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믿는이들을 다루시는 길 -발 씻음-
민수기 19장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일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게 되면 붉은 암송아지의 재로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함을 보여주신다. 재를 사용하는 방법은 재를 흐르는 물에 담그는 것이다(민 19:17). 만일 누구에게 더러움이 있다면, 이 잿물을 그의 몸에 뿌리면 그는 정결케 된다.
그리스도의 역사는 이미 완성되었고, 오늘 그 분은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히실 필요가 없다. 우리의 필요는 이제 이 재를 사용하고 이 역사의 효능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 적용하는 방법은 바로 성령과 섞는 것이다.오직 성령의 역사만이 그리스도의 역사의효능을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문제는 주 예수님의 역사에 있지 않고 성령의 역사에 있다. 오늘의 문제는 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지 않으신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의 역사가 우리 몸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 있다. 바꿔 말해서, 주 예수님의 역사가 아직 성령에 의해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당신이 당신의 죄를 자백할 때 성령은 주 예수님의 속죄의 역사를 당신에게 이루어지게 하신다. 당신으로 하여금 그분을 생각하게 하고 그분의 역사의 완전성을 인식하게 한다. 성령이 우리 마음 속에서 주 예수님의 속죄 사업을 상기시키고 그 진리에 들어서게 할 때, 우리 마음에는 평강과 희락이 있게 된다. 성령이 오신 것은 재의 역사 곧 주 예수님의 영원한 역사를 우리 몸에 적용시키기 위함이다. 주 예수님은 모든 역사를 이루셨고, 우리는 어떤 것을 하시도록 그분께 간구할 필요가 없다. 이제 당신이 죄를 자백할 때, 성령은 오셔서 주 예수님이 어떻게 속죄 사업을 완성 하셨는가를 생각나게 하며 주 예수님의 속죄의 유익을 얻게 한다.
신약의 발 씻음
구약이 우리에게 주 예수님의 죽으심이 어덯게 우리를 정결케 하는지를 보여 줄 뿐 아니라, 신약에서 주 예수님도 동일한 일로 그리스도인이 다시 죄를 범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셨다. 요한복음 13장은 우리에게 한 폭의 그림을 보여 준다. 1절 :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그리고 나서 주 예수님은 한 가지 일로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낼 뿐 아니라 더욱 그분의 끝까지 사랑하는 사랑을 나타내셨다. 요한복음 13장은 요한복음 3장과 다르다. 요한복음 3장은 하나님의 처음 사랑을 말하고, 요한복음 13장은 하나님의 끝까지 사랑하는 사랑을 말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다.
요한복음 12장 3절~10절 : 『저녁 먹는 중예수는 아버지게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주게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발을 씻는 것은 성경에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것이고, 제자들이 서로 발을 씻겨주는 것이 다른 한 가지이다. 제자들이 서로 발을 씻겨주는 것은 형제들이 서로 일깨워 주고 서로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것에는 또 다른 뜻이 들어있다.
우리는 모두 신을 신고 양말을 신었기 때문에, 발을 씻는 것이 우리에게는 그다지 필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중 몇몇 사람은 동남아시아에서 왔는데, 그 곳 사람들은 대부분 양말을 신지 않은 채 샌들을 신고 다나기 때문에 발을 씻을 필요가 있다. 유대인들은 동남아시아 삶들처럼 샌들을 신고 양말을 신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사막을 통과하여 다니기 때문에 발을 자주 씻어야 한다. 발은 여행함으로써 더럽혀질 뿐 아니라 목욕하고 나와도 금방 더럽혀진다. 그러므로 온 몸이 깨끗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자주 발을 씻어야만이 온전한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다.
주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이 그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0절 :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목욕한 사람은 누구인가?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일어나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행 22:16)고 말했다. 성경에서 목욕하는 것은 주 예수를 믿음으로 사람의 죄가 완전히 정결케 되는 것이다. 지난 메시지에서 우리는 암송아지가 불살라지는 것을 보았다. 암송아지의 죽임당함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기 위한 것이고, 암송아지의 불살라짐은 우리의 정결케 함을 위한 것이다. 이 메시지에서도 우리는 이 두 부분의 정결케 함 곧 목욕하는 것과 발 싯는 것을 볼 것이다. 주 예수님의 역사는 죽임당하는 것과 불살라지는 것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우리가 그분의 역사의 효력을 얻은 때에도 이 두 방면 곧 목욕하는 것과 발 씻는 것이 있다. 그분은 자기 피로 우리를 정결케 하셨고 영 단번에 구속 사업을 이루셨다. 우리가 그분을 믿고 영접하는 것은 곧 그분의 피 안에서 목욕함으로써 완전히 정결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목욕을 하고, 우리 모든 죄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결케 되었음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러나 주님을 믿은 후, 즉 우리가 목욕을 한 후 광야 길을 가는 동안 우리는 세상과 접촉하지 않을 수 없고 각종 더러운 것에 오염되지 않을 수 없다. 광야 길을 가고 있는 동안, 우리는 자연히 세상과 접촉하게 되고 우리 발은 땅의 먼지로 인해 더럽혀질 것이다.
목욕하는 것과 발 씻는 것
그러므로 성경에서 볼 때, 우리 그리스도인의 목욕은 한 번이고 발 씻는 것은 여러 번이다. 우리는 목욕은 한 번만 하지만 발은 여러 번 씻는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피의 씻음은 한 번 갖지만 잿물의 씻음은 여러 번 필요로 하는 것과 같다. 주 예수님은 단번에 구속 역사를 이루셨지만, 성령은 수차 주 예수님의 역사를 우리에게 적용시키신다. 우리는 단 한 번의 목욕, 곧 우리 몸의 모든 죄씻음을 갖지만, 광야 길을 걷는 동안의 더럽혀짐을 씻기 위해 여러 번 발을 씻는다. 목욕은 한 번으로 족하나 발은 매일 씻어야 한다. 발 씻음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기인하며,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으며, 주 예수님의 역사에 근거한다. 우리가 한 번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정결케 되었다면 날마다 지속적으로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깨끗케 되어야 한다. 주 예수님이 다시 역사하실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에 근거하여 우리가 거듭거듭 다시 정결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를 정결케 하는 것은 재가 아니라 잿물이다.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당신과 내가 심판을 받았다는 표시이다.
하나님은 주 예수님의 심판으로 우리에 대한 심판을 대치하신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심판하신 것이다. 오늘 사람들은 주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이다. 바꿔 말해서,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심판을 받은 것이다. 오직 이것만이 우리를 정결케 할 수 있다. 우리의 매일의 정결케 됨은 주 예수님의 죽으심에 근거한다.
우리가 알듯이 우리는 다 목욕한 사람이다. 우리의 죄가 이미 정결케 되었다. 우리는 한 번 구원받음으로 영원히 구원받았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매일 세상과 접촉함으로 자주 더러움에 오염되는데,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와 같이 피로 정결케 된 후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채 낙원에 갈 수는 없다. 오늘날 죽음에 임박하여 주님을 믿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광야 길을 가야 한다. 광야 길을 가는 동안 우리 모두는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 합당한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범죄한 사실을 가지고 있고 우리의 발은 더럽혀진다. 많은 때 우리는 조급하여 합당치 않은 말을 한다. 많은 때 우리는 합당치 않은 상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더러움에 오염됨을 인정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 예수님의 발 씻는 역사를 예비해주셨다. 이것은 단지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의 표시가 아니라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는 그분의 사랑의 표시이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그분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발을 씻어주신다. 비유로 말하자면, 발을 씻는 것은 결혼 전의 사랑이 아니라 결혼 후의 사랑이다. 그분은 그분 앞에서 계속 우리로 정결함을 알게 하신다. 이 때문에 주 예수님은 목욕한 사람은 발만 씻으면 온 몸이 깨끗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아들이 우리를 목욕시켜 주셨음을인해 감사드린다.
여기서 주님은 우리로 교훈을 삼게 하시려고 특별히 베드로의 어리석음이 나타나도록 허락하셨다. 그분이 베드로를 씻기려고 하실 때, 베드로는 『주여,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주님에 대한 자기의 겸손과 예의를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주 예수님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고 하셨다. 이 안에 커다란 영적인 진리가 담겨져 있다. 성령이 오실 때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말이다. 『지금은 네가 이상히 여길 것이다. 내가 대야에 물을 담아 네 발을 씻는 것만 보고서는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는 네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언제나 자기의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내 발을 영원히 씻기지 못하시리이다』라고 말했다. 주 예수님의 답변은 이러했다. 『발을 씻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미 정결케 되었고 주 예수님의 피에 의해 정결함을 얻었기 때문에 세상을 통과할 때 더러움으로 약간 오염된 것은 그냥 내버려 두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말라 주 예수님은 만일 그분이 우리 발을 씻기지 않으면, 우리는 그분과 아무 상관이 없게 된다고 하셨다. 이것은 당신과 내가 오늘 교통을 잃게 되고 장래 왕국 안에서도 교통을 잃게 됨을 말한다. 그러므로 매일 정결케 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는 매일매일 주 예수님에 의해 정결케 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매일 다시 회복되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효능을 얻을 필요가 있다. 이것은 주 예수님의 피가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씻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 역사는 하나님 앞에서 이미 영 단번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 우리는 여러 번 씻음을 체험할 수 있다. 그 아들의 피는 거듭거듭 끊임없이 우리를 씻어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발을 씻고, 우리 발이 정결한지를 주의해야 한다.
베드로는 우리와 같이 한 쪽 끝으로 갔다가 다른 쪽 끝으로 감으로써 극단에 빠지곤 한다. 좀 전에는 주님이 영원히 내 발을 씻기지 못하시리이다라고 말하고서 이제는 주님이 그의 발을 씻기지 않으시면 주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시니까 즉시,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주옵소서.』라고 말했다. 주 예수님은 이 극단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에게 보여주셨다. 목욕한 사람은 발만 씻으면 온 몸이 정결케 될 것이다. 두 번 회개하고 두 번 믿고 두 번 주님을 구주로 영접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두 번 거듭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당신이 한 번 주님 앞에 나아와 그분을 구주로 영접하는 것으로 족하다. 아마 당신은 지난 번에 주님을 잘못 영접해서 요 며칠간 의심이 생긴 것 같으니 다시 한 번 주님을 영접해야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머리도 손도 다시 씻을 필요가 없다. 목욕한 사람은 발만 씻으면 온 몸이 정결케 된다. 우리가 온 몸을 정결케 하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다. 비록 우리가 세상과 접촉함으로써 발을 더럽히지만, 이것이 우리 온 몸을 더럽힐 수는 없다. 온 몸은 한 번 목욕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것은 반복될 수 없다.
할렐루야! 오늘 당신이 진흙탕 속에 빠져서 당신의 발이 까맣케 되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당신의 온 몸이 정결케 된 것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당신이 한 번 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함으로 온 몸이 정결케 되었기 때문에 당신의 몸을 다시 정결케 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한 번 정결케함을 얻으면 영원히 정결케함을 얻게 된다. 누구도 이 사실을 뒤집을 수 없다. 당신의 발이 더럽혀지고, 당신이 주님과의 교통에서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며, 왕국에 참여하지 못할 수 있어도 당신의 온 몸은 여전히 정결하다. 목욕한 사람은 발만 씻으면 온 몸이 깨끗케 된다. 매일매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돌이켜 우리 구주를 바라보는 것이다. 주 예수님이 이미 영원한 역사를 완성하셨기 때문에 이 땅에 살면서 매일매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발이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도록 깨끗하게 보존하는 것이다. 불행히 더러움에 오염되었다면, 주 예수님과 우리의 교통이 끊어지지 않고 장래 우리가 주와 함께 왕 노릇 할 수 있기 위해 매일 정결케 함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길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 있도록 매일매일 우리의 발을 깨끗이 보존해주시기를 주님께 간구한다.