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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광주안씨파보(廣州安氏派譜)의 별록(別祿)을 보면 순암 안정복에 의해 주도된 경술보(1790)와 1907년 광주안씨파보의 별록에 기록으로 남겨 두었던 광주안씨 12대 결세 전의록(十二代缺世傳疑錄)을 다시 기록하고 있는 것 같은데, 시조(始祖) 안방걸(安邦傑)부터 중시조 안유(安綏)사이에 결세 된 12대의 조상들을 기록하고 있다.
안국신(安國信) - 안여중(安礪仲) - 안보평(安輔平) - 안헌사(安憲思) - 안무성(安武成) - 안경립(安慶立) - 안석창(安石昌) - 안필몽(安弼夢) - 안홍미(安弘美) - 안익상(安益相) - 안학성(安學成) - 안충계(安忠季)에 이르는 12대 결세(缺世)의 기록을 서문 다음의 앞쪽에 기록해 두고 있다.
그런데, 안필몽(安弼夢)의 아들 대의 기록에서 장남은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안홍미(安弘美)이고, 차남은 안자미(安子美)인데, 順興安氏始祖 官保勝別將 追封上護軍[순흥안씨(順興安氏) 시조(始祖)가 되었으며, 관직은 보승별장(保勝別將)을 지냈고 상호군(上護軍)에 추봉되었다.]이라는 기록도 역시 1907년 기록과 똑같이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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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01年(1968) 戊申에 (경상도 밀양) 사포(沙浦)의 모렴당(慕濂堂)에서 인간했다는 맷뒷장의 내용 |
출처 : 안씨족사탐구
2. 1983년 간행된 광주안씨 / 위위주부공파 / 밀양 사포파 / 태동파(台洞派)의 파보
안방걸(安邦傑) --- 안유(安綏) - 안지(安祉) - 위위주부공(衛尉注簿公) 안창(安昌) - 안사충(安社忠) - 안정(安鼎) - 안처선(安處善) - 안엄경(安淹慶) - 안억수(安億壽) - 안여효(安汝孝) - 모렴당(慕濂堂) 안인(安忍)으로 계통을 보이는 문중으로 위위주부공(衛尉注簿公) 안창(安昌)의 증손자인 안처선(安處善)의 둘째 아들 안완경(安完慶)이 계유정난(1453)에 사사된 후 큰 아들 안엄경(安淹慶)과 그의 아들 안억수(安億壽)가 경상도 밀양의 삽포[鈒浦, 현 경상남도 밀양시(密陽市) 부북면(府北面) 사포리(沙浦里)]로 이주해서 살게 되면서 세거지 지명을 따라 밀양사포파(密陽沙浦派)라고도 한다. 그 후 만포(晩浦) 안유중(安瑜重,1802∼1868) 때 다시 밀양시 단장면 태동리로 이주한 지파(枝派)가 있는데 이들을 태동파(台洞派)라고 한다.
광주안씨문중의 밀양사포파 계열은 광주안씨 시조 안방걸(安邦傑)의 9대손 안자미(安子美)가 분파되어 순흥안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일관되게(1790 - 1907 - 1968- 1983) 기록으로 남겨두고 있음을 알수 있다.
1968년과 1983년 간행된 광주안씨파보(廣州安氏派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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