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4장 1-22절
찬송가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룻에게 약속을 했지만 우선 순위가 보아스보다 앞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절차는 보아스보다 우선 순위가 있는 사람을 만나 그 뜻을 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보아스보다 우선 순위가 있는 사람은 자기 재산에 손해를 보게 될 까봐 결국은 거절을 하게 됩니다.
이 사람은 분명 법적으로 보아스보다 더 우선 순위에 있는 사람이었기에 충분히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 씀씀이는 보아스를 따라 올 수가 없는 사람이었기에, 1절 말씀을 보면 그 이름도 모른 채 그저 엑스트라와 같이 ‘아무개여’라고 불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사람은 가장 우선 순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보아스와 룻의 결혼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사람, 장애물과 같은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힘없고 약한 사람의 불행을 이용해서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은 세상적으로 볼 때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이름도 없이 아무개가 되고 없어져야 할 장애물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보아스가 말론의 아내였던 룻과 결혼을 하겠다고 말하자 베들레헴의 장로들과 모든 사람들은 11절과 12절에서 보아스와 룻을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베들레헴 장로들과 사람들이 보아스와 룻을 축복한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는 룻이 이스라엘 민족의 어머니였던 라헬과 레아처럼 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룻이 아들을 낳아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야곱이 낳은 열 두 아들이 나중에 열두 지파로 커지게 되었는 데 야곱의 넷째 아들인 유다와, 유다와 다말의 아들인 베레스의 후손들이 당시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가장 강한 유다지파를 이루었습니다. 베들레헴 장로들과 베들레헴 사람들 역시 유다 지파에 속한 사람들이었기에 보아스와 룻에게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축복을 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보아스와 룻을 합법적으로 부부가 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향한 베들레헴 사람들의 축복을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13절을 보면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태어난 이 아들은 보통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복을 두 배나 받은 아들이었습니다. 사실 육신적으로 볼 때 이 아들은 보아스와 룻의 아들이었지만, 법적으로는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로서 낳아 준 아들이었기에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아스의 재산도 상속을 받고 나오미의 죽은 남편 엘리멜렉의 땅도 상속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16절과 17절을 보면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고 합니다.
만약 나오미가 남편과 두 아들을 먼저 잃은 것으로 그 인생이 끝난다던지, 혹은 우리가 살면서 당하는 괴롭고 견디기 힘든 일들이 그저 고통으로만 끝나게 된다면 정말 우리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오미와 룻처럼 고통의 시간들을 지나갈 때, 하나님께로 발걸음을 돌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머지않은 때에 하나님의 채워주심과 회복시켜 주심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수록 더욱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돌보시고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반드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마지막 구절인 21절과 22절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룻기 말씀은 이처럼 오벳이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는 말로 끝이 납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왕은 다윗 왕입니다. 그런데 이 유명한 다윗 왕이 바로 오벳의 손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실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자이자 온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벳과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룻기의 시작은 남편과 두 아들을 먼저 보내고 남은 것은 하나도 없는 나오미라는 늙은 여인의 비참한 이야기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가 지나온 비참한 인생을 통해 가장 유명한 다윗 왕이 나오고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는 길에는 나오미라는 한 여인이 지나온 인생의 눈물로 얼룩진 삶이 흘러 녹아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오미의 가정이 오벳을 통해 회복되었고, 그 후손인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이 강한 나라로 회복되었고, 그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세상이 복음으로 회복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풍성한 인생의 풍년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인생의 흉년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오미와 룻이 만난 인생의 흉년처럼, 우리가 만나는 인생의 흉년을 통해 그만큼 우리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전보다 더 크게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사 시대에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에게 함께 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인생의 흉년을 지나가며 만나는 갈림길에서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는 결단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회복시키실 뿐만 아니라, 이 시대와 세상을 회복시키는 생명과 나눔의 통로로 우리를 반드시 사용하실 것입니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인생의 주관자가 되시기에 어제의 화를 오늘의 복이 되게 하시며, 오늘의 화를 내일의 복이 되게 하시기에, 우리로 하여금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우리 모든 인생을 내어 드리고 맡기며 의지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채워 주심을 통해 자족하며 나눔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