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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감사의 인물탐구 5번째 순서는 상아탑반 반장 채성복 어머니 편입니다. 최초로 시도된 학생과의 인터뷰기도 합니다. 인터뷰는 2013년 10월 11일 저녁 야학 생활학습반에서 진행됐습니다 | ||
말 주변이 없어 쑥스럽다던 채성복 어머니는 인터뷰가 시작되자 막힘없이 언변을 토해내 심 감사를 당황시켰습니다.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긍정의 힘으로 이겨내신 채성복 어머님에게 인생에 대해 배운 좋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
심-심형식 감사
채-채성복 어머니
채-말을 잘 못하는데. 자격도 없고. 인터뷰 하게 돼 영광이다.
심- 편하게 하시면 된다. 자기 소개부터.
채-채성복. 65세. 49년생. 소띠. 장애인돌보미하고 있다. 대전시 대덕구 장애인돌보미 자활센터에 소속됐다.
심-봉사활동인가?
채-적지만 급여를 받으니 봉사는 아니다.
심-급여가 많지는 않을텐데. 급여만 생각하면 하기 힘들지 않나.
채-적십자 봉사단에서 활동을 했다. 봉사활동하다보니 나이가 들어 경제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장애인돌봄 교육이 있어서. 교육 받고 일을 시작했다. 11월이면 일 시작한지 1년이 된다.
심-어디서 태어났나?
채-전북 부안군 줄포면 화전동.
심-화전마을 이었나?
채-밭이 많고 논은 조금 있다. 산은 아니고. 그때는 리에 동이 속해 있었는데. 꽃화 밭전자다. 30여가구 있는 아담한 마을.
심-몇 남매인가?
채-9남매 중 7번째다. 오빠 3명, 남동생 1명. 4남 5녀.
심-위로 오빠 3명, 언니 3명?
채-그렇다. 네째딸.
심-어린시절 어떻게 보냈나.
채-가난했지만 양친부모 계시고. 다복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건 아니었지만 가정이 화목하고 평범했다. 여러 식구다 보니 부모님께서는 양식 문제로 걱정하셨겠지만. 양식은 부족했어도, 고구마를 먹고 살았어도 행복했다.
심-이제 인터뷰를 시작했지만, 가정교육을 잘 받으셨다는 느낌이 든다.
채-친정아버님이 그 시절 한문 많이 배우신 분이었다. 어머님은 한글도 잘 몰랐지만. 옛날에는 딸들은 안 가르쳤으니. 아버님이 넉넉하던 시절에는 윤리도덕 따지셨다. 동네 호랑이라고 할 정도였다. 삼강오륜 따지시면서 가르치셨다. 지금도 생각하면 참 행복하다. 가난하고 못배우고 했지만 부모님에게 감사드린다.
심-공부는 어디까지?
채-62년도에 국민학교 졸업했다.
심-중학교는?
채-갈 생각도 못했다.
심-오빠들이 공부해서?
채-오빠들도 못했다. 집이 가난했고. 아버님이 일을 못하셨다. 공부를 많이 하시다 보니 힘든일을 못하셨다. 거친일을 못하셨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부모님 얘기 나오시니 어머님의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심-오빠들이 일찍부터 일을 하셨나 보다.
채-중학교 나온 오빠도 있고. 머리들이 좋으셨다. 그 시절에는 새마을운동 있었는데. 오빠들이 굉장히 모범 청년이었다. 오빠들이 산 개간하고 해서 돈을 버셨고. 그래서 살림은 좋아졌다.
심-중학교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채-그떄는 몰랐다. 당연히 안가는 줄 알았다.
심-간 친구들도 있었지 않나?
채-동네가 너무 가난해서 중학교 간 친구들이 없었다. 밭이 조금씩 있고. 논도 조금. 이웃동네는 교복입고 많이 갔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딸들은 거의 못갔다. 아들들도 중학교 이상은 조금 밖에 못 갔다.
심-초등학교에서 좋아했던 과목있나?
채-공부를 잘 했던 것은 아닌데 음악 좋아했다. 노래 부르는 것 좋아했다.
심-어떤 노래 좋아했나.
채-할줄도 모르면서 팝송까지 들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리듬이 좋아서.
심-라디오로?
채-그 시절에는 라디오로. 동네에서 스피커로 중계해주는게 있었는데. 그건거로도 듣고.
심-언제까지 고향에 있었나?
채-결혼해서 고향을 떠났다. 24살에 결혼했다.
심-남편분은 어떻게 만났나?
채-부모님이 중매해서 만났다. 시외삼촌하고 우리 아버님이 친구라.
심-언제 처음 만났나?
채-우리집에 선보러 왔었다. 시어머님, 외숙모님 두분. 중매하시는 분, 남편까지 5명이 한 번에 왔다. 남편은 막 군대를 갔다 왔을 때였다.
심-남편분 처음 봤을때 느낌 어땠나?
채-그냥 그랬다.
심-솔직히.
채-썩 맘에 들어오지는 않았는데. 돌아가는 길에 인사를 정중하게 하고 가더라. 거기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이고, 학벌이고, 가정이고 저보다 훨씬 좋았는데. 그렇게 만나서 결혼하고 살았다.
심-뒷모습이 매력적이었나?
채-예의바른 모습이라고 해야지. 거기서 믿음이 가더라.
심-국민학교 졸업하고 시집갈때까지는?
채-그 시절에는 어디 직장다니지는 않았다. 아버님이 딸들을 밖에 안 내놨다. 그런데 한복바느질 배우는 곳에 아버님이 아는 분이 있었다. 믿을만한 분이었다. 아버님이 그분에게 기술 배우라고 했는데. 시간만 보냈다. 지금도 보통사람보다는 잘하지만 많이 배우지는 못했다. 그래도 결혼하고 마산에서 살면서 우리 막내 낳고 맞춤집도 해보고 공장에서 나오는 일도 맡아서 해보고 했었다.
심-결혼해서 마산으로 갔나?
채-남편 직장따라.
심-남편분은 뭐 하셨나?
채-마산 자유수출구역에 있는 회사 다녔다.
심-인텔리였나보다. 어떤일 했었나?
채-남편은 이리공고 나오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적성에 안 맞는 공부 한 것 같다. 그래서 직장생활 한 5년 하고서 그만 뒀다. 자유수출구역에서 수출품 쇠를 깎고 연마 하는 것이었는데. 남편의 체력이 딸리고 건강이 나빠졌다. 남편이 열심히 일하고 빈틈없이 모아서 진짜 집을 빨리 샀다. 집을 사고난 후에는 직장을 그만뒀다.
심-마산에서 얼마나 살았나?
채-17년 살았다. 지금은 창원시가 됐다.
심-남편분이 일을 그만두신 다음에는.
채-특별한 일은 안하고 부업 같은 거 했다. 열심히는 살았는데 직장생활은 못하더라. 공무원으로도 들어갔는데 1년하고 그만두고. 제가 그래서 바쁘게 살았다. 알밤깎아서 수출하고. 남편하고 같이 했다.
심-어머님이 많이 일을 하셨겠네.
채-많이 하긴 했지만 나는 비교적 편했다. 남편이 거의 주도하고 돕기만 했다. 수출품을 만드는 뜨개질 작업을 아주머니들에게 가르쳐서 하곤했다.
심-마산에서는 왜 떠나왔나?
채-경상도 분이 들으면 좀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말씨가 정서가 너무 다르다. 3형제 낳아서 키우는데. 큰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막내가 초등하교 4학년이었다. 둘째는 6학년. 시장을 가면 물건 사다가 싸게좀 사고 좋은것 고르고 싶지 않나. 그런데 말을 못붙이게 한다. 사정없이 얘기한다. 전라도 풍습으로는 이해가 안 간다. 마산에 처음가서 월세도 알아보고 전세도 살고 했는데. 주인댁 아주머니나 딸들이 참 좋으 분들인데도 ‘엄마 밥 무라’라는 식의 경상도 사투리가 너무 귀에 거슬리더라. 우리 애들을 여기서 키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갈등을 했다. 서울로 갈지, 대전으로 갈지. 둘째언니가 살고 있는 대전으로 이사오게 됐다. 89년도에.
심-17년을 산 터전을 바꾸는게 쉽지 않았을텐데.
채-마음 먹으니까 되더라.
심-대전와서는 어떻게 살았나?
채-운이 좋았다. 5년만에 산 집이 17년 살고 나니까 집값이 올랐다. 그 돈을 가지고 대전 석교동에 집을 샀다. 그 당시 소원이 있었다. 잔디가 깔린 마당에 계단을 올라서 들어가는 집. 그 소원이 이뤄졌다. 석교동에서 2층 양옥집에 들어갔다. 그 시절 행복하게 잘 살았다.
심-그 시절에 행복하게 잘 사셨다는 것은 그 이후 어려움이 있었다는 건가?
채-원래 욕심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참 순탄하게 잘 살았다. 남편이 직장 안 다닌 것 외에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어도 모자라지 않았고. 남편이 세세하게 챙겨줬고. 애들도 가고자 했던 학교들도 잘 갔고. 아쉬움도 없다. 그런대로 편안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큰 아들이 대학교 졸업하던해에 IMF가 터졌다. 취업이 어려웠다. 대학원을 가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해서 대학원을 보냈다. 그런데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큰 아들이 힘들게 살고 있다. 계속 공무원 시험 도전해서 낙방하고. 이제는 기술 배우러 다니는데. 너무 많이 힘들어한다. 몸도 많이 말랐다. 부모라서 아들이 그런게 너무 힘들다. 그런것 빼면 괜찮다.
심-평탄하게 살아온 것인가?
채-주변을 돌아보면 너무 행복한 것 같다. 그래도 사람이라 아들 문제만. 아들이 너무 많이 말라서 마음이 아프다.
심-생각해보면 어머님이 힘든일도 있으셨을텐데 어머님의 마음때문에 그렇게 느끼시는게 아닐까?
채-종교를 믿고 있다. 큰스님들 좋은 법문 많이 읽었다. 종교서적도. 나름대로 자식을 위한다고 기도도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들 힘든거. 겸손하게 세상 바라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심-힘든일이 있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채-그렇게 산다. 좋은게 좋다고. 모든일 좋게 생각하고 편한대로 상대방 생각하면서 그렇게 산다. 나 혼자 사는게 아니지 않나. 제 마음대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내 생각만 옳은 것도 아니지 않나. 그전에는 아버님에게 교육받은대로 이게 아니면 아니다 다른 사람 평가도 하곤 했다. 남편에게도 그렇게 했다. 그렇다고 남편하고 싸우지는 않았다. 남편이 마음이 부드러워서. 그래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꼬집어서 말을 하곤 했었는데 60살이 넘어보니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것도 그것만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와서 그런게 보이더라. 그런것 때문에 내 마음이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심-그때는 마음이 힘들었다는 것인가?
채-늘상 힘들었던것은 아니고 원래 좋은게 좋다는 편이어서.
심-거의 성불하신것 같다.
채-그렇지 않다. 부족한게 많다. 상아탑반 반장을 맡고 나서도. 추천도 해주셨지만 내가 스스로 손을 들었다. 내가 나서서 다른분들에게 도움은 못드리면서 피해만 주는 것은 아닌가 우려도 되는데. 이일을 제대로 해낼지 걱정이다.
채-그런데 감사님 관상을 보니까 좋은 관상이다. 전문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수출일 때문에도 그렇고 봉사활동 하면서 많은 사람들 보고 살았는데. 감사님 상은 덕이있고 복스럽다. 편하고 좋은 상이다. 앞으로도 잘 풀릴 것이다. 감사님 부모님이 좋으시겠다. 이런 아들 둬서.
심- ^^;;;;;;;;;;;;;;(당황) 감사하다.
심-평탄하게 살아오셨다는데. 살아온 과정에 비해 마음의 평정을 이루신거 같다.
채-그렇지 않다. 사람이다 보니 욕심이 끝이 없더라.
심-야학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
채-살아가면서 다른 것은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그런데 영어는 아쉽더라. 옷을 봐도 지나가는 차를 봐도, 거리 간판을 봐도. 대문자는 알았는데 그 내용을 잘 모르겠더라. 정규공부를 못하고 살아온 바쁜 삶이다 보니 여성회관 같은 곳이나 복지회관 다니면서 여러가지 다양한 것 배웠다. 붓글씨나 사군자. 괜찮다는 것 많이 배웠는데 정규공부 할 생각을 못했다.
올케가 중리동에 살고 있는데 작년 겨울 어느날 전화가 왔다. ‘형님 우리 공부할까요’ 하더라. 그때도 바쁘게 살고 지금도 그렇지만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공부가 하고 싶어 ‘그래 우리 가자’ 그랬더니 올케가 알아논 곳 있다고 하더라.
처음 간 곳은 충청성인학교였다. 처음 영어만 끊어서 한달 다녔다. 너무 재밌긴 했는데 바빠서 쉽게 다닐 수 있는 대덕구에 있는 학교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대덕구청에 알아보고 해도 대덕구에는 그런 곳이 없었다. 그러다가 114에 야학을 물어보니 한마음야학을 소개해 주더라. 또 교차로에서도 한마음야학 광고를 보게 됐다. 찾기도 쉽길래 와봤는데 교감선생님하고 면담을 한 후 다니게 됐다.
그런데 올케는 그때 건강이 않 좋아서 혼자 다니게 됐다. 처음에는 충청성인학교에 죄스러웠다. 한마음야학과 얼마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그곳은 한달에 10만원씩 냈는데 한마음야학은 완전 무료아닌가. 돈 때문에 학교를 옮긴 것 같아 미안했다. 하지만 10만원이 내겐 큰 돈이었다. 그 돈을 온전히 나를 위해 투자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한마음야학에 다니며 일단 배우고 나서 내가 배운것을 다시 사회에 환원해야 겠다는 마음을 먹고 한마음야학에 오게 됐다.
심-야학에 어떤 반으로 왔나?
채-중등반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꽤 어렵더라. 수학하고 영어가.
심-처음에는?
채-지금도 그렇다. 나이가 있다보니 한 번 배워도 다시 새로워 지더라. 그래도 선생님들이 어느분 할 것없이 잘 가르쳐 주셨다. 키가 작아서 앞에 앉았는데. 앞에 앉아서 배우니 이해는 빨리 되긴 했다. 하지만 몇번을 들었어도 집에 가서 혼자 하려고 하면 모르겠더라. 나이도 나이고 성격상 잘 잊어버린다. 좋은일이 됐든 나쁜일이 됐든. 닥친 것만 열심히 하고 살았는데. 그런 성격이다 보니 공부한 것도 금방 잊어버린다.
심-공부에서 그러면 안 되는데 ㅎㅎ
채-그러니까 ㅎㅎ
심-얼마만에 검정고시 합격했나?
채-3개월만에.
심-오~~!!!!!
채-이번 8월 6일에 발표했다. 4월말부터 공부 시작해서 8월달에 합격했다. 7월에 시험봤는데 나도 놀랐다. 점수 간신히 넘었는데.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글 쓰는게 좋아서 가끔 글을 쓰곤 했다. 그런것 도움 된 것 같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느낀게 이 나이 먹어서도 시험 앞두고 기출문제 두세번 반복해서 보니 머리에 쏙쏙 들어오더라. 아주 쉬운것만. 수학, 영어는 빼고. 내 스스로에게 너무 감사하고 놀랬다. 나도 이 나이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 너무 감사했다. 한마음야학 들어오고 교장, 교감선생님과 선생님들 만난것. 교장선생님 도덕시간에 쏙쏙 들어오게 잘 알려주시고. 교감선생님도 섬세하게 잘 챙겨주시고. 각 과목 선생님들도 그렇고.
심-다 까먹는다고 하시더니 공부는 잘 하셨네.
채-많이 잊어버렸다. 배우는대로만 저장하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면 100점도 받을텐데.
심-남들 3년 공부할 것 3개월만에 마친것이니 대단하신거다.
채-선생님들 덕분이다. 선생님들이 그렇게 가르쳐주셨으니 된 거다. 남편도 그렇고 아들과 며느리들도 너무 좋아했다. 어떻게 그렇게 했냐고 놀랍다고 좋아하더라. 케익도 사가지고 오고. 집에서 잔치도 했다.
심-좋으셨겠다.
채-정말 좋았다.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다.
심-고등부에 올라와보니 어떤가?
채-고등부는 확실히 범위가 넓어서. 뭐라고 하긴 그렇고 중등부에 비하면 어렵다.
심-어떤 점이 힘든가?
채-범위가 넓으니까.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국어가 벌써 지문부터 굉장히 많고 다양하니. 글같은 것도 시대도 그렇고. 그래도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해볼것이다.
심-긍정의 아이콘이다.
채-그렇지만은 않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심-선생님들에게 평소 말씀하시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이런점은 바꿔주셨으면 하는 것 있나?
채-선생님들이 열심히 해주시는데 우리가 못 따라가는 것이다. 시간이 8개월이나 있으니 우리가 잘 따라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등부에서 짧은 시간임에도 선생님들이 열심히 해주셔서 합격할 수 있었다. 선생님들 믿고 따라가면 될 것이다.
심-반장은 어떻게 하게 됐나?
채-반장은 중등부에서도 하라고들 했다. 제가 나서는걸 좋아하는 것 같다 ㅎㅎ. 능력도 부족한데. 그래도 내 성격이 사회에 헌신하고 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아저씨(남편)한테 않좋은 소리도 듣는다. 우리 아버지 피를 물려 받은 것 같다. 아버지가 그 시절에 동네 이장도 하시면서 이일 저일 많이 하셨다. 6·25전쟁 때는 사람 목숨도 구했다고 한다.
심-어떤 일이었나?
채-아버지가 이장었다. 북한군이 물러난 후 북한군에 부역했다고 오해 받아 총살 직전에 몰리신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서서 억울한 누명이라고 해명해 주셔서 살았다고 한다. 아버님의 그런 모습 보고 배워서.
어머님이 힘드셨을 것이다. 아버지가 밖으로 많이 활동하시니까. 지금 남편도 그런 얘기 한다. 자신한테도 봉사 좀 하라고. 몸으로만 때우지만 내가 그런 성향이 있다. 밖에서 활동하는. 반장도 중등부에서 하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조금 하다가. 다시 내가 나서면 안 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젊은 사람들 활동하게 해야한다는 생각에 내놨다. 젊은 사람 추천해서 하라고 했다. 몇 사람 안되도 화합하는게 힘들더라.
적십자 봉사단 회장을 6년 했는데. 여러 사람 아우르고 내가 숙여서 상대편 편하게 하면 융화되더라.
고등부 올라왔는데 반장 선거에서 3사람이 추천을 받았다. 안하다고 하다가 다른 분도 안한다고 해서 그러면 제가 하겠다고 했다. 교장선생님은 부담갖지 말라고 하셨고. 내가 한다고 나서서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젊은 분들이 좋게만 보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제가 봉사단체 할 때 보면 30대 후반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이 있다. 제가 60대인데. 연세 많은 형님들과 젊은분들 보면 차이가 많다. 봉사활동하다 보면 본인은 즐거워서 하는데. 그래도 나이가 들면 봉사도 물러나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반장한다고 수락은 해놓고 그런게 조금 마음에 걸린다.
심-그래도 야학의 최고 상위반 반장인데.
채-그래서 더욱 부담이다. 젊은 분들 얼마나 똑똑한가. 그런데도 선뜻 나서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분들이 없어 할 수 없이 하게 된 것이다.
심-반장 활동은 어떻게 하실건가?
채-다른것 없다. 교장, 교감선생님이 반장 하는 것 없다고 하셨고. 단지 학생들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공부 열심히 하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검정고시 합격해서 좋은 지식을 갖고 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게 선생님들께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나를 숙이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주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계획은 없다.
심-고졸 검정고시 합격하면 이후 꿈은?
채-지금 전통예절을 배우고 있다. 전통예절이 참 좋기도 한데. 현 시대에서는 어려움이 많더라. 전통예절은 사회에 필요한 예절이다. 젊은이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어렵다. 자격증을 따서 사회에서 학교나 유치원, 복지관 같은 곳 다니면서 우리 한국 고유의 예절 같은 것을 알려주고 싶다.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대학가는 것은 아직 생각도 못하고 있다. 남편이 중졸 합격한 다음에 고등반 간다고 하니까 내가 왜 이 나이에 밥도 굶어야 하냐고 하더라. 저녁에 집에 와서 피곤해 잠도 못자가면서 고생하냐고 타박한다. 공부하라고 안 할테니 편하게 살자고 한다. 그런데 아들하고 며느리들이 공부는 하고 싶을때 해야 한다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생각해보면 저녁에 퇴근해서 3~4시간을 혼자 바둑이나 두고 있어야 하니 남편이 얼마나 심심하겠나. 8개월만 참아달라고 했다.
심-남편분이 애가 된 것 같다. ㅎㅎ
채-연세드시니까ㅎㅎ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건강하시고 한데도. 아내가 집에 없으면 그런것 같다. 내가 이쁘지도 않고 애교도 없는데 그래도 그냥 옆에만 있으면 편한가 보다. 아침에 나오면 저녁 10시 넘어 들어가니 뭐가 좋겠나.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미안하다. 그래도 8개월이면 무슨 결과가 있겠지라는 생각에.
심-집을 자주 비우시니 곰탕 자주 끓여 주시겠다.
채-그러면 되는 건가. 나이가 들면 남녀가 서로 반대가 되는 것 같다.
심-어머님 말씀 들어보면. 젊으셨을때도 그런것 같은데.
채-젊었을때는 그래도 가정만 알고. 40대 중반부터 열심히 활동 하기 시작했다. 밖으로 돌았다고 해야지.
심-한마음야학 어떤가?
채-너무 좋다. 우리 같은 사람들 눈떠주는 것 누가 생각할 수 있나. 야학에 종사하시는 선생님들 너무 감사하다. 컴퓨터도 못하고 겨우 열어보는 정도인데. 한마음야학 인터넷에서 쳐보니 전국적으로 유명하더라. 선생님들 대단하다. 그 바쁜 생활속에 시간나서 오시는 것 보면. 열정적으로 하시니. 어느 학교에 가도 선생님들한테 그렇게는 못 배울 것 같다.
심-안타깝게도. 수업은 잘하시는데 자기 앞가림은 못하시는 노총각, 노처녀 들이 많다. 심 감사도 그렇고. 조언 좀.
채-내 아들도 못했는데. 조언은 모르고. 공부하면서도 결혼 못했다는 선생님들 있는데. 너무 잘 생기고 좋은 분들인데. 중매 서주고 싶은 마음뿐이지. 무슨 조언을. 그런데 본인이 해야 한다. 물론 주변에서 도우면 좋겠지만. 본인 마음을 낮춰서 다른 것 다 떠나서 마음씨 착하고 건강하고 이런 사람들 만나야 한다. 살다보면 정든다. 선생님들 안타깝다. 저렇게 좋은 분들이. 제 맘 같아서는 다 짝 지어주고 싶다. 심 감사도 좋은 분 만날 것이다. (ㅎㅎㅎㅎㅎ)
심-마무리 단계다. 어머님 삶이 평탄하시지만은 않았을텐데. 특유의 긍정적 성격으로 이겨내신것 같다.
채-그렇지 않다. 단지 남편이 직장이 없었던 것. 그래도 일은 다 하셨다. 놀지는 않았다. 아들도 마찬가지. 일을 못하고 있지만 부모에게 손을 벌릴려고 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돌봐주려고 하지만.
내가 복을 많이 타고 난 것 같다. 시집도 그렇고. 어느 분이 나한테 그러더라. 본인은 5%만 해도 다른 분들이 알아서 해주는 사람이라고. 주변에서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그래서 되는 것 같다. 야학도 선생님들이 그렇게 열심히 해줘서 고등학교 합격하고.
검정고시 발표날 확인 전화를 못 하겠더라. 영어 때문에 합격 못 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언제 발표한다고 문자도 뜨는데. 합격하면 어련히 문자 오겠지 하면서도 너무 궁금했다. 자식들한테는 말도 못하고. 합격자 명단이 나왔다는 문자와서 혼자 인터넷 들어가봤다.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더라. 정말 감격해서 혼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다 선생님들 덕분인 것 같다. (눈물)
심-어머님은 남들이 해준다고 하지만 어머님이 주변분들한테 잘하시니까 그렇게 된 것 아닌가?
채-잘하지 못한다. 어지간한 것 가지고는 남들한테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는 정도. 이 생각으로. 그거 한 가지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것 같다.
심-말씀 못하신다더니. 너무 잘하신다.
채-진짜 못한다. 나이가 드니 말이 많아지는 것 같다. 안그래야지 하는데. 어느새 말이 많아졌다. 이말은 안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심-마지막. 야학 선생님들에게 하고 싶은말.
채-교장, 교감, 각 반 선생님들 너무 감사하고다. 항상 건강하고 가족들 다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더 많은 공부하고 싶어하는 분들한테 많은 것 가르쳐주시고. 모르는 것 눈떠서 행복하게 해주실 줄 믿는다. 저도 선생님들처럼 그렇게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살고싶다. 작은거라도 나누면서. 한글반에 선생님 부족하시다고 한다. 제 실력으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등검정고시 합격한 후 제가 할 수 있다면 한글반이라도 맡고 싶다. 연세 많으신분들 고통받고 가슴 아프게 사시는 분들 가르쳐 드릴수 있다면 가르쳐 드리고 싶다. 교장, 교감선생님이 받아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심-남편분이 싫어하겠다 ㅎㅎ
채-어차피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사회에 봉사하고 살 수 있다면. 건강만 따라주면 그렇게 살고 싶다.
심-곰탕 끓여 놓고 나와야 겠네.
채-그렇게 해야 겠다. 좋은 아이디어다.
심-동료교사가 될 수도 있겠다.
채-중학교 고등학교는 못 가르치고. 한글은 제가 노력하면 되지 않을 까 생각한다.
심-어려움을 겪어 보신 분이 그 시각에서 더 잘 가르치실수도 있다. 열심히 성원 보내겠다.
채-다 덕택이다. 얼마나 감사한지. 원이 있다면 돈이 잘 벌려서 한마음야학에 후원하는 후원자로서도 살고 싶다. 노력 해야겠다.
그리고 채성복 어머님은 모든 야학 가족들에게 “날마다 좋은 날 되세요”라며 인터뷰를 마치셨다.
첫댓글 어머니 화이팅 요ㅋㅋㄱㅋㅋㅋㅋㅋㅋㅋ
날마다 좋은 날!! 감동적이네요. 꿈은 이루어 집니다.
지혜반 수업 시간에 어머님을 뵈면 특유의 온화함이 있으셨지요! 인생을 바라보는 어머님의 따뜻한 눈길을 배우고 싶습니다.
심감사님의 인물탐구 정독하긴 처음이네요~ 잘 읽었습니다..채성복 어머님께 중매를 부탁해볼까나~ㅋㅋ
단체 미팅이 좋을 듯!
일부러 안 사귀는 거라면서요?
대용샘 단체미팅은 별 효과가 없습니다. ㅋㅋ 미정샘 내년엔 결혼해야죠~ㅋㅋ
출근길에 읽은 채성복어머님의 인터뷰 정말 좋네요.. 어머님의 긍정의 마인드~~ 정말 멋지세요 ㅎㅎ
좋은 말씀 잘 듣고 갑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글 쓰는게 좋아서 가끔 글을 쓰곤 했다. " <- 이 부분
기초만 제대로 배워두면, 좀 늦더라도 마음이 따르면 해 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평소 습관이 큰 도움이 되는 듯 합니다.
채성복 어머님~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심감사님도 수고하셨구요~
더욱 열심히 살겠습니다~^^ 웬지 어머님 글을 보니 그래야할것 같아요~
또 많은걸 배우게 해주시는군요.. 저는 야학에 배우러 다니니 늘 학생입니다.. 어머님의 긍정과 강인한 시대정신 잊지않겠습니다^^
대단하시네요...더 많이 노력하며.. 배우며 ..살아가겠습니다..!
따뜻함과 온화함에 귓가에 들려요
상아탑 반장이시네요*^^*... 같이 공부하는 분들도, 선생님들도 많이 느끼고, 깨닫고, 배웁니다.
채성복어머니의 온화한 미소감사합니다. 행복과 즐거움이 합께하는 상아탑반 파이팅~~~~~
♡♡♡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어머님 밝은 모습이 제 마음 구석 어두운곳까지 환하게 비추는것 같네요...감사해요
감사합니다 부족한저에게 이런좋은기회와 사랑을주시니 가슴가득행복합니다 희망찬 2014년새해가밝았습니다 한마음야학에 봉사해주시는 모든선생님 !소망하시는일 다 이루시고 건강행복하세요._()_^&^ 처녀총각선생님들께선 꼭~좋은인연만나 청첩장주시길부탁드림니다.^^*채성복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