞)이라는 책에서 유래된다.
조선 중종 임금 때 양연(梁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양연은 젊었을 때 틀에 매이지 않고 호탕(豪宕)하게 지냈다. 그러다가 나이 사십에 이르러 배움을 시작했다. 그 당시 사십이라면 지금의 육십 가까이로 보면 될 것이다.
늦은 나이에 발분했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왼손을 꽉쥐고 학문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코 손을 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북한산 중흥사에서 글을 읽은 지 한 해 남짓하여 문장의 이치를 꿰뚫어 통하게 되었다. 양연이 지은 시의 격조는 맑고 높았다.
뒷날 양연이 과거에 급제하던 날에 비로소 손을 펴니, 손톱이 손바닥을 뚫고 있었다. 수년간 손을 꽉쥐고 있으면 과연 손톱이 자라서 손바닥을 뚫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수년간 손을 움켜진 채 공부에 몰두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다. 정신일도(精神一到)하면 하사불성(何事不成)이라고 했다. 정신을 집중하면 어떤 일이라도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조갑천장이라는 사자성어를 읽고 나도 한번 흉내 내 보기로 했다.
그 방법으로 3개월간 열심히 공부해서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을 합격해 보기로 작정했다. 공인중개사업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나같은 노인이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차려본들,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집 보러 가도 문도 안 열어줄 것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도 공인중개사 시험을 치겠다고 하니 집에서는 정신나갔다고 말렸다.
그러나 나는 강행하기로 했다. 우선 청계천 헌 책방에 나가서 공인중개사 시험과목에 관한 과년도 해설서와 문제집 10여권을 아주 저렴한 가격(삼만오천원)에 구입했다. 새 책은 가격이 권당 2~3만원 해서 시험에 떨어지면 책값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공인중개사시험은 1차과목이 「부동산학 개론」과 「민법 및 민사특별법」이었다. 부동산학개론은 행정고시과목의 경제학과 유사했기 때문에 행시출신인 나에게는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민법은 예전에 내가 법대를 다니던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두꺼운 책에 수백개의 판례가 가득 실려 있었다. 난감했다.
공인중개사 2차시험과목은 「공인중개사법」과 「부동산공법」 그리고 「부동산공시법 및 세법」이었다. 모든 과목의 해설서가 두툼한데, 특히 부동산 공법이 량이 방대하고 내용이 난삽(難澁)했다.
어쨌든 이 다섯 과목을 석달간 하루에 12시간이상 읽어나갔다. 염불하듯이 “조갑천장, 조갑천장~”을 되뇌이면서 읽어나갔다. 밥먹고 눈붙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개사시험 공부에 쏱아부었다.
집근처의 도서관에 나가 아침 8시 부터 밤 10시 까지 읽어 나갔다. 잘 때에는 얼굴에 책을 펴서 덥고 잠을 잤다. 자면서라도 무의식적으로 글이 들어오기를 바랬다. 옛날 행정고시를 할 때도 그랬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삼세지습 지우팔십:三歲之習至于八十)는 말이 있듯이, 옛날 버릇이 되살아 난 것이다.
시험 직전 일주일 간은 도서관 근처에 숙소를 구하여 철야공부를 했다. 이른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식의 무지막지(無知莫知)한 강행군이었다. 마치 스님들이 동안거(冬安居). 하안거(夏安居)를 마칠 때, 마지막 일주일 간을 철야정진(徹夜精進)하는 방식이다. 무엇에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 같았다.
시험당일 날 일찍 시험장소에 나갔다. 시험실을 확인한 후, 교정 구석에 쭈구려 앉아 마지막 요약노트들을 대충 훌터보고 시험실에 입장했다. 부동산학개론중 계산문제는 무조건 3번으로 통일하여 시간을 아껴서 풀 수 있는 문제들에 집중했다. 한 문제에 1분 할당되는 시험에서 괜히 어려운 문제에 시간을 소비하느니 쉬운 문제를 보다 많이 맞히자는 나름대로의 득점전략이었다.
공인중개사시험은 과락없이 전과목 평균이 60점 이상이면 되기 때문에 쉬운 과목에서 고득점해서 다른 과목 점수에 보태는 방법으로 했다. 옛말에 “모로 가도 서울가면 그만이다”는 식의 시험전략이었다.
어쨌든 이런 고투(苦鬪) 끝에, 운좋게 공인중개사 1차시험과 2차시험을 모두 합격했다. 칠십 가까운 나이에 서울특별시장으로부터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다(2014.12.9). 자격증은 액자에 넣어 고이 모셔두었다. 애시당초 써먹으려고 공인중개사시험을 본 것이 아니다. 그저 조갑천장의 고사성어를 나름대로 한번 시험해 보려고 한 것일 뿐이다.
조갑천장과 비슷한 말로 상투를 매놓고 글을 읽거나 송곳을 꽂아놓고 글을 읽는 말이 있다. 현량자고(懸梁刺股)가 그것이다. 현량(懸梁)은 대들보에 상투를 매달고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동한시대의 손정이라는 사람이 졸음을 쫓기 위하여 들보애 상투를 매달고 고개가 수그러지면 상투가 잠아당기는 방법으로 공부해서 성공했다.
자고(刺股)는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잠을 쫓고 면학에 열중하는 것을 말한다. 전국시대 소진(蘇秦)이라는 책략가가 이 방법을 썼다고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 쯤은 독한 마음을 먹고, 전력투구(全力投球)할 필요가 있다. 일의 성패여부를 떠나, 어떤 일에 미쳐서 한번 몰두해 볼 필요가 있다. 몰두해 본다는 것은 그 자체가 가치있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조갑천장(爪甲穿掌)이라는 사자성어는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굳고 단단한 지를 우리에게 암시해 주고 있다.(2022.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